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한다면 그녀처럼! 강성연
마냥 아름답기만 한 동화 속 이야기. 괜찮을까?라는 생각이 가끔 든다. 백설공주도 살다보면 부부 싸움을 할 것이고 신데렐라도 ‘시월드’로 속앓이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이 들어 생각해보면 ‘그리하여 두 사람은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란 결말은 너무 급작스럽고 작위적이란 느낌마저 든다. 강성연(37) 부부가 출간한 태담 동화집 「꽃의 숨소리」 속 이야기들은 뭔가 다르다. 촌스럽지만 진솔함이 있고, 슬프지만 여운이 있다. 책 속에는 그녀의 목소리도 담겨 있고 김가온의 연주곡도 들어 있다. 15편의 동화는 그녀가 공들여 선택했고 직접 읽었다.
“원래 시와 동화를 좋아했어요. 제 책장에는 동화책만 꽂혀 있어요. 얼마 전 이사를 했는데 짐을 옮기시는 분들이 ‘아직 아이도 없는 것 같은데 동화책이 왜 이렇게 많아요?’ 하고 의아해했을 정도였죠. 권선징악 스토리보다는 여러 색채의 인생 이야기가 담긴 동화들을 골라읽어요. 어른들이 봐도 가슴이 아련해지는 이야기들이죠. 마치 어린 시절에 읽었던 「어린왕자」를 어른이 돼 읽었을 때 느낌처럼 말이죠.”
책 사이사이에서 강성연의 글도 볼 수 있다. 결혼 뒤의 행복도 엿볼 수 있고 출산과 육아에 대한 두려움도 비친다. 고단한 삶에 대한 소고도 담겨 있다.
“책은 처음 도전하는 분야라서 오히려 거짓말을 할 수 없었어요. 책을 준비하면서 다짐한 것이 ‘가식이나 미사여구로 장식하지 말자’였어요.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따뜻함을 전할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죠.”
그녀는 1년 전부터 EBS 라디오 ‘어른들을 위한 동화’(월~금요일 오전 10시 방송)라는 동화 낭독 프로그램을 맡고 있다. 팬층이 두텁다. 때로는 편안하고 때로는 재기발랄한 그녀의 목소리는 듣는 이의 마음을 치유한다.
“제 방송을 녹음해서 들으며 태교를 한다는 분들이 정말 많아요. 제 목소리만 나오면 배 속 아이가 태동을 한다는 분들도 계시고요. 저를 처음으로 아줌마란 호칭으로 불러준 꼬마 팬도 있어요.”
1년째 방송을 하면서 그녀가 낭독한 그림책은 1백 권이다. 장편 동화는 50편 정도 된다. 강아지, 고양이 성대모사는 그녀에겐 예삿일이 됐다. 바람, 구름, 박쥐, 물방개, 진드기 등 동화 속에는 상상치도 못한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연기보다 훨씬 어렵단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할 때가 최고였죠. 16가지 캐릭터를 연기했어요(웃음). 때로는 입도 뻥끗하기 싫을 때가 있는 게 사실이에요. ‘오늘은 내가 좀 동화를 듣고 싶다’ 할 정도로 지칠 때가 있죠. 그런데 큐 사인이 들어오고 불이 켜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천연덕스럽게 낭독하게 되더라고요.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건 그런 건가 봐요.”
그녀의 작은 숨소리, 간격, 어미 처리에도 청취자들은 민감하게 반응한다. 혹여 감기라도 걸릴까 노심초사다.
“지금 감기 기운이 있어서 얼른 약 먹고 주사도 맞았어요. 목이라도 잠기면 큰일이에요. 낭독은 에너지를 굉장히 많이 쏟는 작업이더라고요. 집중을 해야 하기 때문에 어깨에 담이 풀리지가 않아요. 방송국에 아침 10시 전까지 도착해야 하니까 밤늦게까지 놀지도 못하고 말이죠(웃음).”

사랑한다면 그녀처럼! 강성연
“개인적으로 수녀님의 시를 좋아하거든요. 그분의 시를 책에 꼭 싣고 싶었어요. 그래서 수녀님께 3장의 자필 편지를 썼어요. 그러자 정말 좋은 책인 것 같다며 바로 연락을 주신 거예요. 이후에 저는 수녀님의 ‘위대한 토크’란 토크쇼에 초청받기도 했고, 또 제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수녀님이 출연해주시기로 했지요.”
그녀에게 동화책 읽는 법에 대해 물었다. 그녀는 동화책을 낭독하면서 책이 육아교육에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고 있다고 했다.
“책을 읽어주는 건 정말 중요한 육아교육 중 하나인 것 같아요. 어떤 분들은 쑥스러워서 못 읽어주겠다고 하는데 그럼 안 돼요. 아이들은 눈치가 빨라요. 내가 온전히 구름이고 마녀고 호랑이가 돼야 해요. 자아를 버리고 그냥 받아들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김가온과 만드는 신혼 이야기
두 사람은 얼마 전 결혼 1주년을 기념해 제주도로 여행을 다녀왔다. 정확히 말하면 한라산 등반이다. 산을 좋아하는 김가온을 따라 떠난 일정이었다.
“저는 산 근처에서 촬영만 잡혀도 짜증을 냈던 사람이에요. 그런데 남편의 손에 이끌려 9시간에 걸쳐 한라산 백록담에 다녀왔어요(웃음).”
결혼 뒤 처음 오른 곳은 청계산이었다. 이어 도봉산, 관악산 그리고 한라산이다.
“남편 때문에 인생이 바뀐 거죠. 처음에는 자유로운 사람이라서 선택했지만 그 사람의 자유와 제 자유의 종류가 너무 달랐어요. 모든 부부가 다름에서 시작한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다를 수가.”
자신과 너무 다른 남편, 강성연은 신혼여행부터 당황했었다. 결과적으로는 그녀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여행이 됐지만.
“남편은 몽골이나 남아프리카 등 오지여행을 좋아해요. 신혼여행을 호주로 다녀왔는데 가이드와 함께한 시간을 너무 지루해하는 거예요. 결국 뉴질랜드로 넘어가서는 남편이 직접 운전하고 단둘이 목적지도 없이 돌아다녔어요. 차로 정처 없이 달리고 있는데 갑자기 우박과 벼락이 쏟아지는 거예요. 저는 숙소도 없이 허허벌판에 놓인 상황이 너무 무서워서 ‘어떡해’ 하며 남편을 쳐다봤는데 ‘와~ 성연아, 저 번개 좀 봐. 우리가 언제 번개 속을 달려보겠니?’ 하며 신나하는 거예요(웃음).”

사랑한다면 그녀처럼! 강성연
“비행기 시간이 안 맞아서 밤에 7시간을 대기해야 했는데 남편은 여유롭게 공항 바닥에 담요를 깔고 있는 거예요. 제가 하도 기가 막혀서 ‘지금 나보고 공항 바닥에서 잠을 자라고?’ 했더니 ‘응, 배낭여행 하는 사람들 다들 그래. 7시간 때문에 호텔을 잡는 건 너무 아깝잖아’ 하며 오히려 절 이상하게 쳐다보더라고요. 남편은 눕자마자 코를 골면서 자기 시작했어요.”
남편은 여러 가지 의미로 그녀에게 신세계를 보여준 사람이다. 이제는 그녀가 먼저 그의 손을 잡아 이끌며 “다음엔 눈이 녹기 전에 설악산 갈까?”라고 말할 정도로 산도 좋아졌다. 정기적으로 다니던 피부관리실이나 마사지숍도 발길을 끊었다.
“살림도 남의 손에 맡기지 않아요. 밥상도 늘 제가 차려요. 가사와 일을 병행할 때는 무척 피곤하죠. 피부관리하러 다닐 시간도 없어요. 그래도 결혼하고 더 예뻐졌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 왜일까요?”
비록 몸은 힘들어졌지만 마음은 편하다. 정신적으로 의지할 큰 버팀목이 생겼기 때문이다.
“많은 여배우들이 새장 속의 새처럼 살아요. 연기할 때 비로소 살아 있음을, 자유를 느껴요. 참 모순된 삶이죠. 사람들은 여배우에게 늘 파격적인 연기 변신을 기대하면서 현실에서는 순진한 여성이길 바라죠. 스캔들이 터졌는데 자기들이 원하는 러브 스토리가 아니다 싶으면 화를 내고…. 세련되지 못한 시선인 것 같아요.”
그녀는 두 손을 모으며 그 굴레에서 자신을 구제해준 남편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하며 같이 붙어 있으면 참 행복해요. 함께 영화를 보며 와인 한 잔 하는 것도 좋고요. 사실 이렇게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잖아요?”
남편 김가온의 페이스북에도 1월 6일 함께 등반한 한라산 사진이 올라 있다.
‘1년 전 하얀 드레스를 입고 서 있던 아름다운 그녀가 오늘은 하얀 눈에 둘러싸여 내 옆에 서 있습니다. 그녀에게 고맙습니다.’
두 사람이 만들어갈 미래
연기자 강성연과 재즈 피아니스트 김가온의 결혼 소식은 무척이나 갑작스러웠다. 그 탓에 강성연이 임신설에 휩싸이기도 했다.
“남편은 결혼하자마자 아이를 갖길 바랐어요. 저는 사실 작품을 더 하고 싶었죠. 남편은 애초에 두 명을 희망했는데 이제는 한 명만이라도 갖자며 간절히 원하니 제가 결심을 해야겠더라고요.”
내 뜻대로 자라준다는 보장도 없는 존재. 그런 존재에게 내 인생의 일부를 바쳐야 한다. 강성연은 평소 결혼해도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제 형제가 넷인데요. 엄마는 지금까지도 자식의 일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계세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2세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니 바뀌더라고요. 삼류 소설에나 나올 법한 ‘그 사람의 아이를 낳고 싶어’란 말이 술술 나와요. 참 신기하죠?”

사랑한다면 그녀처럼! 강성연
“남편은 제가 늦게 들어오는 게 싫다고 해요. 자기 옆에만 있어주면 좋겠다네요. 물론 그런 소리를 들을 땐 기분이 좋죠. 누군가의 아내, 엄마로 비교적 편하게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죠. 하지만 여자도 독립적인 인간으로서 사회와 충돌하는 희열도 있어야 행복한 것 같아요. 남편은 현재 매우 편안한 시기의 저를 보고 있는 거예요. 처절하게 역할에 빠져서 잠도 못 자고 예민해지는 ‘무서운 모습’을 아직 못 봤죠(웃음).”
그것마저 그녀의 모습이며 인생의 한 부분이다. 남편도 받아들이고 이해할 시간이 올 거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작품은 나중에라도 할 수 있어도 아이는 가질 수 있는 시기가 있잖아요. 그래서 올해는 2세 계획에 집중하려고 해요. 무슨 일이든 때가 있는 법이니까요.”
그녀는 벌써 17년 차 배우다. 세속적인 욕심은 이미 내려놓았다. 연기는 그녀 삶의 자신감이며 새로운 발견이고 희열이라고 말한다.
“얼마 전에 영화 ‘레미제라블’을 봤어요. 배우 앤 헤서웨이의 원 테이크 연기를 보면서 배우에 대해 생각했어요. 삭발도 감수하고 얼굴이 망가지는 연기를 해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에 다시 한번 감동했지요. 그렇게 캐릭터로 남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어요.”
재능 많은 그녀는 하고 싶은 일이 또 하나 있다. 바로 가수 활동이다. ‘보보’의 3집을 기다리는 팬들도 많다.
“조만간 남편과 스탠더드 재즈 음반을 만들어볼 계획이에요. 남편이 프로듀싱과 작곡을 하고 제가 가사를 쓰고 노래를 부르는 거예요. 재밌는 작업이 될 것 같아요.”
세상을 두려워하고 경계하던 겁쟁이는 벼락이 내리쳐도 굴하지 않고 한결같은 남자를 만났다. 남자는 겁쟁이를 보듬으며 뾰족했던 모서리를 깎고 다듬었다. 겁쟁이였던 그녀는 어느새 다른 이와 상처 주지도 받지도 않는 둥근 마음을 갖게 됐다. 두 사람이 만들어가는 동화, 그 두 번째 이야기가 막 시작하려 한다.
■글 / 이유진 기자 ■사진 / 원상희 ■장소 협찬 / 스튜디오 하늘(070-4250-8733, www.studiosk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