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나운서 오유경 流를 모색하다
멀리서 걸어오는 오유경(44) 아나운서를 보고 잠시 눈을 크게 떴다. 오랜만인 탓일까.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거의 매일 방송에서 보아온 얼굴인데 어딘가 달라졌다. 왠지 ‘여배우’의 포스를 풍기며 다가온 그녀가 내미는 명함에는 ‘KBS 글로벌 한류센터 월드사업부 아나운서/프로듀서’ 2가지 직함이 적혀 있다. 방송을 떠나 있던 지난 2년 반 동안 그녀에게 주어진 새로운 이름이다.
“KBS 한류추진단에서 「KWAVE」라는 잡지를 만들고 있어요. 난생처음 기획자이자 편집인의 삶을 살고 있는 중이에요. 방송하는 사람이 아닌 잡지 편집인으로서는 처음 하는 인터뷰네요.”
그녀는 조금 들떠 있었고, TV 속 모습보다 생기 있어 보였다. 귀를 편안하게 해주는 목소리, 단아한 인상은 여전하다.
1994년 KBS 20기 공채 아나운서로 입사해 ‘생로병사의 비밀’, ‘생방송 시사 투나잇’ 등 KBS 교양 다큐, 시사 프로그램의 얼굴이 돼온 그녀다. 안정적인 진행과 전문성으로 여성 진행자로서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해오던 그녀가 돌연 잡지 편집인으로 변신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 스스로도 ‘태어나서 한 번도 상상하지 못한 일’을 하게 된 계기는 커리어에 대한 깊은 고민에서 시작됐다.
“어린 시절부터 아나운서가 꿈이었어요. 학창 시절은 물론 대학교까지 신문반과 방송반의 연장이었고, 바라던 대로 아나운서가 됐죠. 제 삶의 목표는 최고의 MC가 되는 것이었고 그 외에 다른 변화는 별로 생각한 적이 없어요. 20년 전 회사에 입사할 때 제 나이 마흔쯤에는 오프라 윈프리 같은 진행자가 되고 싶다고 얘기했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오프라 윈프리는 최고의 진행자였거든요. 열심히 그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마흔이 눈앞에 와 있더라고요.”
2000년대 초, 그녀가 ‘생로병사의 비밀’의 진행을 맡았을 때까지만 해도 전문 다큐멘터리 분야는 남성 진행자들의 영역이었다. 특유의 부드럽고 지적인 진행으로 프로그램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그녀는 그 공을 인정받아 2005년 한국방송대상 아나운서 상을 수상했다. 뉴스 최초로 여성 진행자가 메인이 돼 진행한 ‘생방송 시사 투나잇’은 방송 3사의 마감 뉴스 경쟁에 불을 붙이기도 했다.
“방송인들에게 가장 큰 상인 방송대상과 한국 프로듀서 상을 받으며 시청자와 방송인들에게 인정을 받았으니 ‘이제 연습은 끝났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본격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자고 마음먹었는데 좀처럼 길이 보이지 않더군요. 스스로에 대해 냉정하게 생각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됐죠.”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아나운서로서 오로지 한길만 보고 걸어온 그녀에게 변화의 욕구가 꿈틀거리던 시기였다. 결론은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변화할 수 없다는 것. 무언가 비우고 내려놓으면 그만큼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있지 않을까, 고민하던 차에 KBS 내에 한류추진단 TF팀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제가 정년까지 회사를 다닌다면 앞으로도 15년이나 남았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예상 가능한 거예요. 아나운서가 만들어진 것을 잘 전달하는 역할이라면 이제 내가 직접 만들어보자, 내 밭을 일구고 싶다, 라는 욕구가 있었죠. 한 달 정도 고민을 하고 TF팀에 지원을 했어요. 그렇게 시작하게 된 거예요.”

아나운서 오유경 流를 모색하다
「KWAVE」는 K-pop을 비롯한 각종 한류 콘텐츠와 스타, 패션, 트렌드 등 다양한 한류 문화 콘텐츠를 담은 글로벌 한류 종합 잡지다. 엔터테인먼트뿐만 아니라 한국의 디자이너들과 전통, 문화 소식도 함께 전하고 있다.
“KBS에서 나오는 잡지라고 해서 방송국 기관지 정도로 보시는 분들도 많았어요. 맨 처음 잡지를 만들 때의 목표가 한류에 목말라하는 해외 팬들에게 좋은 정보를 주고 그만큼 사랑받는 잡지가 되는 것이었어요. 좀 더 투자를 하더라도 그게 가능하다면 낭비가 아니라고 생각했죠.”
그녀는 「KWAVE」의 탄생과 성장을 함께했다. 기획부터 투자 유치, 파트너 선정까지 그녀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이제 발간된 지 2년 반밖에 되지 않은 신생 매체지만 내용과 품질은 여느 잡지들에 뒤지지 않는다.
“당시 해외에서 발간되고 있는 한류 잡지들을 보니 대부분 질적으로 낮고 지나치게 상업적인 면이 많았어요. 한국 연예인들의 사진만 잔뜩 넣어서 만든 정도였는데, 이런 잡지로는 한류 소식을 제대로 전할 수 없겠다고 판단했죠. 잡지도 한류 소식을 재미있게 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모토로 다채로운 콘텐츠를 구상했어요. 앞쪽에는 한류 스타들의 인터뷰를 싣고 뒤에는 한국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담았죠. 한류에 대한 열정이 자연스럽게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한 일종의 장치라고 할 수 있어요.”
기획은 물론 섭외에도 발 벗고 나섰다. 창간호 표지의 주인공은 걸 그룹 소녀시대의 유닛 ‘태티서’. 잡지의 첫 얼굴이니만큼 표지 모델 선정이 중요했다. 섭외에 진땀을 흘렸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쉽게 섭외할 수 있는 그룹이 아니잖아요. 매니저와 여러 번 만나고 통화도 많이 했어요. ‘뮤직뱅크’ 녹화장에도 수시로 찾아갔죠. 아나운서가 와서 이야기하니 매몰차게는 못하겠고, 스케줄은 안 되고. 아마 저만큼 그분도 많이 힘드셨을 거예요(웃음). 아무리 방송국에서 발행하는 잡지라지만 처음 듣는 신생 매체인데다 시간을 초단위로 쪼개 쓰는 연예인들이 인터뷰에 응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창간 초반 힘들었던 시절에 도와준 스타들은 정말 고맙게 생각해요. 잊지 않게 되더라고요. 언젠가 갚아야지 생각하고 있어요.”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창간호를 품에 안는 순간 그야말로 ‘울컥’ 눈물이 날 뻔했다는 그녀의 말을 왠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매달 전쟁 같은 마감을 치르며 2012년 7월부터 현재까지 총 25권의 잡지가 완성됐다. 그녀의 ‘자식’ 같은 결과물은 이제 전 세계 1백37개국의 한류 팬들이 매달 손꼽아 기다리는 반가운 선물이 됐다. 처음 한국어판으로 발행되던 잡지는 최근 영어판과 중국어판을 발행하며 저변을 넓혀가고 있다. 현재 브라질과 괌/사이판, 홍콩에서 「KWAVE」라이선스판이 발간되고 있고 필리핀과 페루, 중국 등지에서도 현지화를 추진 중이다.
“오늘도 인도네시아의 한 한류 팬으로부터 편지를 받았어요. 잡지를 보고 싶다고요. 한국에선 공기처럼 접하는 연예 뉴스가 해외 팬들에겐 정말 큰 갈증이에요. 우리 잡지가 그 친구들에게는 꼭 갖고 싶은 선물이더라고요. 좀 더 질적으로 우수한 잡지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아직 갈 길이 멀어요.”
목표 지향에서 가치 지향으로, 도전 후 변화된 삶
이제 한류 전문가가 다 됐다. 현재 주춤하고 있는 K-pop에 대해 묻자 곧바로 전문가 못지않은 분석이 쏟아져 나온다.
“1세대 한류가 드라마였다면 2세대 한류는 K-pop이었어요. K-pop은 드라마에 비해 팬들의 충성도가 굉장히 높고 그 열기가 미국과 남미, 유럽에까지 강하게 퍼져 나갔죠. 하지만 유행가는 흘러가게 마련이에요. 이제 한류 3.0이 필요한 때입니다. 한류를 강화된 팬덤에서 일반 대중에게로 확대시키는 단계에 왔어요. K-pop의 다이내믹하고 에너제틱한 이미지를 우리나라의 제품과 디자이너, 그 외에 다양한 문화로 연결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봐요.”
한류를 통해 ‘한국은 멋지다’라는 이미지가 형성됐지만 그것이 엔터테인먼트에 한정돼 있다는 것. 이제 의류 한류, 식품 한류 등 즐기는 한류에서 생활 속 한류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말이다.

아나운서 오유경 流를 모색하다
오 아나운서는 요즘 12월 DDP에 문을 여는 「KWAVE」의 미디어 카페 ‘RUE’의 오픈 준비로 바쁜 연말을 보내고 있다. 카페 이름 ‘RUE’는 흐름을 뜻하는 한자 ‘류(流)’에서 따왔다. 한류의 옷을 입은 다양한 디자인 제품을 만나볼 수 있는 공간으로, 한류 3.0을 여는 새로운 플랫폼의 탄생 여부가 시험대에 올라 있다. 사업 진행 과정에 대해 설명하는 오 아나운서에게서 제법 사업가적인 면모가 풍긴다. TV 속, 자로 잰 듯한 모습으로 뉴스를 진행하던 그녀가 아주 먼 예전처럼 느껴질 정도로. 방송 복귀를 묻는 질문에 그녀는 “때가 되면”이라며 시기를 못 박지 않았다. 해외 라이선스화가 활발하게 진행되며 그녀가 책임질 ‘식솔’도 늘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각국의 시차에 맞춰 마감이 진행되다 보니 그녀의 업무는 24시간 온에어 상태다.
“지금으로선 해외 현지 회사들에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주는 것이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완성도 높은 잡지로 그 나라에서 비즈니스를 잘할 때 한류가 퍼져나갈 수 있는 거거든요.”
한류 사업의 구조 자체를 선하게 만들 수 있다면 실패한다고 해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본다. 돈이나 명예가 아닌, 좋은 가치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함께하는 사람들이 성장해나가는 것, 이것이 현재 오유경의 인생이자 바람이다.
“지난 2년 반 동안의 시간이 제 인생에 크나큰 변화였어요. 전에는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안정된 삶이 인생의 목표였다면 나머지 인생은 좀 더 의미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20년 동안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평가받으며 살았잖아요. 앞으로는 내 안의 만족과 성취를 추구하며 살고 싶어요. 저는 모든 가능성을 예상할 수 있는 범위 안에 놓고 살던 사람이었어요. 근데 당장 내일 일도 장담할 수 없잖아요. 인생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는 것, 그래서 더 살아볼 만하다는 걸 도전해보니 알겠더라고요.”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박재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