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문희경, 진짜 가면을 벗는다

배우 문희경, 진짜 가면을 벗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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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으로 신분을 숨긴 채 노래 대결을 벌이는 MBC-TV 예능 프로그램 ‘일밤-복면가왕’. 최근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인물의 깜짝 등장으로 시청자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중견 배우 문희경이다. 그녀는 뮤지컬 배우 출신이니만큼 노래 실력이야 가늠할 수 있었겠지만, 무려 과거 스타 산실이던 ‘강변가요제’에서 대상을 수상했으리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배우 문희경, 진짜 가면을 벗을 시간이다.
배우 문희경, 진짜 가면을 벗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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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그녀라고?
1987년은 기자가 초등학생 시절이었었다. 당시 미스코리아대회만큼이나 강변가요제 역시 온가족이 모여 시청하는, 연례행사같은 경연 대회였다. 어느 대학생 언니, 오빠의 노래가 대상을 받을지 흥미진진하게 지켜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대상을 받은 노래가 곧 히트곡이 되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가을 소풍에서 친구들과 탬버린을 하나씩 들고 “담다디 담다디 담다디담~” 하며 신나게 어깨춤을 추었었지…. 1986년 유미리의 ‘젊음의 노트’와 1988년 이상은의 ‘담다디’ 사이에 1987년 문희경(51)의 ‘그리움은 빗물처럼’이라는 서정적인 발라드 대상곡도 있었다. 당시의 문희경이란 가수가 지금의 배우 문희경이란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녀가 ‘복면가왕’에 출연한 이후였다. 놀람을 떠나 인지 부조화로 인해 당황스럽기까지 할 정도. 그 문희경이 이 문희경이었다니!

“저를 향한 사람들의 시선을 잘 알고 있어요. 그저 TV에 자주 나오는 중견 배우고 주로 악역이나 센 역을 맡아왔던 연기자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을요. 한 번도 강변가요제 출신이라는 것을 이야기해본 적이 없었죠. 말할 기회도 없었고요.”

연기 이외에 다른 일로 화제가 되거나 관심을 받는 것은 그녀에게 조금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본업인 배우가 자신을 보여주는 것은 연기뿐이라고 생각해왔다. 드라마 ‘자이언트’나 ‘애정만만세’와 같은 높은 시청률을 보여준 작품들이 끝난 뒤에는 인터뷰나 아침 방송 토크쇼에서 섭외가 들어오긴 했지만 연기에만 집중하고 싶다는 이유로 거절한 터였다.

“어느 날 ‘복면가왕’ 제작진에게 출연 제안이 들어왔어요. 예능프로그램을 해본 적도 없고 나갈 의사도 없었는데, 제가 정말 즐겨 보던 프로그램이어서 고민이 많았어요.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죠. ‘이미지 변신하기 좋을 거다’, ‘배우 문희경에 대한 시선이 달라질 것이다’라는 설득에 출연을 결심했어요.”

애초에 그녀의 경력을 알고 PD에게 출연을 제안한 사람은 바로 MBK엔터테인먼트 김광수 대표다. 28년 전 대학생 시절, 각자 학교에서 그룹사운드 활동을 했던 두 사람은 축제나 행사를 통해 눈인사를 나누던 친한 오빠, 동생 사이였다. 분명 그녀의 출연이 이슈가 될 것을 감지한 김 대표가 제작진에게 귀띔한 것.

“나중에 김광수 오빠가 저 몰래 추천한 걸 알았어요. 대학생 때 이후로 30년 만에 연락이 됐죠. 그 인연으로 다시 만나서 소속사 없이 지내던 저의 매니지먼트까지 해주게 됐어요. 이번 출연으로 즐거운 기억도 만들고 정말 좋은 인연을 얻은 셈이죠.”

문희경이 가면을 벗는 순간 시청자는 물론 그녀와 가까이 일했던 방송 관계자들도 모두 놀랐다. 그 순간 그녀에게 문자메시지가 쏟아졌다.

“같이 작업했던 감독님들이 깜짝 놀라서 연락을 많이 주셨어요. 다들 새로운 면을 봤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안에서 저에 대한 영감도 새롭게 받을 수 있을 것 같고, 곧 캐릭터에 변화도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웃음).”

무엇보다 가장 크게 얻은 것은 시청자들이 이제 ‘문희경’이란 이름 석 자를 기억해준다는 점이다.


배우 문희경, 진짜 가면을 벗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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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경
찾아서

뮤지컬 무대를 떠나 TV로 활동 무대를 옮긴 지 8년. 수십 편의 드라마에 출연했지만 그녀의 이름을 기억해주는 사람은 좀처럼 만날 수 없었다.

“그동안 제 연기가 강한 인상만을 줬는지 사람들을 만나도 극 중 역할로만 기억하시더라고요. 제 이름을 알지 못하셨죠. 평상시에 저는 맨얼굴로 다니다 보니 그 간극이 상당한지 ‘아니 이렇게 착하고 순하게 생긴 분이 어떻게 그런 섬뜩한 역만 하세요?’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어요.”

예능 프로그램의 힘이란 무서울 정도다. 단지 한 번 출연했을 뿐인데 사람들의 시선이 바뀌기 시작했다. 특히 젊은이들이 그녀를 알아보고 친숙하게 인사를 하며 다가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문희경씨 아니세요?’라고 이름을 정확히 불러주는 일이 많아졌죠. 센 역할 때문에 접근을 못하셨는데, 이제는 많이들 좋아해주시고 시청자들과 소통이 되니까 오히려 어딜 가나 편안해지더라고요.”

가족의 반응도 궁금하다. 현재 중학교 3학년인 외동딸은 처음에는 엄마의 ‘복면가왕’ 출연을 반대했다고 한다.

“‘엄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노래 잘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라며 나가지 말라고 했어요. 딸에게도 비밀로 하고 녹화를 했죠. 그러곤 방송 전날 이야기했더니 애가 기절하려고 하는 거예요(웃음). 막상 방송을 보더니 딱 한마디하더라고요 ‘욕 안 먹어서 다행이야.’ 신중하고 쿨한 성격이 저를 닮은 것 같긴 해요. 애교도 없고 무뚝뚝한 녀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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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뜨거운 여름이 시작되다
가수의 꿈은 어린 시절부터 시작됐다. 제주도에서도 더욱 깊은 시골로 들어가야 나오는 그녀의 고향에서 가수란 꿈은 그저 허황돼 보였다.

“가수를 하고 싶은데 방법은 없고 일단 공부를 열심히 해서 제주도를 벗어나자고 생각했어요. 그 길만이 제가 꿈을 이룰 수 있는 길이었죠. 집안에서는 교대를 나와서 초등학교 교사가 되길 원했고 서울에 가는 건 반대하셨죠. 포기하기에는 제 꿈이 무척 아까운 거예요. 몰래 숙대 불문과에 원서를 넣어 합격했더니 등록금을 내주시더라고요. 그렇게 제주 시골 소녀가 꿈을 위해 상경한 거죠.”

꿈은 빨리 이뤄지는 듯했다. 대학교 3학년 때 프랑스 대사관에서 주최한 샹송 경연 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것. 부상으로 두 달간 프랑스 어학연수까지 다녀왔다. 게다가 다음해 강변가요제에 나가 또 대상을 수상. 드디어 꿈이 이뤄지는 줄로만 알았다.

“연달아 상을 타니 세상이 참 만만하고 쉬워 보이더라고요. ‘내가 하니까 다 되네?’ 하는 자만도 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앨범을 냈는데, 반응이 전혀 없는 거예요. 심지어 저와 함께 경연했던 은상(홀로된 사랑)과 동상(매일매일 기다려) 수상곡들이 더 큰 대중의 인기를 얻었죠. 그때 크나큰 상처를 받았어요. 제 존재는 가수로 제대로 된 활동도 못해보고 사라져버렸죠.”

문희경은 가수의 꿈은 접었지만 노래를 할 수 있는 직업을 찾았고 뮤지컬이란 장르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뮤지컬 배우로서 제2의 인생이 시작됐다.
“노래 때문에 시작한 뮤지컬인데 꽤 적성에 맞았어요. 그리고 ‘밑바닥에서’라는 뮤지컬 공연을 하고 있었는데 안면이라곤 없던 영화 ‘말아톤’의 정윤철 감독님이 연락을 주신 거예요. 새로운 영화를 준비하면서 신선한 인물을 찾고 있는데 얘기 좀 해보자고요.”

가벼운 미팅 자리인 줄 알았던 그곳에서 오디션 아닌 오디션을 보고 그녀는 바로 정 감독의 영화에 파격 캐스팅됐다. 그 영화가 김혜수, 박해일, 유아인 주연의 ‘좋지 아니한가’였던 것. 영화는 큰 흥행은 거두지 못했지만 영화 마니아들과 평단에서는 호평을 받았고 자연스럽게 드라마 출연으로 이어졌다.

“배우인 게 만족스러워요. 최상의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배우를 하지 않았다면 무슨 재미로 살았을까, 아득해져요. 악역을 맡더라도 소리 지르고 싸우다 보면 스트레스가 확 풀리거든요.”

톱스타가 갖는 인기나 팬의 열광은 없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편안하게 연륜을 보여주는 연기를 할 수 있는 지금의 자리가 행복하다. 인생에서 운 좋게도 몇 번의 좋은 기회를 얻었지만 거저 얻은 것은 아니다. 사람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삶에 대한 태도가 주효했다.

“인생을 살수록 사람과의 인연은 참 중요한 것 같아요. 한 번 맺은 인연은 소중하게 여기며 오래 갈 수 있도록 했어요. 또 연기를 하면서도 잘 사는 것에 대해 많이 생각해요. 경제적인 것을 떠나 행복의 길은 좋아하는 이들과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 그것이 행복이죠.”

문희경은 그녀가 태어난 제주도로 다시 돌아간다. 영화 ‘지슬’의 오멸 감독과 함께 제주 해녀에 대한 영화를 찍는다. 어린 시절 제주의 자연에서 만끽하며 싹튼 감성과 정서는 연기자로서 살아갈 수 있는 최상의 바탕이 돼주었다.

“제주도 사람이라면 모두 갖고 있을 거예요. 항상 고향에 대한 진한 감정이 있어요. 작년에 동향 사람인 오멸 감독이 해녀 이야기를 다룬 영화를 준비 중이라며 출연 제안을 했어요. 드라마 몇 편을 못하게 되더라도 이 영화는 꼭 하고 싶더라고요. 제 고향의 이야기니까요.”

영화 제목은 ‘바당 감수광(바다 가세요)?’이다. 해녀들이 아쿠아로빅 전국 대회의 특별 오프닝 공연을 준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코믹 드라마다. 영화는 제주 올 로케로 찍는다.

“어린 시절에는 잠수해 소라도 따보고 했던 경험이 있어 일단 바다가 편해요. 그렇지만 숙련된 해녀 역할이기 때문에 정식으로 스킨스쿠버도 배우고 해녀 학교에 가서 체험도 할 예정이에요. 진짜 제주도 사투리를 사람들에게 선보일 생각을 하니 흥분돼요.”
배우 문희경, 진짜 가면을 벗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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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에게나 몇 번의 기회가 온다.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문희경은 그것을 잡을 수 있었다. 가면 속 그녀에게 보낸 갈채는 우연히 얻어진 것만은 아니다. 이제 그녀는 뜨거운 기운을 가득 머금고 있는 제주의 푸른 바닷속으로 잠수한다. 그녀의 이번 여름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울 것이다.

■글 / 이유진 기자 ■사진 / 박재찬 ■의상&액세서리 협찬 / 나무하나(070-4714-6480), 세라(02-469-1630), 스톤헨지(02-3284-1300), 에스까다(02-3014-7420), 에흐드쥬(02-792-8951), 엠주(02-3442-3065) ■장소 협찬 / 라마다 서울(02-6202-2000) ■헤어&메이크업 / 화주, 신재(제니하우스 프로모점, 02-3448-7114) ■스타일리스트 / 박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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