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애 “이젠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수애 “이젠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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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함, 고전미, 여성스러움, 단아함…. 수애를 설명하는 단어들은 언제나 비슷했다. 그래서일까, 기회가 있을 때마다 늘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실제 성격은 보이는 모습과 다르다”라고 말해왔지만, 그녀는 언제나 안정적인 연기력만큼 고유의 이미지를 지켜온 믿음직한 연기자였다. 하지만 그녀는 지치지 않고 꾸준히 그리고 차분하게 자신의 변화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이제는 어느새 성큼, 이토록 다채로운 색깔을 가진 여인으로 다가와 있다.

수애 “이젠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수애 “이젠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언제나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는 배우
지난 4월 배우 수애(33)는 프랑스 파리로 여행을 떠났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삶을 산 SBS-TV 드라마 ‘야왕’의 ‘주다해’를 떠나보내고 난 뒤의 여행이다. 화보 촬영을 겸한 여행이었지만 촬영이 끝난 후 스태프들은 먼저 귀국했고, 수애는 파리에서 혼자 오롯이 나흘을 보냈다. 그녀는 그 여행에 대해 “뼛속까지 외롭다는 말의 뜻을 절감할 정도로 외로웠다”라고 표현했다. 기자 입장에서는 “재충전할 좋은 기회였다”라거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짐으로써 더 단단해졌다”라는 대답을 기대했는데, 뜻밖이었다.

가끔 한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주다해다”라고 수군거리기도 했다지만, 그렇게 끝날 뿐 여행의 동반자는 되지 못했다. 이국의 남성이 다가와 말을 거는 로맨스는 그저 드라마 속의 일일 뿐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는 것이었다. 수애는 그 시간들이 즐기는 여행인지 고독의 고행인지 알 수 없는 일정이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의외로 그녀의 다음 목표는 바로 여행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현실에 안주하게 됐을 때 떠나는 여행은 스스로에게 경각심을 일으키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여행에 대한 생각만 봐도 알 수 있듯 수애는 천성적으로 스스로를 편하게 두지 못하는 배우인 듯하다. 최근 2, 3년간 참여한 작품만 봐도 그렇다. 2010년 출연한 영화 ‘심야의 FM’에서는 정체불명 청취자의 협박으로부터 가족을 구해내고 방송도 무사히 마쳐야 하는 라디오 DJ 고선영으로 스크린을 내달렸다. KBS-2TV 드라마 ‘아테나: 전쟁의 여신’에서는 특수요원 윤혜인으로 분했다. 몸만 혹사시킨 건 아니었다. 2011년 큰 인기를 모았던 SBS-TV 드라마 ‘천일의 약속’에서는 치매 때문에 기억을 잃어가는 이서연 역으로, 올해 초 출연한 SBS-TV 드라마 ‘야왕’에서는 권력에 대한 욕망으로 스스로 파멸해가는 주다해역으로 감정을 혹사했다.

다시 만난 모녀, 고민 많았던 모성애 연기
최근작인 영화 ‘감기’에서는 아이를 안고 달리고 또 달린다. 그녀가 맡은 인해는 로맨틱 코미디 여주인공처럼 발랄하게 등장하지만, 변종 감기가 퍼지기 시작한 후에는 감염내과 전문의로서 환자들을 돌본다. 그리고 중후반으로 갈수록 바이러스에 감염된 딸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뜨거운 모성애를 발휘하며 스크린을 채운다.

“제가 그동안 강한 역할을 주로 해와서 그런지 차갑고 딱딱한 성격으로 보시는 분들이 많아요. 평상시 목소리는 연기할 때보다 두 옥타브 정도 높고 쾌활한데도 진지하다는 평을 자주 듣죠. 드레스처럼 갖춰 입은 모습이 많이 노출되니 더 그런 느낌을 주나 봐요. 평소엔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이고, 화장도 전혀 안 한 채 모자를 쓰고 다니는데 말이죠(웃음). 진지하고 딱딱한 이미지로 고착되는 게 아닌가 싶어서 더 다양한 욕심을 부리게 되는 편이에요.”

그녀가 영화 ‘감기’에서 시도한 가장 큰 변화는 모성애다. 출산과 육아 경험이 없기 때문에 엄마 역할을 연기하는 데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한다. 실제로 비슷한 상황에 있는 의사를 만나보면서 현실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감염내과 전문의이면서 아이를 키우는 분을 찾아서 대화를 나눠보고 또 집에서의 활동 반경도 유심히 관찰했어요. 귀가하면 무엇을 먼저 하고, 아이를 어떻게 대하는지 등에 대해서요. 전체적으로는 친구 같은 모성애를 그리고 싶었어요. 엄마니까 무조건 다 해주고 희생하는 게 아니라 때로는 아이에게 의지도 하고 오히려 아이가 엄마의 일을 이해해주기도 하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죠.”

수애 “이젠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수애 “이젠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수애는 ‘여성은 태어날 때부터 모성애를 가지고 있다’라는 말에 의지를 많이 했다고 한다. 그녀는 “누나들이 항상 하는 말이지만, 저도 제 동생을 업어 키웠거든요”라며 소리 내어 웃었다. “동생과 몇 살 터울이냐”라고 물었더니 쑥스러운 듯 “두 살 차이예요”라며 더 크게 웃어 보였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이번 영화 ‘감기’에서 딸로 나오는 박민하양(6)이 드라마 ‘야왕’에서도 수애의 딸로 등장했었다는 것이다. ‘야왕’에서 수애가 연기한 주다해는 딸을 매몰차게 버리면서까지 출세하려고 했지만 영화에서는 정반대로 딸을 살리기 위해 무엇이든 해내는 엄마를 보여준다. 드라마가 먼저 방송됐지만 촬영은 영화가 먼저였다.

수애는 영화 제작보고회에서 “드라마에서는 민하에게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했는데, 영화에서는 무한한 사랑을 주기 때문에 만회가 될 것이다”라고 마음을 표현했다. 박민하양도 “영화에서는 ‘미르(극중 역할)’를 걱정하고 사랑하는 역할이라 ‘감기’의 수애 이모가 더 좋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결혼을 하지 않은 여배우에게 엄마 역할은 다소 부담스러울 법도 하지만 수애는 되레 현장에서의 경험이 훗날 엄마가 됐을 때 도움이 될 거라고 이야기했다.

“(박)민하는 아직 한글을 잘 몰라서 대사를 읽어주는 대로 외우고 연습해요. (김성수) 감독님이 현장에서 대사를 많이 바꾸는데도 그걸 바로 다시 외워서 연기를 하는 게 정말 신기했어요. 게다가 민하는 요즘 한창 성장통을 겪고 있어서 오래 서 있지를 못했어요. 그래서 ‘안아달라’며 다가오곤 했는데, 그때마다 무릎에 앉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곤 했죠. 그 나이대 아이의 변화를 관찰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어요. 이런 경험을 쌓았으니까 나중에 엄마가 되면 더 잘 돌볼 수 있지 않을까요?(웃음)”

‘반전 매력’ 알아봐주신 ‘반전 이미지’ 감독님
수애는 수식어가 다양한 배우다. 레드카펫 위에서는 언제나 단아한 드레스 자태를 뽐내며 ‘드레수애’라는, 드라마에서는 무릎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액션을 대역 없이 소화해서 ‘니킥수애’라는 별명이 생겼다. 최근에는 KBS-2TV ‘해피선데이-1박 2일’에 출연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여줘 ‘먹방(먹는 방송)수애’가 됐는데, 워낙 화제가 되다 보니 10년 전 드라마 ‘회전목마’에서 치킨을 맛있게 먹었던 장면까지 다시 회자되고 있을 정도다. 평소엔 쾌활하고 털털하다는 수애의 항변처럼 화면이나 스크린으로 전해지는 이미지와 실제 모습은 다른 듯싶다. 그런 그녀의 반전 매력을 영화 ‘감기’의 김성수 감독도 눈여겨봤다.

“영화 촬영 전 김 감독님과 여러 차례 만났는데, 감독님이 ‘수애씨, 이런 사람이었어? 왜 그동안 이런 걸 보여주지 않았느냐’라고 되물으시더라고요. 감독님께서 눈여겨본 저의 발랄한 면은 영화 초반에 잘 드러나죠. ‘허당’처럼 넘어지기도 하고, 구조대원(장혁 분)에게 생떼를 쓰기도 하고요. 재난 영화인데도 앞부분이 경쾌하게 그려진 건 전체적인 균형을 맞추려는 연출 의도도 있었겠지만 제 모습과도 잘 맞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또래들이 그렇듯 수애도 김성수 감독의 영화 ‘비트(1997)’, ‘태양은 없다(1998)’를 보면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이번 작품을 하기 전까지 수애에게 김 감독은 그저 ‘무서운 감독의 무서운 스승’이었다고 한다.

사연은 2005년 개봉된 영화 ‘나의 결혼 원정기’ 촬영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신인이었던 수애는 모든 것이 어려웠다. ‘나의 결혼 원정기’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촬영했기 때문에 힘든 상황은 더 많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고 가뜩이나 위축된 신인배우는 연출을 맡았던 황병국 감독이 큰소리라도 내면, 잔뜩 움츠러들었다.

“주변 사람들 이야기로는 황 감독님이 김성수 감독님 조연출이었기 때문에 무섭다는 거예요. 그런 말을 자꾸 듣다 보니 도대체 김 감독님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일까, 상상만 했었어요.”

그렇게 생각만 하던 김 감독을 직접 만난 건, 2011년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였다. 수애를 먼저 알아본 김 감독이 반갑게 인사를 했다. 수애는 “위풍당당하게 걸어오더니 인자한 미소로 ‘안녕하세요, 김성수입니다’라고 말했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무척 인자한 미소 때문에 ‘설마, 그 (무서운) 김성수 감독님은 아니겠지’ 했는데, 예상은 빗나갔다. 바로 그 김성수 감독이었던 것.
“그날 저녁에 다른 행사에서 다시 감독님을 만났는데, ‘아까 인사했던 김성수입니다’라며 또 인사하시는 거예요. 그 인자한 미소를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요.”

인자한 미소에 끌렸기 때문일까. 1년 후인 2012년 5월부터 10월까지 수애는 김 감독과 ‘감기’를 찍었다. 김 감독은 “현장에서 큰소리를 내지 않겠다”라고 약속했고, 예상과는 다른 현장 상황, 예를 들어 어마어마한 무더위와 3백여 명의 보조 출연자들을 통제해야 하는 무시무시한 상황에서도 김 감독은 그 약속을 지켜냈다. 수애가 김 감독에게 감동받은 건 이뿐만이 아니었다고.

“제가 딸을 찾아서 분당으로 달려가는 장면은 성남의 한 도로에서 찍었는데, 홀로 달리는 연기가 무척 외롭고 힘들었어요. 그런데 감독님이 카메라에 잡히지 않는 곳에서 보이지 않게 달리기 시작했고, 그러니까 다른 스태프들도 같이 뛰어주었어요. 얼마나 힘이 되던지…. 무더위를 동료들의 힘으로 이길 수 있다는 걸 그때 알았죠.”

하나의 모습으로 규정지을 수 없는 좋은 연기자
지금까지 수애를 정의하던 수많은 수식어를 이번 영화 ‘감기’에서 찾기는 힘들다. 영화 내내 그녀는 방역복에 마스크를 쓰고 등장하기 때문이다. 한때는 무릎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액션을 보였던 ‘니킥수애’지만 치명적인 감기 바이러스 앞에서는 그저 딸을 안아주는 것만으로 그칠 뿐이다. 또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여주었던 ‘먹방수애’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영화에서는 딸에 대한 걱정 때문에 구조대원인 장혁이 내미는 컵라면조차 제대로 먹지 못한다. 수애는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모든 이미지를 파괴하면서 다시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해낸다.

수애는 이번 작품에서 재앙이 심각해질수록 딸에 대한 깊은 모정을, 또 구조대원인 장혁과 깊어가는 애정을 다양한 각도에서 보여준다. 여러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고자 하는 수애의 노력은 그녀의 평소 연기관과 무관하지 않다. “어떤 연기가 좋은 연기라고 생각하느냐”라고 묻자, 그녀는 쉽게 대답을 내놓지 못하고 한참 고민했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좋은 연기는 정의 내릴 수 없는 연기다”라고 답했다.

“한 문장으로 표현할 수 없는 연기가 훌륭한 연기라고 생각해요. 신인 시절부터 장만옥의 연기를 동경해왔어요. 뭐랄까, 그분이 연기할 때 눈빛은 아주 깊은데, 동선은 무척 발랄해요. 저도 이렇게 많은 것을 동시에 보여줄 수 있는 연기자이고 싶어요.”

1999년 KBS-2TV 드라마 ‘학교2’로 데뷔한 수애는 14년간 다양한 드라마와 영화에서 각각 다른 연기로 시청자와 관객들을 울리고 웃겼다. 결코 한 사람이 가질 수 없을 것 같아 보이는 수많은 수식어도 얻었다. 수애는 앞으로도 고행의 여행을 계속하면서 많은 작품에서 또 다른 변화를 이끌어낼 것이다. 14년간 그토록 많은 변신을 해냈는데, 앞으로 보여줄 모습 또한 훨씬 더 많지 않겠는가.

■기획 / 이연우 기자 ■글 / 박은경 기자(경향신문 대중문화부)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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