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번째 만남 김성은 그리고 김성민
15년 만에 손 내민 김병욱 PD
본명보단 배역 명이 익숙한 사람들이 있다. 김성은과 김성민도 마찬가지다. 김성은은 당돌하고 까칠한 미달이로, 김성민은 수줍지만 할 말은 하는 똑똑한 의찬이로 불려왔다. 당시 시트콤 ‘순풍 산부인과’는 대한민국 저녁시간을 점령했고, 두 아이의 인기는 최고였다. 기자 역시 미달이의 또랑또랑한 눈매와 의찬이의 동그란 안경이 눈에 선하다.
당시 여섯 살이던 아이들은 15년 후 다시 김병욱 PD의 러브콜을 받았다. 두 사람은 김 PD가 연출하는 시트콤 ‘감자별 2013QR3’에서 극중 노민혁(고경표 분)이 대표로 있는 주식회사 콩콩의 직원으로 등장한다. ‘순풍 산부인과’의 연출가로 김성은에게 미달이 캐릭터를, 김성민에게 의찬이 캐릭터를 선물한 김 PD가 이번에는 두 사람에게 다른 이름을 선물한 셈이다.
15년 만에 다시 브라운관에 나오는 거네요.
김성은 정말 떨려요.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거든요. 첫 촬영 1주일 전에 감독님이 불러주셨는데요. 처음에는 실감이 잘 안 났어요.
김성민 저도 성은이랑 비슷한 시기에 감독님께 연락을 받았습니다. 조용하고 평범한 대학생으로 지내고 있었는데 믿고 불러주셔서 감사하죠. 아쉽게 아직 인사도 제대로 못 드렸습니다. 현장에서는 워낙 바쁘셔서요(웃음).
김 PD와는 연락하고 지내는 사이였나요? 워낙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분이라고 들었는데요.
김성민 감독님과 개인적으로 연락을 하진 않았어요. 그때는 유치원생이었는걸요(웃음). 다만, 매니저 역할을 했던 어머니는 스태프들과 친분이 두터웠고, 시트콤이 끝난 이후에도 연락을 주고받았던 걸로 기억해요. 3년간 촬영장에서 만나다 보니 성은이 어머니와 저희 어머니도 친해지셨고요.
김성은 아이들의 세계는 따로 있었죠. 시트콤 끝나고도 성민이랑 정배 역을 맡았던 이민호는 가끔 만났어요. 제가 유학을 떠나면서 예전보단 연락이 뜸해지긴 했지만 요즘에도 서로 근황을 주고받는 사이죠. 무대에 오르면 응원을 가기도 하고요. 지난해 민호가 출연한 뮤지컬 ‘라카지’도 보러 갔고요. 아역 배우의 우정이랄까요?(웃음)
‘순풍 산부인과’ 이야기부터 해볼까요. 당시 촬영했던 기억은 남아 있나요?
김성민 사실, 잘 기억나진 않아요. 여섯 살 때 일이잖아요. 그때는 정신없었던 거 같아요. 엄마 손 잡고 시트콤 촬영장에 가거나 CF를 찍으러 갔죠.
김성은 저도 자세히 기억나진 않아요. 힘들지 않았냐고 묻는 사람도 있는데, 글쎄요. 정확하진 않지만 몇 가지 좋았던 기억과 나빴던 기억이 있어요. 나빴던 기억이요? 촬영장에서 쪽잠을 자거나 음식을 먹은 경험은 아니고요. 지나가면서 어른들이 툭툭 건드렸던 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 예를 들자면 제가 속눈썹이 굉장히 긴데요, 지나가다가 속눈썹 붙인 거냐면서 자꾸 잡아당기는 사람이 많았어요. 인상을 쓰면 약간 혼나기도 하고 “이 정도는 팬서비스 차원”이라고 정색하면서 말씀하셨던 분들도 계셨고요. 유치원생이라 스타나 팬에 대한 개념이 없는데도 왠지 약간 억울하단 생각이 들었던 거 같아요.
시트콤 끝나고는 뭐 하고 지냈어요?
김성은 많은 일이 있었어요. 남들처럼 질풍노도의 청소년기를 겪었어요. 열세 살 때 뉴질랜드로 유학을 갔어요. 떠날 때는 대학생 즈음에 돌아오려고 했지만 집안 사정이 악화되면서 3년 만에 귀국했어요. 돌아와보니 부모님이 반지하로 이사를 했더라고요.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였죠. 그러다가 동덕여자대학교 방송연예과에 입학했어요.
김성민 저는 시트콤 끝내고 2년간 어린이 드라마 ‘요정컴미’에 출연했어요. 주인공 역이라 촬영 분량이 굉장히 많았죠. 학교생활도 거의 못했고, 친구 관계도 소원해졌어요. 친구들이 저를 의찬이로 대하는 느낌도 거북했고요. 초등학교 졸업하고 부모님께 학교생활에 전념하겠다고 말씀드렸어요. 중학교 1학년부터는 모든 촬영을 접었죠.
두 사람 모두 학업에 열중한 거네요. 결과는 좋았나요.
김성은 뉴질랜드에서 유학을 했지만 공부보단 다른 부분을 많이 배웠어요. 3년간 학교 대표 승마선수였을 정도로 스포츠도 열심히 했고요. 자연에서 뛰어놀다 보니 자연스레 마음이 편안해진 것 같아요. 뉴질랜드에 있는 3년간, 매년 키가 10cm씩 자랐어요.
김성민 저는 평범한 대한민국의 중학생이었습니다. 아침엔 학교에 가고 저녁엔 친구들과 놀았어요. 성적이요? 좋진 않았습니다(웃음). 초등학교를 거의 다니지 않고 중학교를 간 셈이니까요. 부족한 점이 많았지요. 재수 후에 수원대학교 연극영화과에 합격했어요.

두 번째 만남 김성은 그리고 김성민
아역 배우들은 너무 어린 나이에 어른의 감정을 알아간다. 몸은 아이지만 생각은 이미 어른과 가까운 아역 배우들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기도 한다. 김성은 역시 떠들썩한 성인식을 치렀다. 소녀가 어른이 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인데도 그녀는 무척이나 힘들게 그 과정을 겪었다.
아역 배우가 성인 배우로 이미지를 전환하는 게 쉽진 않은데요. 진로를 바꿀 생각은 안 해봤나요?
김성민 TV에서 사라지자 연기는 포기했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하지만 다른 직업을 찾기 위해 아역 배우를 그만둔 건 아니었어요. 카메라 앞에 서기보단 나이에 맞게 친구들과 뛰어놀고 싶었던 것뿐이었어요. 그 나이에는 다들 놀고 싶잖아요(웃음). 고등학생 때는 여러 가지 생각이 많았지만 진로를 바꿀 생각은 없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연기 이외의 선택지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정확한 이유요? 모르겠어요. 끌림, 같은 거 아닐까요?
김성은 저도 기본적으로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하지만 연예계에 몰두하고 싶진 않아요. 배우는 수익이 일정하지 않은 직업이니까 또 다른 일을 찾아야 해요. 얼마 전에는 해외무역과 관련된 대학 코스를 수료했어요. 해외무역은 제 장기인 영어를 활용할 수 있는 분야라 장기적으로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아무래도 대학 입학과 동시에 집에서 독립해서인지 또래에 비해 미래에 대한 고민이나 경제관념이 투철한 편이에요. 생활비는 영어나 승마 강의비로 충당하고 있고요.
성은씨는 루머가 굉장히 많았는데요. 실제로는 무척 성실하게 살아왔네요.
김성은 루머가 많았던 건 사실이죠. 어느 정도는 제가 원인 제공을 했다고 생각해요. 생활비를 버는 악착같은 면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자유롭고 싶다는 생각도 컸어요. 대학 신입생 때는 술도 많이 마셨어요. 저녁에 나가서 다음날 점심 먹고 집에 들어온 날도 있을 정도니까요. 지금 생각하면 제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부분이에요.
아역 배우 출신으로서의 고민도 기사화됐었죠.
김성은 사실, 고민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죠. 어딜 가도 미달이라고 부르니까요. 미달이라고 부르는 사람을 죽이고 싶었다 혹은 자살충동을 느꼈다는 기사도 많이 나왔죠. 조금 과장되긴 했지만 그런 기사로 얻은 점도 있어요. 예전에는 “미달이다”라고 했는데 요즘은 조심스레 다가와서 “김성은씨죠?”라고 묻더라고요(웃음).
김성민 성은이만큼은 아니지만 아역 배우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부담되는 건 사실이에요. 대학 신입생 때였어요. 하루는 연극무대에 섰는데 교수님께서 엄청 화를 내시더라고요. 연기가 그게 뭐냐고요. 연극은 온몸으로 말해야 하는데 저는 드라마 촬영할 때처럼 카메라만 보고 연기를 한 거예요. 그날, 정말 무참하게 깨졌습니다. 혼나면서 제가 가진 자만감을 깨달았어요. 어렸을 때 일이지만 연기를 잘한다는 칭찬을 자주 들었고, 친구들보다 연기 경험도 많으니까 당연히 우월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를 의식하는 만큼 항상 노력을 더 해야 하는데, 사람들의 시선에 대한 부담감과 아역 출신 배우라는 우월감만 느낄 뿐 연습을 게을리한 거죠.
항상 주목받는 삶이란 어떤 건가요?
김성민 편하진 않죠. 누군가 절 지켜본다는 생각에 주눅 들거나 의기소침해지기도 하고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크고요.
김성은 사람들을 실망시키면 안 된다는 강박이 조금 심한 편이에요. 이번에도 첫 촬영 전에 압박감이 심했어요.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부담감만 쌓여갔죠. 고민을 하고 있는데 제 멘토인 ‘똑순이’ 김민희 언니가 답을 줬어요. 유학 전에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민희 언니를 만나 친해졌거든요. 언니가 그러더라고요. 제가 연기를 못하는 건 당연하다고. 10년 넘게 TV에 안 나왔는데 잘하는 게 이상한 것 아니냐고요. 잘하면 잘하는 대로, 못하면 못하는 대로 제 모습을 보여주고 성적표를 받으면 된다는 말도 덧붙였죠. 그 말을 듣고 보니 다른 사람이 아닌 제가 스스로를 옭아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성민 저도 첫 촬영을 앞두고 부담이 있었는데요. 고등학교 친구들이 힘을 줬습니다. 잘할 수 있을 거라고요. 감독님을 믿기도 하고요. 감독님과 함께라면 어릴 적 끼를 살릴 수 있지 않을까요?
성인 배우로서 앞으로 맡고 싶은 배역이 있나요?
김성민 똑똑한 의찬이 이미지도 좋지만 나쁜 남자 같은 역할에도 도전하고 싶어요. 예를 들어 얼마 전에 영화 ‘숨바꼭질’을 봤는데요. 거기서 연쇄살인범 역할을 하고 싶던데요. 그런데 영화를 볼 때마다 항상 하고 싶은 역할이 바뀌는 거 같아요(웃음).
김성은 마냥 아역 이미지를 벗고 싶을 때는 조금 우울한 여인의 역할도 맡고 싶었어요. 실제로 연극이랑 뮤지컬에서 그런 역할을 맡기도 했고요. 그런데 저랑은 안 맞는 거 같아요. 평소 생활까지 침울해지더라고요. 성숙한 여인으로서 이미지 변신도 좋지만 밝은 역할을 맡고 싶어요. 그래서 이번 시트콤을 더 기대하고 있어요.
김성은은 생각보다 훌쩍 자라 있었고, 김성민은 딱 나이만큼 발랄하고 상큼했다. 2시간 남짓의 인터뷰 이후에는 사진 촬영이 이어졌다. 긴장했다는 말이 무색하게 김성은과 김성민은 카메라 앞에서 자유로웠다. 여섯 살 꼬마 때처럼.
■기획 / 장회정 기자 ■글 / 박은혜(프리랜서) ■사진 / 김영길 ■장소 협찬 / 스케치북(02-337-1739) ■헤어&메이크업 / h#(02-547-1517) ■스타일리스트 / 신미소, 권미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