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하늘과 바오밥나무가 그림 같은 풍경을 만들어내는 나라. 배우 류수영이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에서 특별한 인연을 맺고 왔다. 웃음과 눈물, 희망이 함께했던 11박 12일간의 여정. 그곳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아이들의 맑은 눈동자였다.
세 손가락의 천사, 미가엘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에 희망의 씨앗 심고 온 배우 류수영
“평소 막연하게 그곳 아이들에게 무언가 도움이 되는 일을 할 수 있다면 참 보람 있겠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막상 출발을 앞두고는 긴장이 되더군요.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나도 모르게 얼굴을 찡그리지는 않을지, 아이들이 낯선 나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설렘과 두려움을 안고 비행기에 올랐어요.”
그렇게 꼬박 22시간을 날아 도착한 그곳에는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마다가스카르의 수도 안타나나리보 외곽에 있는 쓰레기매립장. 매일 오후 안타나나리보에서 수거된 쓰레기가 모이는 이곳은 마을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꾸리고 있는 곳이다. 그들의 유일한 생존 수단은 바로 쓰레기다. 아이와 어른 할 것 없이 하루 종일 쓰레기 더미를 뒤져 찾은 숯, 병, 종이 등을 모아 생계를 이어간다. 그렇게 매일 쓰레기를 뒤져 버는 돈은 하루에 1달러. 한 달을 모아야 우리 돈으로 2만원 남짓 되는 돈은 그나마 월세를 내고 나면 남는 것이 없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열악한 상황이었어요. 산업폐기물이 쌓여 있는 곳 옆에 사람들이 집을 짓고 사는데 월세까지 받더라고요. 아이들은 집세를 내기 위해 쓰레기 더미 사이에서 버려진 음식과 팔 수 있는 물건을 찾아야 해요. 쓰레기 더미가 유일한 놀이터이자 수입원인 셈이죠. 하루 종일 쓰레기를 줍느라 학교에 가지도 못하고요.”
쓰레기가 쌓인 곳 옆에 늘어선 판자로 지어진 집. 비가 오면 물이 새고 바람이 불면 날아가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해야 하는 집이지만 살 곳이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깨진 유리가 널린 곳을 맨 발로 서슴없이 다니는 어린 소년들 가운데 그의 시선을 끄는 아이가 있었다. 나뭇가지를 위태롭게 잡고 쓰레기 더미를 뒤지고 있는 아이는 다섯 살 소년 미가엘이었다. 아이에게 다가간 그는 자신도 모르게 왈칵 눈물을 쏟고야 말았다.
“미가엘은 4년 전 집에 불이나 얼굴과 왼손이 오그라들고 오른손 두 손가락이 절단된 상태예요. 3년 전 부모의 이혼으로 홀어머니, 그리고 세 살짜리 동생과 집 앞 쓰레기매립장에서 버려진 물건을 주워 팔아가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죠. 손은 불편하지만 자존심이 굉장히 강한 아이예요. 누구에게 의존하고 싶어 하지 않고, 먼저 다가가지도 않아요. 미가엘의 손을 보고 있으니 정말 미안하더라고요. 난 손도 멀쩡하고 편하게 이곳까지 비행기를 타고 왔죠. 살도 쪘고, 너무 하얀 것도 미안했어요. 그런 미안함들이 한꺼번에 밀려와 그냥 옆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왈칵 눈물이 나버렸어요. 그러다가 이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다음날부터 아이들을 보고 더 많이 웃었어요.”
아이들은 대부분 낡고 오염된 옷을 입고 있었다. 그나마 옷을 입고 있는 아이는 행운이었다. 제대로 된 옷조차 입지 못하고 30도가 넘는 뜨거운 태양을 맨살로 받아내고 있는 아이들도 많았다. 그는 300만원 상당의 옷과 모자를 아이들에게 선물했다. 영양이 부족한 아이들에게 급식을 하며 점점 거리를 좁혀갔다. 미가엘에 대한 치료와 지원 계획도 세웠다. 낯선 사람들에게 절대 손을 보여주지 않던 미가엘도 류수영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차츰 마음의 빗장을 풀었다.

1 쓰레기 더미 위의 아이들. 쓰레기 더미는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집이다. 2 쓰레기 더미에서 만난 소년 미가엘. 그는 미안한 마음에 눈물을 쏟고 말았다. 3 처음 보았을 때 관심조차 없던 미가엘도 차츰 그에게 마음을 열어왔다.
“처음엔 낯설기만 했던 아이들이 시간이 조금씩 지나자 웃으며 다가오기 시작했어요. 내가 뭔가 주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갔는데 오히려 아이들과 친해지면서 웃고 손잡고 지내는 시간 동안 가슴속 깊은 곳에 뜨거운 공기가 생겼다는 걸 느꼈죠. 꼭 뭔가를 주는 것이 나눔이 아니라 마주보고 손잡고 웃어주고 같이 울어주는 게 나눔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이렇게 만나서 마음을 나누는 것 자체가 큰 위안이자 행복이라는 걸 아이들을 통해 배웠어요.”
마음으로 만든 하모니, 리코더의 기적
쓰레기 더미 위에서 하루를 보내는 아이들에게 무언가 가르쳐줄 수 있는 것이 없을까 고민하던 그는 아이들의 음악선생님이 되기로 했다. 배우게 될 악기는 어린아이들도 쉽게 따라 불 수 있는 리코더. 난생처음 리코더를 만져본 아이들은 무척이나 신기해했다.
“다행히 현지에서 리코더를 구할 수 있었어요. 마을 아이들을 모아서 리코더를 나눠주니 처음에는 어떻게 사용하는지 몰라 어리둥절해하더라고요. 현지 학교 선생님도 음악 교육을 받은 적이 없어요. 그동안 아이들은 제대로 된 음악수업을 받아본 적이 없었죠. 다들 힘들 거라고 했지만 짧은 시간이나마 아이들에게 음악이라는 것을 가르쳐주고 싶었어요.”
연주할 곡명은 ‘학교종이 땡땡땡’. 현지 스태프들은 하루 만에 아이들이 곡을 완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지만 결국 류수영과 아이들은 ‘학교종이 땡땡땡’을 연주하는 데 성공했다. 처음 접해보는 리코더로 아이들이 하루 만에 한 곡을 완성한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마다가스카르의 상징 바오밥나무.
저주를 풀어주는 밀알복지재단의 이동진료
마다가스카르에서는 병에 걸리면 약을 먹거나 간단한 치료만으로도 회복될 수 있음에도 저주를 받은 것으로 간주되어 주민들에게 소외를 당하고 낙인찍힌 삶을 살게 된다. 병에 걸린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당에게 찾아가 부적을 받아가는 것뿐이다. 이곳에 질병에 대한 교육과 치료, 의약품 지원이 절실히 필요한 이유다. 한 달에 한 번 오지로 떠나 절대적 빈곤에 처한 주민에게 필요한 각종 치료와 수술을 진행하고 있는 밀알복지재단 이동진료팀은 이곳에서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들’로 통한다. 밀알복지재단의 이재훈 의사와 현지 의사, 간호사 등 네 명 이상으로 구성된 의료진이 한 달에 한 번 오지로 떠나 진료 활동을 벌인다.
현장에 머무는 기간은 1, 2주. 그때마다 약 300명의 환자를 진료하고 20여 건의 수술을 진행한다. 1년이면 약 3천500명의 환자를 돌보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의료팀을 도와줄 일손이 절실하다. 치료를 받기 위해 3, 4일을 걸어오는 사람들은 하루 종일 이동진료를 기다리다가 치료를 받지 못하고 다시 돌아가는 경우도 많다. 류수영은 이동진료팀에 합류해 치료와 수술하는 것을 도왔다.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에 희망의 씨앗 심고 온 배우 류수영
발에 큰 혹을 달고 사흘을 걸어왔지만 어두워져 치료를 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을 지켜보다 밤늦게 흐린 불빛 아래에서 수술을 진행할 정도로 사랑과 열정을 아끼지 않는 현지 스태프들을 보며 깊은 감명을 받았다. 작은 부분이나마 힘을 보태고 싶다는 생각에 말라리아 테스터기 1천 개를 이동의료팀에게 전달했다.
“현지에서 봉사하고 고생하는 분들이 많으세요. 그분들의 노력 덕분에 조금씩 희망이 생겨나고 있고요. 그곳에 계시는 천사들이 인간이 되지 않도록, 작게나마 힘을 보태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한국에 돌아와서도 끊임없는 관심과 응원을 보내야겠다는 생각도요. 저뿐만이 아니라 많은 분들의 따뜻한 관심이 필요한 때입니다.”
짧다면 짧은, 길다면 긴 12일간의 여정 동안 그는 평생 잊지 못할 값진 경험을 했다. 나눔은 작은 관심과 노력에서 시작된다는 것, 그리고 아이들이 있는 한 희망은 사라지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그의 아이들을 향한 관심과 노력은 계속될 것이다. 아이들의 희망이 하늘에 닿을 듯 쭉 뻗은 바오밥나무만큼 자랄 때까지 말이다.
밀알복지재단과 함께하는 희망 나눔
사랑과 봉사, 섬김과 나눔의 정신으로 1993년 설립된 밀알복지재단은 투명하고 정직한 운영을 통해 이웃 사랑을 실천하고 소외된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사회를 지향하고 있다. 현재 국내 44개 시설, 해외 9개국에서 700여 명의 임직원이 활동하고 있으며 국내에서는 장애인과 노인, 다문화가정, 아동·청소년 분야의 사회복지를, 해외에서는 빈곤아동을 위한 센터와 학교를 지원함으로써 고통받는 어린이들에게 희망의 씨앗을 나눠주고 있다. 해외 아동 후원과 결연, 매월 1천원 소액 기부 등 작은 관심에서 시작된 큰 사랑에 누구나 함께할 수 있다.
기부 문의 밀알복지재단
02-3411-4664, www.miral.org
■글 / 노정연 기자 ■사진&자료 제공 / 밀알복지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