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혜영, 1과 1/2의 행복을 채우다
여전히 앳된 그리고 가녀린 체구의 그녀가 약속 장소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밤 쌍둥이가 감기 기운으로 보채 한숨도 못 잤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녀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촬영 전 준비를 하면서도, 촬영 틈틈이 그녀는 쌍둥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남편과 저는 알아들을 수 없지만 진짜 쌍둥이끼리 서로 대화를 하는 것 같다니까요(웃음).”
그룹 투투의 홍일점에서 성공한 사업가로, 정치인의 아내에서 두 아이의 엄마로 인생의 2막을 연 황혜영(42). 크고 작은 시간들이 모여 만들어진 삶이 이제야 형태를 갖춰가는 것 같단다. 모났던 부분은 동글동글하게, 삐져나왔던 부분은 제자리로. 돌이켜보니 그 시작점은 김경록 전 민주당 부대변인와의 결혼이다.
“혼자일 땐 늘 긴장하고 경직돼 있었어요. 사소한 일에도 날을 세웠죠. 그러다 결혼을 하고 나서 정말 많이 변했어요 오랫동안 저를 알고 지켜본 사람들은 결혼 후 훨씬 더 안정을 찾았다고 하세요. 또 어떤 분들은 농담처럼 ‘눈에서 독기가 빠졌다’라고 하시고요. 종종 저희 남편이 그래요. ‘대한민국에서 시집 제일 잘 왔어’라고요. 네, 저도 동의하는 부분이에요. 그렇지만 ‘시집만 잘 왔나? 장가도 잘 갔지’라고 받아치죠(웃음).”
동갑내기 남편은, 그녀에게 친구 같고 오빠 같고 아빠 같은 존재다. 지난 4년간의 결혼생활 속에서 다툼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항상 배려하고 이해해주는 그의 모습에 늘 마음이 약해지곤 한다.
“많이 의지하는 편이에요. 사실 전 애교도 없고 무뚝뚝하거든요. 살가운 면이라고는 하나도 없죠(웃음). 남편 입장에서는 그런 게 불만일 수도 있을 텐데, 오히려 ‘우리 와이프는 참 말을 명쾌하게 해’, ‘시크해서 매력적이야’라고 긍정적으로 받아주더라고요. 게다가 굉장히 가정적이고 자상한 사람이거든요. 늘 고맙고 미안해요.”
어딘가에 소속되고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은 그녀를 더욱 평화롭게 한다. 그리고 여유롭게 한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을 잘 모르겠어요. 다만 속상한 일 겪고 집에 돌아가 남편에게 ‘이런 일이 있었어’라고 말하다 보면 꼭 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더라도 마음이 한결 편안해져요. 그리고 그때마다 생각하죠. ‘결혼하길 잘했다, 늦게라도 하길 잘했다’라고(웃음).”
최근 그녀의 남편은 정치인에서 교육자, 사업가의 길로 행보를 전향했다. 내조의 부담이 줄었겠다는 기자의 질문에 그녀는 처음부터 그런 것이 없었다고 답했다. 그러고는 남편은 자신이 살아온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존중해준다고 덧붙였다.
“전 바뀐 게 없어요. 굳이 찾는다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가벼워진 것? 물론 저도 결혼 전엔 고민을 많이 했죠. 정치인의 아내라고 하면 그림자라는 공식이 있잖아요. 내가 살아온 길은, 내 직업은 그렇지 않은데 그렇게 누를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어요. 혹여 누가 되는 건 아닐까. 하지만 그때도 남편은 제게 그럴 필요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어요. 같이 행복하게 살고 싶어 결혼하는 건데, 한 사람이 희생하고 불편하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요. 물론 그런 삶이 잘 맞고 행복하다면 모르겠지만요. 이제와서 하는 말인데, 남편의 그런 생각이 결혼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웃음).”

황혜영, 1과 1/2의 행복을 채우다
결혼을 결심하게 된 또 다른 이유. 바로 생과 사의 문턱을 넘나들었던 순간을 함께하면서다. 남편과의 연애 초기, 그녀는 뇌종양으로 투병 생활을 했다. 힘든 시간은 두 사람이 서로를 평생 의지하며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은 결정적 계기가 됐다.
“어지러움이 심해 일상생활이 불가능했어요. 옆으로 고개를 돌리기만 해도 어지럽고 운전도 못하겠고, 병원을 갔더니 이명증인 것 같대요. 약 먹고 한 달 정도 치료를 했는데 나아지질 않더라고요. 한참 약을 먹을 즈음 남편을 만났어요. 그 뒤로 통화를 할 때마다 ‘머리가 아파’라고 했더니 큰 병원을 가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신경외과 가서 검사를 받았는데, 뇌종양 진단을 받았어요.”
예상치 못했던 결과였기에 받아들이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무엇부터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망연자실 주저앉아 있는 그녀를 일으켜 세운 건 남편이었다.
“38년의 시간들이 쭉 지나가는데, ‘이게 뭐지?’ 싶더라고요. 그 어떤 말로도 표현이 안 되는 복잡한 마음이었어요. 일찍 데뷔를 해 큰 인기를 누렸고, 남부러울 것 없이 화려하게 살았고, 사업도 잘되고 있었고…. 그런데요, 겉으로 보기엔 정말 잘나가는 골드 미스였을지 모르겠지만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제 안은 곪아 있었나 봐요. 한계에 다다랐던 거죠. 행복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더라고요. 진단을 받고 한참을 병원 복도에 앉아 있었어요. 그때 남편이 전화를 했어요. 제가 ‘뇌종양이라네’라고 마치 ‘옆집 사람 감기 걸렸어’ 하듯 말했대요. 혼자 병원을 보내는 게 아니었다고 자책하던 남편이 먼저 정신을 차리고수술 절차를 알아보고 그랬죠.”
여전히 완쾌된 상황은 아니다. 매년 MRI를 찍으며 건강 상태를 점검해야 한다. 그래도 이만하길 천만다행이라고 감사히 받아들이는 중이다.
“위치가 그리 좋지 않아서 만약 조금만 더 늦게 발견됐다면 위험했을 거래요. 다행히 초기에 발견을 해 방사선 치료로 종양의 크기를 잡아둔 상태예요. 제일 중요한 것이 과로나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이에요. 잠을 못 자면 컨디션이 떨어지고, 그러면 뇌압이 올라가 뇌가 부으면서 수술 부위를 압박할 수 있기 때문에 쓰러질 수도 있고. 그래서 평생 주의를 해야 해요.”
얻은 것도 있다. 건강의 소중함을 알게 됐다. 그리고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챙기게 됐다.
“남편은, 참 힘들게 살아온 지난날에 대한 보상이라고, 선물이라고 생각했어요. ‘남은 인생은 순탄하게, 행복하게 잘 살면 되겠지’ 했는데 그런 위기를 겪고 나니 역시 쉽게 얻어지는 건 없다는 마음이 절로 들더라고요. 많은 시간을 가족과 함께 보내고 싶어요. 빨리 결혼한 사람들은 60, 70년 같이 사는데 저희는 후발 주자들이라(웃음). 일도 중요하지만 같이 여행도 많이 다니고, 시간을 쪼개 만들어서라도 추억을 많이 만들고 싶어요.”
닮은 듯 다른 두 보물
12월은 쌍둥이 대정, 대용이를 만난 지 꼭 1년이 되는 달이다. 그 사이 참 많은 것들이 변했다. 지루하게 반복되던 일상은 아이들과 함께 보내며 짧아졌다. 늘 의욕만 앞서는 서툰 엄마지만 아이들을 낳고 나서 진짜 어른이 된 것 같다.
“지금도 ‘내가 낳은 아이들이 맞나? 어떻게 낳았지?’ 싶을 때가 있어요. 이제껏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들을 낳고 나서 내가 뭘 몰라도 한참 몰랐구나 싶어요(웃음). 왜, 애를 낳아봐야 어른이 된다고, 그렇게들 말씀하시잖아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조금은 이해가 돼요. 태어나서 제일 잘한 일인 것 같아요.”
소중하지 않은 아이들이 어디 있겠냐마는 힘겹게 얻은 쌍둥이기에 더 사랑스럽다.
“결혼하면서 임신을 준비했어요. 마음이 급했죠. 매달 실망하고 좌절하고, 그렇게 1년을 보내고 나니 조바심이 나는 거예요. 하루는 화장실에서 생리가 터진 걸 확인하고는 엉엉 울었어요. 남편은 ‘우리 둘이 잘 살면 되지’라고 위로했지만 어디 그렇게 되나요? 막상 아이들을 낳으니 저보다 더 예뻐하는걸요, 뭐(웃음).”
산 넘어 산이란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구나, 싶을 정도로 임신 과정 역시 순탄치 않았다. 입덧이 심해 3일에 한 번씩 수액을 맞았고, 입덧이 나아졌을 무렵에는 자궁수축이 와 4개월간 병원 신세를 졌다.
“시험관아기도 고민했는데, 그조차 힘든 몸 상태라고 해서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참 신비롭죠? 마음을 비운 지 3개월 만에 임신이 된 거예요. 자연 임신만으로도 기적이었는데, 게다가 쌍둥이라니(웃음). 하지만 역시나 쉬운 건 없더라고요. 노산, 초산, 남아, 다태아…. 고위험군 임신에 다 해당됐거든요. 게다가 입덧이 너무 심해서 16주까지 제대로 먹은 게 없어요. 17주부터 딱 한 달 정말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다시 23주부터는 자궁 수축으로 출산 때까지 병원에 입원해 있었죠. 화장실조차 도움이 없으면 갈 수 없었을 정도로 힘들었어요.”

황혜영, 1과 1/2의 행복을 채우다
“백 일 정도 됐을 때 임신 전 몸무게로 돌아왔어요. 지금은 그때보다 3kg이 더 빠졌는데 육아 고생 다이어트라고(웃음). 몸이 힘드니까 자연스럽게 빠지더라고요. 그리고 여전히 육아는 남편이 전담해서 해요. 다른 집들은 남편들이 아이들 장난감 뭐 샀는지 모르지 않나요? 전 아이들 거 살 때 꼭 허락을 받아야 해요. 아니, 그래야만 될 것 같아서요(웃음).”
1분 차이로 태어난 아이들은, 일란성쌍둥이임에도 다른 점이 많다. 식성도, 성격도, 외모도 다르다.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엄마만이 알 수 있는 미묘한 차이다.
“큰아이는 시크하다고 해야 할까, 저를 닮았어요. 그리고 누가 봐도 넌 형이구나 싶어요. 둘째는 애교가 있어요. 나중에 딸 같은 아들이 될 것 같아요. 야단을 치면 큰아이는 가만히 쳐다보는데 작은애는 코 밑에 얼굴을 들이대면서 야단치지 말라고 애교를 부려요. 신기하더라고요.”
임신 기간 동안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놓았던 쇼핑몰 일도 다시 시작했다. 덕분에 유난히 컸던 그녀의 빈자리가 서서히 채워지고 있다. 기회가 닿는다면 방송에도 도전해볼 셈이다.
“예전에 비해 더 바빠졌지만(웃음), 그만큼 욕심도 늘었어요. 이것도 해보고 싶고 저것도 해보고 싶고, 이것도 감사하고 저것도 감사하고 그래요. 있는 그대로의 황혜영을 보여줄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해보려 해요. 그렇지만 가수, 사업가, 아내 그리고 엄마 등의 수식어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단어는 단연 엄마예요. 앞으로의 소망사항은, 저와 제 가족이 건강한 것! 더도 말고 덜도 많고 지금처럼만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둘이 만나 하나가 됐고, 쌍둥이가 태어나며 또 다른 반이 더해졌다. 네 사람이 마주할 앞으로의 행복이 나머지 반을 채우길 그리고 그 과정에서 또 다른 기쁨이 나눠지길 바라본다.
■글 / 김지윤 기자 ■사진 / 박재찬 ■장소 협찬 / 블뤼테(02-798-1995) ■헤어&메이크업 / 박효심, 김미소(재클린 뷰티, 02-3448-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