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족끼리 왜이래’ 윤박, 반전 있는 남자
실제로 그를 만나게 된다면 등짝이라도 한 대 세게 쳐줄 심산이었다. 피도 눈물도 없이 매정한, 결혼조차 자신의 미래를 위한 투자로 여긴, 그래서 한없이 너그러웠던 아버지가 돌연 ‘불효 소송’을 낼 만큼 화를 자초한 드라마 속 캐릭터가 강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카메라 앞에서 수줍게 웃음을 지으며 어찌할 줄 몰라 하는 그의 순수함에, 초면인 기자에게도 거리낌 없이 쏟아내는 그의 솔직함에, 부족함을 인정하고 더 노력하겠다는 그의 진심에, 꽉 차올랐던 미움은 봄눈처럼 녹아내렸다. 색안경을 벗고 바라본 윤박(27)은, 부드럽지만 강인했고 서툴렀지만 의욕적인 신인이었다. 그리고 웃음이 많았다.
드라마 반응이 꽤 좋은 편이에요. 인기를 실감하나요? 촬영이 없을 때 돌아다니다 보면 많은 분들이 알아봐주세요. 그럴 때 아, 하고 실감을 하죠. 논란의 중심에 선 아들이다 보니, 크게 꾸짖는 분들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는데 다행히 아직까지 대놓고 욕하시는 분들은 못 봤어요. 다만 가끔씩 현장에서 스태프들이 저를 ‘차레기’라고 불러요. 차강재와 쓰레기의 줄임말이래요. 물론 장난이지만요(웃음).
이번 작품으로 대중에게 확실한 눈도장을 찍게 됐는데 하필이면 ‘못된 아들’이라 서운한 점도 있겠어요. 그보다는 안타까움, 두려움이 더 커요. 제가 생각해도 아직은 부족한 면들이 많거든요. 앞으로 더 잘할 수 있는데,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는데 지금의 제 모습을 보시고는 ‘윤박이라는 배우는 연기력이 이것밖에 안 되는구나’라고 단정 짓고 선입견을 갖게 되실까 봐 걱정이 돼요. 때때로 피드백을 얻기 위해 제 기사들을 찾아보는데, 욕만큼이나(웃음) 진심 어린 쓴소리들이 정말 많더라고요. 더 잘해야겠다, 더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드려야겠다, 다짐하곤 해요.
그동안 다작을 한 편은 아니더라고요. 단번에 시청률 1위의 주말드라마 주인공이 됐으니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겠네요. 엄청났죠(웃음). 전작들에 비해 대사도 늘었고, 역할도 크고, 연결된 인물들도 많고요. 매번 지적을 받고 있어요. 좋은 캐릭터를 기다리면서 나름 준비를 많이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 지적들이 이전부터 연기를 할 때마다 받았던, 그래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것들이라 더 속상해요.
드라마에는 어떻게 합류하게 됐나요? 캐스팅 배경이 궁금해요. 오디션을 네 번 정도 봤어요. 대본이 나오기 전에 한 번, 나온 뒤에 세 번 정도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저를 뽑은 이유가 ‘대본 속 인물과 비슷해서’라고 하시더라고요. ‘소화를 잘해낼 것으로 보여서’라고 좋게 해석하고 있어요(웃음).
본인이 생각하기에는 극중 캐릭터 차강재와 어떤 점이 가장 비슷한가요? 꿈을 이루고자 하는 욕심, 열정이 비슷해요. 부끄럽지만 이기적인 모습들도 부분부분 닮았어요. 반대로 달라서 어려웠던 점은 말투? 저는 그렇게 똑 부러지게 말을 못해요. 오히려 어눌한 편이죠.
예전에 세트장에 취재를 간 적이 있는데 윤박씨가 요주의 인물이더라고요(웃음). 다른 현장에 비해서는 NG가 많이 나는 편은 아니라고 하지만…. 아, 이런. 보셨어요? 변명하자면 저희 팀은 한 명이 NG를 내면 그 NG가 전염이 돼요. 저만 그런 게 아니었을 거예요(웃음). 최대한 실수 없이 하려고 하는데 그게 마음 같지 않더라고요. 초반에는 감독님 마음에 들지 않아서 NG가 많이 났는데 요즘에는 제가 성에 차지 않아 NG를 내기도 해요. 용기를 내 감독님께 사정사정하고, 그렇게 재차 찍은 적도 있어요.
촬영장 분위기는 어떤가요? 처음엔 잔뜩 얼어붙어서 말도 제대로 못했어요. 게다가 제가 주로 함께 연기하는 분들이 유동근 선생님, 양희경 선생님, 견미리 선생님이시잖아요. 쟁쟁한 대선배님들이시다 보니 더 그랬죠. 제 위축된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먼저 농담도 건네주시고, 그러면서 긴장을 좀 풀게 됐어요. 지금은 굉장히 가족적이에요. 유동근 선생님의 아들로 출연한다는 게 흔한 일은 아니잖아요(웃음). 감정 흐름이나 발성, 리액션까지 하나하나 가르쳐주셔서 큰 도움이 돼요.
끼 없던 연기자 지망생
2년 전, 윤박은 한 케이블 채널의 시트콤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로 연예계에 첫발을 내딛었다. 스물다섯. 어찌 보면 조금은 늦은 데뷔였지만 그는 인생에서 ‘언제’보다 ‘어떻게’가 더 중요하다는 진리를 알고 있었다.
탄탄한 기본기를 다지기 위해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기과에 진학했고, 드라마 ‘굿 닥터’, ‘사랑해서 남 주나’, 연극 ‘관객 모독’ 등에 출연하며 현장 분위기를 배웠다. 다른 배우들에 비해 타고난 ‘끼’가 없는 것이 단점이라 생각했기에 늘 곱절의 노력을 했다.

‘가족끼리 왜이래’ 윤박, 반전 있는 남자
요즘 연예인 치고는 출발이 늦은 편인 것 같아요. 그 전엔 무엇을 했나요? 열심히 학교만 다녔어요. 학교 4년, 군대 2년을 마치고 났더니 스물다섯 살이 됐더라고요. 제가 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재학 기간 중에는 연예계 활동이 허용되지 않았거든요. 다른 분들은 중·고등학교 때 길거리 캐스팅도 많이 되던데, 전 그 시절 안경을 끼고 다녀서(웃음)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어요.
늦은 출발에 뒤늦은 발견…. 조급함이 컸겠어요. 처음엔 그랬어요. 그런데 인생은 길게, 천천히 봐야 하잖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오히려 평범하게 보낸 학창 시절이나 군대 시절이 더 좋았던 것 같아요. 추억도 많고요. 뭐, 굳이 부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볼 필요가 있나요? 그래봤자 저만 슬픈데(웃음).
배우는 언제부터 꿈꾼 거예요? 어릴 적부터 TV는 제 친구였어요. 드라마, 만화, 스포츠 두루두루 섭렵했죠. 한창 스포츠에 빠져 있을 때엔 IOC 위원장이 되고 싶기도 했어요(웃음). 본격적으로 배우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건 중학생 때. 예고를 가고 싶었는데 아버지께서 반대하셨죠. 괜한 바람이 들어 그런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결국엔 일반계 고등학교를 가게 됐지만 3년 내내 그 꿈이 변하질 않더라고요.
대학가요제 수상 이력이 인상적이었어요. 가수도 꿈 리스트에 있었던 건가요? 전혀요. 제 유일한 수상 경력일 뿐이에요(웃음). 소속사가 JYP 엔터테인먼트여서 음악적으로도 뭔가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실 수도 있겠지만, 저는 대학가요제를 나갈 때도 노래를 못해서 드럼을 쳤어요. 노래는 노력해도 안 되더라고요. 소속사는 이전부터 알고 지내던 실장님과 인연이 돼 들어가게 된 거예요.
지난 인생을 돌이켜봤을 때 이 경험이 정말 배우 인생에 도움이 됐다, 하는 것이 있나요? 슬픈 이야기인데, 그리 행복한 성장기를 보내진 못했어요. 사적인 부분이라 일일이 다 말할 순 없지만 그때의 힘들었던 기억들이 배우 인생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연기를 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어떤 일을 하고 있을 것 같아요? 안 그래도 얼마전 그 생각을 해봤는데,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더라고요. 연기 외에는 하고 싶은 게 특별히 없었어요. 잘하는 것도 없고. 아, 요, 요리? 요리는 좀 잘하는 것 같아요. 잘한다고 다 맛있는 건 아니지만요(웃음).
짧은 시간이었지만 데뷔 후 힘들었던 순간들도 있었겠죠. 배우라는 직업이 사실 음영이 많은 일이잖아요. 맹목적인 기다림이 가장 힘들었어요. ‘굿 닥터’라는 드라마가 끝나고 2, 3개월 정도 일이 없었는데, 누군가에게는 짧은 시간일 테지만 제게는 정말 긴 터널이었어요. 일이 무척 하고 싶은데, 오디션은 모두 떨어지고 그러다 보니 마음도 울적해지고. 안 되겠다 싶어서 주문을 걸었어요. 지금 이 시간은 나의 부족함을 채우라고 주는 시간이다, 그러니 소중하게 쓰자, 라고요. 읽지도 않던 책을 읽고, 운동도 하고(웃음)…. 아마도 이건 앞으로도 계속 견뎌나가야 할 숙제가 아닐까 싶어요.
이번 드라마가 끝나면 어떤 부족함을 채울 계획인가요? 음, 근육(웃음)? 운동을 좋아하지만 주로 유산소운동을 했더니 몸에 탄력이 없어요. 그렇지만 작품이 연이어 들어만 온다면, 그 부족함은 짬을 내서 채워야죠.
벽이 없는 사람이 되고 싶다
시작은 유명해지고 싶다는 다소 유치하고도 막연한 생각에서였다. 결정적인 계기, 드라마틱한 사연도 없었다. 그렇지만 그 생각은 한 발 한 발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윤박의 밑그림이 됐다. 인터뷰 말미, 그는 자신의 삶에 이렇다 할 일탈이 없었던 것이 후회된다고 말했다. 파란만장한 인생의 주인공. 언젠가 연기를 통해 그 꿈을 이룰 그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실제로는 어떤 아들인가요? 무뚝뚝한 아들? 전화 한 통 없고, 대화도 단답형이고…. 그렇지만 강재처럼 가족의 연을 끊자고는 못하는 착한 아들이에요(웃음). 제가 아버지를 참 많이 닮았어요. 저희 아버지가 말도 잘 못하시고 숫기도 없으시거든요. 가끔씩 친구분들 만나서 전화 바꿔주실 때, ‘아, 아버지도 날 자랑스러워하는구나’ 하고 깨달아요. 그리고 돈을 벌어보니까 아버지의 힘듦을 알겠더라고요. 첫 출연료는 아버지께 다 드렸어요. 최근까지 용돈을 받고 다녔는데, 얼마 전부터는 스스로 관리하라고 하셔서 다시 패닉 상태가 됐지만요.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열애 사실도 공개했는데, 이후 여자친구의 반응이 어땠는지 궁금해요. 그리고 소속사 반응도(웃음). 일단 여자친구는 자신의 존재를 숨기지 않고, 부끄러워하지 않고 알려줘서 고맙다고 하더라고요. 전 의도치 않게 그 친구의 인생을 허락도 없이 만천하에 알려서 미안했는데 말이죠. 방송 이후 책임감이 더 생겼어요. 그리고 회사는, 처음에는 살짝 혼을 내셨는데 반응이 좋아서 그런지 이제는 응원해주고 계세요.
사랑을 할 땐 어떤 스타일이에요? 정말 최선을 다해요. 상대방을 많이 배려하려고 하고, 또 제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면서 잘하려고 노력해요. ‘밀당’을 잘 못하거든요, 제가(웃음). 그렇지만 또 어느 순간에 식어버리기도 해요. 어떤 계기가 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오랫동안 쌓여왔던 것들이 표출된 것일 수도 있겠지만 돌아설 땐 냉정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지금 이 순간, 내 인생의 키워드를 꼽자면? 사람이요. 이전까지는 저와 여자친구, 가족이 전부였어요. 그런데 배우가 되고 조금씩 알려지면서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고, 그러면서 그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게 됐어요. 어떻게 하는 것이 잘하는 것일까, 노력해야겠다, 뭐 그런 생각을 해요.
그간의 필모그래피 속 윤박씨는 각각 다른 사람인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떤 색을 갖고 있는 배우인지 좀처럼 파악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어떤 배우가 되고 싶나요? 쉬운 배우요. 왜 그런 사람 있잖아요.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벽이 없는 사람. 저라는 사람을 떠올렸을 때 “아, 그 사람은 까다로워”가 아닌, “아, 그 사람은 참 부드럽고 둥글둥글해”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 현장에서는 감독님이나 다른 배우들과 소통을 잘하고 싶고, 대중과도 잘 섞이고 싶어요. 모나지 않고, 충고도 쉽게 받아들이면서.
다음 작품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좀 밝은 캐릭터였으면 좋겠어요. 이것저것 가릴 처지는 아니지만 그동안은 좀 우울한 캐릭터들이 많았거든요. 그리고 멜로든, 액션이든 장르 구분 없이 제 또래가 많이 나오는 드라마였으면 좋겠고요(웃음).
끝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해주세요. 지금 출연 중인 드라마가 잘 끝났으면 좋겠어요. 마무리를 잘하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그게 당장의 꿈이고 1, 2년 내의 계획은 보다 많은 작품을 통해 대중에게 기억됐으면 하는 거예요. 좀 더 먼 미래에는 제 가정을 꾸리고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고 싶어요.
■글 / 김지윤 기자 ■사진 / 김성구 ■의상&액세서리 협찬 / 마이클 코어스 워치·탑 기어(02-546-7764), 미도(02-3149-9599), 슬로우 워크·잭앤질·티에르(02-540-7817), TNGT(02-3431-8963) ■헤어&메이크업 / 오나란, 승화(바이란 뷰티샵, 02-511-3373) ■스타일리스트 / 김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