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타들의 눈물범벅 기자회견, 그 애티튜드에 관해
기자회견이란 설명이든 해명이든 본인의 입장을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마련된 공식적인 자리다. 그 안에는 물의를 일으킨 행동에 대한 사과도 담겨 있을 것이고, 때로는 자신의 억울한 입장을 이해해달라는 호소도 있을 것이다. 긴 역사만큼 연예계에 길이 남을 잊지 못할 해프닝도 많았다. 먼저 ‘전설’이 된 나훈아의 루머 종결 기자회견. 탁상 위에 올라가 지퍼를 내린 바지춤을 잡고 카메라를 응시하던 그의 눈빛, 그날의 장면은 지금도 쉽게 잊을 수 없다. 덕분에 그를 둘러싼 흉악한 루머는 불식됐다. 어이없는 돌발 상황이 연출됐던 기자회견도 있었다. 혼성 그룹 샵의 여자 멤버였던 이지혜와 서지영의 불화로 둘 사이에는 이미 폭로전이 난무하는 인터뷰와 기자회견이 오갔다.
서지영은 급기야 매니저까지 대동해 ‘자기가 피해자이며 잘못이 없음’을 주장하기 위해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러나 같은 편인 줄 알았던 매니저가 그 자리에서 “서지영도 거짓말을 하고 있다”라고 폭로했고, 당황한 그녀는 현장을 이탈하며 최고의 반전 사례로 기자회견 ‘흑역사’를 기록했다.
예나 지금이나 연예인들의 기자회견은 그 사안이나 주제에 상관없이 대중을 향한 그들의 발언 통로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전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시대는 지났고 좀 변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인터넷을 통한 수많은 정보의 교류로 대중도 연예인들의 눈물 자국을 걷어내고 그 안에 담겨진 진실을 가늠할 수 있는 날카로운 판단력을 지니게 됐다. 어쩌면 대중은 사건의 전후 관계를 흐리게 하는 연예인들의 눈물은 보고 싶지 않을지도 모른다. ‘눈물을 흘리는 즉시 그것은 가짜다’라는 극단적인 시선까지 있을 정도니 말이다. 최근 눈물로 범벅된 일련의 자극적인 장면보다는 그들의 속내가 담긴 진실한 모습을 보고 싶은 건 일부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박태환의 기자회견 월드 클래스의 선수를 잃는다는 건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매우 안타까워할 일이다. 그러나 그의 약물 투여 의혹 관련 기자회견의 전체적 분위기가 너무 감정적 호소로 흘러 구태의연했다는 것이 네티즌의 주된 평이다. 박태환의 발언은 아쉽게도 유명 스포츠 스타들이 약물 의혹이 일 때마다 보여주는 교범 그대로였다. 먼저 약물에 대한 자신의 지식 부족을 드러내고 투여 기간 또한 얼마 동안으로 한정짓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눈물을 흘리는 수순 말이다. 좀 더 솔직한 태도와 자신의 불찰에 용서를 구하는 모습에 중점을 뒀다면 어땠을까?
태진아의 기자회견 이순이 넘은 나이의 어른이 폭풍 눈물을 흘렸다. 사안이나 진실에 관계없이 보는 이의 마음이 동요됐을 법도 한데, “기자회견을 안 하느니만 못했다”라는 혹평이 지배적이었다. 기자회견 시작과 동시에 쉴 새 없이 억울하다며 보여준 눈물과 격양된 목소리는 보는 이와의 간극으로 어쩌면 과장되게 비쳤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태진아의 도박 사건을 보도한 신문사나 발행인에 대한 금품 요구 진실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동료 가수 부인의 치부가 담긴 음성 파일을 여과 없이 공개한 것은 그의 가장 큰 패착이었다.
길건과 김태우의 기자회견 소속사와 소속 가수의 분쟁은 시대를 불문하고 존재하며 또 진행되고 있는 사건이다. 계약 해지와 정산 문제로 궁지에 몰린 가수 길건이 먼저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가족이 개입한 소속사 운영’에 가장 큰 불만을 터뜨렸지만 일방적인 억울함으로 보기에는 앞뒤 정황이 부족했다. 이에 뒤늦게 기자회견을 연 김태우. 가족이 공격당하는 현실이 그에게는 매우 힘들었겠지만 “아내를 사랑한다”라는 뜬금없는 사랑 고백은 마치 동문서답처럼 느껴졌다. 애초에 언론의 주목 없이 좀 더 현명하게 서로의 이해관계를 정리해 원만하게 마무리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스타들의 눈물범벅 기자회견, 그 애티튜드에 관해
정신과 전문의 겸 심리학자 최명기 소장은 연예인들이 기자회견을 택하는 이유를 ‘자신에 대한 추문이 계속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클 것이라고 말한다. 스스로 직접 나선 기자회견은 일종의 종지부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늘 대중의 관심과 사랑에 둘러싸인 그들은 대중을 상대로 터놓고 이야기하면 자신의 입장을 이해해줄 거라는 섣부른 추측도 하게 된다. 그러나 최 소장은 이런 의도의 기자회견에는 회의적인 생각이다.
“사실 기자회견을 하나 조용히 자숙하나 그 결과는 큰 차이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하지만 그들도 인간이기에 심리적 압박에 시달리다 보면 분을 참지 못하고 기자회견을 선택하죠. 그러나 대부분의 연예인들이 당초 기대와는 달리 큰 효과를 보지 못합니다.”
최 소장은 임팩트가 컸던 나훈아의 기자회견도 결과적으로 득이 되는 것은 없었다고 말한다.
“나훈아씨는 루머를 종식시키기 위해 기자회견을 했지만 그 이후에도 그 장면은 반복적으로 매체에 노출되고 있습니다. 음악인 나훈아보다는 ‘기자회견 종결자’로 더 유명세를 탔죠. 그 이후 그는 음악 활동을 하지 못하고 대중을 피하고 있습니다. 개인적 소견으로는 기자회견 대신 컴백 무대로 건재함을 과시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방송인 강호동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물의를 일으킨 부분에 대해서는 솔직히 인정한 뒤 은퇴하고 또 복귀했지만 예전의 인기를 되찾지 못하고 있다.
“강호동씨는 기부를 병행하면서 계속 방송을 이어가는 것이 좋았을지 모릅니다. 조용히 방송을 하차했다가 대중이 잊을 때쯤 다시 복귀하는 경우, 대중은 겉으로는 욕할지 모르지만 재미있으면 또 채널을 돌리지 않고 보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렇다면, 기자회견에서 빠질 수 없는 눈물은 무엇일까? 그들은 왜 눈물을 흘려야만 할까?
“인간은 자신이 잘못을 했건 안 했건 억울해합니다. 혹은 자신이 한 잘못에 비해 대중의 비난이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하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눈물이 나지요. 또 억울함과 함께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 하는 자책의 심정도 일부 있을 겁니다. 연예인들은 감정 표현에 익숙합니다. 억지로 우는 모습을 보이려는 분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기자회견을 하다가 스스로 자기감정에 빠져서 울게 되는 겁니다.”
최 소장은 기자회견의 주제나 사안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해당 연예인의 평소 이미지라고 말한다. 대중의 호감도가 높았던 경우 아무래도 기자회견의 내용을 믿고 싶어지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호감도 높은 연예인이 피해를 입거나 오해를 받은 경우 충분히 기자회견을 통해 논란을 종식시킬 수 있습니다. 반대로 평소 비호감이던 연예인은 솔직히 기자회견은 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아무리 진실에 기초하더라도 대중은 ‘뭐 잘했다고 떠드느냐’라는 반응일 겁니다. 더구나 음주운전, 마약, 도박과 같이 좋지 않은 일로 기자회견을 하는 경우, 백이면 백 좋은 결과를 얻기 힘듭니다. 이때는 눈물조차 가식으로 받아들여집니다.”
특히 근래에는 채널이나 매체가 많아지면서 기자회견은 화젯거리로 전락하는 경우가 늘었고 논란은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최 소장은 기자회견에 대한 대중의 해석은 매우 불확실하기에 안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한다. 공식 은퇴 선언도 마찬가지다. 그저 조용히 자숙하며 지내다가 재등장하는 것. 이것이 요즘 시대에 심리학자가 추천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전략일지도 모른다.

스타들의 눈물범벅 기자회견, 그 애티튜드에 관해
‘경영학을 공부한 정신과 전문의’라는 독특한 이력의 의사. 마음 경영을 통해 삶의 균형을 찾는 방법을 깊게 연구하고자 최명기 정신건강의학과와 청담하버드심리센터를 열었다. 현재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암상자문의 및 울산대학교 의학대학 외래교수로 재임 중이다. 각종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으며, 지은 책으로는 「심리학 테라피」, 「시네마 테라피」, 「마음이 경영을 만나다」, 「좋은 부모 콤플렉스」, 「걱정도 습관이다」외 다수가 있다.
글 이유진 기자 사진 고이란(프리랜서), 경향신문 포토뱅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