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인성·송혜교가 전한 ‘그 겨울, 바람이 분다’ 비하인드 스토리
지난 3월 중순, 서울 강남의 촬영 현장에서 만난 조인성과 송혜교는 종영을 앞두고 막바지 작업에 몰두하느라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마침 그날도 이른 아침부터 촬영을 시작해 많이 피곤한 상태라고 했다. 그러나 이내 “몸은 고되고 힘들어도 주위의 뜨거운 반응 덕분에 마음만큼은 어느 때보다 기쁘고 뿌듯하다”라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 모습에서는 제법 여유가 느껴졌다.
사실 조인성은 이번 드라마의 출연 제의를 받고 나서 불안한 마음에 적지 않은 맘고생을 치렀다고 한다. 처음에는 충분히 해볼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욕심을 냈지만, 대본을 읽으면 읽을수록 어렵게 느껴져서 점점 피하고 싶어졌기 때문이었다. 긴 공백을 깨고 복귀하는 작품인 만큼 자칫 잘못하면 큰 실패를 겪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까지 엄습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고민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같은 소속사 동료이자 평소 그와 막역한 사이로 잘 알려진 배우 고현정의 조언이 큰 힘이 된 덕분이다.
“제 얘기를 들으시고는 ‘힘들 줄 모르고 선택했냐? 난 네가 그것까지 다 생각하고 결정한 줄 알았다’라고 하시더라고요(웃음). 그러면서 캐릭터를 있는 그대로 단순하게 받아들이라는 해답을 주셨어요. 오수라는 캐릭터는 첫사랑을 매몰차게 버리고 자기 멋대로 살다가 이제는 재벌가 상속녀에게 거짓말로 접근해 돈까지 뜯어내려고 하는 나쁜 놈 캐릭터이니까, 그냥 나쁘게 연기하면 된다는 거죠. 제가 시청자들에게 동정표라도 받겠다는 심산으로 자꾸만 착해지려는 욕심을 내니까 고민이 많아지는 거라고도 하셨고요. 그 말을 들으니까 제 배역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게 됐고, 점점 확신도 생겼어요.”
매회 명대사 어록을 남기며 시청자들의 감성을 정확히 읽어내는 노희경 작가의 필력은 드라마의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다. 강렬하면서도 절절하게 번져나가는 극중 인물들의 섬세한 감정선이 무척이나 촘촘하다. 어쩌면 그래서 배우들에게는 연기하기에 더 복잡하고 어려운 부분이 많았는지도 모른다. 조인성도 마찬가지였다.
“표현하기 어려워서 이제는 제발 좀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 이 있어요. 오수라는 인물은 나쁜 놈이기도 하지만 내면에 아픔이 참 많은 캐릭터잖아요. 극이 진행되면서 차근차근 감정을 쌓아뒀다가 나중에 터뜨리는 구도가 아니라 아예 초반부터 마음의 상처를 드러내면서 감정을 폭발시키고 오열해야 하는 장면들이 많다 보니 심리적인 부담이 컸어요. 그나마 다행인 건, 노희경 작가님의 대본이 워낙 좋기 때문에 그 힘을 받아서 제가 감정 연기를 좀 더 잘 표현해낼 수 있었던 점이죠.”
마음의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조인성은 결국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고 작품 속으로 녹아들었다. 겉으로는 강해 보여도 속으로는 한없이 외로운 남자 주인공 오수의 단단하면서도 쓸쓸한 캐릭터는 처음부터 조인성의 몫이었던 것처럼 잘 어울렸다.
‘오수앓이 에 빠진 완벽한 오영, 송혜교
조인성·송혜교가 전한 ‘그 겨울, 바람이 분다’ 비하인드 스토리
“오영이라는 캐릭터의 감정이 워낙 깊다 보니 그 내면을 연기로 끄집어내기까지 어려울 때가 참 많았어요. 게다가 앞이 보이지 않는 연기는 아무리 연습을 해도 100% 완벽하지는 못해요. 미흡할 때가 많죠. 그러다 보니까 초반에는 연기도 잘해야 하고, 감정도 잘 잡아야 하고, 시선 처리도 잘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부담감이 정말 컸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걱정과 고민에 대한 노력들이 몸에 많이 익은 것 같아요.”
노희경 작가의 격려와 조언도 큰 힘이 됐다. 송혜교는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을 통해 이미 노 작가와 한 차례 호흡을 맞춘 바 있다. 당시 ‘송혜교의 재발견’이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로 노 작가는 송혜교가 배우로서 입지를 단단히 굳힐 수 있도록 만들어준 고마운 인연이자 그녀를 더 성장하게 만든 깐깐한 스승이다.
“‘그들이 사는 세상’을 통해 연기했던 제 캐릭터에서 좋았던 모습들과 그때 아쉽게 놓쳤던 부분들을 이번 작품에 모두 담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작가님과 같이 공부하면서 오영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었어요. 처음에는 좀 어려웠지만, 작가님의 말씀들을 통해 저도 몰랐던 제 모습을 발견해나가면서 희열을 느끼기도 했고요. 앞으로도 작가님과 계속 좋은 작품으로 함께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조인성과 송혜교의 환상적인 호흡도 드라마의 높은 인기에 한몫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는 두 사람은 평소 서로에게 “혜교야” 혹은 “인성아”라고 부를 정도로 허물없는 사이다.
“감정을 잡느라 시간이 오래 걸릴 때마다 항상 인성씨가 옆에서 기다려주고, 제 연기에 리액션도 참 잘해줘요. 무거워질 법한 현장 분위기도 늘 밝고 즐겁게 만들어주고요. 인성씨와 같이 작업할 수 있어서 즐겁고, 행복하고, 고마워요. 다만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제가 시각장애인 연기를 하다 보니 촬영장에서 마주 보고 연기하더라도 인성씨의 눈을 전혀 못 봐요. 나중에 집에서 방송을 모니터링하면서 그때 인성씨의 연기를 제대로 보죠. 현장에서 목소리만 듣고 연기하다가 막상 TV로 그 장면들을 다시 보면서 깜짝 놀랄 때가 많아요. 저도 시청자 입장에서 오수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더라고요. 요즘에는 저도 많은 여성 시청자분들처럼 ‘오수앓이’를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저런 남자가 세상에 정말 있을까, 하는 환상에 사로잡혀서요(웃음).”
조인성도 마찬가지다. 송혜교의 연기를 보며 자극을 받아 더 열심히 하고 싶어진단다.
“연기하다 보면 ‘정말 오영이라는 여자가 왔나’ 싶을 정도로 놀라요. 카메라 감독님이 혜교씨의 연기를 찍으면서 감탄하시는 모습을 자주 봤어요. 저 역시 소름이 돋을 때가 많아요. 그런 혜교씨의 절정의 연기를 지켜볼 수 있고, 또 함께할 수 있다는 게 제게 큰 영광이죠. 그 덕분에 촬영장 나가는 게 즐겁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만큼 저 스스로 더 긴장하면서 연기하게 되는 점도 있어요. 만약 시청자분들이 제 연기를 보고 잘했다는 생각이 드신다면 그건 혜교씨의 연기가 좋았기 때문에 저까지 잘 비쳐지는 걸 거예요.”
작품을 선택하고 그 안에 온전히 스며들기까지 비록 맘고생은 혹독하게 치렀지만, 오히려 그 과정을 통해 조인성과 송혜교는 연기적으로 한 단계 더 도약하며 변함없는 존재감을 입증해냈다. 성공적인 컴백을 통해 스타와 배우로서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그들의 봄날에 가슴 벅찬 바람이 불고 있다.
■기획 / 장회정 기자 ■글 / 윤현진(프리랜서) ■사진 제공 / S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