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해인 “연기자로서 대표작을 만들고 싶어요”
어제까지 비가 왔는데 오늘은 날씨가 맑아서 다행이에요. 촬영 어땠어요? 오랜만의 외출이에요. 마침 날씨도 좋아서 소풍 온 기분이었어요.
얼마 전 큰일을 겪었어요. 보이스피싱으로 피해를 입은 사실이 알려져서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했는데, 지금은 좀 어때요? 많이 진정된 상태예요. 처음에는 너무 놀라고 속상해서 한동안 전화도 제대로 못 받았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이었는지 궁금해요. 인터넷을 하다가 ‘금융감독원 개인정보 유출 2차 피해 예방등록 안내’라는 창이 자꾸 떠서 클릭을 했어요. 2차 피해 방지를 위해 필요하다고 해서 별다른 의심 없이 사이트에 보안카드를 입력했는데, 사칭 사이트였던 거죠. 세 번의 출금 문자메시지를 받고 나서야 사기라는 걸 알았어요. 정말 순식간에 일어나더라고요. 나름 제 돈을 안전하게 지켜야겠다는 생각에 했던 일인데,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말로만 들었던 보이스피싱을 제가 당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죠.
5,000만원이면 적은 금액이 아닌데 충격이 컸겠어요. 이사를 가려고 보증금으로 마련해놓은 돈이었어요. 마침 그날 김포에서 월세 가계약을 하고 돌아왔는데 그런 일이 벌어진 거예요. 10년간 모은 돈을 한순간에 뺏겼으니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죠. 앞으로의 계획과 미래를 잃어버린 느낌이라고 할까요. 속상해서 잠도 못 자고 많이 울었어요.
피해 사실을 직접 SNS에 올려 알려지게 됐어요. 보통 사기당했다는 사실이 창피해서 숨기는 사람이 많대요. 당해보니까 느낌을 알겠더라고요. 저도 처음에는 가족에게도 말을 못했어요. 그래도 더 이상 저처럼 피해를 보는 사람은 막아야겠다는 생각에 알리게 됐죠. 저야 연예인이니까 그래도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지만, 일반적으로 피해를 당하는 분들은 얼마나 답답할까 하는 마음으로요. 평생 모은 재산을 보이스피싱으로 잃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이 계시대요. 정말 힘들게 모은 돈일 텐데 그런 분들이 피해를 보신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무척 아팠어요.

이해인 “연기자로서 대표작을 만들고 싶어요”
이런 일을 겪고 나면 정신적으로 더 무장하게 되지 않나요? 의심병에 걸렸어요. 제가 원래 되게 꼼꼼한 스타일이거든요. 그런데도 당했으니, 스스로도 못 믿겠다 싶더라고요. 작은 거래라도 은행에 직접 가서 해야 마음이 놓이고요. 앞으로 더 조심 해야겠구나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됐죠.
큰 인생 경험을 했는데 이번 일을 겪고 달라진 점이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사실 긍정적인 성격은 아니었어요. 항상 안 좋은 상황을 생각하는 면이 있었는데 이렇게 일을 크게 겪고 나니까 오히려 마음을 내려놓게 되더라고요. 사람이 바닥을 치면 올라갈 일만 남았다고 하잖아요. 제가 지금 그 상황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인생 공부한 셈 치고 더 열심히 살아야죠.
안타까운 사건이지만 본의 아니게 이번 일로 화제가 됐어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이 일을 계기로 더 좋은 기회가 올 거라고 믿어요. 전환점이 됐으면 좋겠어요.
2005년 광고 모델로 데뷔해 올해로 데뷔 10년 차예요. 마산이 고향이에요. 스무 살 때 서울에 올라와 이제 딱 서른이 됐어요. 그때 정말 고생을 많이 했어요. 서울에 아무 연고가 없었거든요. 지난 10년을 되돌아보면 음… 힘들었던 게 80, 좋은 게 20 정도 되는 것 같아요.
그 정도면 비교가 힘든 수치인데요. 근데 그 20이 나머지 힘든 80을 잊게 할 정도로 좋았어요(웃음).
학창 시절 ‘얼짱’으로 유명했어요. 원래 배우가 꿈이었나요? 처음엔 막연히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그래서 스무 살 때 혈혈단신으로 상경했죠(웃음). 집에 허락도 안 받고 올라와 혼자 고시원에 살며 오디션을 보러 다녔어요.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했나 싶어요. 그렇게 서울에 올라와서 뮤직비디오와 광고를 시작으로 연기자의 길을 걷게 됐어요. 처음에는 화려한 것만 보였죠. 근데 녹록지 않더라고요. 광고 미팅에서부터 오디션까지, 작은 배역을 얻는 것도 쉽지가 않았거든요. 그래도 강단이 있는 성격이라 포기하지 않고 10년을 버텼어요.

이해인 “연기자로서 대표작을 만들고 싶어요”
대중에게 처음 얼굴을 알리게 된 게 tvN ‘재미있는 TV 롤러코스터’를 통해서였어요. 큰 눈망울에 애교 넘치는 매력으로 ‘꽃사슴녀’라는 별명도 얻었는데, 실제 성격은 어때요? 그 당시의 이미지 때문인지 저를 여우과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실제 성격은 사슴도, 여우도 아닌 곰과예요. 살갑게 애교 같은 거 잘 못 부리고 좀 무뚝뚝한 편이에요. 아파도 혼자 속앓이하는 스타일이고요. 처음 만났을 때 차갑게 보시는 분들도 계신데 알고 보면 털털해요. 주변에도 곰 같은 친구들이 많아요.
히로스에 료코를 닮은 외모로도 화제를 모았어요. 보이시한 느낌이 강할 줄 알았는데 직접 만나보니 훨씬 선이 가늘고 여성스러워요. 운동을 좋아해요. 고등학교 때까지 제가 날씬한 줄 알았거든요. 서울 올라와 맨 처음 잡지 촬영을 하러 갔는데 “너 살 좀 빼야겠다”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 소리를 듣고 다음날부터 매일 한강을 8km씩 걷고 뛰었어요. 그때 습관이 지금까지 쭉 오고 있는 것 같아요. 최근에는 필라테스에 푹 빠져서 재밌게 하고 있어요. 할 때는 벌 받는 것처럼 힘든데 하고 나면 정말 개운해요. 다음날 근육통에 시달리며 뿌듯해하는 스타일이에요(웃음).
항상 짧은 머리를 고수하는 것 같아요. 데뷔하고 나서는 대부분 짧은 머리였어요. 사실 긴 머리도 해보고 싶은데 제가 어중간한 걸 잘 못 견뎌요. 시도는 해보는데 계속 자르게 되네요. 주변에서도 짧은 머리가 더 잘 어울린다고 하고요. 아직은 대중이 생각하는 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좀 더 나중엔 다양하게 해보고 싶어요.
2012년엔 7인조 여성 그룹 ‘갱키즈’ 멤버로 가수로도 활동했었죠? 저, 노래 못해요(웃음). 솔직히, 춤추고 노래 듣는 건 좋아해요. 처음 서울에 왔을 때 걸 그룹 준비를 했었거든요. 중간에 무산돼 데뷔까지는 이어지지 못했는데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 같은 게 있었어요. 그러던 와중에 우연히 기회가 와서 무대에 서게 됐죠. 확실히 배우와는 다른 점이 있어요. 우선, 정말 강한 체력이 필요해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쉬지 않고 연습을 하거든요. 배우는 혼자 연습하는 시간이 많은 반면에 여자 멤버 7명과 단체 생활을 한다는 점도 달랐고요. 그런데 무대 위에서는 정말 짜릿해요. 연기할 때 카메라와는 다르더라고요. 무대에선 가수 쪽이 더 매력 있는 것 같아요.
연기의 매력은 뭐라고 생각해요? 학창 시절에 되게 조용한 아이였어요. ‘학교, 집, 학교, 집’만 오가는 스타일이었죠. 지금도 제가 이 일을 하고 있다고 하면 놀라는 친구들이 많아요. 그때보다는 많이 활발해졌지만 워낙 내성적인 성격이다 보니 연기를 하면서 억눌린 것들을 표출하게 돼요. 신기하게 저도 모르던 제 모습들이 밖으로 나오더라고요.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요. 그 기분은 말로 표현 못해요.

이해인 “연기자로서 대표작을 만들고 싶어요”
배우를 꿈꾸는 수많은 연기 지망생 후배들에게 연기자 선배이자 인생 선배로서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버텨라(웃음). 중간에 나쁜 길로 빠지지 말고, 끊임없이 배우고 내면을 가꾸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포기하지 않으면 기회는 온다고요.
KBS-1TV ‘지성이면 감천’에서도 그랬고 SBS-TV ‘감격시대’에서도 당당하고 차가운 여자였어요. 앞으로 꼭 하고 싶은 역할이 있다면 뭔가요? 그동안 깍쟁이 부잣집 딸이나 악녀 연기를 많이 했는데 기회가 된다면 밝은 캐릭터를 연기해보고 싶어요. 선머슴 같고 보이시한 그런 느낌을 가진. 얼마 전에 영화 ‘레옹’을 다시 봤거든요. 마틸다에게 반했어요. 이상형은 레옹으로 바뀌었고요(웃음). 이제 서른이잖아요. 연기자로서는 좋은 나이인 것 같아요. 그래도 옛날보다는 경험적인 면으로나 내공이 좀 생겼으니 더 잘할 수 있을 거라 믿어요.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해요. 저는 연기가 제 평생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20, 30년 이상 연기를 해오신 선생님들을 뵈면 무척 멋지고 존경스러워요. 물론 기다림의 시간은 고되지만 그만큼 보람과 성취감을 느껴요. 무엇보다 연기할 때가 가장 행복하고요. 한 가지 목표가 있다면 이제 연기자 이해인으로서 대표작을 만들고 싶어요. 조만간 재미있는 작품으로 만나뵐 수 있을 것 같아요. 기다려주세요.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박재찬 ■장소 협찬 / Masion H(010-4632-7002, www.maisonh.co.kr) ■헤어 / 다나(박승철 헤어스튜디오 청담, 02-514-6167) ■메이크업 / 노화연(아하바, 02-3444-1007) ■스타일리스트 / 김명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