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 기대주’ 천우희 영화 출연 봇물

‘충무로 기대주’ 천우희 영화 출연 봇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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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청룡영화상에서 ‘한공주’ 로 여우주연상을 받은 직후 그녀가 말했다. “유명하지도 않은 제가 이렇게 큰 상을 받다니….” 스포트라이트 밖에서 홀로 12년을 묵묵히 견뎌온 배우는 그간의 세월을 토해내듯 눈물을 쏟았고, 그날 우리는 백마디 말보다 진한 농도의 진심을 느꼈다.

천우희(29)는 신데렐라가 아니다. 12년간 영화판에서 맨몸으로 된서리를 맞아온 배우에게 ‘충무로의 기대주’라거나 ‘청룡의 신데렐라’ 같은 수식어는 가당치도 않다. 그녀에겐 동화 속 신데렐라가 당연하게 누렸던 마법 같은 호박 마차나 유리 구두가 없었다. 대신 삶의 짐을 짊어지고 고통스러워하던, 자신이 연기한 캐릭터만이 곁에 있었을 뿐이다. 반쯤 풀린 눈으로 본드에 취해 깨진 병을 들고 악다구니를 쓰던 ‘써니’의 본드걸부터 끔찍한 성폭행의 피해자이지만 누구에게도 보호받지 못하고 도망 다니던 열일곱 소녀 ‘한공주’까지. 천우희는 참을 수 없을 만큼 아프고 무거운 작품을 견뎌낸 단단한 배우다.

‘충무로 기대주’ 천우희 영화 출연 봇물

‘충무로 기대주’ 천우희 영화 출연 봇물



“언젠가는 왜 이런 고생스러운 역할만 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은 적이 있어요. 지쳐 있던 때였는데, 어떤 감독님께서 ‘네게는 그만큼의 깊이가 있다고 생각해서 믿고 맡기는 것이다’라고 하셨어요. 자부심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이제는 배우라는 직업이 힘에 부칠 때도 연기가 전생의 ‘업보’이겠거니, 하고 생각하고 살아요(웃음).”

그녀는 독립영화 ‘한공주’로 13개의 트로피를 받았다. 사람들의 기대는 높아졌고 누군가는 ‘한공주’를 뛰어넘을 작품은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할 거라고도 했다. 때로는 부담감과 불안함이 해일처럼 밀려들 때도 있었지만, 다행히 천우희는 주변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는 우직한 성격을 가졌다.

“여우주연상을 받고 난 직후에는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불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근데 지금은 그런 부분이 다 정리됐어요. 제가 원래 외유내강 스타일이에요(웃음). 상을 받기 전이나 후나 달라진 건 없어요. 그저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책임감 있게 같은 마음으로 연기할 뿐이에요.”

평단의 찬사와 대중의 사랑을 동시에 받는, 흔치 않은 여배우 천우희는 차기작 영화 ‘손님’으로 또 한 번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다. 김광태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손님’은 독일의 동화 ‘피리 부는 사나이’를 토대로 1960년대 한국의 깊은 산골 마을이라는 시공간을 접목시킨 판타지 호러 영화다. 떠돌이 악사 우룡(류승룡 분)이 외부와의 접촉을 단절한 채 살아가는 마을에 들어오게 되고 촌장(이성민 분)의 부탁으로 피리를 불어 마을의 골칫거리인 쥐 떼를 쫓아내지만, 이내 배신을 당하며 마을의 비밀이 서서히 드러난다는 내용이다.

기구한 운명의 선무당을 연기하다
류승룡과 이성민이라는 든든한 선배들과 호흡을 맞춘 이번 작품에서 그녀는 전쟁통에 가족을 잃은 젊은 과부이자, 마을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무당 노릇을 강요받는 미숙을 연기했다.

“미숙은 부담되는 인물이었어요. 전작에서 교복을 입었는데, 급작스럽게 나이대가 높은 연기를 하면 보시는 분들이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는 상황이었고요. 그럼에도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시나리오상에 미숙이라는 인물이 개연성 있게 잘 표현돼 있었기 때문이에요. 생각해보면 그 시대에 저는 결혼도 하고 아이도 있는 나이더라고요(웃음). 다른 인물을 연기한다고 해서 억지로 목소리를 바꾸거나 하진 않았고, 5kg 정도 살만 좀 찌웠어요.”

이번 영화가 화제가 됐던 또 하나의 이유. 열일곱 살 차이가 나는 류승룡과의 로맨스 때문이다. 손만 스쳐도 천우희가 “이러시면 안 돼유” 하고 물러서는 통에 진한 러브신은 없지만, 서로를 의지하는 감정선이 곱게 그려졌다.
“기대하시는 것만큼 극 중 류승룡 선배와의 러브신이 길진 않아요(웃음). 실제로 류승룡 선배는 외모는 마초 같은데 의외로 여성스럽고 섬세한 성격이세요. 제가 기력이 없어 보인다 싶으면 좋은 한의원이나 영양제도 추천해주실 정도였죠.”

영화가 클라이맥스로 치닫고 순박하던 마을 사람들이 본심을 드러내며 극의 분위기가 반전될 때, 피만 봐도 고개를 돌리는 나약하고 연약하던 그녀는 신내림을 받는다. 줄곧 감정을 꾹꾹 눌러 담아 연기하던 천우희는, 오직 그 순간을 위해 달려온 것처럼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쏟아냈다.

“실제로 무당의 접신 장면을 비디오로 보기도 했지만 그대로 따라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냥 상황에 놓인 채로 스스로를 맡겼죠. 영화 현장에서 동료 배우뿐만 아니라 스태프까지 인정한 연기를 하면 주변의 공기가 확 달라져요. 그 장면을 촬영하고 나서는 모두 한마디도 안 했어요. 분위기가 숙연해지는 걸 보고 생각했죠. 아, 내가 해낸 거구나, 하고(웃음).”

그녀는 하반기에도 연기에 굶주린 사람처럼 왕성하게 작품을 소화할 예정이다. 8월에는 조연으로 출연한 ‘뷰티 인사이드’가 개봉하고, 황정민과 호흡을 맞춘 나홍진 감독의 ‘곡성’은 내년 개봉을 목표로 한창 후반 작업 중이다. 지금은 ‘해어화’에서 기생 역할로 시대극 도전에 나서고 있다. 스물아홉을 보내고 있는 출중한 배우 천우희의 오늘은 이렇게 바쁘게 흘러가고 있다.

■글 / 서미정 기자 ■사진 / 김동연(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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