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당한 귀환, 김주하 앵커
“사실 저는, 마음속에는 꿈이 있었지만 앞으로 뉴스 못 할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다시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 자체가 무척 감사해요.”
그동안 김주하라는 이름 석 자에 붙었던 믿음직하고 긍정적인 수식어의 숫자만큼이나 대중이 받은 충격도 컸다. 결혼 생활만큼이나 순탄치 않았던 일련의 이혼 수순을 밟으며 그 무게를 고스란히 짊어졌을 당사자는 얼마나 힘들었을지 연락하기조차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모바일 메신저로 인사를 나눈 김주하는 살랑살랑 유쾌한 이모티콘으로 가벼워진 기분을 전했다. MBC에 사표를 낸 지는 불과 4개월밖에 되지 않았지만, ‘뉴스 하는’ 김주하를 못 본 지 2년. 이제 ‘뉴스8’ 앵커이자 특임이사로 종합편성채널 MBN에서 새롭게 출발한다. 그녀의 복귀 소식은 반가운 만큼 뜨거운 관심을 불러왔다. 일일이 인터뷰를 하기 힘들어 마련했다는 기자회견장은 일찌감치 수십 대의 카메라가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동안 힘들고 지쳤기 때문에 아이들과 같이 지내면서 정말 몇 달간은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었어요. 사실 여러 군데에서 제안을 하셨는데 쉬겠다는 말씀을 드리면 ‘다른 데랑 이미 약속했죠?’ 이런 식으로 물어보셨어요. 그런데 MBN은 제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기다려주셨어요. 저를 믿어주는 게 고마웠고 농담이지만 저희 집에서 가장 가깝기도 했고요(웃음).”
방송을 앞두고 급작스럽게 다이어트를 했는데, 뱃살이 아니라 얼굴살이 먼저 빠지더라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뉴스의 꽃이기를 거부하고 기자를 자청해 열흘에 한 번 구두 뒷굽을 갈아가며 현장을 누볐던 씩씩한 모습은 여전했다. 상처받을까 봐 인터넷 댓글은 거의 읽지 않는다지만, 한 번은 털어놓고 가야 할 ‘현재 심경 고백’도 에둘러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야기가 조금 긴데, 들어주실래요?”라며 먼저 손을 내미는 여유도 부린다.
“한창 힘든 시간을 겪고, 또 본의 아니게 그것이 세간에 알려졌을 때 늦은 저녁 언니, 동생, 지인들로부터 문자메시지들이 들어오는 거예요. ‘사실은 나도 혼자 된 지 5년 됐어’, ‘선배, 저 3년 전에 헤어지고 애하고만 살아요’. 정말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정말 힘들었을 텐데 왜 친하다고 생각한 나한테조차 말하지 못했을까. 그럼 다른 사람들에게는 더 얘기를 못했을 거 아니에요?”
나는 이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남들보다 앞서가는 신여성이어서가 아니라, 여성들이 홀로 됐다는 사실을 숨겨야만 하는 사회 분위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동안 결혼하고도, 아이를 낳고도 변함없는 앵커라는 수식어를 붙여줬던 성원에 힘입어 홀로 되고 아팠다는 걸 드러내고도 당당하게 잘 살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이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전 오히려 뉴스에서 하차하고 제가 바라던 것과는 반대로 갔어요. 개인사와 일은 별개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죠. 제가 방송을 통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제가 가졌던 생각들을 이루지 못하고 있던 차에 저에게 귀한 기회를 주신 거예요.”
시청자와 함께 늙어가는 앵커로
주말 ‘MBC 뉴스데스크’ 단독 진행에 이어 마감뉴스인 ‘뉴스 24’를 맡으며 앵커 인터뷰 코너를 따로 진행했던 그 시절 김주하의 의욕도 함께 부활했다. 가장 고심하는 대목은 앵커의 뉴스 클로징 멘트다. 내일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하는 손석희 앵커, 꿋꿋한 소신을 전했던 김성준 앵커를 넘어서는 그 무엇이 절실했을 것이다. 김주하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시청자가 듣고 싶은 말’로 가닥을 잡았다. 한동안 침묵했던 SNS도 깨워 ‘트친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생방송이 진행되는 동안 시청자들이 앵커에게 궁금해하는 질문을 받은 뒤 클로징 멘트에서 그 답을 전하기로 했다. 앵커 겸 특임이사라는 중책을 맡은 김주하는 다소 정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던 MBN의 뉴스에 동적인 활력을 불어넣고 싶다는 포부도 전했다. 첫 방송을 목전에 두고 파트너인 이동원 보도본부장과 한창 의견을 조율해가고 있다고 했다.
“사실 경험해보지 못한 일에 대해 뉴스를 전한다는 게 쉽진 않잖아요?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아이를 낳아본 사람과 아이를 낳아보지 않은 사람은 세상 보는 눈이 다르단 말이에요. 저는 그래도 다른 분들이 할 수 있는 경험도 했고, 할 수 없는 경험도 했고요. 많은 일들을 조금은 더 거치면서 자랐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성장한 모습이 방송에 어떻게 투영될 수 있을지, 월요일이 굉장히 기대됩니다.”
7월 20일 월요일 첫 방송을 앞두고 받은 질문 중 그녀가 가장 곤란해한 것은 MBC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JTBC ‘뉴스룸’ 손석희 앵커와의 동시간대 뉴스 경쟁에 대한 것이었다. 인지도나 영향력 면에서는 ‘뉴스룸’이 앞서지만, 시청률 면에서는 MBN의 ‘뉴스8’이 우위에 있다고 하니 앞으로의 판도가 흥미진진할 수밖에.
“손석희 앵커는 저보다 훨씬 선배이자 또 보도국의 사장이세요. 저는 여기서 이사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고 아직까지는 저를 믿어주셔서 굉장히 기쁘지만, 제 역량이 어디까지 될지는 지금은 미지수이고요. 그런 상황에서 손 선배와 제가 같은 시간대에 뉴스를 한다고 경쟁을 시킨다는 것 자체가 진짜 부담이에요. 손 선배님이 언짢아 하실 거 같아요(웃음). 제가 따라가기에도 급급한 분입니다.”
김주하는 질문을 하는 기자와 꼬박꼬박 눈을 맞추고, 질문의 핵심을 놓칠세라 꼼꼼히 받아 적었다. 파업 참여 이후 MBC를 떠난 후배 아나운서들 이야기를 할 때는 눈가가 촉촉해지기도 했다. 순간 수백 번의 플래시가 터졌다. 온라인 뉴스에 나온 눈시울 붉힌 김주하의 사진은 이때를 포착한 것이다. 다시 현장으로 돌아온 것만큼이나 누군가를 돌아볼 여유가 생긴 그녀의 모습에서 비로소 안도할 수 있었다.
“요즘은 HD시대라 주름이 화면에 다 보인다고 해서 화면 샷을 멀리서 잡아야 하나 걱정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웃음). 그래도 자연스러운 모습이…. 특히 뉴스를 하는 사람이, 진실을 전하는 사람이 뭔가 인위적이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그냥 그대로를 고집하고 있어요.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모습 보여드리고 싶고요. 좀 더 큰 바람은 시청자와 함께 늙어가는 거예요.”
■글 / 장회정 기자 ■사진 / 안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