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리스털 장식의 슬릿 디테일 롱드레스·패턴 포인트 레깅스, 김영세 오뜨꾸뛰르. 사이하이 부츠 슈즈원.
나, 돌아와도 될까요?
아… 오랜만이다. 모델로 정점을 찍고 영화배우로 변신해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그녀, 박영선(46). 15년 만에 만나는 반가운 얼굴이다. 그동안 어떻게 이리도 감감무소식일 수 있었을까? 1999년 톱스타였던 그녀는 돌연 은퇴 선언을 하고 미련 없이 미국 유학길을 떠났더랬다. 물론 그렇게 연예계를 떠난 사람들은 많지만 대부분 현지 교포 언론을 통해, 때로는 목격담 등으로 종종 근황이 전해지게 마련이었다. 그러나 박영선은 아니었다. “왜 떠나신 거예요?”, “그동안 뭐 하셨어요?”, “숨어 있었던 거예요?” 하고 만나자마자 봇물 터진 듯 질문을 쏟아냈지만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은 반쯤 가린 채 대답 대신 말했다.
“…나, 돌아와도 될까요?”

주얼 장식과 시스루 소재가 매치돼 더욱 화려한 드레스, 김영세 오뜨꾸뛰르.
은퇴 당시부터 거슬러 이야기를 풀어보자. 톱모델이었던 그녀는 당대 최고 남자 배우의 상대역으로 스크린에 안착했다. 모델 출신 배우 1호였다. 대중적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미국으로 떠난 이유, 그녀는 ‘자만’이라고 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비웃었을까, 부끄러워요. 그때는 자만에 빠져서 사진 공부를 하겠다고 모든 걸 내려놓고 떠났죠. 찍는 것과 찍히는 것은 엄연히 다른 것인데…. 늘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이 일이다 보니 만만히 봤던 것 같아요.”
늘 일에 치여 살았던 연예계 생활에서도 벗어나고 싶었다. 열다섯 살에 데뷔해 사생활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렸던 나날들. 평범한 일상을 즐기고 싶었고, 남들 하는 결혼도 하고 싶었다. 그녀의 은퇴는 팬들과 주변인들을 깜짝 놀라게 했지만 정작 그 이유는 간단했던 것.
“결혼해서 편안하게, 조용히, 주부로 살고 싶었어요. 그래서 일부러 친구들과도 연락을 끊었고요. 누가 연락해도 웬만큼 친한 친구가 아닌 이상 만나지 않았어요.”

펀칭 디테일의 네이비 루스 핏 가죽 코트·슬림 핏 팬츠, 김영세 오뜨꾸뛰르. 실버 스트랩 슈즈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업계 사람들과 연락을 아예 끊은 것이 박영선의 소식이 전해지지 않았던 원인 중 하나였다. 게다가 2004년 교포와 결혼한 그녀가 거주하고 있는 곳은 뉴욕의 웨스트 체스터. 뉴욕 시내에서 30분가량 떨어진 부촌으로 한국인이 거의 살지 않는 지역이다(참고로 그녀의 옆집은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집이라고). 또래의 백인 친구들과 어울렸으니 미국 교포들 눈에 띌 일도 없었다. 그녀는 열 살짜리 아들을 키우고 있는 주부다.
“연예계를 떠난 것을 후회하기 시작한 건 아이가 유치원을 다닐 무렵이었어요. 아이 키우는 데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고 나니 점점 옛날이 그리워지더라고요. ‘잘나가고 참 멋있게 살았는데…, 이제 나는 잔소리하는 아내, 간섭하는 엄마일 뿐인가?’ 그동안 절제해왔던 것들이 우울감으로 돌아오기 시작했죠.”
간혹 주변 친구들은 예쁘고 늘씬한 그녀를 보며 “혹시 모델 하지 않았냐”라고 묻기도 했지만 부정했다. 집에서 아이만 키우는 현실에 자존감은 떨어지고 제대로 꾸미지도 못하고 살았다. 그럼에도 용기를 내어 다시 카메라 앞에 선 것은 “엄마도 일을 하며 커리어를 쌓았으면 좋겠다”라는 아들의 말 때문이었다. 가슴속에 담고 있던 작은 불씨가 타오르는 느낌이었다.

미니멀한 디자인의 랩 스타일 원피스, 김영세 오뜨꾸뛰르. 주얼 장식 스트랩 슈즈, 세르지오로시 by 엘본더스타일.
모델에서 현명한 엄마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이곳에 오기까지 복잡하고 고민이 많았다. ‘실마리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그때 생각난 사람이 디자이너 김영세와 스타일리스트 김성일이었다.
“김영세 선생님의 의상은 한창 모델 활동하던 시절에 많이 입었지요. 그리고 김성일씨는 어렸을 때부터 친구였어요. ‘내 친구지? 나, 일하고 싶은데 좀 도와줘.’ 요즘 워낙 잘나가고 있으니 잘난 척할 줄 알았는데 참 반가워하더라고요. 제가 필요로 할 때 먼저 손을 뻗어준 모두 고마운 분들이에요.”
그저 담아놓기만 하면 죽을 때까지 후회로 남을 것 같았다. 다시 한번 문을 두드려보자. 마음만 굴뚝같아선 안 될 일이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여성스러운 몸매는 세월을 뛰어넘은 듯 여전했고, 분위기는 성숙을 더해 전에 없던 품격과 카리스마가 배어 나왔다.

크리스털 장식 브라톱·클리비지 라인의 그레이 언밸런스 톱·와인 컬러 팬츠, 김영세 오뜨꾸뛰르. 비즈 장식 T스트랩 슈즈, 세르지오로시 by 엘본더스타일.
“일명 ‘육아 다이어트’라고 하죠. 아이한테 매달려 이리저리 같이 뛰어다니다 보니 몸무게는 변함이 없어요. 저, 그래도 포토샵 없던 시절에 모델 활동하던 여자예요(웃음).”
박영선은 미국으로 떠난 후 한 번도 한국을 방문한 적이 없다고 한다. 심지어 이번 화보 촬영을 하러 오는 길에 인천국제공항을 처음으로 접했다고. 육아 때문이었다. 그러나 딱 한번 간절히 한국에 오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바로 디자이너 앙드레 김의 부고를 접했을 때였다.
“선생님은 저를 키워주신 분이나 마찬가지였죠. ‘칠갑산(앙드레 김 패션쇼의 하이라이트)’은 늘 제가 했고요. 그분이 돌아가셨을 때 정말 슬펐어요. 한국에 오고 싶었지만 아이가 어려서 올 수 없었어요. 대신 이번에 오자마자 선생님 숍에 찾아가서 아드님과 이런저런 얘기 많이 나눴어요.”
아이와 떨어져본 적도 이번이 처음이다. 아이가 있는 곳에는 늘 엄마가 있었다. 약 2주 일정으로 한국에 왔지만 엄마의 일이 어떻게 돼가고 있는지 저녁마다 전화 통화로 확인하는 사랑스러운 아이다.
“‘엄마, 잡(Job) 찾았어요?’라고 물어봐요. ‘아니, 아직 못 찾았어’라고 하면 ‘어떡해요. 꼭 찾길 바라요’라고 걱정해줘요. 엄마가 빨리 연예계 일을 해서 자신이 가수 싸이를 한번 만나봤으면 좋겠대요(웃음). 저번에는 류현진 선수를 만나기 위해 LA까지 갔어요.”
전형적인 미국 아이지만 박영선은 아이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도록 언어와 예절도 가르쳤다. 그녀는 동양적인 정서의 발현이 미국 사회에서도 경쟁력일 수 있다는 사실을 감지한 현명한 엄마였다.

크리스털 장식의 튜닉 스타일 원피스, 김영세 오뜨꾸뛰르
언니, 아직 죽지 않았다
미국 생활은 박영선에게 ‘경력의 단절’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미국에서 비로소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생활을 경험했다.
“어렸을 때 데뷔한 탓에 어른이 되는 과정을 정상적으로 밟지 못했어요. 마치 한 단계를 건너뛴 듯 어른이 돼버렸죠. 제가 속한 곳이 곧 사회인 줄 착각했어요.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친절하고 웃어주는 곳인 줄 알았죠.”
그녀는 한 번도 순서를 기다리기 위해 줄을 서본 적이 없었다. 일 외적인 건 모두 매니저가 대신 해줬기 때문이다.
“통장을 만들기 위해 은행에 갔는데 줄을 서라는 거예요.
5분도 서 있지 못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왔어요. 다음날도 포기했고요. 결국 계좌를 여는 데 3일이나 걸렸어요. 서른다섯 살이 돼서야 비로소 하나하나 알아간 거죠.”
한국에서 연예 생활을 계속했다면? 그 또한 끔찍한 일이라 생각한다. 혼자 잘난 맛에 살며 사람들과 공감하지 못하고 사는 이상한 여자가 돼 있을 것 같다. 많은 것을 알게 해준 그녀의 10년이었다.
“저와 비슷한 나이의 클라우디아 시퍼도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데 저라고 못할 일 있나요? 나아가 80대 현역 모델 카르멘 델로피체처럼 멋진 모델 활동을 지속하는 게 제 소원이에요.”
최민수와 호흡을 맞췄던 영화 ‘리허설’이 종종 케이블 심야 영화 코너를 통해 나온다는 이야기를 꺼내니 “어머, 정말? 어떡해, 그 책 읽는 연기…” 하며 얼굴을 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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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는 게 나쁜 것만은 아니에요. 이제 아이도 키워봤고 연륜도 쌓였으니 연기는 예전보다 훨씬 잘할 거라고 생각해요. 뉴욕에 돌아가면 연기아카데미에 다닐 거예요. 일이 고팠으니만큼 열심히 먹을 준비는 돼 있어요!”
오랜만에 선 카메라 앞. 촬영 전에는 떨려서 걸음도 걷지 못하겠다고 울상이던 그녀가 물 만난 고기처럼 유유히 헤엄친다. 언니가 돌아왔다. 그녀는 여덟 컷의 촬영을 단 두 시간 만에 끝냈다. 그녀에겐 ‘어도비’의 작은 손길도 필요치 않았다.
“한국에 오기 전에 모델 이종인과 통화했어요. 그녀는 현재 남편을 따라 중국에 살고 있고 아이가 네 살이에요. ‘언니가 열심히 해서 길을 만들어줘. 우리 기성 모델들이 복귀할 수 있게!’라고 하더라고요. 저를 기점으로 발판이 마련됐으면 좋겠어요.”

스터드 장식 브라톱·플라워 패턴 장식 레더 재킷·시스루 롱스커트, 김영세 오뜨꾸뛰르. 스트랩 슈즈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처음으로 런웨이를 떠나 스크린으로 진출한 모델이었던 박영선. 그녀는 또 하나의 1호가 되려 한다. 세월이 흐를수록 여자도 멋지고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사실, 증명해주기를. 언니 파이팅! ■ 글 / 이유진 기자 ■ 사진 / 김영준 ■ 제품 협찬 / 김영세 오뜨꾸뛰르(02-514-9642), 세르지오로시 by 엘본더스타일(02-6905-3740), 슈즈원(1577-9286) | ■ 헤어 / 조영재 ■ 메이크업 / 박태윤 ■ 스타일리스트 / 김성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