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 엑스’ 화제의 3인방]② 아따, 참말이여! 구자억 목사](http://img.khan.co.kr/lady/201407/20140709143027_1_lady07_354.jpg)
[‘트로트 엑스’ 화제의 3인방]② 아따, 참말이여! 구자억 목사
“어휴, 분에 넘치는 결과였죠. 지난 2월 첫 촬영을 시작하고 한 단계 한 단계 살아남을 때마다 ‘우와! 내가?’ 그랬거든요. 사실 파이널 무대는 문자 투표의 비중이 컸잖아요. 쟁쟁한 분들 사이에서 제가 3등을 할 수 있었던 건 전국에 계신 성도들의 힘이 아니었을까 싶어요(웃음).”
화면에서 봤던 모습 그대로 밝고 유쾌한 에너지가 넘쳤다. 평소 트레이닝복을 즐겨 입지만 인터뷰를 위해 특별히 멋을 부렸다는 구자억(35) 목사. 그에게는 상대를 즐겁게 하는 힘이 있었다.
“상상 이상으로 많은 분들이 알아보세요. 한 번은 길을 가는데 어떤 분이 차를 세워 창문을 내리고는 ‘어! 목사님 아니십니까?’ 하더라고요. 가던 길까지 멈추셨으니 제가 뭐라도 해드려야 할 것 같아 (무릎을 탁 치며) ‘아따, 맞습니다!’라고 리액션을 해드렸죠. 방송의 힘이 대단하긴 하더라고요. 며칠 전엔 편의점에 갔다가 삼각김밥 서비스도 받았는걸요(웃음). 제일 기억에 남는 댓글은 ‘불교 신자인데 목사님 때문에 흔들린다’였어요(웃음). 긍정적인 성격이라 그런지 기분 좋은 댓글들이 오랫동안 남네요.”
사실 그의 인기는 인터뷰 전 섭외 단계에서 이미 짐작했다. 포털 사이트에 그의 이름을 검색했을 때 ‘구자억 목사, 교회 어디?’라는 질문들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감리교 신학대학교와 동 대학원을 나온 뒤 지난해 부천 대장교회에서 안수를 받은 그는 현재 25사단 상승교회에 파송돼 목사로 재직 중이다. 동시에 정규 앨범 3장, 싱글 앨범 5장을 낸 6년 차 트로트 CCM(기독교 음악) 가수다.
“진리는 단순한 거라 생각해요. 그런데 그 진리가 종교라는 틀을 거치면서 무겁고 딱딱해지더라고요. 어떻게 하면 재미있고 유쾌하게 풀 수 있을까, 하는 고민 끝에 트로트 찬양 사역을 시작하게 됐어요. 첫 무대에서 불렀던 ‘참말이여’도 만약 예수님께서 유대 땅이 아닌 전라도에 오셨으면 어떠셨을까, 사투리로 이야기하셨겠지, 라는 상상을 하면서 가사를 쓴 거였어요. 아! 실제 고향은 경기도 광명시예요(웃음).”
처음 트로트를 접한 건 다섯 살 때. 부부싸움을 하고 속상해하던 어머니가 나훈아의 노래 부르는 모습에 웃는 것을 본 뒤로 인생의 희로애락을 담고 있는 트로트의 매력에 빠졌다.
“누가, 무엇이 어머니를 웃게 하는 거지, 하고 봤더니 나훈아 선생님이 노래를 부르고 계시더라고요. 그 뒤로 저도 혼자 거울을 보면서 연습했어요. 그래서 지금도 미간에 주름이 잡혀 있어요. 뭐랄까, 트로트가 제 몸에 밴 것 같아요. 찬송가도 트로트처럼 불러요(웃음). 제딴에는 정성스럽게 부른다, 하면 트로트가 되더라고요.”
![[‘트로트 엑스’ 화제의 3인방]② 아따, 참말이여! 구자억 목사](http://img.khan.co.kr/lady/201407/20140709143027_2_lady07_355.jpg)
[‘트로트 엑스’ 화제의 3인방]② 아따, 참말이여! 구자억 목사
늘 ‘꿈을 갖고 멋지게 살라’라고 설교하지만 정작 본인은 매너리즘에 빠져 있던 즈음, ‘트로트 엑스’의 오디션 공고를 보게 됐다. 본인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해보고 싶다는 호기심도 생겼다. 그렇지만 방송이 나가고 난 뒤 처음 그가 트로트 찬양을 시작했을 때에 그랬듯, 아니 그보다 더 큰 비판의 목소리를 들어야 했다.
“종교는 민감한 부분이니까요. 목사이기 때문에 악성 댓글의 수위가 더 셌던 것 같아요. 성경 말씀으로 비난하는 분들도 계셨고…. 어떤 분은 ‘지금 크게 잘못 가고 있다’라며 저를 만나야겠다고 하시고, 또 어떤 분은 ‘젊은 목사가 연예인 병에 걸렸다’라며 혀를 차셨어요. 만약 제가 조금이라도 꺼림직한 게 있었다면 민망했을 거예요. 하지만 저는 돈이나 명예, 인기를 위해 노래를 부른 게 아니었으니까요. 제 스스로 즐겁고 떳떳한 일이라 판단했기 때문에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악의적으로 보는 분들보다 좋게, 응원해주시는 분들도 많았고요.”
가장 떨렸던 순간은 역시나 첫 무대. 초반 열광적인 반응을 보인 심사위원들이 후반부로 가면서 ‘취소’ 버튼을 눌렀기 때문이다.
“꿋꿋한 척했지만 너무 창피했어요. 속으로 별별 생각을 다 했죠. 내가 뭘 틀렸나, 윙크를 괜히 날렸나, 그러면서요(웃음). 입이 바짝바짝 마르더라고요. 다행히 개인기를 보여주면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지만요.”
고등학교 졸업 이후 오직 교회밖에 몰랐던 그에게 세상 사람들과의 소통은 즐거움 그 자체였다. 생각을 나누고 삶을 공유하며 사고의 장을 넓혀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물론 이제야 밝히는 힘든 점도 있었지만.
“같은 팀이었던 인디밴드 레이지본이나 외국인 참가자 로빈과 생각을 나누면서 신세계를 만난 기분이었어요. 다만 힘들었던 건 전 새벽 5시에 일어나 새벽 기도를 해야 하는데, 이 친구들은 늘 늦게 연습하는 거예요. 살인적인 스케줄을 맞추는 것이 힘들었어요. 또 레이지본 친구들은 뭐랄까, 음악색도 뚜렷하고 개성이 있더라고요. 조금씩 친해지면서 말을 편하게 하게 됐는데, 어찌나 거칠던지. 처음엔 깜짝깜짝 놀랐어요(웃음).”
그에게 음악은, 트로트는 세상과 소통하는 언어다. 표현에 있어 코믹이란 장르를 더한 건, 교회에 대한 다소 부정적인 선입견을 부드러운 시선으로 바꾸고자 한 나름의 장치이자 배려였다. 앞으로도 자신의 ‘끼’를 활용할 기회가 있다면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여러 제안을 받았는데, 저는 교회가 소속사예요. 목회자 안수를 받았으니 그 안에서 잘 풀어가고 싶어요. 그리고 교회 안의 사람들은 물론 교회 밖의 사람들도 같이 들어도 좋은 음악을 만들고 싶어요. 최근에도 ‘우리네 인생’이란 곡을 썼는데 파이널 무대에서 부른 ‘공’과 비슷한 느낌이에요. ‘헛되고 헛되도다’는 전도서의 구절이기도 하고요. 그 노래를 들고 예전처럼 장터에 나가 즐겁게 노래하면서 찬양할 거예요. 행복을 전하면서(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