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원의 이름으로 진심이 통할 때까지

장성원의 이름으로 진심이 통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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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는 필연적으로 약간의 오해를 동반한 채 시작된다. 상대방에 대한 호감 혹은 낯섦에서 비롯된 이미지와 특정한 조건들로 점철된 선입견을 바탕으로 건네진 말은, 때론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해석되거나 선의를 의심받기도 한다. 이 대화의 자리가 기자와 배우 사이의 인터뷰라면 더욱 그러하다.듣고 싶은 말이 정해져 있는 사람과 그렇게 언제나 뻔한 상황을 다시 자신의 것으로 재조합해 만들어가야만 하는 사람. 배우 장성원에게 대중과의 대화 또한 오늘의 이 자리 같은 느낌이 아니었을까. 주춤주춤, 경계에서 부딪히던 오해와 고민을 내려놓자 비로소 조심스럽게 이야기가 시작됐다.

블루 핀 스트라이프 패턴 화이트 셔츠 모데라토 by 커드. 블랙슈트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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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마다 진심을 가두고
찌는 듯한 무더위와 후텁지근한 폭우가 번갈아가며 하루하루를 괴롭게 했던 지난 몇 달 동안, 장성원(38)은 누구보다 바쁘게 살았다. 세 편의 영화 촬영장을 오가며 각기 다른 인물로 살아가느라 제대로 계절을 느낄 여유조차 없이 지나버린 날들도 있었다. 지난해, 한동안 숨을 고르는 시간을 가지면서 다시 조금 더 새롭게 달려볼 것을 결심한 뒤 처음으로 보낸 뜨거운 여름이었다. 매 순간 성실하게, 몸짓과 목소리에 진심을 담아보려 애를 썼다.

“작년에는 작품 활동을 ‘신드롬’이란 의학드라마 딱 한 편만 했어요. 사실 의외로 1년에 여러 작품에 출연할 수 있는 배우들이 많지 않아요. 대중적으로 계속해서 사랑받는 배우들이 또 다음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는 거니까요. 그래서 저도 생각의 방향을 조금 다르게 해보기로 했어요. 앞으로 제 연기 인생이 어떻게 해야 더 좋은 쪽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다가 현재 평균적인 한국 영화보다 작은 규모로 제작되는 좋은 작품들을 적극적으로 찾아서 참여하고 시도하는 노력을 해봐야겠단 결심을 했어요. 그렇게 눈을 돌려보니 하고 싶은 일들이 무척 많더라고요.”

그렇게 해서 참여하게 된 작품이 우선 지난 8월 14일 개봉한 화제작 ‘가자, 장미여관으로’다. 성에 대한 솔직한 탐구로 여전히 예술과 외설의 경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마광수 교수의 대표 시집을 스크린으로 옮긴 작품으로, 주인공 ‘사라’를 통해 사회문제로까지 대두된 바 있는 연예계 성상납 문제를 정면으로 비판하고자 했다. 이 작품에서 장성원은 ‘사라’에게 성접대를 강요하고 폭력까지 행사하는 악랄한 매니저 ‘윤 실장’ 역을 맡아 강렬한 악역 연기를 선보인다. 수줍게 웃고 있는 그의 얼굴을 봐서는 결코 연상하기 힘든 모습이다.

“예전부터 늘 ‘인간이 얼마나 악할 수 있나’라는 주제에 흥미를 갖고 있어요. 궁금하기도 했고요. 언젠가는 ‘절대적인 악’을 표현해보고 싶거든요. 그래서 악역이라는 점이 제겐 가장 큰 유인이었어요. 제 목표에는 못 미치지만, 그래도 한 번 거쳐가야 할 단계라고 생각해서 이 작품을 선택했어요. 홍보 기사가 ‘장성원 첫 악역 도전’ 이렇게 나갔던데, 사실 악역이 처음은 아니에요. 이렇게 쓰레기 같은, 엄청나게 나쁜 놈이 처음인 거죠(웃음).”

데님 팬츠 빈폴맨. 브라운 워커 어그 오스트레일리아. 티셔츠· 베스트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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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가자, 장미여관으로’는 원작 자체가 추악한 현실과 민감한 주제의식을 대담하고 파격적으로 표현해낸 ‘문제작’으로 평가받는 만큼, 영화 또한 그 수위와 각색 여부에 관심이 집중됐다. 또 아무래도 이야기 전개상 여배우들의 노출 연기가 필수적일 수밖에 없어 작품 자체보다는 불필요한 오해에 시달릴 소지도 많아 남자주인공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을 터. 하지만 그는 의외로 그런 부분에 대해 신경 쓰는 성격이 전혀 아니라고 했다. 오히려 그보다 자신이 처음에 설정했던 것보다 훨씬 약하게 표현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 정도라고. 그리고 이제 남은 것은 그저 관객들이 어떤 평가를 내릴 것인지, 긴장하며 기다리는 것뿐이라고 한다.

“물론 첫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는 조금 긴장했죠. 청소년 관람 불가 수위 영화는 처음이라 약간의 선입견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마광수 교수님 작품을 안 읽어본 것도 아니었고, 그 이름 자체에 얽매여 부담을 느끼거나 하진 않았어요. 그리고 일단 저는 역할이 제게 온 이후에는 마음 편히 제 입장에서 들여다보려고 해요. 물론 원작이나 시나리오를 충분히 반영해야 하는 건 맞지만, 저라는 사람이 갖고 있는 기본적인 틀은 유지한 채로 가지고 가야 하니까요. 굳이 모조리 바꾸기보다는 나라면 어땠을까 혹은 실제로 나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어땠을까, 하고 가정하면서요.”

그리고 그가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파트너와의 호흡이다. 상대가 빛나야만 자신도 돋보일 수 있다는 것을, 어린 시절부터 그는 본능적으로 알아왔다. ‘가자, 장미여관으로’는 물론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또 다른 영화 ‘소원택시’에서도 그의 이런 면모는 여실히 드러난다. 대학 시절 첫사랑을 위해 자살 모임을 만들고 버킷리스트를 제안하는 택시기사 ‘인만’ 역을 맡은 그는 각각 사연을 간직한 3명의 여성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들어주며 서로의 아픔과 상처를 보듬고 치유해나간다. 겉으로 보기에는 어수룩하고 때로는 지질해 보이기까지 하지만, 한편으로는 소박하고 따뜻한 마음을 나눌 줄 아는 평범한 남자다. 그는 이 작품에서도 개성 강한 배우들과 함께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도드라지지 않아서 완벽한 연기를 보여준다.

“다른 거 없어요. 그냥 순간순간 작품에 성의껏 진심을 담으려 할 뿐이에요. 잘해야겠다, 멋지게 보여야겠다가 아니라 나중에 보시는 분들이 좋아하셨으면 좋겠다 정도만 생각해요. 그러면 상대 배우와도 잘 맞게 되고, 부담도 떨쳐지고, 괜한 욕심도 없어져요. 물론 늘 아쉬운 점은 남아요. 촬영이 끝나고 나면 ‘더 잘했어야 하는데…’ 후회도 하고요. 하지만 누군가의 눈엔 초라하게 보이거나 욕을 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저한텐 하나하나 소중한 작품들이에요.”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고생도 많이 했지만 그만큼 애착이 컸던 영화 ‘N.L.L.-연평해전’이 제작사가 바뀌면서 재촬영에 들어가게 됐는데 아무리 해도 일정이 맞지 않아 결국 하차를 선택하게 됐다는 것이다. 맡았던 캐릭터가 워낙 매력적인 인물이라 어떻게든 조율해보려 했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고. 조금은 속상하지만 마음에 오래 담아두기보다는 다시 새로운 인물과의 만남을 기대하며 툭 떨쳐내려 한다.

데님 셔츠·그레이 체크 패턴 재킷·팬츠 빈폴맨. 안경 bcd by bcd 코리아. 시계 베르사체 by 갤러리어클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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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나라의 오빠’가 아닌 온전한 이름으로 사랑받을 수 있도록
‘인기 스타 장나라의 오빠’. 장성원을 이야기할 때 언제나 빼놓지 않고 붙는 수식어다. 포털 사이트에서 그의 이름을 검색하면 사실 수많은 텍스트는 그의 이름이 아닌 동생의 이름으로 시작한다. 뿐만이 아니다. ‘연극배우 주호성의 아들’. 배우 겸 연출가로 무대를 누볐던 아버지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연기를 생활처럼 접했고 가깝게 꿈꿀 수 있었지만, 어쨌든 그 실체에 다가서는 것은 오롯이 그 자신의 재능과 노력으로 가능한 영역이었다.
한때는 영화에서 연기 변신을 해도, 오랜만에 드라마에 출연해도, 인터뷰를 해도, 행사장에 가도, 심지어 자신이 주체가 아닌 어떤 자리에 참석하더라도 언제나 붙어 다니는 동생이나 아버지의 이름표가 부담스럽고 눈에 밟혔던 게 사실이다. 어서 떼버리려고 애를 쓰고, 연관 짓는 데 대해 예민하게 반응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생각해보면 그들이 존재하는 것이 세상의 일부인 것처럼, 배우 생활을 하는 데도 그들의 이름을 그저 일부로 남겨두면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어딜 가나 아버지 이야기, 동생 이야기를 하는 데 신경이 안 쓰였다면 거짓말이겠죠. 특히 일하는 데 있어서 ‘장나라 오빠 장성원’이라는 말을 자주 들으니까 부담스럽고 싫기도 했어요. 그런데 워낙 그러다 보니 이젠 무뎌졌어요. 그리고 제게 일어나는 일은 어찌 됐든 제 책임이라고 생각해요. 아직도 ‘장나라 오빠’로 불리지만, 언젠가 제게 ‘장성원’이란 이름으로 대중에게 사랑받을 자격이 생긴다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겠죠. 그전까지는 당연히 겪어야 할 일이고, 전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기분 나쁘다, 싫다, 생각하면 저는 아마 아무 발전도 못하는 사람일 거예요. 오로지 저를 발전적으로 변화시켜 나가는 데만 집중하기에도 모자라는걸요.”

세상 사람들의 상당수는 누군가의 아들, 딸이고 또 누군가의 형제이며 자매다. 그저 평범한 사실일 뿐인 그 존재가 자신을 설명하는 또 하나의 이름이 된다는 것. 그렇게 특수한 상황이 그에게는 괜한 조바심을 부추길 때도 있을 테고, 때로는 막연한 불안감을 가져다줄 때도 많았을 것이다.

“저도 한창 의욕적으로 일하고 싶었던 스물일고여덟 즈음, 동생이 정말 잘됐겠어요. 신드롬이라고 할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누렸죠. 한동안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다가 어느 순간 해탈하게 되더라고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잘 안 되는 건 내가 인생 설계를 잘못한 거고, 내 탓이니까 동생과는 조금도 연관 짓지 말자라고요. 점점 나이가 드니까 저절로 유연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요. 사실 요즘은 주변에서 동생 이야기보다는 나이를 더 많이 들먹거리긴 해요(웃음).”

네이비 코트·행커치프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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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24기 공채 연기자 출신이자 1995년 MBC-TV 특별기획드라마 ‘제4공화국’으로 데뷔했으니 그도 이제 18년 차 배우가 됐다. 비록 아직은 자신을 각인시킬 만한 대표작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드라마와 영화를 넘나들며 다양한 작품을 통해 스스로를 쓰임새 있게 다듬어왔다. 하지만 모두가 앞만 보고 빠르게 달려가는 사회에서, 그것도 부침 심하기로 따지면 따라올 데가 없는 연예계에서 뭔가를 ‘보여줘야만’ 한다는 위기감이 들지 않을 리가 없다. 자신의 존재를 확실하게 어필할 강력한 무언가에 대한 필요성 말이다.

“위기감은 사실 최근까지도 느껴봤어요. 내가 과연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까 불안해지더라군요. 그런데 까짓것 애초에 올라간 것도 없었는데?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떨어질 일을 걱정할 만큼 일단 올라가보려고요.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않을 작정이에요. 잘되든, 못되든, 어찌 됐든. 기껏해야 그만두기밖에 더하겠어요? 배우라는 직업은 은퇴가 없잖아요. 오히려 나이 들수록 더 멋있어지는 분들이 많죠. 다만, 제가 잘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 정확하게 파악하고 길을 찾아나가는 건 필요한 것 같아요. 사람들이 보는 이미지라는 건 무시할 수 없는 거니까요.”

그래서 당분간 더 많은 것을 경험해보려 한다. 아직은 다 해보지 않았고, 뭔가를 찾은 게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비록 유예의 시간이 길어진다고 하더라도 ‘장성원’의 이름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찾고 가야 할 것 같다. 사람들이 ‘장성원’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무언가를 곧바로 떠올릴 수 있는 그 순간을 만들어가는 과정말이다.

“뭔가를 뛰어넘기 위해 무리하게 애를 써야겠다는 생각은 없어요. 연기 외에는요. 대중에게 어떻게 사랑받을지 먼저 고민하면서 연기를 생각하는 건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어떤 상황에서든 작품과 인물에 어울리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렇게 경험하고 맞추고 찾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대중이 저절로 저를 제 이름 그대로, 제 모습 그대로 사랑해주시는 날이 오리라 믿어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꾸준히 사랑받고 또 그렇게 괜찮은 배우로 남고 싶어요.”

■글 / 이연우 기자 ■사진 / 원상희 ■제품 협찬 / 모데라토 by 커드(02-3443-9406), 베르사체 by 갤러리어클락(02-3447-7701), 빈폴맨(02-3446-7725), 어그 오스트레일리아(02-3446-7725), bcd by bcd 코리아(02-3447-7701) ■헤어&메이크업 / 인건, 세영, 경은(니케인뷰티, 02-514-4425) ■스타일리스트 / 김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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