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해철이 떠난 후, 남은 의혹들
지난 10월 28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23호실. 가왕 조용필을 필두로 가수 이승철, 싸이, 서태지, 한대수 등 쟁쟁한 스타 수백여 명이 일제히 고 신해철의 빈소를 찾아 목 놓아 울며 고인의 죽음을 애달파 했다. 발길 잦은 곳이 스타들의 빈소라지만, 고 신해철의 빈소에는 유독 많은 스타들이 몰려들었다. 일반 팬들의 조문도 잇따랐다. 장례 기간 동안 1만여 명의 일반 조문객이 다녀가는 등 이례적인 장례 풍경은 계속됐다.
“짧은 인생이었지만 삶을 허투루 살지 않았다는 걸 알게 해준 만큼 많은 이들이 슬퍼했어요. 아마 가는 길이 결코 외롭지 않겠죠.” (조문객)
문상객 대부분은 고인을 흠모해온 사람들이 이렇게도 많았다는 것에 대해 대부분 놀라워하는 눈치였다. 시대를 앞서갔던 그의 음악, 우직했던 용기와 열정을 그리워하는 목소리는 장례 기간 내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지성을 갖춘 놀라운 강심장이었죠. 지식인, 정치인의 허위를 광장에서 단 한마디로 날려보내던 신해철. 그 인격, 지성, 음악으로 스스로 시대의 예술가가 됐던 신해철. 당신은 그런 예술가였기에 우리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 있습니다. 그곳에서도 유쾌하게 사시길 기도합니다.” (배우 문성근)

신해철이 떠난 후, 남은 의혹들
그의 마지막을 이토록 슬퍼했던 이유는 그의 죽음에 다급하고 황망했던 사연까지 섞여들었기 때문이다. 그의 팬들은 물론 신해철을 몰랐던 사람들까지, 세간의 관심은 대중 전체로 퍼져나갔다. 고인의 죽음에 대한 사연이 한 꺼풀씩 풀리자 대중은 곧장 달아올랐다. 삽시간에 사회문제로 비화됐고, 미디어는 비상한 관심을 보이며 시시각각 죽음의 이면을 캐나가기 시작했다.

신해철이 떠난 후, 남은 의혹들
가수 신대철과 윤도현, 김창렬 등의 격렬했던 반응은 당시 대중이 느낀 허탈감과 맥을 같이한다. 신대철은 신해철의 장협착 수술을 집도한 S병원에 대해 “문 닫을 각오를 하라”라며 일갈했고, 윤도현과 김창렬은 이례적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욕설 섞인 글을 남기면서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다. 특히 10월 31일 고인의 유해를 화장하기 10여 분 전에 갑자기 소집된 기자회견은 사안의 긴박성을 여실히 드러냈던 상징적인 순간이기도 했다.
이승철, 윤도현, 윤종신, 남궁연, 김동완, 싸이, 밴드 넥스트 멤버 등 동료 가수들은 이날 오전 11시께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서울추모공원 입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고 신해철님의 동료들은 정확한 사인 규명을 위해 부검을 실시할 것을 유가족에게 요청했고, 이에 대해 유가족께서는 심사숙고 끝에 화장을 중단하고 부검을 통해 정확한 사인을 밝히고자 한다는 뜻을 전했습니다.”
동료 가수를 대표한 이승철이 사태의 반전을 알렸다. 의료사고 논쟁에 대한 본격적인 다툼을 예고하기 시작한 것이다. 죽음에 이르러야만 했던 석연찮은 과정과, 특히 사체에서 발견된 천공 등 다수의 미심쩍은 흔적은 의료 과실에 대한 의구심을 여전히 높여가고 있다. 소장에서 음식물이 흘러나온 것도 모자라 심장 인근으로까지 밀려들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많은 이들은 아연실색했다. 이와 더불어 당시 S병원 측의 진료 및 처치 기록, 서울아산병원의 진료 기록 등이 속속들이 흘러나오면서 안타까움은 차츰 공분으로 변해갔다.

정치인의 허위를 광장에서 단 한마디로 날려보내던 신해철. 그 인격, 지성, 음악으로 스스로 시대의 예술가가 됐다.
인터넷에서는 고인의 수술을 담당했던 K원장의 S병원에서 의료사고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글이 수시로 보태지면서 논란은 더욱 확산됐다. 올해에만 3건의 의료소송이 진행되고 있고, 이 밖에 3건 정도의 사례가 추가로 언급되면서 S병원의 K원장이 출연하던 한 종편사 프로그램 게시판에는 하차를 종용하는 글이 시시각각으로 도배되고 있었다. 의료 과실 의심 사고로는 드물게 11월 1일 송파경찰서가 S병원을 상대로 압수 수색에 들어간 것은 고조돼 있었던 안팎의 관심을 대변하는 일이기도 하다. 쟁점은 여러 가지고, 논박은 팽팽하다. 대표적인 쟁점은 ▲해당 S병원으로 내원하게 된 경위와 인연 ▲위밴드 수술 시점과 이를 제거한 시점 ▲동의받지 않은 위 축소 수술 시행 여부 ▲소장 및 심낭 천공의 시기와 이유 ▲음식물 섭취에 대한 S병원의 주장과 이에 대한 반박이다.
의혹투성이가 된 그의 죽음, 쟁점은…
1 위 축소 수술을 동의 없이 시행했는가? 유족에 따르면 고 신해철과 S병원 K원장의 인연은 지난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해철은 당시 S병원 원장이 재직하던 다른 한 종합병원에 역류성 식도염 증세로 내원하면서 K원장과 안면을 텄고, 당시 신해철은 담당 K의사로부터 위 밴드 수술을 권유받아 그해 수술을 시행했다. 신해철은 그 뒤 8년여가 흐른 지난 2012년 해당 의사가 세운 S병원을 새롭게 찾아 담석 제거 수술을 받기도 했다. 이 두 차례의 경험이 지난 10월 17일 신해철을 다시금 K원장 곁으로 불러들였다. 17일 당일 신해철은 복통으로 분당서울대병원을 먼저 찾아 검사를 진행했지만, 대기 환자가 많아 급히 S병원 원장을 찾으면서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운명으로 접어든다.
신해철 유족의 법률 대리인을 맡은 서상수 변호사는 10년 전 받았던 위 밴드 수술은 이번 사안과 직접적으로는 무관하다는 입장을 드러내는 중이다.
“위 밴드 수술 시점과 제거 시점은 각각 2004년과 2012년으로 확인됩니다. 제거 시점은 우리 측도 처음에는 헷갈렸으나 전문의의 자문 아래 2012년 담석 제거 수술 즈음 촬영한 복부 CT를 살펴본 결과 밴드가 그때쯤 사라진 것을 뒤늦게 알 수 있었습니다.”
결국 유족 측 변호사는 이번 사건과 위 밴드 수술은 관련이 없는 것으로 봐야 할 것 같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S병원 역시 위 밴드 수술과 이번 사안에 대해서는 애써 거리를 두는 모습이다. 첨예하게 입장이 갈리는 부분은 장협착 수술 당시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위 축소 수술 시행 여부다. 유족은 국과수의 1차 부검 소견에서 ‘위 부근의 접합 수술 자국’을 근거로 동의도 하지 않은 가운데 위 축소 수술을 멋대로 진행했다고 보고 있다.

신해철이 떠난 후, 남은 의혹들
이에 반해 S병원 K원장은 장협착 수술 당일, 위에 대한 성형 수술을 진행한 적이 없다고 반박을 거듭 중이다.
2 천공의 원인, 업무상 과실인가? 고인의 소장과 심낭에서 각각 발견된 천공은 특히 의문투성이다. 유족 측은 22일 서울아산병원 응급조치 기록부에 ‘소장 천공이 있어 음식물이 흘러나왔다’라는 기록이 남겨진 것으로 미뤄 소장 천공은 S병원에서 일어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S병원은 수술과 무관하다는 입장을 줄곧 견지하고 있다. 오히려 “수술 후 금식 지시를 어겨 장 천공이 발생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유족 측은 즉시 반박했다.
“퇴원 수속 당시 미음 섭취와 이후 개선시 음식물 섭취에 대한 지도가 있었고, 이에 충실히 따라 섭취했습니다. 적절한 의료 행위가 있었다면 고인이 사망에 이르지는 않았을 겁니다. 진료나 치료가 적절했는지, 응급처치는 제때 이뤄졌는지 집중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것이며, 더불어 부적절한 방법으로 의료법을 위반했는지에 대해서도 검토할 겁니다.”
법조계 다수의 인사들은 이 쟁점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국과수의 기 확보된 소견과, 유족 측의 언급이 최종으로 굳어지는 경우를 감안한다면 사안이 유족 측에 일정 부분 유리한 분위기로 전개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3 각계 전문가들의 사건 향후 예상은? 법무법인 원일의 유정훈 변호사는 본지와의 전화 통화에서 “업무의 과실로 죽음에 이르렀다는 혐의가 받아들여질 경우 형사를 넘어 민사 소송에서도 우위에 있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일부 법조계에서는 상해죄 기소 가능성 여부도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유 변호사는 이에 대해 “논란은 있겠지만 이미 알려진 보도(위 축소 수술)처럼 이에 따른 동의나 응급한 정당행위에 준하지 않은 채 이뤄진 수술이라면 불법행위로 볼 수도 있어, 상해죄에 대한 법리 검토 역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외과의사 ㄱ씨 역시 “장협착 관련 수술 이후 진통제가 듣지 않을 정도의 각종 통증이 수반됐던 만큼, 천공 등을 염두에 두고 CT 촬영을 하지 않은 것이 무척 아쉽기만 하다”라는 입장을 보였다. 신해철 유족에게 유리한 그림으로 이해되지만, 일각에서는 생각보다 녹록지 않을 수 있다는 시각도 제기되고 있다. 국내 의료분쟁시 형사 소송의 경우 승소 확률이 10% 안팎, 민사 소송의 승소 확률 역시 30%에 불과하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Korea Alliance Of Patient Organization)는 2011년 사망한 중견 배우 박주아씨 역시 의료과실 논란이 끝내 패소로 끝났다는 사실을 환기시켰다. 당시 박씨는 신해철의 사례와 비슷하게 십이지장에 500원짜리 동전 크기의 2.5cm짜리 천공이 발생했지만 결국 의료분쟁 소송에서 패소했다고 한다. 게다가 S병원 K원장은 지난 11월 6일 경찰 조사에서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이 같은 분위기라면 K원장은 대법원 확정 판결까지 물러서지 않는 한판을 이어갈 것이 분명해진다
신해철의 장례 절차는 부검 절차가 마무리된 지난 11월 5일에 재개됐다. 고인의 유해는 경기도 안성시 유토피아추모관 내 납골당에 일시 안치된 다음 약 3개월 뒤 비석과 함께 야외에서 영면에 든다. 비석에는 고인이 생전 묘비명으로 쓰이길 바란 노래 ‘민물장어의 꿈’ 가사가 새겨질 예정이다.
■글 / 강수진 기자(스포츠경향 엔터팀) ■사진 / 사진공동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