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 백야’ 강은탁의 어느 봄날

‘압구정 백야’ 강은탁의 어느 봄날

임성한 작가의 드라마는 이제 하나의 장르가 된 듯하다. 예상치 못한 전개와 판타지적 설정, 이야기를 풀어가는 그녀만의 독특한 문법은 끊임없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매번 화제와 시청률 면에서 성공을 거둔다. 지난해 KBS-2TV 드라마 ‘순금의 땅’으로 시청자들에게 확실히 눈도장을 찍은 배우 강은탁은 5개월째 ‘압구정 백야’의 주인공 장화엄으로 살고 있는 중이다. 연기 데뷔 9년 차, 드라마 ‘주몽’, ‘에덴의 동쪽’,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 등을 통해 얼굴을 비춰온 그는 최근 2년 사이에 배우로서 가장 바쁘고도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100m 달리기 하듯 달려온 그를 잠시 멈춰 세웠다.

‘압구정 백야’ 강은탁의 어느 봄날

‘압구정 백야’ 강은탁의 어느 봄날

‘압구정 백야’가 시작된 지 벌써 5개월째에 접어들었요.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촬영장인 평창동과 상암 MBC, 일산 MBC 세트장을 오가며 살고 있어요. 일주일에 하루나 이틀 정도 쉬는 날이 있는데 그마저도 정신없이 지나가버려요.

얼마 전 백야와 결혼한 조나단의 죽음으로 극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됐어요. 사실 지금까지는 백야(박하나 분)와 조나단(김민수 분)의 관계가 부각되다 보니 화엄이 이렇다 하게 보여준 게 없었어요. 묵묵히 백야를 지켜보는 키다리 아저씨였는데 이제부터는 상황이 달라졌으니 좀 더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 거예요.

그동안 백야를 바라보며 맘고생이 많았잖아요.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달라질지 궁금해하는 시청자들이 많아요. 이제까지 화엄이 수비적이었다면 앞으로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게 될 것 같아요. 이 친구가 워낙 연애 경험이 없다 보니 처음에는 무작정 지켜줘야겠다는 생각 하나로 불도저 같은 면을 보여줬는데 아마 방법을 깨닫게 될 거예요. 머리가 좋은 친구니 한발 물러나서 전략적으로 작전을 짜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 점에서 저도 연기하는 데 조금씩 변화를 줄 생각이에요.

이제 좀 밝게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요? 너무 갑자기 웃으면 보시는 분들이 놀랄 수 있으니 천천히 웃으려고요(웃음). 화엄이의 프로필을 보면 재벌 2세, 방송국에서 인정받는 PD인데 사회성이 강한 인물은 아니에요. 어찌 보면 전형적인 ‘차도남’ 캐릭터인데 이런 친구가 자신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그만의 방법을 찾는다면 어떻게 변할까, 생각 중이에요. 결혼 당일 남편을 잃은 백야는 극한의 상황에 놓인 거잖아요. 거기서 화엄까지 백야를 힘들게 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천천히 마음을 열게 해야죠.

강은탁이라면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요? 저였다면 일단 사랑하는 여자를 다른 남자에게 보내지는 않을 거예요. 진짜 그 정도로 사랑했다면 집안의 반대가 있더라도 곁에 둬야죠. ‘내 선택에 대해선 내가 책임을 지겠다’ 하고요.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보내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땐 미련 갖지 않고 깨끗이 접을 것 같아요.

‘압구정 백야’ 강은탁의 어느 봄날

‘압구정 백야’ 강은탁의 어느 봄날

화엄은 굉장히 진중하고 좀 무뚝뚝한 성격인데 극 중 역할과 실제 성격이 비슷한 편인가요? 저도 집에서는 말수가 없어요. 형제 중 장남이고요. 그런 면에선 비슷한데 화엄보다는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스타일이에요. 화엄의 묵직함은 제가 지금까지 연기해온 묵직함과는 많이 달라요. 좀 더 각이 잡혀 있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사실 처음에 찾아가는 게 좀 힘들었어요. 지금은 ‘화엄이라면 이 상황에서 그렇게 행동할 수 있겠다’라고 이해하는 편이에요. 사랑에 있어 처음 느끼는 감정들이라 무척 생소하고, 그런 자신에게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 상황. 그런 감정들을 잘 설명해나가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순금의 땅’과 ‘압구정 백야’, 쉴 새 없이 달려온 2년
임성한 작가의 작품에서 항상 배우들이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아요. 이번에 조나단이 죽었을 때도 ‘데스 노트’가 시작됐다는 말들이 많았는데 배우들 입장에서는 어때요?
물론 놀랐죠. 조나단 역의 김민수씨와는 서울예대 연극과 선후배 사이로 막역해요. 처음 소식을 듣고 마음이 무거웠는데, 그래도 김민수라는 배우가 이 역할을 하며 많은 면을 보여줬어요. 박수 받을 때 떠났다고나 할까요? 그것도 강렬한 임팩트를 남기고요. 사실 저는 조나단이 죽는다면 결혼식을 안 올리고 죽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식만 올린 상태에서 죽는 바람에 백야가 화엄에게 오는 길이 더 험난해졌어요. 그래도 살아 있을 때는 화엄이 어떻게든 해볼 만했는데 죽어버려서 더 힘든 골키퍼를 만나게 된 거예요. 맨 처음 백영준(심형탁 분)의 죽음은 백야가 복수를 시작하게 되는 계기가 됐고, 조나단의 죽음은 백야와 화엄의 관계를 변화시키는 중요한 장치가 됐어요. 지금까지의 ‘데스 노트’와는 다르다고 생각해요.

임성한 작가의 스타일이 배우들에게 미리 대본을 주지 않는다고 알고 있어요. 연기할 때 긴장될 것 같아요. 처음 시작할 때 시놉시스가 없어요. 인물에 대한 설명도 굉장히 간략하고요. 저는 처음에 ‘방송국 PD, 묵직하고 차가운 성격’, 이 정도만 알고 들어갔어요. 그러다 보니 풀어가는 과정에서 긴장 상태예요. 저희도 대본을 받으면 무척 떨면서 봐요. 얼마 전에 백야가 바닷가에 가는 신이 있었는데 ‘설마 뛰어들까? 백야가 뛰어들면, 난? 그럼 나도 뛰어드나?’ 이렇게 가슴 졸이면서 봤어요(웃음). 극이 어떻게 전개될지에 대한 호기심은 시청자들과 저희가 별반 다를 게 없어요. 다음 상황을 계산하며 연기할 수 없기 때문에 배우들이 매 상황에 몰입하게 돼요. 생방송 찍는 기분이에요.

어떻게 출연하게 됐는지 궁금해요. 작년 여름쯤 드라마 ‘순금의 땅’ 막바지 촬영 중에 연락이 와서 미팅을 가졌어요. 처음엔 어떤 작품인지도 모르고 1시간 반 정도 얘기만 하다 왔는데 나중에 임성한 작가님의 작품이라는 걸 알았죠. 사실 주변에서 찬반 의견이 많았어요. 전작을 보면 데미지가 클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었고요. 임성한 작가님 작품은 모든 배우들이 한 번쯤은 해보고 싶어 해요. 전 죽을 때까지 배우를 하고 싶은데 배우로서 기회가 닿는 한 많은 배역, 많은 작품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요.

‘압구정 백야’ 강은탁의 어느 봄날

‘압구정 백야’ 강은탁의 어느 봄날

‘순금의 땅’이 작년 8월에 끝나고 ‘압구정 백야’가 10월에 시작됐어요. 거의 쉴 시간이 없었겠어요.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순금의 땅’ 끝나고 ‘압구정 백야’ 대본 리딩 들어갈 때까지 2, 3주밖에 시간이 없었거든요. 그 와중에 부친상을 당해서 더 정신이 없었죠. ‘순금의 땅’이 164부작이었는데, 첫 주연작이었고 또 시대극이다 보니 드라마가 끝난 뒤에도 깊게 빠져 있었죠. 아버지를 보내드리고 새 작품에 들어갔는데 저도 모르게 괜찮아 보이려고 애를 썼나 봐요. 그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초반 모니터링을 해보니 그게 보이더라고요. 극 초반에 화엄이 필요 이상으로 어두웠던 게 저의 그런 상황이 영향을 미친 게 아닌가 싶어 시청자들께 죄송스러운 마음이 있어요.

정말 작년 한 해는 거의 쉬지를 못했던데요. 2013년 봄부터 여름까지 영화를 찍었고, 말부터 ‘순금의 땅’ 오디션을 보고 작품에 들어가서 지금 ‘압구정 백야’까지, 거의 2년 정도를 숨 돌릴 틈 없이 왔네요.

‘순금의 땅’이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 오전 시간대 시청자들에게 톡톡히 눈도장을 찍었죠. 다시 한번 제 가능성을 볼 수 있었던, 배우 인생을 바꾼 작품이에요. 그 작품이 지금 ‘압구정 백야’로 이어졌고요. 요즘 무척 행복해요. 배우로서 쉬지 않고 연기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최고의 행복이 아닌가 싶어요.

150회가 넘는 드라마를 연속으로 한다는 게 쉽지 않을 텐데 체력적으로 힘들지 않아요? 생각보다 잘 버티더라고요. 연기하는 게 재밌거든요. 현장에서 스태프들에게 먼저 장난도 치고, 기다리는 동안에도 재밌는 걸 찾아요. 일 자체를 즐겁게 받아들이려고 하다 보니 즐거워요.

‘압구정 백야’ 강은탁의 어느 봄날

‘압구정 백야’ 강은탁의 어느 봄날

원래 현장에서 스태프들과 스킨십이 많은 편이에요?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군대를 다녀오면서 많이 달라졌어요. 제가 스물아홉에 입대해서 서른 넘어 제대를 했거든요. 군대에서 어린 친구들과 있다 보니 성격도 밝아지고 사람들과도 더 편하게 지내게 되더라고요. 열정은 똑같이 가지고 있었는데, 예전에는 그것을 내면에만 품고 있었다면 제대 뒤에는 표현하고 표출하는 방법을 알게 된 것 같아요.

프로필에 ‘2012년 육군 병장 전역’이라고 적혀 있더라고요. 남다른 의미가 있었군요. 배우로서도 그렇고 제 인생의 전환점이었어요. 2년 동안 예전 모습도 돌아보게 됐고, 인생에 대해 그리고 연기에 대해 좀 더 각오를 다지게 됐어요. 현장에서도 밝아지고 배우로서도 새로운 에너지가 생겼죠.

막연한 믿음에 건 배우의 길, 강은탁의 오늘을 만들다
드라마로는 2006년 ‘주몽’이 첫 작품이에요. 10년 가까이 연기를 한 기간에 비해 작품 수는 그리 많은 편이 아니에요.
작품 수보다 광고 수가 더 많을 거예요(웃음). 소속사와의 문제도 있었고 공백기도 있었어요. 군대도 다녀왔고요. 연극 하던 선배들이 하시던 말씀이 “10년을 버텨라. 그러면 밥벌이는 한다”였어요. 그땐 ‘그래, 10년 버틸 수 있지’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지나왔나 싶어요. 군대를 다녀오고 매니저 형과 “3년만 해보자. 그래도 안 되면 그때 그만두자” 했어요. 완전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했죠. 그때부터 단역, 단편영화, 대학생들 졸업 작품에도 프로필을 넣었어요. 그땐 정말 작은 카메라, 작은 대본이라도 다 경험해보고 싶더라고요. 본능적으로 빨리 감을 찾으려고 했던 것 같아요.

작품을 기다리는 시간만큼 배우들에게 힘든 시간은 없는 것 같아요. 어떻게 버텼나요? 당시엔 멈추면 주저앉을 것 같았어요. 뭐라도 닥치는 대로 연기를 하고 있어야만 버텨낼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제가 적은 나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여기서 잘못되면 인생이 끝날 것 같은 두려움이 문득문득 밀려오는 거예요. 그걸 이겨내려고 쉬지 않고 달려왔어요. 그게 원동력이 돼서 지금 계속 연기를 할 수 있는 기회로 이어지지 않았나 싶어요.

연기자로서 확신이 없었으면 못했을 것 같아요. 아직 바이탈이 조금이라도 움직이고 있으니 언젠가는 크게 튈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을 가졌고, 그 덕분에 당장 앞이 안 보여도 달릴 수 있었어요.

‘압구정 백야’ 강은탁의 어느 봄날

‘압구정 백야’ 강은탁의 어느 봄날

이제까지 그렇게 달려왔고 앞으로 남은 길도 그렇게 갈 건가요? 저에겐 그런 스타일이 어울리나 봐요. 어쨌든 저는 배우로 사는 게 행복하고 연기를 하는 순간에 가장 빛나니까. 그게 다예요. 배우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자기 분야에서 자신의 임무를 해낼 때 가장 멋지잖아요. 그래서 멈추기가 싫은 것 같아요.

힘들 때 에너지가 되는 건 뭐예요? 밥과 술?(웃음) 밥으로 힘내고 술 한 잔 하며 스트레스 풀어요.

야외 활동 좋아하는 편이에요? 캠핑 좋아해요. 매니저 형이 캠핑광이에요. 집에 가면 옥상에 텐트가 항상 펴져 있어요. 시간이 없으니 멀리는 못 나가고 옥상에서 고기 구워 먹으며 캠핑을 하는데 은근히 낭만 있어요. 좋아하는 사람들과 한 공간에서 허심탄회하게 얘기하고 웃을 수 있는 게 행복이잖아요.

주변에 결혼한 친구들 많지 않아요?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마음이 좀 급했는데 지금은 일이 우선이에요. 제가 혼자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주변에 결혼한 친구들 좀 더 약 올리다 하려고요(웃음).

결혼한다면 어떤 여자와 하고 싶어요? 예전에는 꽂히는 게 있으면 그 순간부터 빠져들었는데 지금은 어떨지 잘 모르겠어요. 만났을 때 제가 좀 편안했으면 좋겠어요. 제 직업을 이해해주고 좋아하는 걸 같이할 수 있는 여자. 아, 물론 이렇게 얘기하는 건 저 역시 그렇게 하겠다는 의미예요. 근데 계속 바뀌어요. 남자들은 무조건 “예쁘냐?”부터 묻는다고 하잖아요. 나이가 들면서 그 ‘예쁘냐?’에 포함되는 게 달라지는 것 같아요. 분위기나 표정, 말투, 목소리, 그런 모든 것들이요.

‘압구정 백야’가 이제 중반을 넘어서고 있어요. 다시 절반 열심히 달려야죠. 정말 대단하신 선생님들과 함께하고 있기 때문에 든든하고 가족같이 따뜻해요. 언제나 작년보다는 올해가, 올해보다는 내년이 조금 더 나은 연기자가 되자고 다짐해요. 앞으로 평생 그렇게 살고 싶어요. 사람으로서 또 배우로서.

올봄에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여행 가고 싶어요. 오늘은 진짜 소풍 온 기분이었어요. ‘순금의 땅’ 촬영 다니며 우리나라에 정말 좋은 곳이 많다는 걸 알았거든요. 시간이 나면 다시 한번 가서 당시의 마음과 각오를 다지고 싶어요. 맛있는 것도 먹고 소주도 한 잔 하면서요.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김정원 ■제품 협찬 / 시에로(02-545-5134), 오니츠카타이거(02-543-5231), 톰포드(02-3444-7712), 트루릴리젼(02-3442-3087), CHOII(070-4024-1974), MARK RONSEN(02-514-8070), Mign by Namuhana(02-517-4394), Plac(02-514-0695) ■장소 협찬 / COFFEE CONHAS(02-325-0792) ■헤어&메이크업 / 김경식, 오민지(작은차이, 02-545-9228) ■스타일리스트 / 최원정, 김혜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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