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스타에서 배우로, 전 쥬얼리 멤버 조하랑이 말하는 아이돌 이후의 삶

아이돌 스타에서 배우로, 전 쥬얼리 멤버 조하랑이 말하는 아이돌 이후의 삶

댓글 공유하기
수많은 별들이 뜨고 지는 연예계. 숨 막힐 듯 뜨거웠던 무대의 열기도, 온몸을 휘감던 대중의 환호도 언젠가는 끝이 나고 막을 내린다. 그리고 무대에서 내려온 ‘전직 아이돌’들에게 인기와 환호가 지나간 자리를 무엇으로 채울지는 쉽지 않은 과제가 된다. 전 쥬얼리 멤버이자 연기자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는 조하랑에게 아이돌 이후의 삶을 물었다. 정상에서 내려와 자신만의 삶을 개척해 나가고 있는 그녀는 말한다. 무대가 끝나도 인생은 계속된다고.

꿈 많은 열일곱, 아이돌이 되다
아이돌 스타에서 배우로, 전 쥬얼리 멤버 조하랑이 말하는 아이돌 이후의 삶

아이돌 스타에서 배우로, 전 쥬얼리 멤버 조하랑이 말하는 아이돌 이후의 삶

이제는 가수보다 배우라는 이름이 더 익숙하다. 2002년 그룹 쥬얼리로 가수 생활을 시작해 2006년 그룹을 탈퇴한 후 뮤지컬과 드라마를 오가며 배우의 삶을 산 지 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아이돌 그룹의 멤버로 정상의 인기를 누렸고 그 자리에서 내려온 뒤 홀로서기를 하며 방황도 겪어봤다. 어느덧 데뷔 20년 차인 그녀의 커리어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조진주라는 이름으로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연기생활을 시작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는 걸 좋아했는데, 제가 세 살 때 주현미 선배님의 ‘신사동 그 사람’을 부르는 걸 보고 엄마께서는 일찌감치 제 끼를 알아봤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렇다고 엄마 손에 이끌려 한 건 아니었어요. 신문에서 우연히 연기 학원 광고를 보고 제가 엄마 손을 끌고 찾아갔어요. 가서 오디션을 보고 학원을 다니며 연기를 시작하게 됐죠.”

어린 나이의 그녀를 매료시킨 건 TV 광고에 나오는 배우들의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당시 연기 학원 광고지에 실렸던 송혜교와 김소연의 사진 사이에 자신의 사진도 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렇게 하고 싶어 시작한 연기는 힘들지만 재밌었다. 어린 나이에 어른들의 세계를 접하며 혼란스러움도 느꼈지만, 그럼에도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이 마냥 좋았다.

“촬영하고 기다리느라 못 자고 못 노는 건 저에게 당연한 일이었어요. 힘들다가도 카메라 앞에만 서면 정말 좋은 거예요. 그 즐거움 때문에 같이 연기를 시작했던 친구들이 하나 둘씩 그만두는 걸 보면서도 멈출 수 없었죠.”

가수에 대한 꿈을 갖게 된 건 중학교 2학년 때였다. 끼만큼 하고 싶은 것도 많았던 그녀는 가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여러 기획사의 문을 두드렸고, 그중 SM엔터테인먼트 오디션에 합격해 연습생 생활을 시작했다. 보아와 H.O.T, S.E.S가 큰 인기를 얻으며 한창 아이돌이 대형 가수로 성장해가던 시절이었다. 기획사에서 연습생을 관리하는 시스템은 무척 체계적이었다. 춤과 노래는 물론 다양한 포맷으로 시뮬레이션을 하고 꼼꼼한 평가도 뒤따랐다. 연습생들 사이의 경쟁도 자극이 됐다. 거울과 좀 더 가까이에서 춤추기 위해 다른 연습생들보다 일찍 연습실에 도착하곤 했다. 하지만 오디션만 통과하면 바로 가수가 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와 달리 데뷔는 계속 미뤄졌고 결국 채 1년을 채우지 못하고 연습생을 그만두게 됐다.

“연기를 일찍 시작한 편이라 남들보다 앞서간다는 자신감이 있었어요. 일고여덟 번의 오디션을 거쳐 어렵게 연습생이 됐는데 금세 보이는 게 없으니 힘들었죠.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지?’라는 생각에 결국 힘들게 들어간 기획사를 스스로 걸어 나왔어요.”

데뷔의 기회는 다른 곳에 있었다. 고등학생으로 돌아와 학교생활에 충실하던 그녀에게 예전에 오디션을 봤던 한 기획사에서 쥬얼리 멤버로 합류해보지 않겠냐는 제의가 온 것. 그토록 기다렸던 데뷔가 이뤄졌고 2002년 쥬얼리는 ‘Again’, ‘니가 참 좋아’, ‘Tonight’ 등을 연달아 히트하며 큰 사랑을 받는다. 그녀의 나이 열일곱이었다.

아이돌을 넘어, 홀로 서다
그러고 보니 꽤 오래전의 일이다. 벌써 10년도 더 된 일이라며 쑥스러워하는 그녀이지만, 그럼에도 아직까지 당시의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 있는 건 그녀의 인생 중 가장 화려하고 뜨거웠던 시절이었기 때문일 거다. 아이돌 스타로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기도 했다.

“한창 바쁠 땐 차가 곧 집이었어요. 하루에 전국 몇 개 도시를 다니는 건 기본이었고 먹고 자고 입는 걸 거의 다 차 안에서 해결했죠. 그만큼 찾아주시는 분들이 많다는 거니까 감사하고 감내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생활이 지속되다 보니 어느 순간 내가 뭐 하고 사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되더라고요.”

여러 멤버들이 모여 생활하다 보니 부딪히는 일도 생겼다. 지금 생각해보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인데 그때는 사소한 일도 무척이나 크게 보였다.

“다들 욕심이 있는 친구들인 만큼 그룹 내에서 돋보이고 싶어 하는 건 당연한 거잖아요. 한 발짝 떨어져 보면 해결점이 보이는데 작은 울타리 안에만 있다 보니 그 안에서는 그걸 못 봐요. 자신의 목표에 집중하느라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없었던 거죠.”

그중 많은 고민은 좀 더 나이가 들고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것들이었지만 무언가에 쫓기듯 언제나 불안한 마음이었다. 한 사람의 연예인으로서 하고 싶은 것과 기획사에 속한 그룹으로서 해야 하는 것의 차이도 무시할 수 없는 갈등 요소였다.

“연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회사에서는 항상 기다리라고만 하니 답답했죠. 그룹이라는 이유로 받은 제약도 많았고요. ‘더 늦기 전에 내가 하고 싶은 걸 해보자’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계약이 끝난 후 재계약을 하지 않고 홀로 서는 길을 택하게 됐죠.”

아이돌 스타에서 배우로, 전 쥬얼리 멤버 조하랑이 말하는 아이돌 이후의 삶

아이돌 스타에서 배우로, 전 쥬얼리 멤버 조하랑이 말하는 아이돌 이후의 삶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어린 시절 연기를 해본 경험도 있었고 할 수 있다는 확신도 들었다. 그룹 시절 예명으로 사용했던 조민아라는 이름을 조하랑으로 바꾸고 아이돌 출신이라는 후광에 편승하지 않겠다는 각오도 다졌다. 하지만 아이돌 가수로서 쌓아온 인기와 인지도를 버리고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이돌 시절에는 매니저와 스타일리스트를 비롯해 저를 돌봐주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잖아요. 혼자가 되고 보니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얼굴이 알려진 연예인이니 힘든 걸 내색도 못하고, 정말 힘든 시간이었죠. 당시에 제가 제일 많이 했던 말이 ‘어떡하지?’였어요.”

대부분의 아이돌 스타들이 어린 나이에 데뷔해 자신을 관리해주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성장한다. 타인에게 의존도가 높은 생활일 수밖에 없다. 또래들보다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해 성숙하기도 하지만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 주관과 인생관이 형성될 청소년기를 바쁜 스케줄에 쫓기며 지내다 보니 혼자가 됐을 때 맞닥뜨리는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다. 많은 아이돌 스타들이 그룹 해체나 탈퇴 후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는 이유일 것이다. 지금에야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그녀 역시 당시를 “숨 쉬는 것 빼고 다 힘들었다”라고 회상한다.

“그룹에서 탈퇴하고 홀로 서기를 할 무렵 뒤늦게 사춘기가 찾아왔어요. 학창 시절에도 반항 한 번 해본 적이 없었는데 여러 가지 힘든 상황이 겹치며 우울증도 겪었고요. 쥬얼리의 조민아가 아닌 조하랑으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인생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강해서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것이 강한 것
순진하다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택한 방법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었다. ‘인기 걸그룹 출신’이라는 수식어는 매력적인 타이틀이었고 탈퇴 직후 여기저기서 드라마 출연 제의도 많았지만 선뜻 내키지 않았다. 대학로 연극 무대에서 배우로서의 인생을 새로 시작했다. 2005년 연극 ‘병사와 수녀’의 수녀 역으로 처음 연극 무대에 오른 뒤 뮤지컬 ‘달고나’, ‘김종욱 찾기’, ‘사랑은 비를 타고’, ‘렌트’ 등 뮤지컬 배우로 활발한 활동을 했으며 드라마로도 활동 영역을 넓혔다. JTBC 드라마 ‘친애하는 당신에게’에서는 패션잡지 막내 기자 문제니로 출연했고, 올 초 막을 내린 KBS 드라마 ‘전우치’에서는 기방 명월관의 수장 감내 역으로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을 보여줬다. 물론 쉽지 않은 길이었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랐던 아이돌 시절과는 반대로 기다리고 애타는 시간도 많았다.

“아이돌 가수와 배우의 삶은 천지차이예요. 아이돌 시절에는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시간이 빨리 지나갔지만 배우의 시계는 매우 느려요. 가수 생활이 굉장히 스피디하고 스펙터클했다면 배우 생활은 기다림의 미학이죠. 색깔로 치자면 예전에는 빨강, 지금은 은은한 파스텔톤이라고나 할까요? 환경이 변하니 성격도 달라지더라고요. 쥬얼리 시절에는 주로 밖으로 에너지를 분출했다면 지금은 수렴하고 기다리면서 갈고닦아요. 둘 다 제가 선택한 길이었고 후회는 없어요. 다른 사람의 시선이 아닌 스스로 원하는 걸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요.”

성격뿐 아니라 일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다. 아이돌 시절, 매니저와 스태프들의 몫이라고 생각했던 자잘한 일들도 이제 본인의 일이 됐다. 작품 관계자들을 만나는 일부터 미팅과 캐릭터 분석, 의상 피팅까지 직접 한다. 프로 의식을 가진 배우로서 기꺼이 해야 하는 일들이다.

“그때는 어린 나이에 무척이나 많은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당위성을 찾을 겨를이 없었어요. 스케줄을 소화하기에도 바빴죠. 지금은 내가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더 잘할 수 있을지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해요. 저를 좋아해주시는 한 분 한 분이 무척 소중하고 감사하죠.”

아이돌 시절을 거쳐온 선배로서 그녀는 아이돌 스타가 갖춰야 할 자질로 배려와 이해심을 꼽았다. 타고난 가창력이나 춤 실력, 주위를 매료시키는 ‘끼’와 같은 것일 줄 알았는데, 의외의 대답이었다.

“인기와 사람에 둘러싸여 있을 때는 나를 빛나게 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몰라요. 그저 나를 꾸며주는 사람, 운전을 해주는 사람 정도로만 생각하죠. 그 인기가 온전히 나만의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자만하게 되면 언젠가 현실과 부딪혔을 때 뿌리째 흔들릴 수밖에 없어요. 기본기도 중요하지만 함께하는 멤버들은 물론 주위 사람들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기본적인 소양을 가지는 것이 오래가는 방법이에요. 아이돌을 꿈꾸는 지망생들 그리고 후배 가수들에게 꼭 해주고픈 말이에요.”

너무 어린 나이에 아이돌로 활동하는 것도 반대하는 입장이다. 실제로 겪어보니 단순히 잘 못 먹고 못 자고 못 노는 것을 떠나 그 나이에 할 수 있는 고민과 생활, 생각을 하지 못한 채 성인이 된다는 것이 생각보다 큰 상실이더라는 것이다.

“어린 나이에 연예계라는 곳에서 어른들의 세계를 살면 그 또래에 누려야 할 것들을 잃어버려요. 열다섯 살에 스물다섯의 고민을 당겨서 하는 거예요. 정작 스물다섯 살이 돼서는 열다섯 살에 채우지 못한 공허함을 느끼게 될 확률이 커요.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고요. 할까 말까 고민하는 친구가 있다면 한 번 더 생각해보라고 충고해주고 싶고, 본인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라면 한 명의 아티스트로서 나이가 많든 적든 책임감을 갖고 프로페셔널한 마인드를 가지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생각보다 삶은 굉장히 길거든요. 저는 10년 전에도 활동을 했고 지금도 하고 있고 앞으로도 연예인의 삶을 살 거예요. 어떻게 해야 지치지 않고 오래 할 수 있을지 전략이 필요해요. 자신만의 주관을 가지고 인생 지도를 그리세요. 본인의 색깔을 지키면서 발전하고 나아갈 수 있도록 말이에요. 그것이 이 변화무쌍한 연예계에서 살아남는 방법이 아닐까 싶어요. 강해서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것이 강한 거예요.”

무대에서 내려와도 인생은 계속된다는 그 녀. 그녀의 환한 미소 뒤에는 대중은 알지 못했던 고민과 불면의 밤이 있었다. 아역 배우 조진주에서 아이돌 스타 조민아로 그리고 이제 평생 배우 조하랑으로. 쉬지 않고 달려온 그녀의 지난 20년에, 그리고 앞으로 이어질 인생에 격려와 박수를 보낸다.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원상희 ■장소 협찬 / 빠 드 두(02-545-3931)

화제의 추천 정보

    Ladies' Exclusive

    Ladies' Exclusive
    TOP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