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작자 차지현·배우 차태현 형제 키워낸 차재완·최수민 부부

이 부부가 사는 법

영화제작자 차지현·배우 차태현 형제 키워낸 차재완·최수민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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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중 가장 중요한 날을 꼽아보라니 결혼기념일이란다. 부부는 결혼한 첫해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날을 그냥 넘긴 적이 없었다. “설, 추석, 생일 같은 날들이 결혼기념일보다 어떻게 더 특별할 수 있느냐”라고 되레 묻는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부부가 되고, 아이들을 낳아 가정을 이루었다. 그리고 가족이란 이름으로 40년을 보냈다. 이 모든 것이 시작된 날이어서 차재완·최수민 부부에게 결혼기념일은 무엇보다 소중하다.

[이 부부가 사는 법]영화제작자 차지현·배우 차태현 형제 키워낸 차재완·최수민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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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호호 웃으며 자세를 잡는 품새가 예사롭지 않다. 다정하게 손을 잡아 달라, 허리에 팔을 감아보라, 시선을 맞추고 사랑스럽게 바라보라 등 충분히 ‘오글거릴 만한’ 포즈를 주문했다. “꼭 젊은 사람들 웨딩 촬영하는 것 같다”라는 말을 지나가듯 하긴 했지만 부부는 어색한 자락 하나 없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했다. 여기저기서 ‘역시’라는 말이 터져 나왔다. 말 그대로 ‘역시’였다. 평생 방송국에서 일해온 부부이지 않은가. 게다가 배우 차태현의 부모이기도 하고. 그런데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자신들이 주인공이 돼 사진 촬영을 하는 것이 처음이라고 말이다. 남편 차재완(69)은 음향감독이라지만 명색이 감독이고, 아내 최수민(67)은 성우라지만 명색이 여주인공을 도맡아온 대한민국 대표 성우이지 않은가.

“저야 방송국에서 월급 받는 직원이었고, 아내는 목소리로 활동하는 성우였잖아요. 얼굴을 내놓을 일이 뭐가 있었겠어요. 그냥 평범한 맞벌이 부부였죠. 방송국이란 조금 특별한 곳에서 일한다는 것 정도가 다르다면 다를까. 요즘 ‘남자의 자격’ 패밀리 합창단에도 참가하고, ‘승승장구’ 게스트로도 출연했더니 방송이나 잡지 같은 곳 섭외 요청은 부쩍 늘긴 늘었어요(웃음). 그나저나 사진 찍는 김에 우리 증명사진도 좀 부탁해도 될까요?”

증명사진을 찍어달라는 그의 부탁에 촬영장에 있던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톱스타 차태현의 부모라며 어깨에 힘을 잔뜩 넣어도 이상할 게 없는 이들이다. 그러나 부부는 소탈하기 그지없었다. 어딘가 힘을 주기는커녕 잔뜩 힘을 빼고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귀하게 대했다.

첫눈에 반한 그녀, 최수민
군대 3년을 꽉 채우고 다시 방송국으로 돌아오니 새로 입사한 후배 한 명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지금의 아내 최수민. 어찌나 몸이 작은지 스치기만 해도 쓰러질 것처럼 연약해 보였다. 아닌 게 아니라 당시 최수민의 몸무게가 불과 38kg밖에 되지 않았다니 남자로 하여금 보호본능을 불러일으키는 비주얼이지 않았을까. 그러나 이것은 일생을 통털어 차재완의 오판 중 오판이었다.

“작고 예쁘더라고요. 보는 순간 반했지요. 첫눈에 반했다니까. 보자마자 알겠더라고. ‘아! 저 사람이구나’ 하고 말이죠. 그런데 막상 보니까 만만찮은 여잔 거예요. 난 충청도 남자에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 좋아하고, 퍼주는 거 좋아하는데, 아내는 완전 서울 토박이에 그야말로 깍쟁이인 거예요. 강단 있고, 허튼 소리 한마디 안 하는 똑순이. 달라도 너무 달라서 뭐 하나 맞는 구석이 없었어요. 그래도 꽂혔어. 그래서 보자마자 좋다고 했죠(웃음).”

말 그대로다. 차재완은 최수민을 본 순간 첫눈에 반했다고 한다. 그래서 보자마자 좋아한다고 고백을 했다. 그것도 그냥 연애나 해보자는 것도 아니고 결혼을 전제로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최수민은 기겁했다고 한다. 어린 나이여서 결혼 생각이 전혀 없는데다가 성우로서 자리 잡기 위해 한창 바쁘게 살아갈 때였다. 더구나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큰오빠 집에서 지내다 보니 아무래도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부터 돈을 벌 만한 일을 찾아 했을 정도로 독립심이 강하고, 스스로 살아내야 한다는 강박에 가까운 패기로 똘똘 뭉쳐 있었다. 귀여움을 독차지할 늦둥이 막내딸로 태어났지만 최수민은 나이에 비해 성숙할 수밖에 없었다. 그에 반해 차재완은 충청도 시골 부농의 아들이었다. 인자한 부모님에 우애 깊은 형제자매들 속에서 충분히 사랑받으며 자랐다. 여유 있는 행동과 타고난 유머 감각, 너른 성품은 모두 다복한 가정이 준 선물이었다. 태생과 배경이 달라도 너무 다른 남녀였다.

“군대 막 제대한 남자에게서 첫인상이랄 게 있었겠어요? 뭐가 멋있다고(웃음). 그런데 방송국에서 인기가 대단했어요. 친화력이 보통이 아닌 거야. 남편 곁에는 늘 사람이 북적였어요. 점심시간 끝나면 아예 ‘차재완아워’가 있었다니까요. 정말 재밌는 사람으로 정평이 났었죠. 그런데 당시엔 그게 괜히 실없어 보이더라고. 보자마자 좋다고, 사귀자고, 결혼하자는데 이상한 사람 같지 않았겠어요? 단칼에 거절했죠.”

하지만 차재완은 알 수 있었다.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뿐이지 마음을 한 번 열게 된다면 그 누구보다 자신을 진실하게 사랑해줄 만한 여자가 최수민이라는 것을. 그런 믿음 때문이었는지 차재완은 최수민으로부터 셀 수 없을 만큼의 거절을 당했음에도 그렇게 좋았단다.

감쪽같았던 사내 비밀 연애
방송국 음향감독 출신으로 알려진 차재완은 사실 서라벌예대에서 연기를 전공한 연기자 지망생이었다. 게다가 방송국 입사는 성우로 했단다. 의외였다.

“지금처럼 개성이 아닌 인물을 보던 시절이었잖아요. 배우 할 만한 외모가 아니라는 거죠(웃음). 그래서 탤런트 시험도 떨어졌어요. 취직을 해야 하니까 성우를 뽑는다기에 지원했고, 뭐 하는 일인지도 모르고 합격을 했다니까. 제 동기가 송도순씨예요. 그런데 나랑 성우가 안 맞는 거예요. 그만둘 생각으로 군대도 갔었다니까. 그런데 이 사람을 만나려고 그랬는지 계획했던 게 맘처럼 안 돼 다시 복직을 했어요. 방송국 성우로.”

최수민은 차재완이 입대한 해에 입사했다. 둘은 방송국 성우 선후배 사이였던 셈이다. 차재완은 성우가 됐지만 일이 잘 맞지 않아 부단히도 다른 직업으로 전환해보려 노력했다. 그런데 매번 일이 꼬이고 꼬여 다시 방송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만들어지곤 했다. 어느 순간에는 신의 뜻이 여기에 있는가 하고 체념했을 정도였다. 그리고 최수민을 본 순간 그 뜻 중 하나가 그녀였음을 확신했다.

“아무리 오빠와 올케언니가 잘해준다고 해도 조카들까지 있는 집에 산다는 것은 눈치가 보이는 것이었죠. 그야말로 얹혀사는 거잖아요. 그래서 전 스스로 저를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몸과 마음이 잔뜩 긴장돼 있었어요. 농담 한마디 던질 줄을 몰랐죠. 그런데 남편이 하루는 그러더라고요. 제가 아무리 거절하면서 튕겨도 마치 튄 공을 잡듯이 자기가 딱! 잡으면 된다고요. 그 말이 참 좋더라고요. 따뜻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지혜롭게 보이기도 하고요.”

[이 부부가 사는 법]영화제작자 차지현·배우 차태현 형제 키워낸 차재완·최수민 부부

[이 부부가 사는 법]영화제작자 차지현·배우 차태현 형제 키워낸 차재완·최수민 부부

공은 잘 튕겨져야 공이다. 어디가 찢기거나 구멍이라도 나서 튕겨지지 않으면 더 이상 공이 아닌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수민은 차재완에게 있어 정말 최고의 공이었다. 통통 잘 튕겨졌으니까. 그는 그저 잘 잡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그는 충청도 사나이답게 조급해하지 않았다. 변함없는 마음으로 기다려주는 차재완의 모습에 최수민은 믿음이 갔다. 혼자라고만 생각했던 그녀에게 친구가 돼주고, 연인이 돼주고, 가족이 돼줄 사람으로 말이다.

“옛날이었지만 제 스스로를 지킨다고 태권도도 배웠어요. 여자지만 운동도 좋아하고, 선배들 따라서 야구 경기도 자주 보러 가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남편이 대단한 게요. 저의 태권도 수업에 대해서 단 한마디를 안 하던 사람이 ‘연애 오케이’ 하니까, 그날로 태권도를 하지 말래요. 뼈 부러질까 걱정된다고. 저를 향한 그런 염려가 감동적이더라고요. 1년간 몰래 사내 연애를 했어요. 나중에 결혼 발표를 하니 다들 얼마나 놀라던지…. 성우 양지운씨는 ‘잉?’ 하면서 주저앉더래요. 하도 놀라서(웃음).”

동료 셋과 함께 잔 신혼 첫날밤
“밥을 먹는다 하면 표시 나게 우리 둘만 가거나 하지 않고 우르르 갔어요. 그리고 맛있게 먹고 헤어져요. 그리고 조금 뒤에 다시 그 식당으로 가면 아내가 와서 기다리고 있어요. 밥 먹고 나간 식당에 다시 돌아올 사람은 없잖아요(웃음). 퇴근? 동료들이랑 같이 해요. 그리고 각자 집 방향으로 버스 타고 가는 거죠. 그러다 두 정거장 즈음에서 내려서 되돌아왔어요. 그러면 저 사람도 다시 돌아와 있어요. 그러니 들킬 일이 있나.”

남대문시장 쪽에 있었다는 영화다방에서 만난 뒤 짜장면을 한 그릇씩 사 먹고 최수민이 살고 있던 뚝섬까지 데려다주는 것이 전형적인 데이트 코스였다. 그렇게 1년을 알콩달콩 연애하고 결혼했다. 유머 감각이 풍부하고 사내에서 최고 인기를 구가하던 차재완이 과연 어떻게 청혼을 했을지 궁금해졌다. 뭔가 특별한 이벤트나 말 한마디가 있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혼은 있을 수가 없다고 말을 잘랐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결혼하고 싶다고 구애를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연애를 허락했다는 것은 결혼을 허락한 것과 같은 것이라고도 했다. 그저 언제, 어떻게 하면 되는지 두 사람이 정하기만 하면 되는 문제일 뿐이었다고. 그것이 1년이란 시간이 걸렸을 뿐이고.

“남편에게 그랬죠. 결혼할 거면 빨리 하자고. 서로 합치면 생활비도 반으로 줄 거라고요. 전 혼자나 다름없었고, 남편은 부농의 아들이었지만 형제도 많고 시골 살림이었으니 도움 청하기 쉽지 않았죠. 시계니 반지니 신혼여행도 죄다 생략했어요. 성경책 한 권씩 주고받는 것으로 결혼식도 대신했죠. 그런데 손님들 피로연은 해야겠어서 시골 잔치를 열었어요. 신혼여행은 고향집 가는 것으로 대신했고요.”

최수민은 매우 현실적이며 실리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 허례허식도 무척 싫어한다고. 이 점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한 달에 7천원짜리 사글세방에서 신접살림을 시작했지만 전혀 슬프거나 속상하지 않았다. 갓 제대한 남자와 사회 초년생인 여자가 가진 것이 없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옆에서 듣고 있던 차재완의 표정을 보니 새삼 고마움이 피어나는 것 같았다. 요즘 남자들이 봐도 쌍수를 들고 환영해 마지않을 최고의 신붓감 아닌가.

“그래도 방송국 동료들이랑 성우실 사람들이 차를 대절해 시골 잔치에 왔어요. 시골집 방이 네 개였는데… 그때, 뭐 모텔이 있어 호텔이 있어. 있어도 그런 곳에서 잠자게 하는 게 대접은 아니죠. 하는 수없이 방 하나에 서울서 내려온 동료 셋하고 우리 부부하고 다섯이 같이 잤어요. 그게 신혼 첫날밤이었어요(웃음).”

돌이켜보면 좋지 않은 날이 없었다면서 차재완은 결혼 선배로서 따뜻한 한마디를 덧붙였다. 서로 가진 것 너무 따지지 말고, 마음이 하나가 됐다면 두려워 말고 결혼하라고. 하나보단 둘이 일궈내는 속도가 빠른데다 그렇게 함께 만든 것은 그 어떤 것에 비해 값지고 소중하게 느껴지는 법이라고.

맞벌이 부부의 결혼과 위기
사글세로 시작한 결혼생활이었지만 재미있었다. 1백만원 벌이가 둘이 합치니 2백만원이 됐다. 월세방에서 전셋집으로, 전셋집에서 내집 마련으로 불어나는 살림에 부부는 힘든 줄 몰랐다. 특히 누구의 도움 없이 이뤄냈다는 떳떳한 자부심도 한몫했다. 그 사이 사랑스러운 아들 둘도 태어났다.

“총각 시절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게 결혼을 하니 바로바로 이루어지는 거예요. 신기하더라고요. 물론 아내 덕이 컸죠. 알뜰하고, 사치를 모르는 여자거든요. 또 누구한테 뭘 바라고 하는 것도 없고요. 그러니 제겐 결혼기념일만 한 날이 있겠어요?(웃음) 결혼기념일 챙겼다고 대단한 것 한 거 아니에요. 필요한 거 안 사고 참고 모았다가 그때 사는 거죠. 냉장고도 사고 텔레비전도 사고 집사람 고장 난 휴대전화 바꾸고 뭐 이렇게.”

이건 선물을 주고받는 게 아니라 살림 장만 수준이 아닌가. 이들에게 결혼기념일이 가장 중요했던 건 아마도 서로가 허락한 유일한 지출의 날이기 때문은 아닐까, 하고 짓궂은 농이라도 던지고 싶었다.

멈추지 않고 불어가기만 하는 살림에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워낙 우애 좋기로 소문난 차재완의 형제들이 똘똘 뭉쳐 교육용 시청각 자료를 만드는 사업을 시작했는데, 몇 년 동안 고군분투하다 결국 실패했기 때문이다. 부부에게는 요즘 돈으로 환산해도 거액인 빚만 남게 됐다. 열심히 빚을 갚아나갔지만 감당하기 힘들어 결국엔 집도 팔고 친척집 방 한 칸 빌려 더부살이를 해야 할 지경에 이른 적도 있다.

“우리 부부는 마음의 위기는 없었어요. 그건 단순히 경제적인 위기였죠. 열심히 벌어 갚으면 되는 문제잖아요. 전 남편을 따라주었고, 남편은 절 믿어주었죠. 그러니 싸울 일이 있나요. 힘든 일이 닥치면 남편이 항상 말해요. 위기일 때 마음을 합쳐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일도 그르치고 관계도 깨진다면서요. 남편은 정말 지혜로운 사람이에요.”

부부는 싸우지 않았다. 일단 벌어진 일을 수습하는 게 먼저라며 마음을 모았다. 중견 음향감독이자 주인공만 도맡아온 대한민국 대표 성우였음에도 바로 정리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큰 액수이긴 했나 보다. 얼마 남은 마지막 빚은 차태현이 인기를 얻게 되면서 갚아주었을 정도였다니 말이다.

“그때 정말 아내에게 고맙더라고요. 바가지를 긁다 못해 요즘 사람들 같으면 갈라서자고 이혼 서류를 내밀어도 몇 번을 내밀만한 일이었죠. 그런데 아내는 되레 날 위로하더라고요. 만약 1억 빚이라면 2억 아닌 게 어디냐면서 저를 탓하지도 않더라고요. 제가 조금 괴로운 것 같은 눈치면 적당히 모른 척해주고 말이에요. 남자로서 자존심도 지켰죠. 제 아내 최수민은 보통 여자가 아니에요(웃음).”

[이 부부가 사는 법]영화제작자 차지현·배우 차태현 형제 키워낸 차재완·최수민 부부

[이 부부가 사는 법]영화제작자 차지현·배우 차태현 형제 키워낸 차재완·최수민 부부

차재완, 배우 둘을 키워낸 남자
차재완과 최수민 부부의 집은 아마 대한민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유명한 방송 집안일 것이다. 서라벌예대 출신의 음향감독으로 정년퇴임한 아빠 최재완, 내로라하는 대한민국 여자 배우들의 목소리부터 ‘둘리’와 ‘영심이’에 이르는 만화영화까지 주인공을 독차지하다시피 한 최고의 성우인 엄마 최수민, ‘미확인동영상’,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 흥행몰이에 성공한 영화제작자인 첫째 아들 차지현(38, AD406 대표) 그리고 별다른 수식이 필요 없는 배우 차태현(36)으로 이루어진 가족이니 말이다. 게다가 집안 두루두루 성우를 하거나 연기를 공부한 전공자들도 수두룩하다. 그야말로 방송 명가다.

“단언컨대 남편 없이는 절대로 불가능했을 일이에요. 성우 최수민? 배우 차태현? 영화제작자 차지현? 아니요, 있을 수 없어요. 남편이 만든 거예요. 그래서 우리끼린 그래요. 배우 둘을 키워낸 남자라고. 연기에 대한 꿈을 가장 먼저 꾸었으면서도 자신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 대신 아내와 아들을 배우로 키워낸 거죠. 남편의 희생을 잘 알고 있어요.”

사실 성우는 배우나 마찬가지다. 일의 성격뿐 아니라 처지에 대한 불안, 역할에 대한 스트레스, 인기도 같은 것들이 말이다. 말 그대로 목소리 배우이며, 목소리 연예인인 셈. 더욱이 최수민이 활동하던 시절은 성우의 전성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때다. 허구한 날 밤샘 녹음이 이어지는 게 다반사였고, 늘 캐스팅에 대한 초조함도 달고 살아야 했다. 집안일은 고사하고 아이들 챙길 시간조차 없었다.

“연예인 아내 남편 노릇이 이 세상에서 가장 하기 힘든 일 중 하나일 거예요. 왜? 외부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대단한 직업이거든요. 남들로부터 점수가 매겨지는 위치니까. 늘 날카로울 수밖에 없죠. 그러니 집에서는 그저 편히 쉬게 해주고, 감싸주고, 다 받아줘야 해요. 어설프게 도와준다고 모니터링을 해 쓴소리나 던지고 그러면 안 돼. 절대 안 돼.”

인자한 성품과 적재적소에서 던질 줄 아는 유머 감각은 무한경쟁에 내던져진 아내와 아들을 잘 품어줄 수 있는 차재완만의 따뜻함이었다. 그의 희생은 가족을 위해 참고 받아주는 인내만이 아니었다. 비교적 출퇴근 시간이 일정했던 그가 집안 살림은 물론 두 아들의 육아와 교육도 거의 도맡다시피 한 것. 최수민은 아들 둘을 남편이 다 키운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그 덕에 ‘성우 최수민’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고. 남편에 대한 고마움을 숨기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희생이라고 표현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제가 요즘엔 남편에게 참 미안한 생각이 들어요. 남편이야말로 소위 말하는 ‘끼’가 충만한 사람이거든요. 연기자의 꿈도 일찌감치 가졌었고요. 그런데 정작 자신은 그렇게 살지 못했죠. 방송 출연이나 인터뷰 제안이 들어오면 남편은 욕심이 있어 했지만, 제가 반대했어요. 아이들에게 누가 될까 싶었죠. 하지만 이제는 제가, 아이들이 남편의 꿈을 밀어줘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해요.”

차태현의 부모로 산다는 것
데뷔한 뒤 한동안 무명생활을 거쳤던 배우 차태현을 뒷바라지하는 것은 녹록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또 영화를 공부하는 큰아들이 동생에게 치여 빛을 보지 못할까 노심초사한 것도 사실이었을 터. 그러나 차재완과 최수민은 어느 부모보다 일의 생리를 잘 알아서 재촉하기보다는 늘 조언해줄 수 있는 선배의 입장일 수 있어 느긋했다.

“드라마든 광고든 조연 아니면 단역이던 시절이 있었죠. 그때는 잘 체감되지 않았는데요. 영화 ‘엽기적인 그녀’를 극장에서 보는데 아휴, 앉아 있질 못하겠더라고요. 심장이 뛰어서요. 일어나서 저 아이가 내 아들이라고 소리치고 싶은 거예요(웃음). 그때 비로소 ‘아, 태현이가 해냈구나. 됐구나’ 싶더라고요.”

차재완은 통장에 차태현의 출연료 입금 내역이 찍힌 것을 보고 실감을 했단다. 또 용돈 많이 줄 때도 ‘뜨긴 뜬 모양이군’ 한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자신의 아들을 사랑해주는 세상 모두에게 감사한 마음에 무슨 일이라도 하지 않고는 못 배기겠어서, 수년 동안 남몰래 방송국 화장실 수건을 매일같이 빨아놓았다는 것을. 차재완은 그런 사람이었다. 재치 넘치고, 익살맞은 농담을 잘하지만 그 안에는 차마 부끄러워 몰래만 꺼내놓는 착한 마음이 가득한 사람 말이다.

부부는 요즘 제2의 전성기라도 맞이한 것처럼 바쁘다. KBS-2TV ‘남자의 자격’ 패밀리 합창단에 참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각종 방송 프로그램에서 섭외가 쏟아지고 있기 때문. 차태현의 엄마, 아빠로 불리며 살아가는 것의 기쁨과 불편함, 어려운 점이 궁금했다. 물론 젊은 날의 전성기 못잖은 감각을 뽐내며 방송활동을 하는 것에 대한 생각과 향후 계획에 대해서도.

“차태현 아빠, 차태현 엄마로 사는 게 뭐가 힘드냐고요? 아니, 힘들 게 뭐 있어요. 정말 좋죠. 이 나이에 무슨 낙이 있겠어요. 차태현 부모인 줄 모르는 사람들 만나면 재미도 없고! 알아줘야 좋죠(웃음). 불편함, 어려운 점, 조심스러운 것… 그러나 그마저도 우리 부부는 감사해요.”

사실 방송명가 차씨 집안에서 요즘 가장 인기가 높은 사람은 차재완이다. 최수민에게 걸려오는 전화 중 상당수가 남편을 찾는 것일 정도라고. 몇 번의 방송 출연에서 보여준 그의 매력에 많은 사람들이 매료됐다. 배우 둘과 제작자 한 명을 키워낸 연기자 지망생 차재완의 차례가 이제야 돌아왔는지 모르겠다. 그는 말했다. 신이 정해놓은 뜻과 그 뜻에 맞는 순서가 다 있는 것이라고.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자신은 그 뜻과 순서에 맞게 물 흐르듯 순응하며 살아갈 뿐이라고. 옆에서 남편의 말을 듣고 있던 아내 최수민도 거든다. 이제 자신이 남편을 위해 기도할 차례라고. 더없이 아까운 사람, 또 없을 예쁜 사람이라고 불러주며 평생 동안 자신을 사랑해준 남편을 위해서 말이다. 부부가 서로 시선을 맞춘다. 옆에서 보고 있자니 사랑 그 이상의 단어가 있다면 이 부부에게 써주고 싶었다.

■기획 / 장회정 기자 ■글 / 강은진(프리랜서) ■사진 / 원상희 ■헤어&메이크업 / S休(02-3448-3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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