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공급책이었던 여인 윤설희, 입을 열다

마약 공급책이었던 여인 윤설희, 입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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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설희라는 이름이 낯설지도 모른다. 2009년 배우 주지훈이 엑스터시 등 향정신성 의약품을 투약해 불구속 기소된 사건 당시, 그녀도 엑스터시 해외 밀반입이란 죄목으로 구속됐다. 수많은 연예인과 모델들이 연루됐지만 모두 집행유예에 그쳤고, ‘공급책’이란 이유로 그녀에게만 2년 6개월의 실형이 선고됐다. 그저 단역배우였던 그녀가 왜 그런 대범하고도 무시무시한 일을 저질렀던 걸까. 2012년 4월 출소한 윤설희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마약 공급책이었던 여인 윤설희, 입을 열다

마약 공급책이었던 여인 윤설희, 입을 열다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윤설희(30)가 스튜디오에 들어왔다. 여린 몸매와 청순한 외모. 겉모습만 보고 누가 그녀를 5년 전 주지훈이 연루됐던 마약 사건의 공급책이라고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연예계 경력은 10년을 훌쩍 넘었고, 여러 영화에 단역배우로 출연했던 그녀가 처음 언론에 알려진 것은 불행히도 연예면이 아닌 사회면이었다. 그것도 마약사범으로. 왠지 보통내기가 아닐 거라는 예상과 달리 그녀의 모습은 그저 인터뷰 사진 촬영으로 바짝 긴장해 있는 신인 연기자 같았다.

사건의 언론 보도를 통해 윤설희라는 배우를 처음 알았습니다.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어요. 사건 이후 처음 인터뷰를 하는 거라 그 어느 때보다 긴장이 많이 되네요. 저는 그냥 윤설희예요. 과거의 큰 잘못으로 인해 사람들은 여전히 저를 몇 개의 좋지 못한 단어로 기억하시겠지만, 그때의 방황과 과오를 크게 뉘우치고 세상으로 다시 걸음마를 시작한 평범한 연기자로 봐주시면 좋겠어요.

연예계 데뷔는 언제였나요? 2002년에 우연히 길거리 캐스팅으로 연기를 시작하게 됐어요. 그 후 소속사에서 트레이닝을 받으면서 오랜 무명 시절을 지내왔지요. 영화 ‘타짜’, ‘색즉시공2’, ‘불꽃처럼 나비처럼’, ‘당신이 잠든 사이에’ 등에서 단역으로 출연했어요.

그리고 해서는 안 될 일을 했고요? 네. 그때 상황을 떠올리면 마치 음주운전을 하는 사람처럼 제정신이 아니었죠. 매일매일 제멋대로 지냈고 순간의 유혹에 금세 흔들렸죠. 앞뒤 가릴 것도 없이 내리막길을 향해 과속을 하던 저였어요.

그때 친구들, 지금 연락하나요? 아니요. 나쁜 짓을 함께했던 친구들은 다시는 안 볼 각오로 인간관계를 모두 청산했어요. 그 탓에 지금은 친구가 별로 없어요.

그럼 평소 일이 없을 때는 뭘 하고 지내나요? 최근에는 캘리그래피를 통해 제 마음을 써내려가고 글씨를 통해 표현하는 법을 배우고 있어요(그녀는 자신의 캘리그래피 작품을 몇 점 가져와 보여주었다). 그렇게 조금씩 제 생각들을 써보고 주변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작은 종이에 담아 전해보기도 해요. 과거에는 포천 유기견센터와 인연이 닿아 강아지 두 마리를 데려와 키웠어요. 그런데 구속 당시 한 마리가 아파서 떠나고 그 후 나머지 한 마리도 암으로 떠나보냈어요. 출소 뒤에 우울증과 불면증이 심했는데 엄마가 지인에게 분양받아온 강아지와 다시 잘 지내고 있어요.

마약 공급책이었던 여인 윤설희, 입을 열다

마약 공급책이었던 여인 윤설희, 입을 열다

가족관계가 어떻게 돼요? 3남매 중 둘째예요. 군인이셨던 아버지는 제가 네 살 때 돌아가셨고 엄마가 작은 식당을 하시며 억척스럽게 3남매를 키워내셨어요.

훌륭한 분이시네요. 그런데 당시 사건으로 충격을 많이 받았겠어요. 엄마는 제가 교도소에 있는 동안 한 주도 빠지지 않고 한 번씩 면회를 오셨어요. 지금도 엄마의 심정이 얼마나 참혹했을지 헤아릴 수가 없어요. 요즘은 제가 식당일을 도와드리곤 하는데 엄마의 손을 이제야 보게 됐어요. 엄마는 늘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저로 인해 힘들었던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보여 가슴이 아파요.

2년 6개월, 그곳에서는
지난 2009년 마약 투약 및 밀반입 혐의로 기소된 배우 윤설희는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청주여자교도소를 거쳐 대전교도소에서 복역했다. 교도소는 마치 시간이 멈춘 공간처럼 느껴졌다. 일반적인 삶을 살았다면 경험하지 않아도 될 일들이었다. 그녀의 몸과 마음은 피폐해졌고, 출소 뒤에도 안정된 삶을 찾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실형이 선고됐을 때 어떤 기분이었나요? 제가 철이 없었죠. 경찰서에서 그냥 조사만 받고 집으로 갈 수 있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1심에서 2년 6개월이 선고됐고 최종 선고까지 그대로 갔죠. 기절하는 줄 알았어요.

큰 범죄인 줄 몰랐나요? 법에 대해서는 정말 무지했어요. 함께 놀던 친구들은 해외에 나가면 약을 가져왔고, 저 역시 으레 가져오는 건 줄 알았어요. 남동생이 “누나가 만약 싱가포르나 중국에서 잡혔다면 사형당했을 거야”라고 말할 때까지 그렇게 엄청난 일을 한 건지도 몰랐으니까요.

그렇다면 혼자 실형을 받은 게 억울하진 않나요? 제가 억울하다고 주장하면 사건이 커질 것 같아서 두려웠어요. 그럼 더 힘들어질 것 같았어요. 제가 잘못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니까 다른 생각하지 않고 달게 벌을 받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그 생각은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언제였나요? 사건 발생 뒤부터 출소할 때까지 모든 시간이 힘들었어요. 수감 생활을 하면서 제가 얼마나 큰 잘못을 했는지 그리고 저로 인해 가족, 친구, 지인들이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고 있는지 알게 돼 정말 많은 후회를 했어요. 하루하루가 힘들고 무서웠어요. 잠깐의 유혹 때문에 평생 잊지 못할 고통을 가져왔으니까요.

마약 공급책이었던 여인 윤설희, 입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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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감 생활 자체도 만만치 않게 힘들었죠? 그 안에서도 제가 화제의 인물이었던지라 주변의 시선이 곱지 않았죠. 그래서 혼거 생활을 하다가 독거로 옮기기를 반복했어요. 수감 생활이라는 건 경험해보지 못했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거예요. 화장실에 갈 때도 혼자라는 개념이 없고 항상 지켜보는 이가 있어요. 제가 교도소에 들어가기 전에 갑상샘과 목에 혹이 있었는데 수감 기간 중 수술을 받았어요. 치료를 위해 외부 병원에 갈 때도, 심지어 수술대에 올랐을 때도 제 손목에는 수갑이 채워졌죠. 식사를 빠른 시간 내에 마쳐야 했기 때문에 늘 위장병을 달고 살았고 몸무게가 35kg까지 빠졌죠. 지금은 건강을 되찾아서 5kg 정도 찐 거예요.

35kg이요? 지금도 이렇게 말랐는데? 체중뿐만 아니라 구속이 되고 나서 생리가 아예 끊겨서 거의 5년간 소식이 없었어요. 산부인과에 다녔지만 표면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어요. 의사 선생님은 정신적인 이유 때문일 수 있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이제 요가나 운동을 시작하고 생활이 안정되니 몸은 많이 나아졌어요.

출소 뒤에는 어떻게 지냈나요? 사실은 저에 대한 기사들을 출소 뒤에 처음 접했어요. 가족이 일부러 저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더라고요. 그래서 뒤늦게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리기 시작했어요. ‘누가 날 알아보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에 밖에도 제대로 나가지 못했어요.

개명을 하거나 아예 연예계를 떠나 다른 일을 할 생각은 없나요? 형제 중에서 제가 돌아가신 아버지와 외모가 가장 많이 닮았대요. 어린 시절이라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아버지가 남긴 유일한 유산이 제 이름 석 자라서 개명할 생각은 없어요. 사실은 다른 일을 하려고 했어요. 그래서 교도소 내에서 교육생 과정으로 바리스타, 네일아트, 피부관리사를 일을 배우며 자격증도 땄거든요. 감히 연기를 다시 시작할 생각은 못했죠

‘윤설희’로 다시 시작해도 될까요?
그녀는 최근 6개월간 ‘먹이사슬’, ‘사토미를 찾아라’, ‘거짓말2014’, ‘환상’ 등 다섯 편의 영화에 연이어 출연했다. 콘텐츠 시장의 변화로 극장 개봉용 성인 영화의 붐을 타고 그녀는 다작 배우가 될 수 있었다. 물론 영화의 특성상 노출을 피할 수 없지만 그녀가 오랜 무명 생활 동안 꿈꿔왔던 주인공 역의 기회도 찾아왔다.

재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요? 단 한 번도 다시 카메라 앞에 설 수 있으리란 희망도, 기대도 하지 않았어요. 우연한 계기로 제작사에서 먼저 손을 내밀어주셨던 것이 영화 ‘먹이사슬’이었어요. 영화의 시놉시스를 받고 극중 인물과 상황에 대한 이해를 하면서도 ‘내가 다시 할 수 있을까? 일어서도 괜찮을까?’라는 걱정이 정말 컸어요.

마약 공급책이었던 여인 윤설희, 입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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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힘을 준 사람이 있나요? 매니지먼트를 해주고 계시는 현재호 이사님과 신동호 감독님이 아버지같이 격려해주고 용기를 주셨어요. 그리고 영화 메이크업을 담당해주신 신 감독님의 사모님도 같은 여자로서 조언해주셨기 때문에 큰 의지가 됐어요. 이제는 일적인 부분이 아니더라도 고민이 있을 때는 늘 상담을 요청해요.

네티즌들의 의견을 보면 첫 번째보다 두 번째, 세 번째 영화에서 연기가 늘었다는 평도 있어요. 네. ‘먹이사슬’은 저도 좀 어색했는데, ‘사토미를 찾아라’나 ‘거짓말2014’에서는 좀 더 자연스럽고 카메라의 메커니즘을 알아가겠더라고요. 내가 카메라를 의식하고 대사를 한다고 생각되면 관객들 에게 이미 들켜버리는 거죠. 영화의 디테일이 무엇인가에 대해 많이 배우고 있어요.

성인 영화이긴 하지만 주연급 연기를 하고 있는데 과거 단역 할 때와 어떻게 다른가요? 저는 10년 무명 생활 동안 주인공은 특출한 분들의 전유물인 줄 알았어요. 예전에는 주는 대본만 열심히 외워서 하던 연기였다면 이제 작품 한 신, 한 신마다 카타르시스를 스스로 느끼고 있어요. 이제야 진짜 살아 있음을 느껴요.

노출이 부담스럽지는 않나요? 노출은 늘 둘째 문제예요. 제가 캐릭터를 잘 소화할 수 있는지가 중요해요. 그럼 큰 영화든 작은 영화든, 노출이 있든 없든 상관하지 않아요. 욕심인지도 모르겠지만 많은 영화에서 다양한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이렇게 언론과 첫 인터뷰했는데 또 비난을 받으면 어쩌죠? 당연하게 받아들일 거예요. 욕을 먹을 것이 있으면 먹어야지요. 제가 잘못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테니까요. 받아들이겠습니다.

지난 사건은 지금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그 일을 통해 저는 다시 태어나게 됐고 윤설희 저를 다시 찾아가는 것 같아요. 서른이 돼 어른이 됐지만 이제야 남들처럼 평범하게 지낸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어려운 일인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어요.

그간의 일들을 모두 털어놓은 지금, 기분이 어때요?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시간들을 이제 웃으면서 담담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 자체가 행복해요. 보잘것없는 저에게 이런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에 대해 감사할 따름이에요.

■글 / 이유진 기자 ■사진 / 박재찬 실장 ■의상&액세서리 협찬 / 방울이닷컴, 슈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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