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유연석,  에티오피아에서 꿈을 찍다

배우 유연석, 에티오피아에서 꿈을 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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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박 10년. 배우라는 꿈을 꾸며 달려왔다. 마침내 그 꿈은 현실이 됐다. 그러자 다른 이들의 꿈이 궁금해졌다. 처음 만나는 아프리카의 아이들. 자신이 그랬듯 이 아이들이 꿈을 꾸고 또 이뤄가길 바라본다. 유연석이 진심을 다해 셔터를 누르고, 꼭꼭 눌러 써내려간 바로 그 마음을 전한다.

배우 유연석,  에티오피아에서 꿈을 찍다

배우 유연석, 에티오피아에서 꿈을 찍다

꿈꾸던 소년에서
학예회 무대에서 연극을 하며 친구들과 선생님의 환호를 받던 13세 때부터 내 인생의 화두는 꿈이었다. 그리고 처음 배우가 되겠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내 꿈은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20세. 처음으로 영화를 찍으며 설렘과 감동을 받았다. 그러나 가까이 왔던 꿈은 잡으려고 하니 한 발자국 뒤로, 달려가 잡으려고 하니 열 발자국 뒤로 조금씩 멀어졌다. 꿈이 멀어질 때 그것을 포기하기보다는 나를 더 키웠다. 내가 자라면 팔도, 다리도 길어질 테니 도망간 꿈을 잡는 것도 그만큼 쉬워지겠지. 10년을 달려오고 나니 어느 새 나는 꿈의 한 가운데 서 있게 됐다. 꿈을 이룰 수 있는 길도, 꿈과 가까워지는 기회도 다양해졌다. 물론 앞으로 해야 하는 것들이 더 많아지겠지만 나는 지금 꿈의 길을 걷고 있다. 그리고 이제 내가 가진 꿈의 기회들을 예전의 나처럼 꿈을 이루려는 이들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어쩌면 그것이 나에게 새로 생긴 꿈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에티오피아에 가는 것이 새로운 꿈의 시작점이 되지 않을까?

아프리카의 땅을 밟다
‘신이 만들어준 지구의 정원’이라는 아프리카. 마주한 땅은 말 그대로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넓은 들판에서 누구의 방해도 없이 뛰어노는 가축들과 마치 인공적으로 정비를 한 것 같은 푸른 산, 그림으로 그렸을 것만 같은 나무까지. 그 모습에 취해 한참을 바라보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땅에 사는 사람들은 왜 살아가는 일이 고민이 된 것일까. 지금 한창 자라나는 아이들만이라도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고민했으면 좋겠다. 비록 그것이 지금보다 더 행복한 삶이라고 보장할 수 없지만 적어도 스스로의 미래를 위한 고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자그마한 축복이 될 수 있다고 말이다.

배우 유연석,  에티오피아에서 꿈을 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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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노 마을에서 만난 아이들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포장도로를 2시간, 비포장도로를 2시간 달리면 노노 마을이 나온다. 움푹 파인 흙길 때문에 자동차 천장에 머리를 수없이 박고 나면 이 아름다운 마을을 만날 수 있다. 조용하고 차분한 마을,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있는 마을, 이제는 내가 절대로 잊을 수 없는 마을, 노노. 이곳에 오고 나서야 진짜 아프리카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꽃을 들고 나를 반겨주는 아이들이 참 예뻤다. 몇 시간 동안 나를 위해 연습해서 불러줬던, 아이들의 진심이 온전하게 느껴졌다.

한국에서 온 나를 소개했다. 아이들은 모두 큰 눈을 더 크게 뜨고 나를 지켜봤다. 비록 내가 하는 이야기를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할지라도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는 그 눈이 너무 예뻤다. 한국어를 영어로, 영어를 에티오피아어로, 에티오피아어를 노노지역의 지방어로 통역해야만 서로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지만 눈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우리는 이미 충분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이 아이들 개개인이 가진 꿈이 무엇인지, 어떤 꿈을 꾸며 하루를 보내고 있는지, 어른이 되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내가 꿈을 꾸기 시작한 나이를 지나고 있는 이 아이들이 꾸는 세상의 모습이 궁금했다. 그래서 꿈을 그려보는 시간을 함께하자고 제안했다.

얼마 후 다양한 그림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중에서 특히 내 마음에 다가왔던 것은 한 아이의 안타까운 말 한마디였다.

배우 유연석,  에티오피아에서 꿈을 찍다

배우 유연석, 에티오피아에서 꿈을 찍다

“우리 마을에 전기가 들어와서 교실에 빛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 순간 먹먹해졌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그들에게는 꼭 한 번 이뤄보고 싶은 꿈이었다. 내가 그 꿈을 이뤄줄 수 있는 영향력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앞으로 새로운 바람이 하나 더 꿈의 무게에 추가 되겠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다시 꿈을 꾼다
아이들은 낯선 이에게 줄 수 있는 온전한 마음을 줬다. 처음 마주하는 이방인에게 이토록 해맑고 순수하게 마음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지금껏 몇 명이나 만났을까. 순도 100%의 마음을 마주하자 나 역시 모든 것들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생각도, 고민도, 걱정도, 불안도 모두 내려놓고 아이들의 웃는 모습만 따라다녔다. 그 모습에서 오히려 내가 위로받았다. 참 오랜만에 유연석이 아니라 인간 안연석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돌려받는 것을 바라지 않고 주기만 하는 마음과 마주하니, 나 역시 어린 시절 순수하게 꿈을 꾸던 그때의 나로 있을 수 있었다.

배우 유연석,  에티오피아에서 꿈을 찍다

배우 유연석, 에티오피아에서 꿈을 찍다

직접 만난 이곳의 아이들은 나마저도 새로운 꿈을 꾸게 할 만큼 충분히 꿈꾸는 아이들이었다. 나보다는 가족을, 친구를, 마을을, 학교를 먼저 생각하는 아이들이었다. 태어나서 두 번째로 먹어본다는 콜라를 조금의 망설임이나 고민 없이 나에게 먼저 먹으라고 내어줄 수 있는 아이들이었다. 그래서 참 고마웠다. 꿈을 꾸는 것보다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참 오래도록 나에게 되뇌곤 했는데 이 아이들에게도 그 말을 꼭 해주고 싶다. 꿈은 꾸라고 있는 것이고 꾸기 시작해서 스스로 잃거나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제나 꿈은 내 안에 남아 있을 수 있는 것이기에. 우리 모두 함께 행복한 꿈을 꿀 수 있다면 참, 좋겠다.

“달려라. 달려!”
에티오피아 아이들은 달리기를 정말 잘한다. 맨발로 운동장과 들판을 달리는 아이들을 보면 대단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에티오피아가 2,000~3,000m의 고산지대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잠깐만 뛰어도 평소보다 몇 배 힘든 나와 비교할 순 없겠지만 ‘쌩쌩하다’라는 표현은 이 아이들을 위해 써야 하다.

배우 유연석,  에티오피아에서 꿈을 찍다

배우 유연석, 에티오피아에서 꿈을 찍다

옷 뭉치로 축구를 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한국에서 가져온 축구공을 선물로 주며 호기롭게 “축구 함께할까?”를 외쳤는데 막상 경기가 시작되자 살짝 후회가 됐다. 어찌나 숨이 차던지. 새 축구공이 생긴 아이들은 이전보다 훨씬 더 빠른 몸놀림을 보여줬다. 지치지 않는 아이들 틈에서 홀로 지쳐 경기에서 조심스럽게 빠졌다. 차를 타고 숙소로 돌아가는 내내 꿈속을 헤맸던 것 같다. 어쩌면 20년쯤 뒤에 나와의 만남을 이야기하면서 인터뷰할 세계적인 축구선수가 등장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함께.

“물만 나와도 좋을 텐데”
내가 생각하는 문장 끝에 ‘좋을 텐데’라는 말이 끝없이 붙는다. 그만큼 해주고 싶은 것도, 바꿔주고 싶은 것도, 바라게 되는 것도 늘어난다. 마음의 욕심은 끝없이 늘어나지만 현실에서 가능한 것들은 늘어나지 않는다. 에티오피아에 와서 처음으로 웃음이 아니라 답답함을 느꼈다.

■정리 / 김지윤 기자 ■글&사진 / 유연석 ■참고 서적 /「유연석의 DREAM」(유연석 저, 페이퍼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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