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올림픽 시상식 보며 가슴 졸였던 이유

KBS-2TV ‘위기 탈출 넘버원’ 정미영 PD의 이유 있는 변명
“모든 아이템을 희귀 사례로 꾸미지는 않아요. 전체 아이템의 80%는 흔히 일어나는 사건들이고 나머지 한두 가지를 아주 드물게 일어나는 사례로 꾸미는데 내용이 워낙 특이하다 보니 화제가 되는 것 같아요. 심폐소생술과 같은 응급처치법도 자주 방송하는데 그런 건 잘 기억을 못하시더라고요(웃음). 1%라도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사건이라면 미리 알고 대비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골고루 다른 부분도 봐주셨으면 해요.”
얼마 전에는 선글라스를 벗다 갑작스러운 눈부심으로 실족사 한 사건이 방송을 타 화제가 됐다. 이쯤 되니 네티즌들은 ‘위기 탈출 넘버원’ 제작진들의 건강염려증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웃다가 죽고, 울다가 죽고, 숨만 쉬어도 죽는데 걱정돼서 어떻게 사느냐는 것이다. 특수 방탄복에 헬멧을 쓰고 완전무장을 한 폭탄 분해 요원의 사진에는 ‘위기 탈출 넘버원 PD의 출근 모습’이라는 이름까지 붙었다.
“인터넷에 올라온 걸 봤어요. 제작진들도 다 웃었죠. 방송되는 내용은 모두 실제로 일어난 사건들이에요. 얼마 전 배뇨 실신 사고가 방송되고는 어떻게 소변을 보다 기절하냐고 안 믿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그 사고의 경우 실제 사례자를 다섯 명이나 인터뷰해서 만든 내용이에요.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당사자들 인터뷰도 하고 다양한 각도에서 취재를 해요. 정보와 예능이 결합된 인포테인먼트 방송이라 웃을 수 있는 요소들이 있긴 하지만 단순히 화제나 재미만을 추구하는 건 아니에요.”
네티즌들이 걱정하는 PD의 건강 상태는? ‘스트레스와 면역력 약화로 인한 호흡기질환’ 정도라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프로그램 만드는 일 말고는 그다지 걱정하는 일이 없단다. 건강염려증까지는 아니지만 전보다 남 걱정하는 일은 확실히 많아졌다. 길을 가거나 TV를 볼 때 누군가 조금이라도 위험한 행동을 하는 것이 보이면 “아이고, 저러면 안 되는데” 하는 말이 절로 튀어나온단다. 메달 풍년이었던 이번 런던올림픽 때는 선수들이 시상대에 오를 때마다 가슴을 졸여야 했다고.
“TV로 중계방송을 보는데 메달을 딴 선수들이 시상대에서 세리머니로 메달을 깨물더라고요. 그러다가 이가 부러질 수 있거든요. 보통 상황이면 괜찮은데 경기를 마치고 피로한 상태인데다 시상대에 올라 흥분하기까지 했으니 자칫 잘못하면 다칠 수 있어요. 특히 유도나 레슬링, 역도 선수들은 이를 악무는 일이 많기 때문에 대부분 이가 약해요. 조심해야 하죠.”
이도 그냥 부러지는 게 아니라 세로로 깨져 잇몸 뼈까지 상할 수 있다며 상세한 설명을 덧붙인다. 평소 이를 악무는 습관의 위험성까지 설파하고 난 뒤에야 이야기를 끝맺는다. ‘위기 탈출 넘버원’ PD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
“근데 희한하게 그런 얘기를 들으면 이를 더 악물게 돼요(웃음). 원래 성격이 털털하고 부주의한 편이에요. 이 프로그램을 하면서 그나마 조심성이 생겼어요. 아무래도 각종 사고와 안전에 대해 생각하게 되니 건강염려증까지는 아니지만 평소 부주의했던 면들을 많이 고쳤죠. 불편하기보다는 도움이 많이 됐어요.”
우리나라에서도 ‘황당 죽음’ 늘어나는 추세
2003년 KBS에 입사한 그녀는 올해로 9년째 예능국에 몸담고 있다. ‘위기 탈출 넘버원’을 맡기 전에는 ‘비타민’을 연출했다. 건강과 예능을 결합한 인포테인먼트 프로그램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이다. 자칫 사람들이 지루해할 수 있는 정보를 어떻게 하면 더욱 재미있고 기억하기 쉽게 전달할 수 있을까, 그녀가 끊임없이 골몰하는 문제다.
“정보와 재미의 비율을 따져보면 정보가 80%고 나머지 부분이 재미를 주는 요소예요. 사람들은 어려운 정보를 보려고 하지 않아요. 저희 프로그램의 최종 목표가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각종 사고에 안전하게 대비하고 대응하게 하는 것인데, 주제 자체가 딱딱하고 교훈적이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재미있고 알기 쉽게 전달하느냐가 관건이에요. 그런 방송을 만드는 게 저희의 소임이고요.”
일곱 명의 작가와 여덟 명의 PD, 총 열다섯 명의 제작진이 매주 일사분란하게 움직여 아이템을 찾고 취재를 하고 방송을 만든다. 드라마와 예능, 정보, 실험까지 보여주다 보니 여간 품이 많이 드는 것이 아니다. 2005년 첫 방송을 시작한 지 어느덧 7년. 시청률과 수익률 모두 안정적인 성과를 얻으며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있는 장수 프로그램이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아이템 선정에 고민하게 된다. 소재 고갈로 억지성 상황 설정이 늘어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귀담아듣고 있다.
“아이템 선정의 첫 번째 기준은 시기성이에요. 제철 아이템이 사람들에게 가장 유용하고 필요한 정보가 되거든요. 올 여름은 폭염이 기승을 부려서 열사병이나 해파리, 익사 사고 등 날씨와 관련된 아이템이 많았어요. 정말 중요하다 싶으면 다룬 적이 있는 아이템이라도 이야기나 실험을 다른 방식으로 구성해 재조명하기도 해요. 신문과 뉴스, 기록, 해외 사례를 찾아보고 제보에도 최대한 문을 열어두고 있어요.”
사실 안전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찾을 수 있는 아이템은 한정적이다. 해외 사례의 경우에는 우리나라의 상황과 정서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더욱 고민스러울 때가 많다.

KBS-2TV ‘위기 탈출 넘버원’ 정미영 PD의 이유 있는 변명
모든 사고에는 이유가 있다. “갑자기 왜?”라는 의문을 품게 되는 사고도 하나하나 원인을 찾아가보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최근에 도시에서 말벌에 쏘이는 사고가 늘었어요. 다른 작은 벌들을 잡아먹는 말벌은 원래 도시에는 잘 나타나지 않아요. 도시화로 녹지가 줄어들며 꿀벌들이 당분을 찾아 도시로 모여들고, 그 벌들을 따라 말벌도 도시에 나타나는 거예요. 말벌의 침은 독도 강력하고 여러 번 쏠 수 있기 때문에 굉장히 위험해요. 전에 없었던 사고들이 자꾸 생기는 이유를 따지고 들어가면 무분별한 도시화가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아요. 더욱 조심할 수밖에 없죠.”
그럴수록 더욱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켜야 하는 것은 맞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죽이는 거 아닌가 싶다. 고드름이 떨어져서 사망, 간지럼 태우다 아이 사망, 동상에 걸려 사망, ‘이승 탈출 넘버원’이라는 얘기가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이러한 시청자들의 의견을 수용해 제작진도 나름 ‘살리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저도 다른 팀에 있을 때 ‘위기 탈출 넘버원’을 보며 설마 저렇게 죽을까 했어요. 와서 보니 정말 그렇게 죽더라고요. 제가 생각해도 너무 많이 죽이는 것 같아 웬만하면 안 죽이는 쪽으로 하려고 하는데, 그러면 이야기를 중간까지만 하게 돼요. 이야기를 끝까지 하려다 보니 자꾸 끝을 보게 되네요(웃음). 그래도 요즘엔 되도록 살리는 쪽으로 하고 있어요. 얼마 전 방송됐던 분말 사고는 원래 사망 사례인데 급성폐렴까지만 방송을 했어요. 사고는 언제 어디서 맞닥뜨리게 될지 몰라요. 모르는 것보다 알고 있는 게 낫고 그런 면에서 참고를 해주십사 하고 방송을 하는 거예요. 우리나라도 재난, 재해가 많이 발생해요. 캘리포니아 같지 않잖아요. 사계절이 뚜렷해서 철마다 반복적으로 사고가 발생하고, 많은 인구가 좁은 도시에서 모여 살다 보니 사고가 발생할 만한 요건이 많아요. 안전에 민감하지 않으면 언제 어디서든 다칠 수 있는 환경이에요. 그렇게 때문에 항상 조심하고 안전하게, 작은 부분에도 주의를 기울이시라고 당부드리고 싶어요.”
주부, 어린이 시청자들의 열렬한 지지
‘위기 탈출 넘버원’에는 어린이 관련 사고들이 많이 나온다. 이 프로그램이 주부 시청자들에게 지지를 받는 이유다. 아이를 둔 엄마들의 안전에 대한 관심은 남다르다. 안전 의식도 평균보다 높은 편이다. 일반 시청자들이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아이템도 엄마들은 뜨거운 반응을 보이곤 한다. ‘간지럼을 심하게 태워 사망한 아이’ 편이 방송됐을 때도 엄마들 사이에서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성인에게는 사소할 수 있는 작은 일이 아이들에게는 생명을 위협할 만한 위험 요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개월 된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그녀 역시 아이들의 안전에 민감하게 된다.
“얼마 전 어린이 카페인 과다 복용의 문제점을 방송했어요. 초콜릿과 음료수 등 생각보다 많은 음식에 카페인이 들어 있더라고요. 흔히들 카페인 하면 커피를 생각하는데 실제로 성인들이 간식으로 먹는 많은 음식에 카페인이 들어 있어요. 문제는 아이들은 성인에 비해 카페인 배출이 잘 안 돼요. 자꾸 몸에 쌓이면 문제가 될 수 있죠. 저도 평소에 별 생각 없이 아이에게 초콜릿을 줬는데 주의하게 됐어요. 생각보다 사람들이 부주의해요. 안전불감증이라고 하잖아요. 방송을 만들다 보니 더 크게 다가오더라고요. 그나마 우리나라 엄마들은 안전에 대한 인식도가 높은 편인데 해외 사례를 보면 ‘어떻게 엄마가 저렇게 부주의하지’ 할 정도로 아이와 관련된 황당한 사망 사고들이 많아요. 아이와 함께 보며 주의할 수 있도록 주부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아이템을 신경 써서 넣는 편이에요.”
주부 시청자들 다음으로 프로그램에 지지를 보내고 있는 애청자는 바로 초등학생 시청자들. 사고의 원인을 추리해나가는 방송 형식이 호기심을 자극하고 과학적인 실험을 통해 설명해주기 때문에 물리와 화학 등 과학 공부도 할 수 있다는 것이 어린이 시청자들에게 어필하는 이유다.
“어머님들께서 항상 아이들 학교 갈 때나 출근하는 남편에게 조심하라고 당부하시잖아요. 방송을 보며 주의사항들을 메모한다는 분들이 많다고 해요.
그런 얘기를 들으면 더 꼼꼼히 방송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죠. ‘이승 탈출 넘버원’이라는 별명도 전혀 틀린 얘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 부분도 다 프로그램에 애정을 갖고 계시기 때문에 나오는 말이라 생각해요. 진지하게 최대한 수용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해받고 있는 부분도 있지만 그런 시청자들도 저희한테는 무척 소중한 한 분 한 분이거든요. 앞으로도 꾸준히, 관심 가져주셨으면 좋겠어요. 더 노력해서 더욱 진화해가는 장수 프로그램으로 남고 싶어요.”
9월 개편을 앞두고 있는 ‘위기 탈출 넘버원’ 제작진은 요즘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새롭게 개편되는 프로그램에는 범죄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을 알려주는 코너가 신설될 예정이다. 어떤 사람이 범죄의 표적이 되는지, 범죄 상황을 만났을 땐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인지 예방과 대비책, 대응법들을 짚어보는 코너다.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시청자들에게 전하고픈 이야기를 부탁했다.
“독사에 물렸을 때 1339에 신고하면 해독제가 있는 병원을 알려줘요. 곧 추석이니까 이런 상식은 알고 계시는 게 좋겠죠. 꼭 기억해두세요.”
‘위기 탈출 넘버원’ PD다운 마지막 인사였다.
정미영 PD가 짚어준 ‘엄마가 신경 써야 할 어린이 사고’ ● 웃다가 혹은 울다가 죽는 아이가 정말 많아요. 외국에는 한 엄마가 세 아이를 그렇게 하늘나라로 보낸 사례도 있어요. 아이들은 호흡이 짧기 때문에 주의하셔야 해요. 가끔 아이들이 숨 넘어 가게 울 때가 있잖아요. 어린아이들은 울 때 그냥 내버려두지 마시고 꼭 지켜보세요. ● 방충망 사고도 많이 일어나는 사고 중 하나예요. 방충망이 버틸 수 있는 무게가 10kg 정도예요. 특히 요즘은 베란다 확장 공사를 한 집이 많아서 아이들이 베란다 방충망에 기대어 놀다가 떨어지는 사고가 많이 발생하니 주의하세요. ● 아이들이 한창 입으로 물건들을 가져가는 시기에는 집 안에서 일어나는 음독 사고에 주의해야 해요. 특히 작은 수은 건전지를 먹고 사고가 많이 나는데, 아이들은 식도가 약해서 삼키면 큰 상처를 입어요. |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박동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