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치열 “이제, 나의 노래가 들리나요?”

황치열 “이제, 나의 노래가 들리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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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의 꿈, 그것은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저 음악을 떠나지 않을 수 있는 삶이면 족하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 순간, 신기루만 같았던 가수의 꿈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왔다.

다 포기했었다. 깨끗하게 내려놓았다. 가수의 꿈은 나의 길이 아니고 화려한 무대 역시 나의 것이 아니라고. 가수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고향 구미에서 서울로 올라온 지 9년.

황치열 “이제, 나의 노래가 들리나요?”

황치열 “이제, 나의 노래가 들리나요?”

1년을 더 보내면 그야말로 10년 세월이었다. 강산이 변한다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2006년 드라마 ‘연인’ OST로 음악을 시작했어요. 가수가 되겠다고 무작정 서울에 와서 11개월 만에 이룬 결과였죠. 기획사와 계약도 하고 여러 가수들과 듀엣도 했어요. 하지만 잘 안 됐어요. 게다가 회사 사정이 안 좋아지면서 생활고에 시달리기도 했고요. 당시 제 통장에 3만원이 있었는데 그게 전 재산이었죠(웃음).”

황치열(34)은 지난 9년의 세월을 돌이키며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고 했다. 정말 밥을 못 먹어도 좋았던 음악인데, 그 순간만큼은 ‘밥도 못 먹는 음악’이 됐다. 왜 음악을 했을까, 깊은 회의가 밀려왔다. 긍정적인 성격인데다 스스로에겐 박하다 싶을 정도로 자기 관리가 철저했던 황치열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엔 그저 멍하게 앉아 있기만 했다고. 그리고 결심했단다. 돈이 안 되는 음악이라면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당시 스물여덟 살이었는데, 그때 보컬 트레이너를 시작하게 됐어요. 괜찮더라고요. 먹고살 수는 있는 일이었으니까요(웃음). 빌미를 찾았던 것 같아요. 음악을 그만하겠다고 하면서도 진심이 아니었던 거죠. 음악을 계속 하고 싶으니까…. 그게 뭐든 음악을, 노래를 계속 할 수만 있다면 좋다고 생각했어요.”

포기한 순간 찾아온 기회
가수 황치열은 ‘너목보 황치열’로 불리곤 한다. 케이블 음악 채널 Mnet의 ‘너의 목소리가 보여(이하 너목보)’에 출연하면서 일약 스타로 발돋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직업과 나이, 노래 실력을 숨긴 미스터리 싱어 그룹에서 얼굴만 보고 실력자인지 음치인지를 가리는 대반전 음악 추리 쇼인 이 프로그램에 황치열은 일반인 자격으로 출연했다.

“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어요. 아는 작곡가 형에게 ‘너목보’ 작가분이 연락을 했나보더라고요. 괜찮은 친구 있으면 소개해달라고요. 그때 작가님이 재미있을 거라며 좋게 말씀해주시고, 저도 추억 삼아 나가보자 했죠.”

노래를 할 수 있는 비슷한 포멧의 예능 프로그램은 많았다. 하지만 황치열은 한 번도 다른 곳엔 출연하지 않았다. 가수였기 때문이다. 프로이고, 플레이어였다. 하지만 ‘너목보’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는 가수의 꿈을 접고 보컬 트레이너로 노래를 가르치는 삶을 선택했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수락할 수 있었다. 또 좀처럼 정리되지 않던 기획사 계약 문제도 해결돼 스스로 출연 여부를 결정할 수 있었던 상황도 한몫했다. 황치열의 출연 컨셉트는 ‘임재범이 인정한 아이돌 보컬 트레이너’였다. 그는 임재범의 ‘고해’를 들고 무대에 섰다. 사람들은 그가 정말 실력자일지, 음치일지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황치열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마자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잘한다는 수준을 넘는, 그야말로 탄성이 절로 나오는 프로였기 때문이다. 호소력 짙은 목소리, 호감을 주는 건강한 청년의 이미지, 거기에 서른네 살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의 탄탄한 몸과 앳된 미소까지. 단숨에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집에 TV 선이 연결이 안 돼 있어서(웃음), 아는 형 가게에서 밥 먹으면서 봤어요. ‘잘 나오네. 아직 안 늙었어!’ 이러면서 편안하게요. 그런데 방송이 끝나자마자 휴대전화가 울리고 문자메시지까지 난리가 난 거예요. PD님도 전화를 주셔서 실시간 검색어 1위라며 확인해보라고 하고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어리둥절했다. 얼른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진짜 떡하니 실시간 1위 검색어에 ‘황치열’이 올라 있더란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야말로 ‘일반인 모드’로 기념 삼아 화면을 캡처하는 정도였다. 그렇게 끝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닌 거예요. 페이스북 친구가 계속 추가되고요. 끝없이 전화와 문자메시지가 와서 휴대전화 배터리를 계속 갈아야 했어요.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서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리니까 그게 바로 기사로 뜨는 거예요. 처음 있는 일이라 무척 신기했어요.”

현재 황치열이 부른 임재범의 ‘고해’ 영상은 조회 수 150만 건을 넘어섰다.

깜짝 스타?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자고 일어나면 또다시 사라질 신기루 같은 일이 아닐까 싶었다. 실시간 검색어 순위 1위의 캡처 사진 한 장만이 유일한 기념품으로 남게 되는 그런 일.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자고 일어났는데도 여전히 휴대전화가 난리인 거예요. 여기저기 기획사에서 콘서트를 열어주겠다면서 연락도 오고, 중국 에이전시에서도 전화가 오고요.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더라고요. 어디서부터 어떻게 정리를 해야 할지 모르겠고 그냥 멍했어요. 현실적으로 뭔가 일어난 것은 없지만, 적어도 제 휴대전화에서는 엄청난 일이 일어나고 있구나 싶었죠.”

그는 가수로서 생명은 끝났다고 가차 없이 말하기도 했다. 보컬 트레이닝 학원 사업을 준비해 후배 양성을 하는 정도가 자신이 현실적으로 타진해볼 수 있는 전부라고 생각했다. 가수에 대한 미련도 욕심도 없었다. 그래서 편한 마음으로 일반인 자격으로 예능 프로그램에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방송에서도 다 내려놓고 편안하게 노래를 불렀다.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무대였다. 가수 황치열로 선 무대는 아니었지만 혼자만의 추억으로 간직하기엔 충분한 자리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것이 새로운 시작이 됐다.

“정말 하루아침에 스스로도 예상 못한 깜짝 스타가 된 거잖아요. 하지만 의외로 차분한 저 자신에게 놀랐어요. 신이 주신 마지막 기회가 아닐까 싶더라고요. ‘겸허하게 받아들이자. 그냥 하던 대로 하자. 그럼 되지 않을까?’ 이렇게요.”

좋은 일들은 계속 이어졌다. 일반인으로 나갔던 방송에 가수 게스트로 자리를 바꿔 출연을 하게 됐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상파 음악 프로그램인 KBS-2TV ‘불후의 명곡’에도 나가게 된 것이다.

“낮은 자세로 임하자고 마음먹었어요. 내 앞에 주어진 이 모든 꿈같은 기회들… 어차피 내 손에 없던 건데, 하면서요. 그러니 또 내려놓아지더라고요. 특히 ‘불후의 명곡’ 무대는 제게 특별히 감격스러운 무대였어요. 처음 그 무대에 섰는데, 와… 네! 맞아요. 주마등처럼 지나간다는 말이 뭔지 알겠더라고요.”

마침 ‘불후의 명곡’의 무대는 그가 ‘가수 황치열’로 마지막으로 출연했던 ‘윤도현의 러브레터’를 녹화했던 바로 그 장소였다. 또 아이돌 가수의 보컬 선생님으로 따라와 무대 아래서 스태프로 도왔던 곳이기도 했다. 다시 돌아올 줄 몰랐고 무대에 오를지도 몰랐다. 다시 돌아온 그 자리에서 그는 우승을 했다.

황치열 “이제, 나의 노래가 들리나요?”

황치열 “이제, 나의 노래가 들리나요?”

아버지에게 인정받은 것이 가장 기뻐
황치열은 구미에서 꽤 인지도 있는 지역 스타였다. 비보이 출신으로 춤도 잘 추고 노래도 잘하기로 소문이 자자했다. 하지만 그의 부모님은 노래하고 춤추는 아들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너목보’ 출연 이후 전화를 드려서 ‘아버지! 저 실시간 검색어 1위 했어요!’라고 말씀드렸더니 ‘어? 그래? 아빠 바쁘다 그만 끊어라’가 전부셨죠(웃음). ‘불후의 명곡’에 출연하게 됐다고 말씀드렸을 때도 ‘거기 잘하는 사람만 나가는 데 아니냐?’라고 하셨어요.”

아버지는 믿지 않으셨고 어머니는 출연을 반대하셨다. 부담되는 자리임을 익히 잘 알고 있었던 어머니는 아들이 다시 상처받을까봐 염려하셨던 것이다. 또 위암 수술을 받고 각별히 건강관리를 해야 하는 아버지 걱정도 있었다. 그냥 학원에서 아이들이나 가르치는 게 어떻겠느냐고 말리시기까지 했다.

“‘불후의 명곡’ 첫 방송 끝나고는 아버지께서 ‘야! 잘 봤다. 하하하’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두 번째 방송 후에는 ‘잘하네?’라고 하셨고요. 세 번째 출연 때는 가족 특집이어서 혹시 와주실 수 있는지 연락드렸더니 ‘오라고?’ 하면서 놀라시더라고요(웃음).”

노래라면 자리를 가리지 않고 불렀건만 아버지 앞에서 노래를 부른다고 생각하니 며칠 전부터 긴장이 됐다. 방송 당일, 리허설부터 시작해 종일 울었다. 앞에 아무도 없는 오디오 음향 테스트에서도 펑펑 울고, 메이크업을 하고 인터뷰 장면을 촬영할 때도 계속 울어서 몇 번이나 끊고 가야 했다. 오죽하면 오랫동안 만나온 고등학교 후배가 “형 이러는 거 처음 봐”라며 놀랐을까.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눈물이 글썽거려요. 아버지 얘기만 나오면 저는 수도꼭지가 돼요(웃음). 반대하는 음악을 하는 아들이었잖아요. 그렇다고 변변하게 자리를 잡고 성공한 모습을 보여드리지도 못했고요. 가수가 되겠다고 서울로 간 지 거의 10년 만에 아버지를 모시고 노래를 부르게 된 거예요. 어떤 감정이었을지 짐작이 가시죠?”

그는 지금도 기억한다. 가수가 되겠다고 무작정 서울에 가겠다고 했을 때 선선히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며 보내주던 아버지를 말이다. “잘했으면 벌써 서울서 데려갔지, 못하니까 여기 이 동네서 있는 것”이라던 아버지였다. 뭔가 이상했다. 아버지가 위암 수술을 앞두고 마지막 선물처럼 아들이 하고 싶어 하는 것을 허락하는 뜻이었다는 것을 안 것은 서울에 온 후였다.

“정말 미치겠더라고요. 지금 당장 내려가서 아버지 병간호를 해야 하나, 아니면 내가 가수로 빨리 성공을 해야 하나. 그때 결론이 ‘그래! 빨리 보여드리자. 아버지께 가수로 성공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인정을 받자’였어요.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 정말 연습 외에는 단 5분도 허투루 쓰는 게 아깝더라고요.”

시간이 없었다. 여럿이 모여 살던 홍대 인근 반지하 월세방에서 아침 7시면 일어나 연습을 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우연히 얻은 낡은 건반악기로 연주도 독학했다. 6,000~7,000원 하는 1kg짜리 크림수프 분말로 몇 끼니를 해결했던 시절. 황치열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야말로 ‘죽기 살기’로 연습을 했다.

가수 황치열입니다!
아버지를 앞에 두고 그는 절절하게 ‘아버지’를 불렀다. 진심이 통해서였을까. 그의 노래는 아버지뿐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그 이름은 다시 한번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다. 물론 ‘불후의 명곡’에서 또 우승을 했다.

“‘불후의 명곡’ 무대 이후로 아버지가 무척 좋아하세요. ‘아버지’를 부르는 장면이 방송된 뒤 주변 분들이 자꾸 밥을 사라고 하시나 봐요. ‘니 때문에 자꾸 쏴야 하잖아!’ 기쁘다는 표현을 그렇게 하세요. 경상도분이시라(웃음).”

잘되는 데는 책임감이 따르니 항상 겸손하고 조심하라고 아버지는 신신당부하신다. 잘 안될 때는 안된다고 뭐라 하시더니, 이제 잘되니까 잘된다고 걱정하신다면서 아들은 환하게 웃는다. 사랑하는 부모님께 자신의 꿈을 드디어 인정받은 보기 좋은 자신감이 묻어난다. 언제 유명해졌다는 실감이 나는지 궁금했다.

“얼마 전 고종사촌 누나와 홍대 커피숍에서 만났어요. 그때 70대 정도 돼 보이는 어르신들이 ‘황치열씨 아니냐’라며 사진을 같이 찍어줄 수 있는지 물으시는 거예요. 누나가 그날 자기 페이스북에 그 일화를 올렸더라고요. ‘치열이랑 같이 있는데 다 알아보더라’라고요(웃음).”

9년 무명 세월 동안 힘든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그중에서도 친척분들이 “치열이 요새 뭐 해?” 하고 안부를 묻는 것이 가장 무섭고 힘들었다고 한다. 황치열의 표현대로라면 ‘꼴에 자존심은 있어서’ “저 요새 프로듀서 일 하고 있어요” 하며 대충 둘러대고 뒤돌아서면 마음이 편치 않았던 것이 여러 해였다. 이번 추석은 아마도 황치열에게 가장 마음 편한 명절이 될 것 같다. 게다가 CF까지 찍었으니 말이다.

“대기업 통신사 광고가 들어왔다고 해서 ‘나한테 드디어 사기를 치는구나!’ 싶더라고요(웃음). 아무래도 의심스러웠어요. 한편으로는 이렇게 좋은 날도 오는 거구나 했죠. 아이돌 보컬 트레이너를 하면서 화려하게 데뷔하는 친구들을 보며 부러워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에요.”

가수 황치열이 가장 고마워해야 할 사람은 바로 황치열 본인이어야 할 것 같다는 말을 건넸다.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아줬고, 견뎌줬고, 노력해줬으니까 말이다. 황치열도 고개를 끄덕이며 이제는 스스로를 격려해주고 싶다고 했다. 어떻게 격려해줄 거냐 하니, 옷을 한 벌 사줄 거란다. 그동안 옷을 거의 사 입지 않았다면서. 이 청년, 더 잘되길 바라면서도 이 순수함이 계속됐으면 하는 바람을 지워버릴 수가 없다. 마지막으로 고통도 주고 영광도 준 음악이 그에게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음악은 제게 습관 같아요. 아침에 눈을 뜨면 스트레칭을 하면서 목을 풀거든요. 하루도 빠지지 않고요. 어릴 때부터 그렇게 연습을 해와서 몸에 배었어요. 보컬 트레이너 일을 하면서도 늘 학생들에게 말했어요. 음악은 도 닦는 거라고요. 제가 그렇게 기약할 수 없는 9년의 세월 동안 닦았잖아요(웃음).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변하는 건 없어요. 계속 열심히 음악 할 거예요. 다만 지금부터는 여러분이 보는 앞에서요.”

이제는 가수 황치열에게 팬들이 답을 해줄 차례다. 그는 충분히 준비했기 때문이다.

■기획 / 장회정 기자 ■글 / 강은진(객원기자) ■사진 / 안지영 ■헤어&메이크업 / 에이컨셉(02-514-4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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