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혹은 낯선, 배우 장소연

익숙한 혹은 낯선, 배우 장소연

댓글 공유하기
드라마 ‘아내의 자격’과 ‘밀회’를 본 사람이라면 ‘풍문으로 들었소’에서 한정호의 비서 민주영을 연기하고 있는 장소연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좀처럼 속을 들여다볼 수 없는 그녀의 포커페이스 뒤에는 16년 동안 예민하게 벼려온 열정과 내공이 숨어 있다.

장 소연(36)을 처음 본 건 JTBC 드라마 ‘아내의 자격’에서였다. 김희애가 연기했던 주인공 윤서래의 여동생 윤미래 역을 맡았던 그녀에게는 묘하게 시선을 끄는 매력이 있었다. 격정의 드라마를 연기하는 배우들 사이에서 생활의 일부를 만난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녀는 매일 비슷한 시간 지하철역에서 스쳐 지나가는 행인 같기도 했고, 오늘 아침 엘리베이터에서 눈인사를 나눈 옆집 아가씨 같기도 했다. 혹시 배우가 아닌 실제 반찬가게 아가씨(드라마에서 윤미래는 대치동, 도곡동 일대에 고급 친환경식을 표방한 반찬을 공급하는 일을 했다)가 아닐까, 생각했다면 실례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녀는 반찬가게 아가씨도 그리고 처음 보는 신인 배우도 아니었다. 드라마 ‘하얀거탑’에서 간호사 유미라를 연기했고, 20여 편의 영화를 통해 크고 작은 배역을 소화해왔다. 기억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 반드시 존재감의 부재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완벽한 보호색으로 작품 속에 숨어드는 것. 그것이 배우 장소연이 연기해온 방식이었고 이제까지는 꽤 성공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익숙한 혹은 낯선, 배우 장소연

익숙한 혹은 낯선, 배우 장소연

‘풍문으로 들었소’에서 무소불위의 권력 한정호를 위협하는 열쇠를 가진 인물, 민주영으로 ‘발각’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한정호를 수행하며 온갖 밑바닥 정보를 수집하고 미행도 마다하지 않는 경찰대 출신 엘리트 비서. 누가 들을세라 한국말과 일본말을 섞어가며 그를 비웃는 그녀는 충성이란 이름 아래 자신의 목적을 위해 능동적으로 움직인다.

드라마 중반부, 바쁜 촬영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는 그녀는 세 번의 약속을 미룬 끝에 민주영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보일 듯 말 듯한 비밀스러운 미소를 지은 채 말이다. 연극 무대와 스크린에서 잔뼈가 굵은 16년 차 배우, 안판석의 드라마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안판석의 여자’, 중국어와 영어, 일본어까지 4개 국어에 능통한 언어 능력자. 이 밖에 당신이 그녀를 보며 짐작했던 것 몇 가지는 사실과 완전히 다를 수 있다. 장소연이라는 이름조차 말이다.

어렵게 만났네요. 드라마가 이제 막 중반부를 넘어섰는데 현장 분위기는 어때요? 오늘도 밤새고 바로 오는 길이에요. 아무래도 초반보다는 일정이 빡빡하긴 한데, 그래도 분위기가 좋아요. 같이 밤 꼴딱 새고 아침이 되면 웃으면서 “좋은 아침입니다!” 인사해요. 감독님도 그렇고 오랫동안 같이했던 팀이라 서로를 잘 챙기는 편이에요.

안판석 감독과는 ‘하얀거탑’부터 ‘아내의 자격’, ‘밀회’, ‘풍문으로 들었소’까지 네 작품째 함께하고 있어요. ‘안판석의 여자’란 말이 나올 만해요. 감독님과는 2006년 영화 ‘국경의 남쪽’에서 처음 만났어요. 당시 극단에 있을 때였는데 오디션을 보고 1년 뒤에 캐스팅 소식을 들었어요. 그때 처음 감독님과 인연이 시작됐죠. 그 작품을 하고 2년 정도 뒤에 제작사에서 오디션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는데, 그게 ‘하얀거탑’이었어요. 오디션에서는 떨어졌는데 나중에 감독님께서 연락을 주셨어요. 간호사 역이 있는데 진짜 간호사처럼 연기했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한동안 대학병원에서 살다시피 하며 간호사들을 관찰했어요. 그렇게 ‘하얀거탑’을 찍고 그다음 ‘아내의 자격’부터는 오디션 없이 출연하게 됐어요.

믿고 맡긴다는 뜻이겠네요. 여러 작품을 함께한 만큼 스타일을 잘 알겠어요. 현장에서 굉장히 재미있는 분이에요. 신마다 컷을 많이 찍지 않아요. 대본을 보시고 5분 내에 머릿속에 완벽하게 그림을 그리는 스타일이죠. 촬영이 촉박하게 이뤄지는 상황임에도 배우들이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이유예요. 배우 입장에서는 에너지 소모가 적고 무엇보다 믿음이 가요. 개인적으로는 장소연이라는 배우를 믿고 기회를 주신 은인이시죠. 배우로서 감독에게 신뢰를 받는다는 건 행복한 일이니까요. 그래서 더 신경 써서 하게 돼요.

민주영은 속을 알 수 없는 인물이에요. 속으로는 칼을 품고 있지만 겉으로는 웃는 얼굴로, 철저하게 감정을 숨기죠. 연기하기가 만만치 않을 것 같아요. 저에게는 그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그 안에서 여러 가지 상상을 할 수 있는 열린 캐릭터라고 생각했거든요. 정의로운 것 같지만 아주 도덕적인 인물은 아니죠. 일이라는 명목하에 남의 뒷조사를 하고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요. 드라마 속 법무법인 ‘한송’과 관련된 사건으로 자신과 오빠의 인생이 한 번 무너진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해서는 조금씩 속을 드러내지만, 그 외의 감정은 철저히 배제하는 인물이에요.

비서라는 점에서 보면 ‘밀회’에서 연기했던 세진과 같지만 그보단 능동적인 인물이에요. ‘풍문으로 들었소’에서 갈등과 불안을 유발하는 한 축을 담당하고 있죠. 그동안 여리고 여성스러운 이미지의 역할을 많이 했는데 민주영은 강단 있고 똑 부러지는 인물이에요. 경찰대 출신에 무술 유단자고요. 이제까지 해보지 않은 배역이라 더 재밌게 연기하고 있어요.

이렇게 얘기하면 실례일까요? 처음 드라마에서 보고 연기자가 아닌 줄 알았어요. 그런 말을 많이 들어요(웃음). ‘하얀거탑’ 때는 병원 간호사가 직접 연기하는 거냐고 하시는 분들도 계셨어요.

그만큼 실감 나게 연기한다는 거겠죠. 캐릭터의 직업이나 배경에 대해 꼼꼼하게 취재하고 준비한다고 들었어요. 제가 외모가 화려하거나 끼가 많은 편이 아니에요. 배우로서 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최대한 그 인물에 달라붙자’라는 결론이 나오더라고요. 캐스팅이 되면 바로 인물의 성격과 직업, 배경, 취미, 특기까지 분석하고 최대한 그 인물이 되기 위해 몰입하는 편이에요. ‘국경의 남쪽’에서는 탈북자 역할이었는데, 광화문에 있는 북한문화연구원에 가서 북한 다큐멘터리부터 뉴스 같은 영상 자료를 주야장천 봤어요. 뉴스는 녹음해서 매일 들었고요. 그러다 보니 종종 실제 인물로 오해를 받는 일이 생겨요. 영화 ‘도가니’에서 수화통역사 역을 했는데, 촬영장에서 청각장애인분들이 어느 협회에서 왔냐고 물으시더라고요. 탈북자도 됐다 화교도 됐다 연변 사람도 됐다 그래요(웃음).

4개 국어 능통한 16년차 배우
신선한 얼굴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16년 차 베테랑 연기자예요. 처음 연기를 시작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어렸을 때 공연이나 영화, 연극 보는 걸 좋아했어요. 연기를 하고 싶은데 방법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고3 때 오디션을 보러 다녔어요. 심사위원과 테스트용 카메라를 관객 삼아 연기를 했죠. 그게 당시 제가 연기를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거든요. 그러다 2001년에 영화 ‘욕망’이라는 작품으로 본격적인 연기자의 길을 걷게 됐어요.

익숙한 혹은 낯선, 배우 장소연

익숙한 혹은 낯선, 배우 장소연

숙명여대 중어중문학 전공이에요. 드라마에서도 여러 번 수준급의 외국어 실력을 선보여 화제가 됐는데 중국어와 영어, 일본어까지 4개 국어에 능통하다고요. 사실 연기 전공을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부모님의 반대도 있었고 제가 워낙 중국 영화를 좋아하거든요. 기회가 된다면 중국에 가서 연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중문과를 가게 됐어요. 일본에는 어릴 때 잠깐 살았던 적이 있고요. 드라마에 나오는 일본어 밀담은 대본이 나올 때마다 그때그때 직접 번역해요.

보통 어학적 감각이 뛰어난 사람들은 관찰력이 남다르더라고요. 사람들 관찰하는 걸 좋아해요. 언어 자체에 관심이 많고요. 사투리를 쓰는 배역일 경우엔 해당 지역에 찾아가 한두 달씩 살기도 해요. 그 지역 터미널이나 법원에 가서 사람들 대화하는 걸 녹음해서 들으며 연습하죠. 사투리도 좀 할 줄 알아요(웃음).

인터뷰 전에 그동안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봤어요. 탈북녀3, 수화통역사, 호텔 직원, 김씨의 애인 혹은 부인 등등 수많은 단역의 이름이 나오더군요. 오랜 시간 단역 배우 생활을 하며 힘들었던 적도 많았을 텐데요. 한때 연기를 중단하고 캐나다에서 1년 동안 리포터 생활을 한 적이 있어요. 뮤지컬이나 영화 관련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다 보니 연기에 목마르더라고요. 결국 다시 돌아와서 극단 활동을 하며 오디션을 보러 다니고, 그렇게 16년을 왔어요. 전 돈을 못 벌어도 좋으니 연기만 할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1, 2년 정도 일이 없던 때가 있었는데 우울증 비슷하게 오더라고요. 심각하게 직업을 바꿔야 하나, 고민하던 와중에 연락을 받은 작품이 ‘아내의 자격’이에요.

그토록 포기할 수 없었던 연기의 매력은 뭔가요? 카메라 앞에서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잖아요. 무언가 억눌려 있던 것들이 분출된다고나 할까요?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 것 같아요. ‘궤도’라는 영화에서 청각장애인을 연기할 때였는데, 차가 제 앞으로 돌진하다 몸에 닿기 직전에 딱 멈추는 장면이었어요. 어릴 때 교통사고가 났던 적이 있어서 차를 정말 무서워해요. 근처에만 와도 소스라치게 놀라곤 하는데, 그 장면을 찍을 땐 전혀 안 무섭더라고요. 정말 귀가 들리지 않는 것처럼요. 다른 일을 하면 피곤한데 카메라 앞에서는 이상하게 그런 게 없어요. 며칠씩 밤을 새도 사람들이 얼굴 더 좋아졌다고 해요(웃음). 물론 연기가 안 풀릴 땐 속상한데, 그런 것조차 재미있어요.

외골수적인 면이 있는 것 같아요. 맞아요. 좋아하는 것에는 몰입하는데 그 외에는 좀 무관심한 편이에요. 꼼꼼한 것 같아 보여도 알고 보면 허술한 면도 많고요. 학교 다닐 때 도시락만 챙기고 책가방은 깜빡하는 아이였어요(웃음).

그동안 작품 속에 숨겨진 배우였다면 이제 서서히 빛을 보기 시작했는데, 기분이 어때요? 저보다는 부모님께서 뿌듯해하세요. 어렸을 때 워낙 조용한 성격이기도 했고, 제가 연기자가 된다는 건 집에서는 상상도 못하는 분위기였거든요. 계속 숨기고 있다가 대학교 1학년 때 엄마가 집으로 배달돼온 시나리오를 받아보시고 그때 처음 아셨어요. 제가 무척 하고 싶어 하니까 ‘딱 한 작품만, 대신 다른 이름으로’라는 조건으로 허락하셨어요. 당시 맡았던 배역 이름이 ‘소연’이었거든요. 제가 장희빈을 좋아해서 장씨를 붙여 장소연이 된 거예요. 본명은 서은정이에요.

인터뷰 말미에 본명을 알게 되다니, 좀 충격적인데요. 아빠는 제가 연기를 한다는 걸 최근에 아셨어요. ‘하얀거탑’을 같이 보는데 “저 간호사, 너랑 많이 닮았구나” 하시더라고요. 모르는 척 쓱 넘어갔죠(웃음). 요즘엔 TV에도 나오고 여기저기서 알아봐주시니 부모님도 좋아하세요.

‘풍문’이 이제 중반을 넘어가고 있어요. 어떻게 될까요? 글쎄요. 요즘 거의 생방송으로 촬영 중이라 배우들도 앞날을 잘 몰라요(웃음). 민주영이 앞으로 어떤 행동을 할지 저도 궁금해요.

앞으로 꼭 하고 싶은 역할이 있다면? 사실 연극 무대에서는 ‘센 언니’ 역할을 많이 했어요. 술집 작부나 바람둥이, 히스테릭한 캐릭터 등등. TV나 영화에선 이미지가 좀 갇혀 있는 것 같아요. 앞으로 지금보다 좀 더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기대해주세요.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김성구 ■장소 협찬 / 카페 에무(02-720-9815)

화제의 추천 정보

    Ladies' Exclusive

    Ladies' Exclusive
    TOP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