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골 소년 유승우, 사랑에 빠질 수밖에
촬영을 앞두고 잠깐의 짬이 생기자 유승우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찾았다. 그러고는 연예 뉴스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가 클릭한 것은 인터뷰 당일 검색어에 오른 최희 KBSN 아나운서의 기사였다.
“얼마 전에 최희 누나를 봤어요. 정말 하늘에서 여신이 강림한 줄 알았다니까요(웃음).”처음부터 끝까지 싱글벙글. 처음 만난 기자나 스태프들에게도 스스럼없이 트레이드마크인 ‘반달’ 눈웃음을 지어 보이며 쫑알거리는데, 왜 그의 인터뷰에 ‘엄마 미소’, ‘이모 미소’라는 단어들이 따라다니는지 이해가 됐다.
아직은 낯선 이름, 연예인
“솔직히 연예인이 됐다는 게 실감이 잘 안 나요. 방송국에서 개그맨, 배우 선배님들을 볼 때면 꼭 사인을 받아야만 할 것 같아요. 물론 사인해주세요, 라는 요청을 하진 않아요. 전 개념이 있는 아이니까요(웃음). 사람들도 아직까지는 저를 가수라기보다는 그냥 노래하는 사람 정도로 여기지 않나요? 가수로 불리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할 거예요. 제 앞에 놓인 숙제라고 생각해요.”
지난해 방송된 ‘슈퍼스타K 시즌4’(이사 슈스케)에서 인디밴드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의 ‘석봉아’를 부르며 단번에 ‘천재 소년’, ‘기타 신동’으로 떠올랐던 유승우(17). 청명한 목소리로 자신의 몸집만 한 기타를 자유자재로 연주하는 그 모습에 시청자들과 심사위원들은 그를 유력한 우승 후보로 점쳤다. 하지만 그는 끝내 톱4의 벽을 넘지 못하고 아쉬움을 뒤로한 채 ‘이변의 주인공’으로 남았다.
“한 단계 한 단계 올라가면서 어느 시점부터 ‘나는 절대로 떨어지지 않아’라고 자만했어요. 그러다 톱4를 뽑을 때 막상 제 이름이 불리지 않으니 머릿속이 하얗게 되더라고요. ‘어? 어떻게 해야 하지?’, ‘정말 끝인가?’ 하는 생각, 이승철 선생님께 잘했다고 칭찬받았던 기억, 또 그 다음엔 8시간을 기다려 예선전을 본 일들이 마치 주마등처럼 쉬익, 하고 지나갔어요.”
그에게 ‘슈스케’는 ‘두 번째 엄마’다. 자신을 세상에 널리 알려준, 또 다른 ‘유승우’로 태어나게 한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와 고백하건대 탈락 후 로이킴, 딕펑스 등 동고동락했던 형들이 잘나가는 모습을 볼 때면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마음 한구석에 누구에게도 말 못할 조바심이 자리했다. 그때마다 그는 큰 그림을 그리며 긴 호흡을 내뱉었다.
“생각 같아선 하루라도 빨리 데뷔하고 싶은데 어느 회사를 선택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어요.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음악을 1, 2년 할 것도 아니고 평생할 건데 처음부터 욕심을 내기보다는 나란 사람을 좀 더 알릴 수 있는 정도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작은 깨달음 같은 걸 얻었다고나 할까요?(웃음)”
최근 그는 사춘기 소년의 성장통을 고스란히 담은 미니 앨범 「첫 번째 소풍」을 발표했다. 가벼운 멜로디에 셔플 리듬을 더한 경쾌한 분위기의 타이틀 곡 ‘헬로(Hello)’ 외에도 자작곡을 두 곡이나 실었다. 그중 ‘서툰 사랑’은 그가 네 살 때 개봉된 영화 ‘엽기적인 그녀’를 모티브로 한 발라드 곡이고, ‘한심한 남자가 부르는 노래’는 레게 리듬에 힙합 선율을 가미한 곡이다. 사랑과 이별을 경험한 적이 있느냐고 묻자 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기자님은 고등학교 때 사랑에 빠져본 적 없나요? 전 있는데…. 짝사랑!”이라며 당돌하게 응수한다.
“음악적인 영감은 언제 어디서든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굳이 경험하지 않았다 할지라도요. 그렇지만 이번 앨범의 점수를 매긴다면 70점이에요. 생각보다 낮죠? 제가 정말 애정을 갖고 참여를 해서 그런가 봐요. 더 냉정하게 평가하게 되네요. 하지만 저는 여전히 어리고, 발전할 가능성이 있으니까요(웃음). 나머지 30점은 천천히 채워가도 되지 않을까요? 보여드릴게 많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에요.”
국민 가수를 꿈꾸는 아날로그 소년
가수가 되기 전 유승우의 주 무대는 할머니의 손을 잡고 갔던 충남 천안시 성환읍의 경로당이었다. 어르신들로부터 “거 노래 참 잘하네”라는 칭찬을 들을 때마다 그는 즐거웠다고 한다. 우연히 제이슨 므라즈의 히트곡 ‘아임 유어스’를 들은 후 가수가 돼야겠다고 결심했다. 중학교 2학년이 되던 해엔 6개월간 부모님을 졸라 10만원짜리 통기타를 손에 쥐었다고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인터넷을 통해 독학으로 기타 연주를 마스터했다.
“제가 공부를 곧잘 했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 마지막 시험에서 평균 97점을 받아 전교 4등도 해봤는걸요(웃음). 그런데 음악을 하겠다고 하면서 성적이 떨어졌어요. 부모님께서 반대하신 게 어쩜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몰라요. 항상 음악은 취미로 하라고, 가수는 배고픈 직업이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어쩌겠어요. 저는 음악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소년의 유쾌함이 가득 묻어 있는 대화를 하는 동안 문득문득 그에게 열일곱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아날로그 감성이 풍부하게 녹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하는 뮤지션만 봐도 그랬다.
“김건모 선배님은 제 롤모델이에요. 노래도 잘하시고, 레게, 댄스, 발라드 못하는 게 없으시잖아요? 선배님처럼 ‘국민 가수’라는 타이틀이 제 마지막 목표예요. 잠깐 폈다가 지는 ‘반짝 가수’가 아닌, 전 국민이 고개를 끄덕이는 오랫동안 사랑받는 국민 가수요.”
기쁜 소식이 또 하나 있다. 소속사의 도움으로 집안 사정 때문에 갈 수 없었던 실용음악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된 것. 음악 활동과 학업을 병행하기 위해 거처도 서울로 옮겼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그는 지금 이 순간이 무척 행복하다.
“요즘엔 엄마가 제일 좋아하세요. 꿈을 이룬 제가 자랑스럽다고 칭찬도 해주시고. 효도가 별것이 아니구나, 느껴요(웃음). 원하던 일들이 한꺼번에 이뤄져 정말 정신을 못 차리겠어요.”
인터뷰 말미 그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돌아와서는 자신의 사인과 짧은 메시지가 적힌 CD를 건넸다. 그를 꼭 닮은 일러스트 밑에 또박또박 적은 문구를 보며 생각했다. 이러니 사랑할 수밖에. 메시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기자님, 제 친구랑 이름이 똑같아요.’
Hello!
Yoo Seung Woo

산골 소년 유승우, 사랑에 빠질 수밖에
고향 성환읍의 유명 인사가 됐다. 배가 유명한 곳인데 방송 출연 후 사람들이 배보다 저를 더 아껴주셨다. 탈락한 후에도 플래카드가 8개나 붙어 있었다. 물론 1주일 후엔 다 내렸지만.
조용필 선배님과 타이틀곡 제목이 같아 부담을 많이 느꼈다. 하지만 어머니가 조용필 선배님을 굉장히 좋아하셔서 어릴 적부터 그분의 노래를 많이 들었다. 그런 점에서 뿌듯하다.
피처링 작업을 함께하고 싶은 가수는 아이유 누나다. 랩 피처링은 다이나믹 듀오, 리쌍 선배님과 하고 싶고 ‘무한도전’을 무척 좋아하는데 하하 선배님이 해주시면 행복해 날아갈 것 같다.
모든 사람들에게 내 노래를 들려주고 싶다. 모든 사람들이 내 앨범을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저마다 차이가 있을 테니까. 대신 모든 분들과 호흡하고 싶다.
■글 / 김지윤 기자 ■사진 / 원상희 ■의상 협찬 / KUHO PLUS, 햇츠온, 로버스, 폴스미스, TATE ■헤어&메이크업 / 순수 청담설레임점(02-518-6221) ■스타일리스트 / 이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