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줌마’에서 ‘광해’로 돌아온 차승원

‘차줌마’에서 ‘광해’로 돌아온 차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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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왕 비룡’도 울고 갈 현란한 요리 솜씨와 바깥양반의 속을 박박 긁어대던 ‘차줌마’의 잔소리에 그가 18년 차 배우라는 사실을 깜빡 잊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용포를 입고 냉정한 눈빛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차승원은 오랜 시간 우리가 사랑해 마지않은 배우이자, 광해 그 자체였다.

이 남자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만재도에서 안분지족의 삶을 영위하던 그가 빨간색 고무장갑을 벗어던지고 주상 전하가 될 줄이야. 자신을 만인의 연인으로 만들어준 ‘삼시세끼’의 후광을 덧입은 가벼운 코미디물을 고를 수도 있었지만, 차승원(46)의 선택은 스스로가 얼마나 큰 그릇의 배우인지를 증명하는 듯하다. 차기작 MBC-TV 월화드라마 ‘화정’을 통해 혼돈의 시대를 버텨내는 군주 광해로 분한 그를 만났다.

‘차줌마’에서 ‘광해’로 돌아온 차승원

‘차줌마’에서 ‘광해’로 돌아온 차승원

“그동안 여러 작품에서 무수히 다뤄진 인물이지만, 제가 연기하는 광해는 색다른 평가를 받았으면 하고 욕심을 내고 있어요. 대본에 충실하되 저만의 상상력으로 광해가 느꼈을 감정과 생각을 전달하려고 해요. 덕분에 죽기 살기로 열심히 촬영에 임하고 있습니다(웃음).”

‘화정’은 17세기 조선을 배경으로 광해군과 그의 동생이자 선조의 직통 혈육인 정명공주(이연희 분),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인조(김재원 분)의 치열한 권력 투쟁을 다룬 월화드라마로 화려한 출연진과 ‘아랑사또전’, ‘내 마음이 들리니’를 만든 김상호 PD, ‘마의’, ‘동이’, ‘이산’ 등을 집필한 김이영 작가가 의기투합해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저희 드라마는 총 50부작이에요. 초반에는 선조 이후 광해가 왕좌를 차지하는 내용이, 후반에는 인조가 반정을 일으키는 내용이 주를 이뤄요. 인조반정을 기준으로 인물들이 바뀌기 때문에 저는 드라마 중반에 퇴장해요. 그래서 될 수 있으면 강렬한 인상을 남길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후배들이 수월하게 바통을 이어받을 수 있도록 기초를 잘 닦아놓고 떠나는 게 목표에요.”

역사 속에서 상반된 평가를 받는 광해군. 시대를 앞서간 혁명 군주와 권력을 위해 동생의 목숨까지 빼앗은 폭군 사이에서 드라마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할 예정이다. 188cm의 장신을 자랑하는 모델 출신인 그를 위해 의상 팀은 새로운 용포를 준비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고, 차승원 역시 잘 정돈된 본인의 수염으로 분장 팀의 노고를 덜어주고 있다고. 훈훈한 현장 분위기를 전하는 배우와 제작진에게서 서로를 향한 두터운 신뢰가 느껴졌다.

대세 남자 배우들의 워너비 스타
요즘은 김우빈, 이종석과 같은 모델 출신 배우들이 드라마와 영화는 물론 예능까지 섭렵하고 있지만 불과 10년 전만 해도 상황은 지금 같지 않았다. 차승원의 20대. 그가 모델에서 배우로 전향했던 당시에는 몸에 밴 워킹 동작에 건방지다는 지적을 들었고 동료 배우들과 확연히 차이 나는 키 때문에 카메라 감독들의 미움을 받았다. 내로라하는 후배들이 롤모델로 손꼽는 선배 차승원에게도 굳세게 그리고 묵묵하게 견뎌냈던 모진 세월이 있었다.

“저같이 부족한 사람을 좋아해준다는 사실은 고맙지만, 솔직한 마음으론 많이 부담스러워요. 게다가 요즘 모델 출신 후배들이 워낙 많잖아요. 맏형으로서 잘해야겠다는 생각에 어깨가 무겁죠. 그저 현장에서 일하는 동안 최선을 다하는 방법밖에 없는 것 같아요. 좋은 평가를 받고 싶지만, 광해로 살아가는 시간만큼은 주변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려고요.”

젊은 배우들의 도약으로 주연의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는 지금. 40대 후반의 남자 배우를 원톱으로 내세운 작품은 드물다. ‘화정’ 역시 예외는 아니다. 이연희, 김재원, 서강준 등 어린 배우들이 극을 이끈다. 이런 상황에서도 나이를 무색게 하는 탄탄한 몸과, 농익은 연기력으로 승부하는 차승원의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도 든든하다.

“40대 후반에도 주연을 놓치지 않는 특별한 비결이요? 그런 게 어디 있겠어요. 그저 써주시니 감사할 따름이죠(웃음). 아무래도 제가 기존의 정해진 캐릭터가 아니라서 독특하게 봐주시나 봐요. 누군가를 답습하지 않고, 투박하더라도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니까요. 그렇다고 아직 그렇게 나이를 운운할 만큼 많지는 않아요. 얼마 전에는 게임 광고도 찍은걸요, 뭐.”

꼭 주인공이 아니라도 괜찮다. 극의 긴장을 불어넣는 무게감 있는 배우로 오래도록 남고 싶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연기는 화합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동료들과 서로 부족한 점을 보태주고 넘치는 점을 덜어내며 성장하는 작업이죠. 그래서 작품을 함께 만들어가는 모두가 소중해요. 언제까지 연기를 할지는 모르지만 작은 역할도 괜찮으니 나이가 들어도 현장에 오래 머물고 싶어요.”

차승원의 나이 듦이 걱정스럽기보다 기대되는 이유다. 주름이 늘고 머리색이 하얗게 바랜 그의 모습은 또 그대로 멋이 있을 게 분명하다. 60대가 돼도 누구의 아버지나 배 나온 아저씨가 아닌 매력적인 ‘남자’를 연기하고 싶다는 그의 말은 분명, 단순히 꿈에 머무르진 않을 것을 우리는 안다.

■글 / 서미정 기자 ■사진 / 안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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