탤런트 이광기네 늦둥이 준서 돌잔치 겸 자선 콘서트 열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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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겐 조용한 휴일, 누군가에겐 평범한 하루였을지 모를 1월 12일, 이광기·박지영 부부는 더없이 특별한 하루를 보냈다. 지난해 태어난 늦둥이 준서의 첫 생일이자 아이티 지진이 일어난 지 3주년이 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아들 석규군을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뒤 아이티와 소중한 인연을 맺어온 부부는 아이티 구호기금 마련 콘서트를 열어 축하와 기쁨을 나눴다. 한파를 녹인 온기 가득한 현장, 뜻을 함께한 스타들과 수많은 관객 모두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탤런트 이광기네 늦둥이 준서 돌잔치 겸 자선 콘서트 열던 날

탤런트 이광기네 늦둥이 준서 돌잔치 겸 자선 콘서트 열던 날

2013년 새해를 얼마 남기지 않은 지난해 연말, 이광기로부터 한 통의 문자가 도착했다. 셋째 아들 준서의 첫 생일을 알리는 메시지였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흘렀구나’. 반가운 마음에 열어본 메시지에는 ‘2013 이광기와 굿프렌즈 콘서트’라는 제목의 초대장이 담겨 있었다. 아들 준서의 첫 번째 생일 기념 돌잔치와 함께 아이티 대지진 3주년을 맞이해 ‘이광기와 굿프렌즈 콘서트’를 기획했습니다. 의미 있는 콘서트를 통해 관객들에게 멋진 공연뿐만 아니라 삶에 대한 감사와 후원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티켓 수익금은 전액 국제구호기구 월드비전에 기부될 예정이라는 글과 함께 사진 속엔 그를 쏙 빼닮은 돌배기 준서가 천사 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좋은 친구들’이 함께한 준서의 생일
매번 생각하는 거지만 참 부지런한 그다. 많은 가수와 연예인들이 발 벗고 재능기부에 나선 ‘굿프렌즈 콘서트’는 1년 전, 그러니까 준서가 태어났을 때부터 생각해온 공연이다. 몇 번이고 포기를 했다가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준서를 보며 꼭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

“준서가 2012년 1월 12일에 태어났어요. 생각해보니 아이티에 지진이 났던 날이 2010년 1월 12일이더군요. 제가 석규를 떠나보내고 아이티에 가서 많은 힘을 얻었거든요. 그곳에서 우리 석규도 만나고, 석규 친구들도 만나고, 학교도 세울 수 있었고요. 그래서 하늘에서 늦둥이 준서를 주신 것 같아요. 뜻 깊은 날을 우리만의 잔치가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면 어떨까 해서 콘서트를 열게 된 거예요. 제가 아이티 아이들을 후원하며 받았던 사랑과 축복 그리고 치유가 함께해주는 분들의 마음에 울림으로 전해졌으면 좋겠어요. 그 울림이 더 많은 후원들로 이어지고 그러다보면 이 세상에서 물질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또 다른 가치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공연을 시작하기도 전 현장은 축제 분위기였다. 그룹 부활을 비롯해 아이비와 바다, 박상민, 딕펑스, 김영호, 정애리 등 평소 그와 친분이 있던 스타들이 기꺼이 초대에 응했고 그 외에 수많은 동료와 지인들이 공연장을 찾아 준서의 첫돌과 나눔의 자리를 축하했다. 가족과 함께 필리핀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던 김영호는 이날 공연을 위해 급히 귀국했을 정도. 바쁜 와중에 시간을 내준 출연자들 한 명 한 명에게 이광기는 전날 새벽까지 감사의 내용을 담은 손편지를 썼다. 공연 진행하랴 손님 맞이하랴 분주한 와중에도 그의 얼굴에선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출연 요청을 드린 분들 중에 60% 정도는 승낙을 해주시겠지 하는 마음으로 섭외를 했는데 100% 모두 ‘OK!’를 해주셨어요. 덕분에 더 뜻 깊은 자리가 됐네요. 무척 감사하죠. 오랜만에 손편지를 써보니 기분이 새롭더라고요. 그동안의 추억이 떠올라 가슴 찡하기도 하고 요즘 제가 참 무심했던 것 같아 반성도 많이 했어요. 지난날을 회상할수록 현재에 더 감사하게 돼요. 1년 전 준서가 태어나던 날에도 눈이 왔거든요. 오늘도 아침에 눈이 내렸더라고요. 하늘도 축복해주나봐요.”

석규를 떠나보내고 3년 만에 얻은 귀한 생명
탤런트 이광기네 늦둥이 준서 돌잔치 겸 자선 콘서트 열던 날

탤런트 이광기네 늦둥이 준서 돌잔치 겸 자선 콘서트 열던 날

동그란 얼굴에 초롱초롱한 눈, 개구쟁이 같은 미소까지 영락없이 아빠를 닮았다. 이 세상 모든 아이들이 그렇겠지만 이광기 부부와 그들을 아는 이들에게 준서는 축복과 같은 선물이었다. 2009년 신종플루로 아들 석규를 가슴에 묻은 지 3년 만에 얻은 귀한 생명이기 때문이다. 부부는 필리핀에 자원봉사를 갔다가 우연히 그곳 임신부들의 출산을 도와준 것이 계기가 되어 임신을 결심하게 됐다.

“사실 자연임신은 힘들 거라고 했어요. 병원에서는 더 늦기 전에 인공수정이나 과학의 힘을 빌려보자고 했죠. 절실하게 기도를 하다가 어느 순간 ‘아, 이게 내 욕심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하늘에서 저로부터 한 아이를 거두어가면서 세상에 수많은 아이들을 자식으로 알게 해주셨는데, 그 아이들을 돌보고 아끼면서 제 아픔이 치유된 것만으로 감사한데, 내가 너무 큰 욕심을 부리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는 이런 기도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어요. 그런데 정말 희한한 일이죠. 그렇게 모든 걸 내려놓으니 준서를 주시더라고요.”

사실 준서가 부부에게 오기까지는 쉽지 않은 시간들이 있었다. 꿈만 같던 임신 소식도 잠시, 임신 3개월째 고비가 찾아왔다. 아내 지영씨가 갑작스러운 하혈로 위험한 상황을 맞게 된 것. 태아가 자궁 안쪽에 착상되지 않고 자궁 끝에 매달려 있어 자칫 유산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며 정상 위치를 찾았고 부부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담당의도 포기했던 상황에서 의술을 넘어선 기적이라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었다. 위기는 출산 당일 또 한 번 찾아왔다. 아이는 건강하게 태어났으나 수술 마무리 단계에서 산모의 출혈이 멈추지 않아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소속사를 통해 아이의 탄생 소식이 알려지며 여기저기서 축하 인사가 쏟아지던 당시, 지영씨는 죽음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설령 이대로 세상을 떠난다 해도 하늘에서 석규를 만날 수 있기에 두려움은 없었지만, 어렵게 얻은 새 생명을 꼭 키울 수 있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는 그녀. 자궁척출의 위험까지 있었기에 그런 아내를 지켜보는 이광기의 마음은 가시밭길이었다. 보통 산모들이 2, 3팩 정도 받는 수혈을 42팩이나 받고 고비를 넘긴 순간 하늘에선 펑펑 눈이 내리고 있었다.

“석규가 눈을 참 좋아했는데 준서도 눈 오는 날 태어났어요. 지금도 아마 어딘가에서 보고 있겠죠. 석규로 인해 이렇게 소중한 준서가 태어났고 준서가 석규 몫까지 다하지 않을까 싶어요. 어렵게 태어난 만큼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키우고 있어요.”

준서는 닫혀 있던 가족의 창문을 열어준 고마운 아이다. 준서가 태어난 뒤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 무엇인지 묻자 그는 잠시 상념에 잠겼다 말을 이어나갔다.

“석규가 떠난 뒤 우리 가족의 창문은 닫혀 있었어요. 세상에 어떻게 나가야 할까 커튼 사이로 바라보고만 있었죠. 그러다 준서가 태어나면서 창문도 커튼도 활짝 열렸어요. 준서는 우리 가족에게 신선한 공기를 불어넣어준 아이예요.”

아빠의 또 다른 별명 ‘아이티 전도사’
탤런트 이광기네 늦둥이 준서 돌잔치 겸 자선 콘서트 열던 날

탤런트 이광기네 늦둥이 준서 돌잔치 겸 자선 콘서트 열던 날

다시는 이광기의 웃음을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자식을 떠나보내야 했던 그날, 아들의 영정사진을 가슴에 품고 애타게 석규의 이름을 부르던 그의 모습에 전 국민이 함께 울었다. 영원히 헤어날 수 없을 것 같던 슬픔 속에서 그가 희망을 찾은 곳이 아이티였다. 석규를 보내고 두 달 뒤, 아이티 지진 발생 소식이 전해졌고 석규의 사망보험금 전액을 아이티 긴급구호 후원금으로 기부한 그는 현지로 날아가 폐허 속에서 고통받고 있는 아이들을 만났다. ‘모두 내 아이들 같았다’라는 말이 딱이었다. 상황은 달랐지만 가족을 잃은 슬픔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였기에 그곳 사람들의 고통을 더욱 가깝게 느낄 수 있었다. 그때부터 시작된 아이티와의 인연은 이제 그의 인생에서 빼놓고 말할 수 없는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했다. 매년 가족과 아이티를 찾아 봉사활동을 하고 벌써 3년째 아이티 후원 기금 마련 자선 경매도 열고 있다. 자선 경매를 통해 마련된 수익금 전액은 아이티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짓는 데 쓰였다. 지난여름 아들 석규의 영어 이름을 딴 ‘마일론-케빈 학교’가 문을 열었고 지금도 희망학교 건립을 위해 꾸준히 모금활동을 벌이고 있다. 준서의 돌잔치를 통해 모금된 기부금 역시 희망학교를 짓는 데 쓰일 예정이다. 그에게 나눔은 곧 치유였다. “모든 게 석규로부터 시작됐다”라고 말하는 그에게 석규는 이제 더 이상 아프기만 한 이름이 아니다.

“새해 첫날 플루티스트 송솔나무씨네 가족과 인천 영종도로 여행을 갔어요. 펜션에 머물면서 사장님 가족과 친해지게 됐는데 얘기를 나누다보니 우리 가족과 같은 상처가 있으시더라고요. 사장님 말씀이 아이를 잃고 죄인같이 사셨대요. 나중에 하늘나라에 가서 아이를 만날 생각을 하면 항상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이라는 얘기를 듣고 제가 그러지 마시라고 했어요. 믿음을 갖고 다른 사람들과 나누면서, 지금 이 순간을 행복하게 살면 된다고 말씀드렸어요. 나누다보니 지금 삶을 살고 있는 것 자체가 무척 감사해요.”

나눔 콘서트는 계속된다
드디어 돌잔치의 하이라이트인 돌잡이가 시작됐다. 수많은 관객들의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준서가 들어 올린 물건은 십자가였다. 준서가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어린이 성경책을 보는 일이란다. 항상 아침을 성경책을 읽어주면서 시작한다고. 아들이 십자가를 잡고 놓지 않는 모습을 보고 그가 “미리 교회 부지 좀 봐둬야 하나”라며 우스갯소리를 한다. 3시간이 넘게 진행된 공연은 부활의 열정적인 무대를 마지막으로 막을 내렸다. 관객과 출연진 그리고 함께한 모두의 마음이 하나 된 즐거운 시간이었다.

“이렇게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돌잔치에도 나름 의미를 부여하면 많은 분들과 함께 뜻 깊은 행사가 될 수 있거든요. 요즘엔 함께할 수 있는 NGO 단체도 많고, 각자 처한 상황에 맞게 나눌 수 있다는 걸 많은 분들이 아시고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어요. 오늘은 저뿐만 아니라 준서와 우리 가족에게 무척이나 값지고 소중한 경험을 한 날이었습니다. 감사하고 행복하고 사랑합니다.”

그는 앞으로 기회가 될 때마다 이런 자리를 계속해서 마련할 계획이다. 다음엔 3, 4백 명 규모의 소극장에서 또 다른 나눔 무대를 만날 수 있을 듯하다. 작은 씨앗에서 싹튼 나눔의 가지는 10배, 30배, 60배로 늘어나 지금도 울창하게 뻗어나가고 있는 중이다. 그가 슬픔에서 걸어 나와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은 마음속에 항상 살아 있는 석규와 사랑하는 아내, 사춘기 딸 연지와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준서일 것이다. 아이티의 아이들, 나눔에 동참하고 그를 응원하는 수많은 이들도 함께다. 그 마음들이 뿜어내는 온기로 준서네 가족은 누구보다 따뜻하고 행복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조민정, 이성원(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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