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스러움의 정석

사랑받아 마땅한 그녀, 배우 공효진
이 별명처럼 공효진에게는 어떤 역할을 맡든 그 캐릭터를 사랑스러운 여인으로 변화시키고 재창조해내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2010년 방영된 MBC-TV 드라마 ‘파스타’에서는 셰프 최현욱(이선균 분)에게 드러내놓고 애정을 표현했지만 전혀 얄밉지가 않았다. 오히려 그가 최현욱을 부를 때 쓰는 ‘솁(셰프)’이라는 호칭이 유행할 정도였다. 그동안 다소 생소하게 여겨지던 셰프라는 외래어가 이제 요리사나 주방장을 대신하게 된 데는 공효진의 지분도 있는 듯하다.
그리고 딱히 조각 같은 미인이라고 할 수 없는 외모로 ‘톱스타’ 독고진(차승원 분)의 사랑을 독차지했을 때(MBC-TV 드라마 ‘최고의 사랑’)도 미움을 사지 않았다. 오히려 여자 시청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이끌어냈다. 심지어 하정우와 함께한 영화 ‘러브픽션’에서 겨드랑이 털(본인의 것은 아니었지만)을 드러냈을 때도, 영화 ‘577프로젝트’에서 국토 종단을 하다 지쳐서 피로를 덮어쓴 맨 얼굴을 드러냈을 때도, 그녀는 마냥 사랑스럽기만 했다.
욕설과 폭력이 난무해도, 여전히 매력적인
공효진의 최근작 ‘고령화 가족’은 그녀의 사랑스러움이 가장 잘 발현된 영화다. 천명관 작가의 동명 소설을 스크린에 옮긴 ‘고령화 가족’은 막장에 가까운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중년의 자녀들이 각자의 사연으로 엄마 집에 한데 모여 살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렸는데, 공효진이 맡은 셋째 딸 미연은 두 차례 이혼 후 중학생 딸을 데리고 합류하게 된다. 두 번째 이혼을 한 후에는 “이젠 비구니로 살겠다”라고 선언하지만, 어두운 집 앞 골목에 세워둔 차 안에서 새 연인과 뜨거운 애정 행각을 벌인다. 남자관계를 두고 타박하는 오빠들에게는 “집에 생활비 내는 사람이 누구냐”라며 되레 큰소리를 친다. “네가 사람이냐”라며 발로 차기도 한다. 심지어 깡패였던 큰오빠도 그녀 앞에선 제대로 힘을 못 쓸 정도다.
공효진은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내용이 무척 ‘세서’ 고민했다고 한다.
“당초 시나리오는 영화로 나온 완성본보다 더 세고 더 심오하고 어두운 이야기였어요. 사실 집안에 ‘루저’ 한 명만 있어도 답답한데, 누가 봐도 ‘루저’인 세 남매가 다 그 모양으로 한 집에 모여 사니까 암담할 수밖에 없잖아요. 어떻게 보면 친한 친구한테도 터놓고 얘기할 수 없을 정도의 가족이에요. 오빠들 얼굴이 꺼칠하고 옷은 칙칙하고 한숨이 나오는 집구석인데도 엄마는 자식들에게 ‘왜 이렇게 수척하냐’, ‘얼른 밥 먹어라’라고 토닥이죠. 엄마 역할을 맡은 윤여정 선생님이 연기하면서 ‘속이 참 좋은 엄마다. 이런 엄마가 어디 있냐’라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설명하는 것처럼 애초 무거운 이야기의 작품이었지만 공효진이 출연을 결정한 이유는 미연의 당당한 모습 때문이었다.
“우선 무거운 가족 얘기지만 그 안에 위트가 있고 캐릭터들이 다 살아 있어서 흥미로웠죠. 무엇보다 제가 맡을 ‘미연’에 대한 호감도가 가장 중요했는데, 무척 재밌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오빠들에게 ‘개새끼’라고 욕하기도 하고, ‘내가 돈 다 주잖아’라거나 ‘집안에 해준 게 뭐가 있냐’라면서 시원하게 대드는 당당한 모습이 좋아 보였어요. 실제 연기할 때도 든든한 오빠 둘(윤제문, 박해일)이 있으니까 저 혼자 짐을 짊어지지 않아도 됐죠.”
원작에서 미연은 정체불명의 카페를 운영하면서 온갖 종류의 바람을 피웠던 패륜의 아이콘이다. 이런 미연이라는 배역은 공효진을 만나면서 한층 ‘러블리’해졌다. ‘고령화 가족’을 연출한 송해성 감독은 전작인 ‘역도산’, ‘무적자’ 등에서 보듯이 여성 캐릭터를 그리는 데 서툰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이번 작품에서 미연은 물론 엄마까지도 사랑받아야 마땅한 여인으로 표현해냈다. 이에 대해 송 감독은 “배우 자체가 가진 힘 덕분이다”라고 공을 돌렸다.
힘들지만 존재만으로도 든든한, 가족은 나의 힘
공효진이 이토록 사랑스럽게 보일 수 있던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가족에 대한 공감일 것이다. 가족은 참 희한한 존재다. 매 순간 소중한 존재라고 느끼는 건 아니지만 피부처럼 달라붙어 영향을 끼친다. 좋아도, 미워도 떼려야 뗄 수도 없다. 티격태격 싸우다가도 이내 같은 한 뚝배기에 숟가락을 넣어 찌개를 떠 먹는 사람들이기도 하고, 싫은 구석이 있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이 욕하는 건 용납할 수 없는 관계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얽힌 사람들이다.
공효진에게는 한 살 아래 남동생이 있다. 중학교 1학년 때까진 치고받고 싸우기도 많이 했지만 그 후로는 힘에서 밀려 관뒀단다. 중3 때 호주로 함께 유학을 떠난 후에는 동생이 싸움의 대상이 아니라 유일하게 의지하는 사람이 됐다.
“힘에서 밀린 뒤로는 한때 모르는 사람처럼 피했어요(웃음). 그런데 유학을 간 후에는 동생이 없으면 말할 사람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그때부터는 동생이랑 친구처럼 지냈죠. 동생이 ‘누나’ 대신 ‘야’라고 불렀지만, 한 살 차인데 친구처럼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어요. 그러다 제가 데뷔해 돈을 벌고 동생에게 용돈을 주게 되니까 동생이 다시 누나라고 부르더라고요(웃음).”

사랑받아 마땅한 그녀, 배우 공효진
영화 ‘고령화 가족’에서도 오빠는 여동생 미연과 욕하며 싸우다가도 미연이 다른 사람과 시비가 붙으면 “누가 내 동생을 건드리냐”라며 득달같이 달려든다. 긴급한 순간이 닥치면 미연도 평소엔 무시하던 오빠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공효진은 “가족이란 싸우다가도 돌아서면 생각나는 통증 같은 존재”라며 “핏줄이 아프다는 말이 딱 맞다”라고 했다.
그녀는 나이가 들수록 심오한 가족의 의미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가족과 함께 살다가 5년 전쯤 독립했어요. 독립한 후에 엄마를 대하는 게 많이 달라졌죠. 엄마가 무뚝뚝하신 편인데, 요즘은 ‘사랑해, 딸’ 같은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자주 보내세요. 마음이 찡해져요.”
무엇을 걸쳐도 멋이 나는 그녀
공효진은 자타가 공인하는 패셔니스타이기도 하다. 언제 어느 자리에서나 개성 넘치면서도 센스 있는 스타일을 선보이는 그녀의 패션은 언제나 사람들의 화젯거리가 되곤 한다. 당연히 영화 속 모습 또한 관심이 모아질 수밖에 없다.
극중 미연이 운영하는 카페는 낮에는 차를 팔지만 밤에는 술을 팔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공효진은 배역에 맞춰 손톱에 호피무늬를 그리기도 했고, 머리에도 큐빅 장식이 크게 박힌 핀을 꽂았다. 다른 사람이 했으면 다소 천박해 보일 수 있는 패션이지만 공효진과 만나니 오히려 패셔너블하게 보인다. 공효진은 예쁘게 보이려고 하지 않는데도, 늘 멋이 난다.
극 초반에는 얼굴이 멍든 채로 나오는데, 이를 처음부터 끝까지 하면 어떠냐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고 한다.
“얼굴이 멍든 채로 처음부터 끝까지 나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봤어요. 여동생이 눈두덩에 멍이 들어서 ‘네가 인간이냐’라고 오빠한테 대드는 게 재밌게 보일 것 같았거든요. 원래 한 번 멍이 들면 오래가잖아요. 파랗게 됐다가 보라색도 나고 노란색으로 변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끝까지 고수하는 것도 괜찮을 듯했는데 성사되지는 못했죠.”
영화 속에서 입고 나오는 독특한 프린트의 스커트나 팬츠도 청담동 며느리 같은 느낌을 낸다. 실루엣도 아름답다. 공효진은 따로 다이어트를 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운동을 꾸준히 하는 편이긴 하지만 일부러 살을 빼지는 않는다. 예전에는 종이인형, 말라깽이 같은 별명을 많이 들었던 터라 오히려 마른 몸 때문에 고민을 하는 편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레드카펫에 설 때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또 누구나 부러워하는 패셔니스타다. 그런 그녀도 혹시 패션 감각이 부러운 스타가 있는지 궁금해 물었더니, 의외로 줄줄 읊기 시작했다.
“제 주변 사람들은 다 패셔니스타들이에요. (신)민아는 S라인이 부러워요. 특히 골반이 예쁘죠. 남자들이 매우 좋아할, 단아한 옷을 잘 입어요. 그러면서도 가끔은 섹시한 매력도 풍기고요. (김)민희는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모든 옷을 멋지게 소화하죠.”
‘귀신 보는 여자’로 연기 갈증 해소
지난해 공효진은 ‘러브픽션’과 ‘577프로젝트’ 두 편의 영화로 관객과 만났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촬영은 재작년에 모두 마친 작품들이었고, 정작 지난해에는 개봉작만 있을 뿐 촬영작이 없었다. 배우가 직업인데 배우의 일인 연기를 못하고 거의 1년을 지내다 보니 연기 갈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배우가 직업이니까 연기하는 건 당연하잖아요. 마치 성악가가 노래하고 피아니스트가 피아노를 치는 것처럼 연기를 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인데 촬영이 없으니 답답했었어요. 제가 출연한 ‘고령화 가족’의 분량은 15회 정도였으니 다른 배우에 비해 짧은 편이었어요. 연기는 더 하고 싶은데 더 할 게 없어서 아쉬울 정도였죠.”
공효진은 6월 말경부터 SBS-TV 새 드라마 ‘주군의 태양’ 촬영에 들어간다. 한동안 느꼈던 연기 갈증을 해소할 예정이다. ‘주군의 태양’은 ‘찬란한 유산’, ‘추적자’를 연출한 진혁 PD와 ‘최고의 사랑’, ‘빅’을 쓴 홍정은·홍미란 자매 작가의 신작이다. 귀신을 볼 줄 아는 여자와 그녀의 곁을 지키는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호러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다. 공효진은 “귀신이 나올 땐 무섭지만 남자와의 관계에선 사랑스러움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드라마로 만들겠다”라고 말했다. 사실 호러와 로맨틱 코미디의 결합은 언뜻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공효진이 귀신을 보는 여자 주인공을 맡는다는 것도 쉽게 상상은 안 된다. 하지만 그동안 공효진이 우리에게 보여준 모습을 떠올려보면 어떤 장르, 어떤 배역이든 공효진의 힘으로 사랑스럽게 표현될 거라는 사실만큼은 확실히 믿음이 간다.
■기획 / 이연우 기자 ■글 / 박은경 기자(경향신문 대중문화부)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