“저는 박민서(배두나 분)의 어린 시절을 맡았어요. 민서는 당구를 좋아하는 아버지의 8번 당구공을 실수로 잃어버려요. 그래서 아버지 몰래 돌려놓겠다는 생각에 인터넷으로 8번 당구공을 주문하죠. 그런데 이 일이 지구에 멸망을 불러오는 원인이 되는 바람에 영화를 촬영하면서 ‘내가 지구를 멸망시켰구나’ 하는 아픈 마음이 들기도 했어요. 물론 영화 속 이야기이지만 왠지 미안하더라고요.”
진지희는 영화 촬영에 들어가기 전 자신이 인류를 멸망에 빠뜨리는 역할을 맡았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무척 흥미로웠다고도 했다. 하지만 막상 촬영에 들어가서는 실제로 그런 일이 생긴다면 절대로 자신이 인류 멸망의 원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고. 지금까지 다른 사람에게 큰 해를 끼친 일이 없었는데, 앞으로도 그렇게 크고 싶다는 어른스러운 희망을 전하기도 했다.
“영화처럼 진짜로 지구가 멸망한다면, 가족과 함께 있고 싶어요. 아빠, 엄마랑 손을 잡고 지구가 멸망하는 시간까지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하면서 보낼 거예요. 저는 아직 어리고, 할 일도 많은데 지구가 멸망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조금은 슬프기도 해요.”
‘지구멸망보고서’는 진지희가 출연하지 않은 단편 ‘멋진 신세계’로 인해 15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받았다. 진지희는 올해로 만 11세. 임필성 감독은 “영화가 시작한 지 30분이 지난 후에 지희양이 관람을 시작하면 좋을 것 같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해를 품은 달’의 철부지 민화공주를 연기한 것이 불과 얼마 전인데 진지희가 부쩍 자란 듯하다. 인터넷 검색어 창에 이름 석 자를 치면 ‘폭풍성장’이라는 연관 검색어가 뜰 정도다. 이젠 ‘빵꾸똥꾸’를 외치던 철없는 꼬마가 아닌, 제법 소녀티가 묻어난다. 일찌감치 연기력을 인정받은 진지희에게 ‘이모 팬’은 부디 이대로만 자라준다면 좋겠다는 바람을 품어본다.
■글 / 정은주(객원기자) ■사진 / 박동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