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미화의 농촌찬가 “심어보니 알겠네. 농부의 마음을…”
서울에서 차로 1시간 20분, 경기도 용인시에 들어서 시원한 가로수들을 헤치며 달리다 보니 시골길 한편에 파란색 컨테이너 박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카페 호미’라 이름 붙은 이곳은 김미화(49)가 남편 윤승호 교수와 함께 만든 쉼터다. 사실 그녀가 집 근처 농사짓는 터에 특별한 공간을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지는 꽤 됐다. 언제쯤 소식이 전해지려나 했는데 8월 초 드디어 문을 열었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지난 3월 CBS 라디오 ‘여러분’에서 하차한 그녀는 이곳에서 그 어느 때보다 분주한 여름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용인에 내려와 산 지 벌써 9년이에요. 시골생활을 하며 농사와 관련된 다양한 활동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남편과 함께 일을 벌였죠. 동네 사람들은 물론이고 이곳에 놀러 오시는 도시 분들이 차 한 잔 하며 쉬어 갈 수 있는 사랑방 같은 곳이에요.”
이름 하여 ‘순악질 프로젝트’. 카페 이름은 남편과 자신의 이름 중 한 글자씩을 땄다. 이곳을 중심으로 마을 사람들이 경작한 농산물 직거래를 하고 음악회와 토크 콘서트 등 다채로운 문화 활동도 이어나갈 생각이다.
“농사짓는 분들과 함께 부대끼며 살다 보니, 이분들이 참 욕심 없어요. 방송하는 사람으로서 마을 알리기 운동을 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겠다 싶더라고요. 농부들이 정직하게 수확한 건강한 먹을거리를 나눌 수 있는 공간, 거기에 남편은 예술 하는 사람이고(성균관대 스포츠과학부에 재직 중인 윤승호 교수는 재즈 뮤지션이기도 하다), 나는 또 사람을 좋아하니 이걸 한데 모아보자 한 거예요. 컨테이너 하나 두고 하면 돈이 좀 덜 들지 않을까 했는데 결국 더 많이 들었어요(웃음). 어찌 됐건 좋은 공간이 생겨서 농부님들도 좋아하시고, 오시는 분들도 행복해하시는 걸 보니 저도 참 좋네요.”
사실 프로젝트를 구상한 지는 꽤 오래됐다. 헌데 두 사람 모두 본업에 바쁘다 보니 그게 또 쉬운 일이 아니더란다. 일찌감치 1월에 컨테이너를 들여놓고는 그녀는 방송 일로 남편은 학교 일로 바빠 문 여는 날짜가 차일피일 미뤄졌다. 그러던 중 그녀가 라디오를 그만두며 오랜만에 시간이 났고 남편은 마침 올해 안식년을 맞았다. ‘자유의 몸’이 된 부부에게는 절호의 타이밍이었다.
“봄부터 주로 이곳에서 일을 하며 지냈어요. 칠도 직접 하고 못질도 하고, 갈고 닦고 하다 보면 시간이 참 빨리 흘러 하루가 후딱 가더라고요. 남편은 주방 일 하려고 요리까지 배웠어요. 이곳에서 파는 음식은 모두 직접 만드는 거예요. 쉬라고 있는 안식년인데 고생을 제대로 하고 있죠(웃음). 남편은 주방 담당, 저는 홀 담당이에요.”

김미화의 농촌찬가 “심어보니 알겠네. 농부의 마음을…”
“저도 참 놀라운 게 전국 각지에서 찾아오세요. 좋은 취지에 동참하려는 분들도 많고, 또 제가 방송을 안 하다 보니 보고 싶다고 찾아오시는 분들도 계시고요. 내가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고 살았구나, 앞으로 더 좋은 일을 하고 살아야겠다 싶어요.”
흙 만지고 씨 뿌리며 행복한 농사꾼 마음
그녀는 얼마 전 대대적인 감자 수확을 했다. 봄에 뿌렸던 씨앗이 금세 자라 90여 개 상자에 가득 담겼다. 트위터를 통해 모인 1백여 명의 신청자들이 그녀와 첫 수확을 함께했다.
“‘감자 캐실 분~’ 해서 50명 신청을 받았는데 동행인들까지 합쳐서 1백 명이 왔어요. 수확한 감자는 오신 분들에게 다 나눠드렸어요. ‘몸뚱아리’라고 자원 봉사하는 친구들 몫으로도 몇 상자 빼놓고, 그렇게 다 주고 나니 남는 게 없더라고요(웃음).”
나 먹을 것도 안 남았다며 볼멘소리를 하는가 싶었더니 얼굴에는 뿌듯함이 가득하다. 몇 개월간 정성을 들여 키운 농작물이 부지런한 호미질에 보물이 되어 나오는 것을 보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단다. 가진 것 없이도 부자가 된 기분이라니, 이런 것이 농부의 마음일까?
올 3월 본격적으로 농사를 시작한 그녀는 요즘 농사짓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워낙 흙 만지는 걸 좋아해요. 원래도 조금씩 텃밭을 일구다가 올봄 동네 어르신께 땅을 빌려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어요. 6백 평 정도 되는 밭에 감자, 고구마, 토마토, 옥수수, 땅콩, 각종 쌈 채소까지 이것저것 많이 심어요. 농사짓는 게 보통 일이 아니더라고요. 주변에 농사지으시는 분들 쫓아다니면서 하나하나 배워가는 중이에요.”
농사를 지어보니 집 밖으로 나가면 사방 천지가 다 일이다. 게다가 농약 없이 농사를 지으려니 그야말로 풀과의 전쟁이란다. 그래서 그녀가 찾아낸 방법이 있다.
“‘태평농법’이라고 풀을 안 뽑는 거예요. 제초제를 쓰지 않고 풀뿌리끼리 경쟁하며 자라는데, 그러면 농작물이 더 건강하고 단단해진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같이 게으른 농사꾼들에게는 참 좋은 농사법이죠(웃음).”
한 차례 감자 수확을 마쳤고 지금 밭에는 고구마가 자라고 있는 중이다. 가을에 김장할 배추도 1천 포기 정도 모종을 기르고 있다. 싹이 올라오면 또 다 함께 모여 배추를 심을 계획이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함께하면 쉬워요. 어떻게 심고 벌레 잡고 풀을 뽑는지 다 같이 농부님께 강의도 듣고, 수확하면 카페 앞에서 판 벌려 김장도 하려고요. 자기가 담근 김치는 자기가 가져가는 거예요. 직접 수확한 배추로 담근 김치 맛은 또 어떻겠어요. 해보니 제가 정말 좋더라고요. 도시에 사시는 분들도 그렇게 농사의 기쁨을 맛보셨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무대 위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코미디를 한 자기만 예술을 한 게 아니라 흙에서도 예술이 나오더란다. 한 알의 씨앗에서 싹이 나고 잎이 커지고 열매가 맺히는 과정을 지켜보며 그녀는 매일매일 놀라운 경험을 하고 있다.

김미화의 농촌찬가 “심어보니 알겠네. 농부의 마음을…”
농부들이 어떻게 씨를 심고 정성을 들여 농작물을 키워내는지 알기에 생명의 귀함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종종 주민들이 카페에 두고 가는 풀 한 포기, 꽃 한 뿌리도 버리는 일 없이 모두 심고 돌본다.
“도시와는 다르게 시골집 주변에는 꽃들이 들쭉날쭉하잖아요. 채송화 조금, 백일홍 조금, 코스모스 조금, 왜 그렇게 들쭉날쭉 자랄까 했는데 농사지으시는 분들이 꽃 한 송이도 함부로 하지 않기 때문이더라고요. 농사를 지어보니 그 마음을 알겠어요.”
내게 가장 잘 맞는 ‘헌 운동화’, 남편
그녀가 ‘농부 김미화’가 된 것은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다. 용인 시내에서도 한참 떨어진 조용한 산자락에 터를 잡은 지 어느덧 9년, 수도도 없는 외진 곳에서 우물을 파 물을 마시며 살아가다 보니, 이제 자연 속에서의 삶에 익숙함을 넘어 편안함을 느낀다. 이곳에서 여의도 방송국까지 8년 넘게 출퇴근을 했다.
“매일 왕복 158km를 운전했어요. 출근 시간이 1시간 조금 넘게 걸리는데, 꽉 막힌 도로에서 1시간을 보내는 것과 신나게 1시간을 달리는 건 천지 차이예요. 매일 꽃길, 가로수길을 달리다 보면 스트레스도 풀리고 정말 행복하죠.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일단 공기부터 달라요.”
집에 있을 땐 세상이 그렇게 조용할 수가 없단다. 차 소리 대신 새 소리, 풀벌레 소리가 들리고 다람쥐, 고라니, 두더지와 같은 야생동물들과도 친구 하는 곳이다. 반짝반짝 엉덩이에 불을 켜고 마당을 밝히는 반딧불이에게 반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그녀의 시골 예찬론이 이어진다.
“도심에서는 느껴볼 수 없는 동네분들 정도 있고, 내려와 살기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원래 조용하던 집이 아이들이 모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후 더욱 조용해졌다. 요즘에는 안식년을 맞은 남편과 집에서 단둘이 지낸다. 그녀의 집 대문에는 이름 대신 ‘후조당(後凋堂)’이라는 문패가 걸려 있는데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눈보라 속 푸른 소나무처럼 변함없는 모습으로 곁에 있겠다’라는 뜻이다. 함께한 8년 동안 두 사람은 대문에 쓰인 이름처럼 언제나 서로의 곁에 있었다. 윤승호 교수는 그녀가 힘든 일을 겪을 때마다 그 누구보다 큰 힘이 되어준 사람이다.
“‘헌 운동화’ 같은 사람이라고 말해요. 저에게 가장 잘 맞고 편안한 사람이에요. 사실 남편을 만나기 전에는 또다시 누군가를 만나는 게 두려웠어요. 두 사람 다 재혼이기도 했고, 각자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에 많이 조심스러웠는데 지날수록 더 좋은 사람이어서 참 감사해요. 그래도 제가 복이 있나 봐요. 이렇게 좋은 사람을 만났고 아이들도 행복해하니 말이에요.”
포기는 배추 셀 때나 쓰는 말
올해는 김미화가 코미디언으로 데뷔한 지 30주년이 되는 해이다. 1983년 KBS 개그콘테스트에 입상해 대중 앞에 서기 시작한 그녀는 다양한 분야와 여러 사회활동에 참여해온 소셜테이너의 원조이자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로 10년을 살았다.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로 활약하는 동안에는 KBS 블랙리스트 파문이나 민간인 사찰 등 생각지도 못한 힘든 일을 겪기도 했다.

김미화의 농촌찬가 “심어보니 알겠네. 농부의 마음을…”
순탄치만은 않았던 인생이었지만 되돌아보면 감사한 마음이다. 3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잊히지 않고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으니 대중 연예인으로서 이보다 더 행복한 일이 어디 있을까 싶다. 방송을 떠난 지 어느덧 6개월, 조만간 TV에서 그녀를 만날 수 있을 듯하다. 9월 초부터 MBN 매일방송의 시사 프로그램을 통해 시청자들 앞에 돌아올 예정이다. 조만간 예능 프로그램도 계획하고 있다니 참 반가운 소식이다.
“코미디는 코미디대로, 시사 프로는 시사 프로대로 다 성취감이 있어요. 앞으로 방송도 그렇고 농사도 그렇고 해야 할 일이 무궁무진해요. 당장 8월 말에 배추를 심어야 하고 9월이 되면 다 함께 모여 고구마도 수확해야 하고요. 얼마나 잘 자랐을지는 모르겠지만 캐보기 전까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려야죠.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는 아무도 몰라요. 피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뿐이에요. 앞으로도 무슨 일을 하든지 제 앞에 닥쳐올 일들을 피하지 않고 계속 해나갈 거예요. 제가 농사지으며 가슴에 깊이 새긴 말이 있거든요. 포기는 배추 셀 때나 쓰는 말이라는 걸요.”

김미화의 농촌찬가 “심어보니 알겠네. 농부의 마음을…”
1 좋은 날입니다. 누나는 오늘 본격적으로 농사 시작합니다. 씨감자 사러 장날 장터로 향합니다.
(3월 25일)
2 밭에 똥 뿌리는 날입니다. 똥차 앞에서 똥폼ㅋㅋ(세상엔 도움 되는 똥도 있습니다).
(3월 28일)
3 나뭇가지 치는 날(불필요한 가지는 가차 없이 잘라내야 나무가 튼실해집니다). 내 다리도 튼실. ㅎㅎ
(3월 30일)
4 작년부터 시름시름하던 대나무 뽑아내는 날. 지난 8년간 푸른 겨울을 지켜준 대나무. 푸르름은 잃었지만 다른 모습으로 새로운 생명을 되찾아줄 방법을 고민 중.
(4월 3일)
5 일하다 잠시 휴식 중. 마당 일에 지친 몸 포클레인 왕발에 걸터앉으니 쇳덩이도 쿠션 같네요. 기사님도 잘생겼고. ㅋㅋ
(4월 4일)
6 비 오면 비 오는 대로…. (4월 6일)
7 올여름부터는 내가 재배한 완두콩밥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ㅎㅎ 근데..완두? 완두콩?역전? 역전 앞?
(4월 11일)
8 3월에 심은 감자가 현재 싹이 나서 잎이 나서 묵. 찌. 빠. ㅎㅎ. 싹만 봐도 행복합니다.
(5월 10일)
9 심어보니 알겄네. 농부의 마음을…, 휴. (5월 22일)
10 비바람에 지친 토마토 줄기를 일으켜 세웁니다(도움이 필요한 곳에 손을 내밀 수 있는 것은 기쁨입니다). (5월 28일)
11 농사는 뽑아도 뽑아도 끝이 없는 풀과의 전쟁입니다. 이것이 대파여 풀이여. 무농약 농사가 이다지 힘들 줄이야. ㅠ.ㅠ
(6월 16일)
12·13 감자 캐기. 와우. 이렇게나 많이 캤습니다!!
(6월 28일)
14 수확의 기쁨. 노란 토마토가 황금 알 같네요.(7월 6일)
15 오늘 배추씨 1천 개를 심었습니다. 이제 싹이 올라오고 밭에 옮겨 심으면 1천 포기의 배추가 되겠지요. 바라만 봐도 절로 흐뭇해집니다 ㅎㅎ(포기는 배추 셀 때나 쓰는 말. 아자!!).(8월 7일)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김영길 ■사진 제공 / 김미화 트위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