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영화에서 멜로영화까지 박범수 감독의 레드카펫

에로영화에서 멜로영화까지 박범수 감독의 레드카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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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올 한 해 개봉작 중 가장 이색적이고 인상적인 영화를 꼽는다면 단연 ‘레드카펫’이다.에로영화의 현장을 그렸다는 설정도 흥미로웠지만, 메가폰을 잡은 감독의 실제 경험담을 바탕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이 더욱 호기심을 자극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 배우보다 더 화제가 된 박범수 감독을 만났다.

에로영화에서 멜로영화까지 박범수 감독의 레드카펫

에로영화에서 멜로영화까지 박범수 감독의 레드카펫

에로영화계의 명감독
영화 ‘레드카펫’은 에로영화계의 어벤져스 군단과 이들이 함께 작업을 하게 된 아역 출신의 톱 여배우 이야기를 다룬 로맨틱 코미디다. 10여 년간 에로영화계에 몸담았던 박범수(36) 감독 자신이 보고, 듣고, 느꼈던 부분들을 매끄럽게 녹여 재미를 더했으며 윤계상, 고준희, 오정세, 황찬성(2PM) 등의 배우들을 앞세워 캐릭터에 힘을 불어넣었다. 물론 그 과정이 수월하진 않았다. 무엇보다 ‘에로영화를 만들던 감독’이라는 수식어가 선입견을 갖기에 충분한 조건이 됐다. 그럼에도 그는 당당했다. 오히려 무엇이 부끄럽냐고 반문했다.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었던 과거는 그렇게 긍정의 자신감으로 플러스됐다. 어쩌면 그의 영화에 묻어 있던 진한 감동과 따뜻한 웃음도 바로 이 긍정의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경력이 굉장히 특이해요. 어떤 계기로 에로영화에 입문하게 됐나요?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방송작가가 꿈이었어요. 실제로 KBS의 코미디 프로그램 막내 작가로 일했고요. 어느 날인가 한 선배가 10년은 버텨야 메인 작가가 될 수 있다는 말을 했는데, 그게 그렇게 충격적일 수가 없었어요. 그 길로 일을 관뒀어요. 그리고 학교로 돌아와 조교 일을 하면서 아르바이트로 한 일이 계기가 돼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죠. “직급이 없으면 가지 않겠다”라고 했는데 과장 명함을 주시더라고요. 냉큼 오케이를 하고는 입사했어요. 나중에 보니, 그냥 직함만 과장이었지만요(웃음). 연예, 코미디 등 여러 장르의 영상물을 제작하던 회사였는데, 그중 하나가 성인용 영상물이었어요. 한두 개가 이른바 ‘대박’이 나면서 수익이 생겼죠. 그러면서 회사도 점점 그 분야에 초점을 맞추게 됐고요. 한번은 대본들을 보는데, ‘나도 쓸 수 있겠다’ 싶은 거예요. 그렇게 대본들을 구해 공부를 하면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어요.

그럼 처음엔 감독이 아닌 작가로 데뷔를 한 거네요? 네. 그런데 시나리오를 본 감독들이 제 코드를 이해하지 못하더라고요. 이런 대접을 받느니 내가 만들고 말겠다 싶어서 본격적으로 연출 공부를 시작했어요(웃음). 돌이켜보면 참 당돌한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어쨌거나 돈을 벌어야 했던 터라 대학을 다시 갈 상황은 아니었고 기본기는 쌓아야 했으니, 관련 아카데미나 학원을 다니면서 이것저것 배웠어요. 장진 감독님이나 류승완 감독님처럼 영화 연출이 전공이 아니어도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내 나이 서른엔 에로영화 업계를 평정하고 충무로로 입성하리라’ 하면서(웃음).

노력을 굉장히 많이 했겠네요. 노력도 노력이지만 고생이 많았죠. 하지만 그 덕에 다양한 연출 경험을 할 수 있었죠. 조명에 대해 배우고 온 날엔 그걸 써먹고, 편집에 대해 배우고 온 날엔 또 그걸 활용해봤어요. 차츰 실력이 늘었고, 업계에서도 제법 잘 만든다는 평을 듣게 됐죠. 그렇지만 딱 거기까지더라고요. 그때부턴 전략을 수정해 일단 시나리오 공모에 집중했어요. 그게 인연이 돼 상업영화 제작사와도 인연이 닿은 거고요.

사실 잘 알려진 세계가 아니다 보니 촬영 현장이 가장 궁금하긴 해요(웃음). 여러 어려움이 있었을 텐데 무엇이 가장 힘들었나요? 장소 섭외요. 한정된 장소에서 여러 컷을 만들어내야 했거든요. 양평에 한 펜션촌이 있는데, 저희는 그곳에서 주로 찍었어요. 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요즘엔 에로영화의 메카라고 불려요. 한번은 아는 분 중에 헬스클럽을 운영하는 분이 계셨는데, 쉬는 날 빌려주겠다고 해서 시나리오를 변경해 배경을 헬스클럽으로 만든 적도 있어요. 에로영화는 장소만 바꿔도 다른 영화가 돼요(웃음). 또 어려웠던 건 아무래도 찍는 편수와 수익이 비례하다 보니 다작을 해야 한다는 점? 그러면서 속도에는 자신이 생겼어요.

에로영화에서 멜로영화까지 박범수 감독의 레드카펫

에로영화에서 멜로영화까지 박범수 감독의 레드카펫

일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나 사회적 편견 때문에 답답한 적도 있었을 것 같아요. 초반에는 그랬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무뎌졌어요. 그리고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는 선입견을 갖는 게 당연한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굳이 서운함을 담아둘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고요. 그 뒤로는 오히려 선입견을 즐겼어요. 대부분의 감독들이 가명을 쓰는데 전 제 이름 석 자를 걸고 촬영을 했죠. 그리고 선입견이라는 게 숨기면 숨길수록 더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게 되더라고요.

본인의 작품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꼽자면? 아무래도 첫 작품이 가장 기억에 남죠. 또 기획물들도 애정을 갖고 찍었어요. TV로 치면 예능 프로그램 같은 건데요. 에로영화 배우들이 출연해 토크쇼도 하고 리얼 버라이어티도 하고 그러는 거예요. 이를 테면 ‘1박 2일’을 패러디한 ‘6박 9일’ 같은 작품?

인생이라는 작품의 레드카펫을 밟다
‘해준대’, ‘나도 아내가 입었으면 좋겠다’…. 그의 손을 거친 작품만 2백70여 편이다. 누구보다 열심히 찍었다. 그랬기에 후회도 없었다. 하지만 피드백이 없는 작품들은 때때로 아쉬움으로 남았다. 상업영화에 눈을 돌리게 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박 감독만의 독특함과 실험정신은 이번에도 통했다. 그가 쓴 시나리오 ‘레드카펫’은 2012년 부산 영상위원회 영화기획 및 개발지원사업 공모전에서 1위를 하며 제작에도 급물살을 탔다.

한편으로는 보수적인 공간이 또 영화계잖아요. 시나리오가 아무리 좋아도 에로영화 현장이라는 소재나 감독의 경력이 문제 됐을 수도 있었을 텐데요. 저도 그 부분이 굉장히 걸렸어요. 그래서 시나리오에 더 많은 공을 들였어요. ‘심사위원들이 무조건 다음 장을 보게 만들자’ 하는 마음으로요. 총 여섯 작품이 최종 심사에 올라갔는데 그중에는 ‘나의 독재자’, ‘좋은 친구들’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기성 감독님들의 작품도 있었어요. 마지막 피칭을 하러 간 날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해요. 마치 저만 다른 세계에서 온 느낌이 들어 기가 죽었는데, 그 전까지 집중을 하지 않던 분들이 ‘저는 에로영화 감독입니다. 제가 만든 영화들을 보여드리겠습니다’ 하면서 화면에 제목들을 띄우는 순간 시선이 확 쏠리더라고요. ‘아, 됐다’ 하고 자신감이 생겼어요(웃음). 지금 생각해보면 다른 무거운 작품들과 톤이 다른 것이 최종 선정의 결정적 원인이 아닐까 싶어요. 그 후로는 크랭크인까지 빠르게 진행됐어요. 공모전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이 정말 대단한 거더라고요. 다른 감독님들을 영입하자는 걸 무조건 제가 할 수 있다고 큰소리도 쳤죠.

‘레드카펫’ 개봉 후 사람들의 시선이 어떻게 달라졌나요? “잘하네”라는 말은 듣지 못했지만, 그 전까진 걱정의 마음을 담아 “안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분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개봉 후엔 “특별하고 신선해서 좋았다”라는 분들이 더 많아졌어요. 어떤 분은 “에로영화 감독 출신임을 밝히지 말라”라고 하셨는데, 보신 뒤로는 “정면 돌파해서 더 승산이 있었던 것 같다”라고도 하고요.

영화는 온전히 감독에 의해 만들어지는 그림이잖아요. 어떤 부분에 가장 큰 초점을 맞추고 촬영했나요? 에로영화를 연출할 때 어떤 영화는 조명을, 어떤 영화는 편집을 집중적으로 신경 썼어요. 마치 영화제 출품작처럼 심오한 척도 해보고, 겉멋도 부려봤죠. 그런데 어떤 경우에도 진정성이 있는 영화, 진심이 담긴 스토리는 이기지 못하더라고요. 사실 ‘레드카펫’을 통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특수한 일을 하지만 사람들은 다르지 않다’였거든요. 저는 웰메이드보다는 이야기에 집중했어요. 부끄럽지만 제 강점이 배우들을 잘 이해하는 거예요. 성인영화는 배우들에 대한 의존도가 상당하기 때문에 대화를 많이 해야 했어요. 그런 부분들이 이번 영화에도 알게 모르게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에로영화와 상업영화 촬영 현장, 어떤 점이 가장 달랐는지 궁금해요. 호흡이 많이 다르더라고요. 에로영화를 만들 때는 하루에 40신씩 찍고 그랬는데, 상업영화는 날짜가 촉박하다고 하면서도 하루에 3신이 계획돼 있고, 그런 게 신기했어요. 물론 왜 그래야 하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았지만요. 그런데 크게 놓고 봤을 때는 별 차이가 없었어요. 결국 에로영화도 상업영화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니까요. 그리고 전 에로영화를 찍는 것 자체가 재미있었어요. 단 한 번도 탈출해야 할 공간이라 생각하지 않았어요.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어요. 좋은 장르인데 알아주지 않는다는 안타까움이 더 커요. 게다가 에로배우 중에도 연기 잘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에로영화에서 멜로영화까지 박범수 감독의 레드카펫

에로영화에서 멜로영화까지 박범수 감독의 레드카펫

처음부터 주연배우로 윤계상씨를 염두에 두고 작품을 썼다고 들었어요. 겁이 없었던 거죠. 캐스팅 권한이 전적으로 감독에게 있던 시절을 경험한 저잖아요? 물론 그 정도까진 아닐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캐스팅이 힘들 줄은 몰랐어요(웃음). 전 경험이 있으면 연기에도 그게 표현된다고 생각해요. 그걸 ‘습기’라고 표현하는데, 습기가 있으면 연기 이상의 것이 나와요. 계상씨에게서도 습기가 느껴졌어요. 가수에서 배우가 된 지 7년이나 됐는데 인정받고 있지 못해 힘들어하는 것이 보였고, 편견과 싸우는 절박함이 느껴졌어요. 실제로 대화를 하다 보니 상처를 많이 받았더라고요. 그래서 더 센 역할을 많이 맡고요. 전 오히려 이 친구가 힘을 뺐을 때 좋은 연기가 나왔던 거 같아요. 그런 제 마음이 잘 전달된 것 같아요.

윤계상씨의 연기를 점수로 매긴다면? 어떤 업계이든 톱을 찍었던 사람들은 승부사 기질이 있어요. 계상씨도 그랬죠. 대사 양이 많아도 늘 완벽하게 준비를 해왔어요. 부모님 신이면 우리 부모님은 이랬어, 저랬어, 이야기하다가도 큐 사인만 들어가면 줄줄줄…. 처음엔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어’ 그랬는데(웃음), 나중엔 정말 대단하다 싶었어요. 저와 싱크로율도 거의 일치해요. 다만 훨씬 멋있게 표현됐죠. 갖고 있던 판타지를 모두 넣었으니까(웃음).

‘현장의 이런 디테일까지 신경 썼다’ 하는 것이 있나요? 음…, 그런 신이 있어요. 한 남자가 전화를 받자 주변사람들이 ‘과장님’이라고 부르는, 그런데 윗옷은 멀쩡한데 아래는 속옷…. 실제로 있었던 일이에요. 가족들 모르게 일하는 배우들이 많거든요. 숨기고 싶은 마음을 이해하니까 스태프들이 한마음으로 도와주는 거죠. 또 하나는, 술집에서 에로배우를 알아본 남자가 사인해달라고 한 다음 사진을 찍으면서 성희롱을 하는 대목이요. 종종 있는 일이었어요. 물론 실제로는 영화에서처럼 그렇게 싸우진 않고, 자리를 피하지만(웃음). 영화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꼈어요. 통쾌하기도 하고, 나도 저렇게 하고 싶었다 말하고 싶은….

촬영장 B컷 사진들을 보면 모두가 즐겁게 찍은 게 느껴져요. 결과에는 만족하나요? 예상만큼의 결과가 아니어서 아쉬워요. 그렇지만 우리에겐 IPTV도 있고(웃음). 1천만 영화도 아닌데, 이제 겨우 입봉한 감독에게 이렇게 관심을 쏟아주시는 게 흔한 일은 아니잖아요. 그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었다고 생각해요.

가족에게 보여줄 수 있게 돼 기쁘다는 인터뷰 기사가 인상적이었어요. 솔직하게 수입만 놓고 보면 에로영화 할 때가 나았어요(웃음). 아내 역시 방송 쪽 일을 하거든요. 냉정한 친구인데 결과물이 나오고 나서는 응원을 많이 해주더라고요. 평점도 확인해주고, 모니터링도 해주고요. 워낙 피드백에 목말라 있다 보니 하나하나 감사해요.

다음 작품이 기대됩니다. 일단 상업영화고요. 에로영화를 만들 때부터 제작할 기회가 된다면 해봐야지, 하고 만들어둔 작품이에요. 두 편 정도가 최종에 올랐는데, 유력한 건 코믹 첩보물이에요. 제목도 정해졌어요. ‘전설의 스파이, 미스터 리’라고(웃음). 10년 정도 상업영화를 해본 다음에 그땐 성인영화와 상업영화를 오가며 작업해보려 해요.

■글 / 김지윤 기자 ■사진 / 김정원 ■사진 제공 / 팝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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