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처럼 들길 따라 가수 이광조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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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거리낄 것이 없고, 또 아쉬울 것도 없었다. 욕심 한 톨, 미련 한 터럭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노래 부를 무대 그리고 이 한 몸 기댈 안식처만 있다면 그것이 남부럽지 않은 삶이다. 그 어떤 누군가의 자유도 이광조의 것만큼 경쾌할 수 없을 것이다.

바람처럼 들길 따라 가수 이광조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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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애받지 않는 삶
신록에 정동길이 물들기 시작하는 계절, 이광조(63)를 만났다.
“나도 명함을 만들어야겠어. 요즘 사람들이 날 잘 못 알아보는 것 같아.”
완연한 봄이기에 그는 파란색 가벼운 셔츠 차림으로 자택에서 여기까지 지하철을 타고 왔다고 한다. 그 공간에서 몇몇 사람은 어디서 본 듯한 자신의 얼굴을 힐끔힐끔 쳐다봤겠지만 뭐, 개의치 않는다. 휴대전화에 연결된 그의 블루투스 이어폰이 눈에 띄었다. 이것만 있으면 그는 홀로 어디든 자유롭게 갈 수 있겠지. 그는 카페에서 목을 감싸며 허니 레몬티를 주문했다.

“나도 나이가 들었나봐. 생전 태어나서 목 관리라곤 안 했는데 덜컥 감기에 걸렸지 뭐예요. ‘통자 목’이라고 하지? 의사가 날 보고 목은 타고났다고 했는데, 요새는 감기 걸리면 목소리가 잘 안 나와요. 주량도 많이 줄고.”

줄어서 소주 2병이다. 2병이면 딱 기분 좋은 정도라니. “나중에 술 한 잔 하자”라는 그의 말에 기자는 지레 겁을 먹고 목이 탁 막힌다. 허스키함과 비음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음색과 눅진한 감성이 녹아든 그의 목소리는 늘 최고였다. 이광조는 목의 컨디션을 위해 술이나 담배는 입에 대지도 않을 것 같고 철저하고 깐깐하게 몸 관리를 할 것 같았는데, 그는 오히려 자유로운 영혼에 가까웠다. 그가 인터뷰에 잘 응하지 않는다는 것도 잘못된 편견이었다. 부자연스러운, 만들어진 것들이 거북스러울 뿐이다.

“예능 프로그램이라든지 그런 인위적인 것은 잘 안 해요. 때로는 집을 찍겠다고 하는 걸 깜짝 놀라 거절하기도 했어요. 그러다 보니 인터뷰까지 안 한다는 소문이 퍼진 것 같아요. 전혀 그렇지 않거든. 라디오라든지 자연스러운 것은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이광조는 늘 독특한 위치에 있었다. 누구처럼 라이벌 구도도 존재하지 않았던 독보적인 보컬리스트였다. 그가 데뷔했던 1970년대는 포크와 트로트가 가요계의 중심이었던 시절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만의 재지한 소울풍 음악을 고수했고, 한 번도 그 노선을 벗어난 적이 없다. ‘나들이’, ‘세월 가면’, ‘오늘 같은 밤’,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등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의 음색이 선하게 떠오르는 노래들. 그토록 우리에게 깊은 잔상을 남긴 이유는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이광조만의 색과 감성 때문일 것이다.

“데뷔 당시에는 이상하고 어려운 창법을 한다고 레코드 회사에서 절 싫어했죠. 그래서 실제로 레코드 발매를 미루기도 했고요. 그때는 판매 전략으로 앨범의 한 사이드는 이 가수, 다른 사이드는 저 가수 해서 두 가수를 섞어 판 하나를 만들었는데, 저는 싫다고 했거든요. 고집이 있어서 통으로 만들어주지 않으면 안 할 거라고 했죠. 회사와 알력 싸움을 하다 보니 판을 만들어놓고 3개월이나 발매가 지체됐어요. 가수는 오기로 시작했습니다.”

‘꾸준히 해나가면 좋아할 사람은 있겠지.’ 단 하나의 생각으로 그만의 노래를 불렀다. 유행이나 인기에 편승해 금세 일희일비하는 성격도 아니다.

“그저 물 흐르듯이 살면 돼요. 어느 정도의 인세가 나오고, 또 방송이나 이벤트에 나가면 화려한 생활은 못해도 어렵지는 않거든요. 욕심을 부리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지.”

자신의 노래를 싫어한다고 해서 빈정 상할 일도 없다. 그저 노래를 잊지 않고 찾아 들어준다면 고마울 뿐이다.

“누구나 제 노래를 좋아할 수는 없지요.”
이광조의 경쾌하지만 묵직한 39년간의 철학이다. 그는 스스로 자신을 ‘늙어버린 소년’이라 표현한다. 그만큼 하고 싶은 대로 구애받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

“후배 가수나 연예인들을 보면 좀 안타까워요. 왜 꼭 일에만 얽매여서 노래를 불러야 할까요? 때로는 무대에 올라가고 싶지 않다면 올라가지 마세요.”
본인의 감정에 늘 충실하고 또 제일 경계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것. 그것은 노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훌쩍 미국으로 떠나 10년이나 돌아오지 않았던 전력이 있지 않은가.

바람처럼 들길 따라 가수 이광조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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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에서의 12년
2000년, 이광조는 홀연히 미국으로 떠났다. 그의 거처는 샌프란시스코 금문교가 내려다보이는 150년 된 작은 아파트였다. 여생을 보내려 했을 만큼 그곳을 좋아했다. 그에게는 지금도 당장 달려가고 싶은 마음의 안식처란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못하죠. 150년이나 된 아파트라니, 엘리베이터조차 수동식이에요. 세간살이는 스토브, 미니 냉장고가 전부였지만 하나도 불편하지 않았어요. 집은 작았지만 한 걸음만 떼면 푸르른 공원, 넓은 태평양 바다가 다 내 것이었으니까.”

그는 왜 이국의 땅에 이토록 향수를 느낄까? 나를 아는 이 없는 곳에 홀로 떨어져 느끼는 자유. 이광조에게는 최상의 행복이었다고 한다.

“38번 버스를 타고 고속도로를 20분을 달리면 오션비치가 나와요. 시야에 한가득 바다밖에 보이지 않죠. 바닷가 근처, 할로겐 등불이 비치는 펜스에 홀로 앉아 있곤 했죠. 파도는 철썩대고 안개는 나를 스쳐 저 멀리 뛰어가요. 그 풍경을 보고 있으면 절로 행복했지.”

외롭지 않았단다. 오히려 누구랑 있는 것이 그저 거추장스러웠던 시간이다. 그러나 그는 12년간의 미국 생활을 끝내야 했다. 홀로 계신 어머니의 건강이 악화됐다는 소식을 듣고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을 수 없었다.

“어머니 연세가 올해 87세예요. 항상 걱정되지요. 미국에 있을 때 전화가 오면 ‘무슨 일이 생겼구나’ 덜컥 겁이 났어요. 이젠 옆에 계시고 매일 보니 그런 불안감은 없어서 좋아요. 다리가 조금 좋지 않으신데 매일 아침 40분씩 걷는 운동을 하세요. 그래서 쓸 수 있다고 말이죠. 대단하신 분이에요.”

한 번도 가수인 자식의 이야기를 남에게 떠벌리지 않은 곧은 성정의 어르신이다. 과하지 않게 지금 모습 그대로 순응하는 삶. 그는 어머니를 닮았는지 모르겠다.

“당신 아들이 가수라면 한창 잘나갈 때 자랑도 하실 법한데, 절대 그 얘기를 꺼내지 않으셨어요. 그런 부분이 무척 고맙지요. 그저 자식이 잘되면 좋고, 안될 때도 별말씀이 없으신 거예요. 자식에게 부담을 주기 싫으신 마음 아니었겠어요.”

물론 돌아온 한국에서의 생활은 답답하고 삭막할 따름이다. 그러나 어머니와의 일상은 그의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이광조는 가수 데뷔 최초로 부모를 위한 디너쇼를 준비했다. 5월 8일 서울 강남구 언주로 라움아트센터 2층 마제스틱 볼룸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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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소년의 노래
“무당이 굿을 해야지. 못하면 아프잖아요?”
그동안 음악에 대한 목마름도 컸다. 그는 이미 한 세대를 넘게 노래를 불렀으니 그의 팬들이 부모가 됐다는 점은 낯설지 않은 사실이다.

“‘효’를 콘서트 주제로 잡은 건 처음이죠. 그동안의 디너쇼는 트로트 분야가 가장 활발했는데, 취향에 따라서 다른 공연을 보고 싶은 분들도 계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준비했어요. 사실 제가 제일 두렵죠. 뭘 보여드릴 수 있을까? 난 말을 재밌게 하는 사람도 아니고 말이죠.”

국내 정상급 5인조 세션의 연주를 준비했고, 무대 연출도 이광조의 생각을 많이 넣은 공연이다. 무엇보다 관객이 보고 후회하지 않을 공연을 만들고 싶다.

“요즘은 공연 티켓도 왜 그리 비싼지 몰라요. 웬만한 것은 10만원이 넘잖아요? 저도 엄두가 안 나서 못 가는데 찾아오는 분들에게 미안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지요. 그래도 제 생각은 가능하면 많은 사람들이 비교적 부담스럽지 않게 볼 수 있는 자리를 많이 만들고 싶어요.”

‘효’가 주제인 만큼 기존의 트로트 곡을 이광조 풍으로 편곡해 부르는 시간도 갖는다. 곡명은 비공개다. 또 이번 무대에서는 최근 발매한 싱글 곡인 ‘내 마음속에 비’와 함께 특유의 절창이 매력적인 ‘꽃이라 부르지 마오’, ‘사랑인 거죠’를 부른다. 또 가스펠 곡인 ‘올드 프렌드’, 인디 밴드 노브레인이 피처링한 강렬한 라틴 리듬의 곡 ‘오! 예’도 선보인다. 추억과 신선함을 한꺼번에 담은 종합 선물 같은 공연이다. 공연과 함께 오는 6월과 9월에는 차례로 앨범도 발매한다. 2015년은 그에게도 특별한 한 해가 될 듯하다.

“6월에 나오는 앨범은 신곡과 옛 곡이 모두 수록된 베스트 앨범 같은 거예요. 제작자가 중학교 때부터 제 팬이라고 하더라고요. 저도 가물가물한 옛 노래들까지 다 알고 있어요. 편곡을 피아노와 첼로 등 클래식 악기 한두 가지와 제 목소리만으로 구성해요.”

가장 간소한 반주 위에서 박자와 리듬을 마음대로 가지고 노는 그의 목소리에 힘을 실은 앨범이다. 그리고 9월에는 재즈 음반이 나온다.

“두 앨범이 모두 색이 좋아서 기대가 됩니다. 여기서 기대란 많이 팔릴 거라는 게 아니라(웃음). 이런 음악도 있다고 대중에게 들려주고 싶어요. 요즘은 음원 시장의 발달로 소비적인 음악이 주류를 이루잖아요. 우리는 그런 거 잘 모르니까….”

이광조에게 노래란 보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듣는 것이다. 최근 복고 열풍이 불면서 그의 노래를 리메이크하는 후배들의 모습도 간혹 본다. 반가운 현상이지만 한편 ‘보는 음악’으로만 끝이 나는 것은 좀 아쉽다.

“요즘 TV에서 종종 보는 리메이크는 단발성 이벤트에 가깝다고 볼 수 있죠. 그러다 보니 편곡이 굉장히 화려해서 듣는 노래로 접근하자면 좀 부담스럽더라고요. 노래에는 마음이 담겨 있어야 해요. 마음.”

자연스러움. 그가 생각하는 행복의 제1 조건이다. 왠지 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선입견과 달리 직접 만난 이광조는 더없이 편안했다. 그런 철학은 모두 그의 음악 속에 내재돼, 그 노래가 몇 년 전의 것인지 더듬어 생각하지 않고 어느 날 갑자기 듣고 싶어지는 힘을 갖게 된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글 / 이유진 기자 ■사진 / 박재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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