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가문의 영광’과 드라마 ‘파리의 연인’의 성공 이후 그녀는 ‘자고 일어났더니 스타’가 되는 영광을 누렸다. 물론, 엄밀히 말하자면 김정은(40)은 드라마의 후광으로 반짝 인기를 얻고 사그라지는 기초가 부실한 연기자들과는 다르다. 삭발 투혼을 펼쳤던 드라마 ‘해바라기’부터 자신을 코미디 영화의 히로인으로 만들어준 ‘재밌는 영화’, 제2의 전성기를 가져다준 임순례 감독의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까지. 단 1년의 공백기도 없이 작품에 목마른 사람처럼 연기해 온 착실한 배우라는 걸,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노련한 여배우의 모습으로 브라운관 컴백한 김정은
“덕인은 전직 강력반 여형사예요. 아들의 죽음 이후 직장을 그만두고 아들이 다니던 학교 앞에서 작은 밥집을 운영하며 살아요. 평소에는 인심 좋은 밥집 아줌마지만 위기의 순간에 어디선가 나타나, 약한 학생들을 지켜주는 홍길동 같은 면모를 지녔죠.”
‘여자를 울려’는 ‘구암 허준’, ‘계백’을 연출한 김근홍 PD와 ‘금 나와라 뚝딱!’, ‘천하일색 박정금’을 집필한 하청옥 작가가 만든 작품으로 사랑과 용서라는 묵직한 메시지를 전한다. 덕인과 얽히며 사랑에 빠지는 고등학교 교사이자 재벌 3세 역의 송창의를 비롯해 하희라, 이태란, 인교진 등이 합세해 극을 이끈다. 그간 주말드라마를 휘몰아친 ‘막장’ 설정 대신 삶과 사람에 대해 진정성 있게 접근해 건강한 드라마를 만들겠다는 게 김 PD의 포부. 그렇기에 밝고 씩씩한 이미지의 김정은은 캐스팅 0순위였다고.
“아이 잃은 엄마라는 설정이 어렵고 힘들었어요. 그 깊은 마음을 아직 미혼인 제가 어떻게 헤아리고 표현해낼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하긴 할까, 고민이 많았죠. 주위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감독님께 의지하면서 촬영하고 있어요. 엄마 역할은 배우로서 또 하나의 숙제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배워나가는 중이에요.”
미혼 여배우가 아이 엄마를 연기한다는 게 그리 쉬운 결심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그것 또한 자신이 살아보지 않은 인생을 경험하는 것이기에 감사하다며 깊은 속내를 털어놨다.
“아이를 낳아 키운다는 건 여자로서 누릴 수 있는 가장 값진 경험이 아닐까요. 솔직히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고(웃음), 결혼하고 아이 키우는 친구들 보면서 부러운 마음이 컸어요. 이런 상황에서 엄마의 마음을 연기해볼 수 있다는 건 개인적으로 무척이나 의미 있는 일이에요. 그래서 기쁘고 행복한 마음가짐으로 연기하고 있어요.”
성실함이 무기인 배우
그녀는 이번 드라마에서 데뷔 이래 최초로 액션 연기에 도전한다. 무술팀에서 한 달간 혹독한 훈련을 받았고, 강력계 형사들을 만나 인터뷰를 했으며, 지구대 순찰도 함께 돌았다. 로맨틱 코미디의 여왕이 도전한 액션의 세계는 어땠을까.
“액션 배우는 일이야 뭐, 출연료 입금되면 당연히 다 해야 하는 것들이죠(웃음). 농담이고요. 몸은 고되지만 재미있어요. 와이어에 매달려서 몇 미터씩 날아가는 것도 아니고, 사실 액션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한 장면들이에요.”
김정은의 답변은 겸손했지만 액션신을 촬영 중 생긴 상처들로 온몸이 성한 날이 없을 정도로 고생한 그녀다.
“이런 여배우 처음 봐요(웃음). 몸싸움하는 장면이 많아서 얼굴에 는 늘 상처 자국, 몸에는 온통 멍투성이예요. 힘들 텐데도 이렇게 몸 사리지 않고 열심히 해주니 감개무량할 따름입니다. 밥집 아줌마라는 설정이기에 요리도 따로 배웠다고 하더라고요. 사전 준비를 철저하게 해온 모습을 보면서 참 성실하고 영민한 배우라고 생각했어요.”
김근홍 PD의 극찬에 제작진과 동료들 또한 “살신성인의 여배우”라며 입이 닳도록 칭찬을 쏟아냈다. 김정은은 이어지는 칭찬 세례에 수줍어하면서도 작품을 향한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런 말씀 드려도 될지 모르겠지만, 정말 괜찮은 드라마예요”라며 상기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연기하다 보면 제 속이 다 시원해요. 덕인이라는 인물은 문제가 생겼을 때 도망가지 않고 정면으로 부딪치거든요. 하고 싶은 말은 속 시원히 쏟아내고 불의를 보면 어떻게든 도와줘야 직성이 풀리죠. 정말 매력적인 캐릭터예요. 오랜만의 드라마 촬영이라 그런지 찍고 나서 집에 돌아와도 ‘잘했을까?’ 하는 의심이 들곤 하는데. 기우였나 봐요. 출연진들의 호흡도 잘 맞고 작품 자체도 흠잡을 데가 없어요. 시청자분들도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드라마에 빠져들지 않을까 기대하는 중이에요(웃음).”
천성이 밝아 늘 소녀같던 그녀는 해가 갈수록 깊어지고 그윽해졌다. 노련한 여배우로 아름답게 나이 들어가는 김정은은 지금 이 순간도 스스로 끊임없이 발전하기를 꿈꾸는 중이다.
■글 / 서미정 기자 ■사진 / 김동연(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