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잘생긴 얼굴인데 잘생겼다는 말보다는 반듯하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린다. 바로 배우 지성(37)을 두고 하는 이야기다. 그가 과학 인재들을 다룬 드라마 ‘카이스트’로 데뷔한 이력이나 배우 이보영과 6년간의 열애 끝에 결혼했다는 사실에서 오는 선입견만은 아닐 것이다. 어떤 작품에서든 흔들림 없는 연기를 보여준다는 것이 배우 지성에 대한 반듯한 믿음을 만든다.

배우 지성, 사랑과 우정을 말하다
지난 7월 10일 개봉한 영화 ‘좋은 친구들’에서 지성이 맡은 구조대원 현태는 영화에서 돋보이는 배역은 아니다. 가족같이 지내온 친구 인철(주지훈 분), 민수(이광수 분)와 의외의 사건으로 위기를 맞게 되고, 친구들은 현태의 가족을 도우려다 뜻하지 않게 그의 어머니를 죽음으로 내몬다. 영화에서 지성은 허세 많은 인철과 바보처럼 순박한 민수와 같이 개성 강한 캐릭터들 틈바구니에 서 있다. 그는 현태를 돋보이게 만드는 것보다 톡톡 튀는 인물들 사이에서 묵직하게 중심축을 세우는 쪽이다.
영화에서는 현태의 성격이 잘 드러나지 않는데 배우로서 현태라는 인물에 대해 어떻게 이해했나요? 감정 표현을 잘 안 하는 것 자체가 현태라는 캐릭터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했어요. 그것 역시 과거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죽음의 문턱에서 겪었던 일 때문에 생긴 성격이죠. 그때의 트라우마, 미안한 기억 때문에 자기가 다 떠안아버리 게 된 거예요.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청각 장애인과 결혼한 것도 그런 의미로 해석됐어요. 같은 이유로 119 구조대원이 됐겠죠. 119 구조대원으로 일할 때는 거침이 없거든요. 그때 본성이 좀 드러나는 거죠. 안타까운 건 과거의 아픔 때문에 다른 사람을 구하는 직업을 택했지만, 결국 자기 가족과 좋은 친구들은 구하지 못했다는 거예요.
주지훈씨나 이광수씨는 감정을 유감없이 드러내잖아요. 그 사이에서 묵직한 인물을 연기하다 보면 답답했을 것 같아요. 상반된 인물들 틈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을지도 고민이 많았을 것 같고요. 네, 맞아요. 답답함은 당연히 예상했던 부분이라 크게 힘들지 않았어요. 그러나 균형을 어떻게 맞추느냐는 실제 겪게 되니까 상당히 어려웠어요. 그걸 풀기 위해 제 촬영이 없는 날에도 일부러 촬영장에 가서 광수나 지훈이가 연기하는 걸 봤어요. 제가 잘못하면 나머지 두 인물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잖아요. 솔직히 영화를 보면서도 제 연기에 만족하지 못했어요. 속상했죠. 연기 경력 16년 차니까 이젠 결과물을 보면서 어느 정도 자신감을 느낄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아요. 선배들이 고민하던 모습이 스쳐가면서 절로 고개가 숙여지더라고요.
어떤 부분이 그렇게 부족해 보였나요? 균형을 어떻게 잡아야겠다고 계산하지는 않았어요. 머릿속으로 계산해서 연기하면 위험한 선택으로 갈 수 있으니 가슴과 마음으로 받아들이려 했죠. 그런데 기술 시사 때 처음 영화를 보면서 문득 ‘아임 낫 소 해피’라는 감정이 떠올랐어요.
스스로에게 인색한 편인가 봐요. 자신에게 인색한 건 맞아요. 제 경력에는 그보단 더 잘했어야 하지 않나 싶었어요. 제가 잘해서 상대 배우들이 감정을 증폭시킬 수 있게끔 하고 싶었거든요.
균형을 잘 맞췄다고 느낀 장면 중 하나가 어머니 빈소에 문상 온 친구들을 맞이할 때였어요. 오열하지 않으면서도 약간의 눈물로 충분히 감정을 표현했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감정이 맞는 것 같았거든요. 현태라면 친구들 앞에서는 울 것 같지 않았어요. 반대로 현태가 친구들이 범인인지 모르고 “그놈 잡아야겠다”라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두 사람이 앞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친구들과 얘기하고 있지만 내가 누구와 얘기하고 있는지 모르는, 그런 느낌에 집중했죠. 촬영 전에는 심장이 쿵쾅쿵쾅 뛰더라고요. 딱 앉고 나서 소주 한 잔을 입에 털어 넣었죠. 진짜 소주요. 가슴을 타고 내려가는 쓴 느낌을 느끼면서 연기를 시작했어요.
술 먹는 장면에서도 일부러 술을 안 마시는 성격 같은데요. 네. 배우들마다 방식이 다른데, 저는 술에 기대면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술을 마시면 해롱거려서 연기에 집중이 안 돼요. 이번 경우는 특별했죠.

배우 지성, 사랑과 우정을 말하다
카메라가 돌기 전 단계부터 철저히 준비하신 거군요. 한 줄기 눈물이 흐를 때, 됐다는 느낌이 왔죠. 눈물의 양 조절에 성공했다가 아니라 충분히 쓰라린 감정에 도달했다는 느낌이었어요. 그때 카메라가 제 정면과 옆에 있었는데, 왠지 편집상 측면 카메라가 찍은 걸 쓸 것 같았죠. 자연스럽게 눈물이 옆으로 떨어졌어요. 저도 놀라운 신이었어요. 집중을 잘한 거죠.
아내는 친구 같은 동반자이자 나를 설레게 하는 여자
지성은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꼼꼼하게 준비하는 반듯한 배우다. 자신의 촬영이 없는 날에도 동료들의 연기를 보면서 캐릭터를 잡았다. 인터뷰 내내 자신의 연기 경력보다 부족한 연기였다고 말했지만, 영화 속 연기와 비교해보면 겸손에 가까운 말이다. 영화에서 그는 ‘좋은 친구들’을 위해 눈물을 흘린다. 두 명의 친구들도 처벌보다는 ‘현태가 알고 슬퍼할까 봐’라는 이유로 선뜻 자수하지 못한다. 법의 형법보다 친구가 느낄 배신감이 더 두려운 것이다. 그는 지난해 결혼한 뒤로 우정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친구의 중요성을 결혼식 때 절감했다고 들었습니다. 주례 없는 결혼식이라 두 친구에게 편지 낭독을 부탁했어요. 솔직한 말들을 그대로 듣고 싶었죠. 그 친구들의 편지글을 듣는데 예상치 못하게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치더라고요. 결혼식 날 무척 떨렸는데, 그걸 들으니 떨리지도 않고 차분해졌어요. 눈물이 나려는 걸 꾹 참았죠.
어떤 내용이었나요? 한 명은 부모님들끼리 친하셔서 어릴 적부터 유모차를 나란히 타고 다닐 정도였고, 다른 한 명은 고등학교 동창이에요. 저를 오래 알고 있는 친구들이라 대단한 내용은 아니지만 우리가 좋았던 때를 기억하고 있죠. 제가 고등학교 때부터 배우가 꿈이라고 하면 둘 다 웃었거든요. 그래도 고등학교 동창인 친구는 독서실에서 같이 연기해주었죠. ‘유모차 친구’는 초등학교를 같이 다니다 제가 전학을 가면서 헤어졌고, 그 뒤에 편지를 자주 보내줬어요. 그런데 제가 답장을 한 번도 안 했거든요. 답장을 안 써줬다고 원망하는 내용의 편지글이었는데, 갑자기 제가 순수해지면서 돌아갈 수 없는 시간들이 떠올랐어요. ‘너희들이 진짜 내 친구구나’ 싶었죠.
남자들의 우정이란 여자들의 그것과 어떻게 다른가요? 영화를 본 여자들이 그러던데요. 여자들은 바로 불러놓고 “네가 우리 엄마 죽였지? 솔직히 얘기해봐”라고 얘기한다고요(웃음). 그런 걸 보면 남자들은 미련한 구석이 있어요. 신중하게 해결하려다 그르치는 경우가 많죠. 여자들은 더러우면 바로 청소하는데, 남자들은 괜히 생각만 많이 하다가 행동도 더뎌요. 우정과 의리에서도 그런 부분이 있죠. 남자들은 쿨한 척하지만 서운한 것도 금방 느껴요.
어떤 친구가 좋은 친구들일까요?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듯이 전화하면 바로 뛰어올 수 있는 친구요. 그게 쉬워 보여도 어려운 거잖아요. 항상 함께할 수 있는 친구가 좋죠. 좋은 친구들의 의미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시간을 점유한 친구들이 아닐까 싶어요. 마흔이 되고 환갑이 지나도 같이하는 친구들이요. 만나서 예전 추억을 되새기는 거죠. 사실 저처럼 주변에 사람이 많은 직업은 더욱더 오랜 친구들이 소중해요. 오래된 친구들은 제 일상에도 영향을 주거든요. 저를 초심으로 돌아가게 해주죠. 그런 친구가 있다는 점에서 저는 부자라고 생각해요.
지성의 말대로 그는 부자다. 일생의 상당 부분을 점유한 친구들이 있고, 앞으로 일생을 함께할 친구인 아내까지 얻었다. 결혼식장에서야 웨딩드레스 입은 이보영의 모습을 처음 봤다는 지성은 “보는 순간 무척 떨렸다”라고 당시의 기억을 떠올렸다. 결혼한 뒤 아내는 매일 그에게 아침을 차려준다고. 아침상은 아내가 그에게 주는 상(賞)이다. 공복 상태에서 조깅을 하고 싶지만 그렇게 말하면 이 상이 영원히 없어질 것 같아 말하지 못한다는 그에게서 결혼 뒤 얻은 충만한 행복감이 느껴졌다. 연애할 때는 자주 싸웠지만 결혼한 뒤에는 되레 싸우지 않는단다. 아내는 그에게 연기라는 같은 길을 가는 동반자라는 점에서 더욱 소중한 친구다. “영원한 동시에 소중한 친구, 그리고 나를 설레게 하는 여자”. 지성은 아내 이보영을 이렇게 표현했다.
든든한 친구를 가진 ‘부자’로서의 여유 때문일까. 그는 돋보이지 않을 수 있는 배역을 자처해 맡은 것에 대한 의미를 말하며 스스로 나이 얘기를 꺼냈다. “나이가 들어가고 있는데, 생김새는 제 나이로 보이지 않는다”라며 반듯하고 어려 보이는 외모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나이가 주는 느낌에 맞게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싶다”라고 말이다. 그가 반듯한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까지 하고 싶은 건 단 하나, ‘연기’다. 지성은 “일그러진 얼굴을 통해 30대 후반에서 40대로 나갈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라고 강조했다. 그렇게 말하는 지성에게서 반듯한 얼굴보다 반드시 그렇게 해낼 것 같다는 믿음이 더 크게 보였다.
■기획 / 노정연 기자 ■글 / 박은경 기자(스포츠경향 엔터팀)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