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시각 장애인 임호범의 눈물

‘트로트 엑스’ 화제의 3인방

③ 시각 장애인 임호범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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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로 시력을 잃은 임호범씨가 묵묵히 자신의 곁을 지켜준 아내를 위해 노래를 부른다. 눈물을 흘리며 그가 열창한 ‘당신’이란 노래 속의 ‘한마디 원망도 않은 채 긴 세월을 보냈지’라는 가사처럼 아름답게 빛나는 두 사람의 사랑은 많은 이들의 마음을 적셨다. 결승 진출 뒤 순위권 안에는 들지 못했지만 ‘트로트 엑스’로 또 다른 희망을 찾게 된 그리고 또 다른 이들에게 희망이 된 그를 만났다

[‘트로트 엑스’ 화제의 3인방]③ 시각 장애인 임호범의 눈물

[‘트로트 엑스’ 화제의 3인방]③ 시각 장애인 임호범의 눈물

마음으로 보는 세상
“혹시 기차역으로 데리러 와주실 수 있으세요? 혼자 가게 될 것 같아서요.”
임호범씨(30)가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일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환한 웃음으로 반가운 마음을 전한 첫 인사만으로도 그가 천성적으로 긍정적이고 밝은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생방송 무대에 오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아내와 함께 좋은 추억을 만들어보자는 마음으로 예선을 거쳤고, 그러다 탈락할 줄 알았는데 와, 결승이라니요(웃음). 그렇게 큰 무대에서 노래를 몇 곡씩이나 했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잖아요. 그런데도 아직 잘 와 닿진 않아요. 프로그램을 통해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날 수 있어서, 순수하고 따뜻한 사람들을 알게 돼 행복했어요.”

5년 전,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그는 앞서가던 트럭과 충돌하면서 머리와 얼굴을 다쳤다. 여러 차례 수술을 받으면서 다른 부위들은 조금씩 회복해갔지만 유리 파편에 손상된 시신경은 달리 방법이 없었다.

“의식을 다시 되찾았을 때 이미 앞이 보이질 않았어요. 뼈가 산산조각이 나고 뇌출혈도 있었고. 모두가 살아남은 게 기적이라고 했지만 정작 저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그런 생각만 들더군요. 얼굴도 많이 달라졌죠. 이마엔 여전히 보형물이 들어 있어요.”

말 그대로 날벼락 같은 일이었다. 병원에 입원한 석 달 동안 많은 생각을 했다. 스스로에 대한 원망과 질책도 이어졌다. 그렇지만 그는 절망보다는 희망을, 좌절보다는 용기를 선택했다. 현실을 직시하고, 앞으로의 삶을 내다봤다.
“저 역시 장애인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이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이런 상황이 되고 보니 다 똑같은 사람이구나, 싶더라고요. 낙담하며 산다고 뭐가 달라지나요? 세상을 살아가는 데 앞이 보이지 않는 건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에요. 또 제가 우울하다고 울상 짓고 있으면 주변 사람들은 더 불편하고 힘들어 하더라고요. 더 밝게 더 행복하게 살려고 애를 많이 썼죠.”

당시 여자친구였던 아내에게도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런 기색 하나 없이 그의 곁을 지켰다. 마음의 상처가 빨리 아물 수 있었던 데는 그녀의 덕이 크다.

“초등학교 동창회를 한 번도 안 나가다가 이상하게 그날은 나가고 싶은 거예요. 아내를 만나려고 그랬나 봐요. 6개월간 매일 만났어요. 제가 잘했죠(웃음). 처가 어른들도 절 좋아하셨고요. 그러다 사고가 났는데…. 많이 힘들었을 거예요. 그런데도 꿋꿋하게 잘 이겨내줘 고마워요. 아내는, 정말 착한 사람이에요. 이 표현 말고 다른 말은 떠오르는 게 없네요.”

울산의 임 스타
퇴원 후 그는 시각장애인 복지관을 다니며 점자와 지팡이를 짚고 걸어 다니는 방법을 배웠다. 복지관 교육을 수료한 뒤에는 안마사협회 부설 수련원을 다니며 이론과 기술을 익혔다. 전국 시험에서 수석을 했을 정도로 성실하게 임했다.

“한 번도 쉬어본 적이 없어요. 나름대로 재활하는 시기를 보낸 것 같아요. 비록 가장 아닌 가장이지만 자격증이라도 있으면 아이들 키우는 데 보탬이 되겠다 싶었어요. 그러다 ‘트로트 엑스’에도 나가게 된 거예요.”

오디션을 치르고 녹화가 시작되자 막막함이 앞섰다. 트로트는커녕 발성조차 제대로 배워본 적 없고, 그저 친구들 사이에서 ‘노래 좀 하네’라는 말을 들은 것이 전부였다. 그런 자신이 파이널 무대에 오를 수 있었던 건 모두 운이 좋았기 때문이란다.

“유채훈씨와 1:1 배틀을 할 때 속으로 이제 끝이겠구나, 싶었어요. 그 친구는 성악을 전공한 데다 여러 면에서 제가 상대가 안 됐거든요. 게다가 울먹울먹하느라 제대로 부르지도 못했는데, 제가 합격했다는 거예요. 아마도 제 이야기가 짠하다 보니까 후한 점수를 주신 게 아니었나 싶어요. 그 뒤로도 계속 운이 따라줬던 것 같아요.”

[‘트로트 엑스’ 화제의 3인방]③ 시각 장애인 임호범의 눈물

[‘트로트 엑스’ 화제의 3인방]③ 시각 장애인 임호범의 눈물

겸손하게 말했지만 악보를 볼 수도, 무대 분위기를 파악할 수도 없는 핸디캡은 다른 참가자들에 비해 몇 배의 노력을 요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개의치 않았다. 촬영을 위해 울산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번거로움도 즐거운 여행길이라 생각했다. 삶의 활력소가 된 기회, 영광스러운 순간들과의 조우에 오히려 감사했다.

“도움을 많이 받았죠. 가사는 요즘 세상이 좋아져서 휴대전화가 다 읽어줍니다(웃음). 물론 앞이 보였다면 외우는 데 덜 힘들었겠지만, 마지막 무대에서 불렀던 ‘귀향’을 제외하고는 워낙 명곡들이라 다행히 생소하지 않았어요.”

연습 과정을 지켜본 아이들 역시 든든한 응원군이다. 다섯 살, 세 살밖에 안 된 어린 아이들이지만 아빠가 TV에 나온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해했다고.

“자상한 편은 아니지만 잘 놀아주는 것 같긴 해요. 몸을 부대끼며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이들에게는 중요하다고 하더라고요. 별거 없어요. 같이 끌어안고 뒹굴고 그래요. 훗날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고 싶어요. 더 열심히 살아야겠죠. 아, 제가 인복이 좀 많은 편이거든요. 그분들한테도 다 갚으며 살아야 할 것 같아요. 저, 기본은 돼 있는 남자예요(웃음).”

인터뷰 말미, 아쉬운 점은 없었냐는 질문에 “‘꺾기’ 실력을 100% 보여주지 못한 것이요”라고 농담을 건넨다. 시간이 흐를수록 걸쭉해지는 사투리에 웃음이 터졌다.

“사연이 너무 진하다 보니 사람들의 기억속에 조금 더 깊게 남은 것 같습니다. 수준이 엉망진창은 아니니까, 두루두루 좋게 봐주신 게 아닌가 싶네요. 방송 후 동네에서는 저를 ‘임 스타’라고 부릅니다. 간혹 알아보시는 분들께서 사인해달라고 하시면 ‘도장을 안 가지고 왔다’라고 장난을 치죠(웃음).”

좋은 기회가 온다면 마다하지 않겠지만 꼭 가수가 돼야겠다는 식의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 것은 아니다. 지금껏 그래왔듯 기쁨을 표현하고, 슬픔을 위로받는 노래와 평생을 함께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제가 생각하는 트로트의 매력은 인생의 희로애락을 모두 담고 있다는 점이에요. 멜로디도 멜로디지만, 가사가 정말 마음에 와 닿더라고요. 신나는 곡이든 슬픈 곡이든 말이죠. 음악은 앞으로도 계속 하고 싶어요. 이렇게 발을 들이게 된 것도 인연이 아닐까, 싶고요. 물론 먹고살아야 하니까 한 가지를 고집하진 않을 거예요. 그래도 제안이 들어온다면 거절하진 않을 것 같네요(웃 음). 그렇지만 이 또한 저의 바람일 뿐이겠죠.”

■글 / 김지윤 기자 ■사진 / 김성구 ■사진 제공 / CJ E&M ■장소 협찬 / 에반스 빌(070-7636-38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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