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경이 SBS-TV 새 일일극 ‘그래도 당신’으로 안방극장에 컴백한다. 지난해 봄 막을 내린 ‘욕망의 불꽃’ 이후 1년 만이다. “20년 넘게 연기를 하면서 캐릭터 없이 이렇게 오래 쉬어본 적은 처음이다”라는 말처럼 신은경에겐 유난히 긴 공백기였다. 다시 시청자들 앞에 선 그녀의 얼굴에는 시종일관 웃음이 가득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 좋은 설렘이었다.

안방극장 복귀한 신은경, 힐링의 아이콘 될까
아역 시절, 오랜 무명 기간을 거쳐 톱스타의 자리에 올랐지만 계속되는 악재로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을 살았던 여배우의 삶. 화려하고 당차 보였던 그녀의 인생 이면에는 우리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오랜 아픔과 눈물의 시간이 쌓여 있었다.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던 그녀의 바람이 이루어진 걸까? 방송이 나간 지 한 달도 채 안 돼 SBS-TV 새 일일드라마 ‘그래도 당신’의 주인공 ‘차순영’ 역에 캐스팅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빚은 거의 다 갚았고 이제 50부작 주말드라마 하나만 하면 된다. 캐스팅 부탁드린다”라며 털털하게 웃어 보였던 그녀였으니 새 작품을 시작하는 감회가 남다를 만하다.
“안 그래도 캐스팅 소식이 전해지고 ‘힐링캠프’ 팀으로부터 축하 전화를 많이 받았어요. 이경규 선배님께서도 축하한다고 전화해주셨고요. 제 캐릭터가 워낙 강하다 보니 제작진이 차순영 역으로 가장 먼저 떠올린 배우는 아니었을 거예요. ‘힐링캠프’ 에서 보여드렸던 모습을 보고 가능성을 발견하신 게 아닌가 싶어요. 캐스팅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해요. 이제 굉장히 힘든 그런 상황들은 모두 지나간 듯해요.”
‘그래도 당신’은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재벌가의 경영권 분쟁에 휘말려 이혼하게 된 한 소시민 부부와 그들의 이혼을 둘러싼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진정한 결혼의 조건을 되짚어보는 드라마다. 신은경은 시어머니가 하던 치킨 집을 물려받아 알뜰하게 꾸려나가는 착한 아내이자 엄마 ‘차순영’ 역을 맡았다. 소박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던 순영은 사업 실패로 구속 위기에 처한 남편을 구하기 위해 위장이혼에 동의했다가 남편의 배신으로 진짜 이혼하게 된다. 그녀는 가장 마지막에 캐스팅돼 다른 배우들보다 늦게 합류하게 됐음에도 순조롭게 촬영 스케줄을 소화해내고 있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일정이 타이트했어요. 처음에는 자신이 없었는데 첫 회 대본을 보고 나서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대본을 보면서 공감이 되지 않으면 시청자분들도 절대 공감할 수 없거든요. 순영이라는 캐릭터가 정말 우리 주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대부분의 대한민국 아줌마의 모습이더라고요. 그동안 여러 역할을 해오며 언젠가 그런 리얼한 캐릭터를 연기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있잖아요. 결혼해서 시부모 모시고, 남편과 아이 챙기며, 소소하지만 예쁘게 사는 우리 모두의 삶을 순영이를 통해 보여드리고 싶어요. 그런 잔잔한 삶에서 벌어지는 예기치 못한 사건들이 보시는 분들께 더 크게 다가가지 않을까 싶어요.”
착한 캐릭터 만들어준 작가에게 감사해

안방극장 복귀한 신은경, 힐링의 아이콘 될까
“한 번 배역을 맡으면 촬영이 끝날 때까지 그 역할에 빠져 있는 편이에요. 극단적인 면이 많은 캐릭터들을 연기하다 보니 실제 성격도 그렇게 변하더라고요. 스스로에게 엄격해지고 촬영할 때 NG 내는 것도 용납 못했어요. 그만큼 정신적으로도 힘들었었는데 순영이는 참 착하고 둥글둥글한 여자예요. 그러다 보니 스스로에게 좀 편해지고 너그러워졌어요. 저를 스스로 너무 몰아가지 않도록 착한 순영이를 만들어줘서 작가님께 정말 감사해요. 제가 저희 매니저와 스태프들에게 그런 말을 했어요. 드라마가 끝날 때쯤엔 나도 순영이처럼 순둥이가 되어 있을 것 같다고. 이제 너희 고생 끝났다고요(웃음).”
복수극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자극적인 설정이 빠질 수 없을 터, 전작에 이어 또 한 번 복수의 화신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물음에는 “사람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평범한 사람이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될 수는 없잖아요. 복수를 한다고 하더라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지는 않아요. 순영이가 어느 날 갑자기 얼굴에 점 찍고 나타나 남편에 대한 복수를 불태우는 독한 사람이 되는 건 저도 용납이 안 될 것 같아요. 사람이 살면서 큰일을 겪으면 외향적으로 변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잖아요.”
작품과 캐릭터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녀는 그 어느 때보다 즐거워 보였다. 전에 없던 편안함마저 느껴졌다.
“올해 연기 생활 27년째예요. 작년 3월에 드라마 끝나고 올해 5월까지 이렇게 오래 쉬어본 적이 처음이에요. 오랜만에 하는 작품이라 행복하고 매일 촬영장 가는 게 무척 즐거워요. 무엇보다 이번 드라마는 굉장히 편안하게 하고 있어요. 오래갔으면 좋겠어요. 장수하는 드라마가 돼서 극중 제 딸이 커가는 모습을 보고 싶은 욕심도 생겨요.”
얼마 전 아프리카 부룬디로 봉사활동을 다녀온 뒤 더욱 감사하는 삶을 살게 됐다고. 긴 터널을 지나 다시 한번 출발선에 선 배우 신은경. 비장한 각오가 아닌 여유로운 설렘으로 또 한 번의 시작을 준비하는 그녀는 지금 가장 행복하다.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안진형(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