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윤, 희망의 비행기를 날리다
1만3천여 개의 섬으로 이뤄진 이국적인 분위기의 나라, 인도네시아. 세계에서 네 번째로 인구가 많은 국가이기도 하다. 빠른 경제성장으로 국내총생산(GDP) 수준이 세계 17위, 세계적인 관광 국가의 칭호를 거머쥐었지만 여전히 인구의 40%가 빈곤층이다. 도심의 이면에는 끼니 걱정에 하루하루가 버거운 아이들의 힘겨운 삶이 숨어 있다. 배우 이상윤(33)이 다녀온 곳도 그랬다. 화려한 도시 뒤편에는 빈민촌이 형성돼 있고 이들은 고작 하루 2달러으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간다.
“신혼부부들이 많이 찾는 곳인 발리도 그렇지만 제가 예전에 촬영차 온 인도네시아는 정말 아름다운 자연으로 가득한 곳이었거든요. 게다가 경제적으로 못 사는 나라가 아니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일까요? 다시 찾은 이곳은 충격 그 자체였어요. 도로를 가운데 두고 양쪽이 무척 다르더라고요. 한쪽은 고층 빌딩에 호화로운 분위기인데 반대쪽은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판자촌이 자리해 있었죠.”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수도인 자카르타 인근에 위치한 반딸거방 쓰레기 마을. 자카르타를 비롯한 인근 도시들에서 배출된 쓰레기가 모이는 곳이다. 차장 너머로 보이는 풍경과 입구부터 코를 찌르는 악취에 그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산을 이루고 있는 쓰레기장에는 값나가는 쓰레기를 주우러 나온 이들로 가득했다. 부모를 따라온 어린아이들은 악취가 나는 물웅덩이와 각종 폐기물, 쥐가 돌아다니는 열악한 환경에 그대로 노출돼 있었다.
“가기 전에 말로만 들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르더라고요. 일반 쓰레기들이 음식물과 뒤섞여 있는데 분리수거도 전혀 없고 그냥 갖다 버린대요. 예전 우리나라의 난지도를 보는 듯했어요. 심한 악취와 벌레 때문에 잠시도 서 있기 힘든데, ‘무엇이 이 사람들을 여기로 내몬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들 스스로 넝마주이의 삶을 선택하진 않았을 텐데 말이죠.”

이상윤, 희망의 비행기를 날리다
다얏보다 더 어린 아이들도 있었다. 도대체 언제부터 이 일을 한 것일까. 쓰레기 더미들 속에서도 팔 수 있을 만한 것들을 골라내는 손길이 능숙하다. 바구니 하나를 가득 채우는 데 걸리는 시간은 1시간. 쉬지 않고 8시간을 일해야 하루 6개 분량을 겨우 모을 수 있다. 꿈을 꾸기에도 부족한 시간에 아이들은 고된 노동과 배고픔에 지쳐 있었다. 흐르는 콧물을 닦아주고 기운을 내라고 응원해주는 것이 이상윤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어른들에게도 위험한 공간이거든요. 촬영하는 동안에도 계속 새로운 쓰레기 차가 와서 바깥쪽의 쓰레기를 안쪽으로 밀어넣곤 했어요. 조금만 방심해도 차에 부딪혀 다칠 수 있는데 조금이라도 돈이 되는 걸 얻기 위해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그냥 달려들어요. 굉장히 아슬아슬한 순간이 여러 번 있었어요. 그럼에도 오늘을 살아내기 위해, 언젠가 학교로 돌아갈 날을 꿈꾸며 다시 쓰레기를 주우러 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참 짠하더라고요.”
이곳에 터를 잡고 사는 외스피 가족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첫째 아들 아담(13)은 일을 하러 간 엄마를 대신해 어린 동생들을 돌본다. 자신의 미래보다 엄마의 힘든 오늘이 더욱 걱정되는 아들의 속 깊은 말 한마디에 눈물이 흐른다.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한창 부모님을 조를 나이잖아요. 어머니께서 마음이 아플까 봐 학교 가고 싶다는 말을 하지 못한다는 그 이야기에 가슴이 아팠어요. 또 어떻게든 동생들만큼은 공부를 시키겠다는 결심도 기특했고요. 이 아이들이 원하는 삶은 끼니를 걱정하지 않고 노력하면 내일을 꿈꿀 수 있는 평범한 인생이에요. 쓰레기 더미에서 꿈을 잃어가는 아이들의 손을 잡아주고 싶어요.”

이상윤, 희망의 비행기를 날리다
인도네시아 한가운데에 있는 숨바 섬. 제주도 면적의 5배나 되는 큰 섬이지만 섬 전체가 석회질 토양으로 돼 있어 나무나 풀이 자랄 수 없다고 한다. 게다가 1년 중 8개월이 건기라 한눈에 보기에도 척박하고 황량했다. 그나마 해안가 근처에 사는 사람들은 바다 자원으로 허기를 채우지만 그 또한 넉넉하지 않다. 산 쪽으로 올라갈수록 상황은 더욱 열악하다. 어디에서도 푸른빛을 찾아볼 수가 없다.
“경비행기에서 내려다본 땅은 꼭 잿더미 같았어요. 식물들도 다 말라 있었고요.”
험한 지형으로 고립돼 있는 황아빙 마을에 도착했다. 맏이인 누르(16)는 일터로 나간 엄마를 대신해 두 동생의 점심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메뉴는 이곳에서만 나는 고구마과의 식물 끌라디. 당도도 떨어지고 퍽퍽해 넘기기 힘든 음식임에도 아이들은 물도 없이 단숨에 먹었다. 2014년은 유일한 식량인 옥수수 농사가 흉년이라 식량난이 더욱 심각하다고 한다. 맨발로 1시간을 걸어가 캐올 수 있는 끌라디도 구하지 못하는 날이면 굶는 수밖에 없다. 허기는 이들에게 일상이었다.
“거짓말 같았어요. 먹을 게 없는 걸 보면서도 ‘설마 정말 굶겠어?’ 하는 의문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마주한 아이들을 보면서 혼란스러워지더군요. 이런 생각을 한 제 자신이 무척 부끄러웠고 미안했어요.”

이상윤, 희망의 비행기를 날리다
“신발을 선물한 게 미안할 정도였어요. 이들에게 도움을 줬다는 제 만족감으로 끝나는 건 아닐까, 하는 마음도 들고요. 근본적으로 해결돼야 할 텐데 이렇게 물품을 주고 하는 건 일시적인, 잠깐의 배고픔을 해결해줄 뿐이잖아요. 아이들을 교육시켜서 세대가 거듭될수록 깨우쳐 갈 수 있게 그 시간 동안 힘을 주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숨바 섬의 또 다른 마을인 까왕후 마을. 이곳 사람들은 원인 모를 혹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목과 등 온몸에 퍼진 혹은 일상생활 자체를 힘들게 했다. 보건소가 전부인 섬 내에서는 치료가 불가능했다. 그중에서도 코에 혹이 있어 친구들 사이에서 ‘코 큰 아이’라고 놀림을 받는 디오는 마음의 문도 굳게 닫은 듯 보였다. 이상윤은 아이와 함께 발리의 큰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영양 결핍이 그 원인으로 보인다고 진단을 내렸다. 다행히 디오는 성공적인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발병 초기 제때 치료를 하지 못해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거나 작은 질환을 막지 못해 큰 병으로 이어지는 이들의 삶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이상윤, 희망의 비행기를 날리다
인도네시아 동쪽 끝 파푸아 섬.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만큼 인도네시아 정부의 지원으로부터도 소외됐다. 정치, 경제, 문화 그 어느 것도 발달하지 못했다. 그중에서도 수상 가옥으로 이뤄진 센터니 마을 사람들 역시 가난하다. 인종이 달라 인도네시아 내에서도 이방인으로 여겨진다. 그들은 스스로를 ‘쌀 위의 죽은 쥐’라고 표현한다. 그래도 희망이 있다면 이들에게는 교육에 대한 열정이 불타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가난의 대물림은 어쩔 수 없더라도 아이들의 배움만큼은 놓치지 않겠다는 어른들의 노력이 한몫했다.
“인도네시아에 봉사활동을 다녀오면서 정말 많이 놀랐어요. 무엇보다 이렇게 가까이에, 이렇게 힘든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에 놀랐어요. 그분들을 보면서 제가 그동안 누린, 무척이나 당연하다고 여긴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들이었는지 깨달았어요. 또 얼마나 낭비했는지도…. 그것조차 누리지 못한 이분들의 삶이 안타까웠고, 조금이라도 변화를 시도하려는 분들을 보면서 참 많이 뭉클했어요.”
하지만 여전히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바로 교통비다. 주로 물고기를 잡아 그 수익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이들의 수입은 한 달 3만원인데, 학교까지 통학하는 데 드는 뱃삯은 하루 1천원으로 비싼 편이다. 통학비 때문에 학교를 가지 못하는 날도 수두룩하다.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수업 일수를 채우지 못해 유급당하는 아이들이 태반이다. 울린(10)도 그중 하나다.
커서 간호사가 되고 싶다는 울린을 위해 이상윤은 수상 가옥을 개조한 학교 설립에 힘을 보탰다. 더 많은 아이들이 함께할 수 있도록 교실도 나눴다. 이름도 ‘희망학교’다. 작은 보탬이 큰 불씨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무료로 탈 수 있는 통학 배도 기증했다.
“학교를 지으며 뿌듯하면서도 죄송했어요. 이 정도로는 턱없이 부족한 도움인 것 같아서요. 그럼에도 다들 무척 좋아해주셔서 감사했고요. 아이들이 바라던 꿈에 한 발 더 다가설 수 있을 것 같아 흐뭇하기도 했어요.”
파란 하늘 아래, 아이들과 함께 꿈을 적은 종이비행기를 날렸다. 굶주림이나 가난에도 흔들리지 않고 날아오를 아이들의 꿈에 희망의 날개를 달아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희망이 있는 한 아이들은 계속 꿈을 꿀 수 있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에게 혼자 극복할 수 없는 가난과 굶주림 대신 희망을 전해줬으면 좋겠어요.”
■글 / 김지윤 기자 ■사진 제공 / 기아대책, ‘KBS 희망로드 대장정’ 제작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