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지섭, ‘소간지’ 대신 ‘로코킹’으로

지난겨울, 영화 ‘회사원’ 개봉 직후 만났던 소지섭은 “더 이상 내 안에서 끄집어낼 게 없다는 생각이 들 때면 도망가고 싶고, 숨고만 싶다”라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어서 카메라 앞에 서고 싶다”라고도 했다. 배우로서 겪는 어려움은 연기를 통해 풀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다시 마주한 그의 표정은 한결 편안해 보였다. 아마도 자신의 바람대로 새로운 모습을 발견해낼 좋은 작품을 찾은 모양이었다.

묵직한 카리스마의 배우 소지섭(36)이 까칠하고 오만방자한 남자로 돌아왔다. SBS-TV 수목드라마 ‘주군의 태양’에서 인색하고 계산적인 성격의 쇼핑몰 사장 주중원 역할을 맡은 소지섭은 멋진 외모와는 상반되는 자기중심적인 모습을 선보이며 안하무인의 ‘끝’을 제대로 표현해내고 있다. 주중원은 부족할 것 하나 없는 재력가이면서도 모든 인간관계를 돈으로 매길 정도로 심각한 물질 만능주의에 빠져 있는 남자다. 훤칠한 키와 잘생긴 얼굴, 세련된 스타일을 갖췄지만 냉정하고 차가운데다 삐딱하기까지 한 새로운 ‘재벌남’의 유형이다. 그동안 주로 진지하면서도 강직한 역할을 맡았던 소지섭으로서는 획기적인 변신인 셈이다.

“오랜만에 묵직하지 않은, 가벼운 역할을 하니 솔직히 아직까지 조금 어색해요. 해보니 정말 편하고 재미있네요. 늘 제가 뛰고 몸을 움직여야 했는데, 이제는 손가락만 까딱하면 착착 다 되더라고요. 이렇게 좋은 걸 왜 진작 안 했나 싶어요. 이젠 사람들에게 지시하는 역을 찾아서 많이 하려고요(웃음). 누군가를 아껴주고 헌신하는 역도 좋지만 이렇게 돈이면 다 되는 역할을 연기하는 것도 새롭고 좋네요.”

‘주군의 태양’은 자신이 보고자 하는 것, 듣고자 하는 것만 취하면서 살아온 남자가 어릴 적 사고로 인해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봐야 하고, 듣고 싶지 않은 것을 들어야 하는 여자를 만나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다. 야박하기만 하던 남자는 귀신을 보는 능력을 가진 눈물 많은 여자 태공실(공효진 분)을 통해 그동안 무시해오던 세상의 이면을 이해하게 되고, 자신을 알게 된 이후로 점차 현실에 적응해나가는 여자와 함께 성장해나간다.

“저는 원래 마음속에 있는 말을 밖으로 잘 꺼내놓지 못하는 성격이거든요. 직접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뭔가를 표현하는 편이 아니에요. 그런데 주중원은 돈이 된다면 마음조차도 다 드러내는 사람이더라고요. 극중 대사들이 참 어색할 때가 많아요. 앞으로 이 친구가 어떻게 변해갈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국내 최초로 로맨스, 코믹, 호러가 결합된 일명 ‘로코믹호러’ 장르를 표방하는 ‘주군의 태양’은 독특한 설정과 판타지적 요소로 시청자들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드라마 ‘찬란한 유산’, ‘추적자’ 등을 연출한 진혁 PD와 드라마 ‘환상의 커플’, ‘최고의 사랑’ 등을 집필한 홍정은·홍미란 작가의 만남이라는 막강한 동력도 함께한다. 여기에 명실상부한 ‘로코퀸’ 공효진이 특유의 사랑스러움과 톡톡 튀는 매력으로 더욱 큰 공감을 이끌어낸다.

“효진씨와 연기를 같이하는 건 처음인데, 아마도 우리나라 여배우 중에서 로맨틱 코미디만큼은 최고가 아닌가 싶어요. 상대방이 가장 잘할 수 있게끔, 편안하게 잘 받아줘요. 배우가 작품 안에서 좋은 동료들, 스태프들과 함께 일하는 것도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번 작품은 온 국민이 다 아실 정도로 좋은 밥상이 잘 차려져 있더라고요. 저는 숟가락만 잘 올려서 먹으면 될 것 같아요(웃음). 저 또한 무척 기대가 되네요!”

■글 / 이연우 기자 ■사진 / 원상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