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치마를 두른 레슬링 챔피언 이왕표

앞치마를 두른 레슬링 챔피언 이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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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탕하게 링을 누비던 이왕표가 암 투병 중이라는 소식은 큰 충격이었다. 다행히 그는 다시 건강을 되찾아가고 있고, 자신의 경험이 담긴 항암 요리책까지 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프로레슬링의 인기를 되찾고 학교폭력 예방에 앞장서는 제2의 인생 계획도 세우고 있다.

앞치마를 두른 레슬링 챔피언 이왕표

앞치마를 두른 레슬링 챔피언 이왕표

지난 5월, 40년간의 선수 생활을 마감한 이왕표(61)는 아직도 김일체육관의 문하생으로 처음 들어갔을 때를 잊지 못한다. ‘박치기왕’ 김일 선생의 경기를 보면서 레슬러의 꿈을 키우던 1975년 어느 날, 김일체육관에서 문하생 1기를 뽑는다는 광고를 보고 단숨에 달려갔다. 그러나 그는 체중이 기준에 못 미쳐 자격 미달이었다. 하지만 고 김일 선생은 열의에 가득 찬 이왕표의 눈빛을 보고 그를 제자로 받아들였다. 시작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자신이 운동을 꽤 잘한다고 생각했지만, 선배들과 겨룬 스파링에서 살려달라며 바닥을 두드리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열심히 준비해서 데뷔를 했는데도 무려 20연패를 했어요. 매번 경기를 마치면 고개를 숙이고 링에서 내려왔던 기억이 나요. 너무 힘들어서 매일 밤 명동 거리를 방황하기도 했어요. 김일 선생님께서 저를 잡아다놓고 많이 혼내셨죠. 정신을 차리고 다시 운동에 전념하다 보니 한 번 두 번 승수가 쌓이더라고요. 그렇게 챔피언 자리에 오르고 김일 선생님의 후계자가 됐죠.”

‘나는 표범’. 선수 시절 그의 별명이었다. 짙은 콧수염에 날카로운 눈빛, 표범이 그려진 태권도복을 입고 등장해 시원한 돌려차기와 드롭킥(제자리에서 뛴 상태로 몸을 비틀어 양발을 이용해 힘차게 밀어 차는 기술)으로 상대를 쓰러뜨렸다. 하지만 기자가 만난 이왕표는 예전과 달리 수척한 모습이었다. 담도암으로 투병을 하면서 120kg에 달하던 그의 몸무게는 80kg대로 떨어졌다. 키가 190cm인 것을 감안하면 날씬하다 못해 수척할 지경. 하지만 묵직한 카리스마는 여전했다. 스승인 김일 선생이 15년 전 은퇴식을 치른 장충체육관에서 똑같이 현역 생활을 마감한 그는 우수에 찬 눈으로 뜨거운 소회를 전했다.

“40년 세월을 어떻게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겠어요. 눈물이 안 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은퇴식에 입장하는 순간부터 콧등이 시큰해지더라고요. 침체된 레슬링을 전성기 때처럼 부활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후배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많아요. 젊은 친구들이 마음 놓고 운동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물려주는 것이 선배의 몫이라고 생각하고 노력했지만 많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가장 아쉬운 건 은퇴 경기에 직접 참여하지 못하고 관전만 했다는 거예요. 뭐든지 하고 싶은데 할 수 없을 때가 가장 아쉽죠.”

그가 앓고 있는 담도암은 간에서 만들어진 답즙이 십이지장까지 가는 경로인 담도에서 암세포들이 형성되는 병으로 치료하기 어려운 암에 속한다. 2013년 암 판정을 받은 그는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오로지 의사들이 지시하는 대로 움직여야 했다. 다시 링 위에 서야겠다는 생각은 머릿속에서만 맴돌 뿐이었다. 세 번의 수술을 받은 뒤 부축하는 사람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해졌다.

“식사를 하려는데 젓가락을 못 들겠는 거예요. ‘죽을 때가 왔나 보다’라고 느꼈죠. 손톱을 깎을 수도 없었어요. 천하장사가 손톱깎이 쓸 힘도 없다니 정말 슬펐죠. 그때 저도 울고 집사람도 울었어요. 몸이 이렇다 보니 항상 최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럴 때마다 마음을 다잡았죠. 절망하기보다는 희망을 가져야 한다고요.”

다시 일어서다
세 번의 수술 과정을 거치다 보니 6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생존 확률이 10%밖에 되지 않는 항암치료를 받는 것보단 식이요법을 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암과 싸운 지도 2년. 다행히 병이 많이 호전돼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매일 아침 눈을 뜨고, 아내의 얼굴을 보고 대화를 나누고, 물 한 잔을 마시며 상쾌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고 한다. 과거에는 당연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지금은 무척이나 소중하게 느껴진다고. 기력은 예전 같지 않지만 그는 여전히 행복하다고 말한다.

“식이요법을 하면서 먹고 싶은 걸 마음대로 먹을 수 없는 게 힘들긴 했어요. 먹을 수 있는 것보다 먹지 말아야 할 것들이 더 많으니 고통스러웠죠. 예전엔 고기를 구워 먹는 걸 좋아했는데, 발암물질이 나온다고 해서 삶거나 쪄 먹어야 했어요. 그렇게 몸에 좋은 음식이나 조리법을 찾다 보니 내 몸에 필요한 것과 궁합이 잘 맞는 것을 알게 되더라고요.”

식단을 철저하게 바꿀 수 있었던 데는 아내의 도움이 컸다. 재일교포인 부인 최숙자씨는 10년 전 그와 결혼했다. 두 사람은 최씨의 어머니가 이어준 인연이었다. 이왕표가 봉사 단체 ‘로타리클럽’ 회장을 맡고 있을 당시 최씨의 어머니도 열심히 활동하던 회원이었다. 어머니와 행사장에 자주 동행한 최씨는 매번 이왕표와 마주쳤고, 이내 둘은 부부가 됐다. 인터뷰 중 만난 부인은 매우 상냥하고 조신했다.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가 나올 때면 쑥스러운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암에 걸린 남편을 지극정성으로 간호한 아내 덕분에 이왕표는 골프를 하러 다닐 정도로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다.

“아내한테 정말 고맙죠. 매일 삼시 세끼 손수 차려주고 수술할 때마다 동의서에 사인해야 했는데, 정말 힘들었을 거예요. 제 몸이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암은 1~2년 안에 완쾌되는 게 아니라서 길게 봐야 한대요. 한 5년은 봐야 한다던데 전 아직 2년 차예요. 3년이 얼른 지나갔으면 좋겠어요. 그 기간 동안에도 컨디션과 음식을 조절하고 해이하지 않도록 노력해야겠죠.”

앞치마를 두른 레슬링 챔피언 이왕표

앞치마를 두른 레슬링 챔피언 이왕표

철저한 식이 조절로 병세를 호전시킨 그는 「앞치마 두른 세계 챔피언」(프레이온)이라는 항암 요리책도 냈다. 2년 동안 항암 요리를 분석해온 경험을 다른 암 환자들과 공유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책 속에는 아내와 직접 요리해 먹었던 채소초밥, 삼색 채소구이, 연근 물김치 등 38가지 레시피가 담겨 있다.

“어렸을 때부터 체육관 생활을 했기 때문에 주방일이 낯설지 않아요. 요리를 잘해야 선배들에게 칭찬도 받고 하루를 편하게 지낼 수 있었죠(웃음). 전문적인 기술은 없어도 저 혼자 한 끼 해결하는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어요. 결혼한 뒤엔 아내가 워낙 잘 챙겨줘서 호강하고 지내다가, 암에 걸리고 나서부턴 아내와 함께 좋은 식재료로 맛있게 먹는 방법을 연구하게 됐어요.”

개인적으로 추천하고 싶은 메뉴가 있냐고 묻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어떤 요리를 추천하는 것은 옳지 않다면서 말이다. 자신이 즐겨 먹는 식재료 중 유익한 성분이 풍부한 것을 찾고 꾸준히 섭취하는 게 중요하단다. 이 순간만큼은 그가 항암 요리 전문가처럼 보였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지식이니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식이요법은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상당 기간 오래 지속해야 해요. 저 같은 경우 해조류를 좋아하기 때문에 미역, 다시마 등을 활용한 요리를 즐겨 먹었어요. 이미 잘 알려진 항암 식품은 버섯, 배추, 브로콜리, 호박, 청국장, 생선 등 우리가 늘 접하는 것들이 많아요. 이 중에서 평소에 좋아하던 식재료를 튀기거나 굽는 대신 생으로 먹거나 삶고, 끓이는 방식으로 조리하면 됩니다.”

또 다른 시작
‘내가 아내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다면….’ 그는 줄곧 이런 생각을 해왔다. 마음이 급해졌다. 그래서 유서도 써놓고 사후에 안치될 납골당 자리도 마련해놨다. 오히려 죽음을 준비하다 보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래서 이제는 앞으로의 삶을 생각할 여유도 생겼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프로레슬링을 다시 인기 스포츠의 반열에 올려놓는 것이다.

“원래 체육관을 운영했는데 아프기 시작하면서 문을 닫았어요. 이제 다시 체육관 열 준비를 하려고요. 종합격투기와 레슬링을 병행하는 계획도 세우고 있어요. 공개 오디션을 통해 실력을 두루 갖춘 선수들을 선발할 예정이에요. 지금까진 레슬링을 하고 싶다고 저에게 찾아오는 친구들이 있어도 받아주지 않았거든요. 제가 책임지지 못하면 그들은 바로 미아가 돼버리니까요. 그래서 항상 기다리라고만 했었는데 이제는 제대로 해보고 싶어요. 요즘엔 레슬링 경기를 1년에 몇 번 안 하는 ‘특집’ 정도로만 생각하잖아요. 이제는 꾸준하게 경기를 열고 싶어요. 여태까지 수많은 세월을 ‘이왕표’라는 이름으로 이끌어왔지만 이제 새로운 스타를 만들어야죠.”

이제 선수가 아닌 후원자로서 프로레슬링의 발전을 위해 힘쓸 거라는 그는 학교폭력 예방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유소년들의 울타리 역할을 해주자는 의미로 ‘울타리 클럽’을 만들었다. 주요 활동은 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경험이 녹아 있는 강연을 하는 것. 요리책의 수익금 역시 학교폭력 예방 활동에 쓸 예정이라고 한다.

“과거 레슬링 선수들이 유소년들에게 용기를 주기도 했지만 우리도 그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 그래서 지금의 ‘이왕표’도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줄곧 제가 받은 사랑을 아이들한테 돌려줘야겠다는 생각을 해왔어요. 우리는 몸이 아플 때 의사를 찾아가죠. 신뢰가 가니까요. 어떻게 보면 레슬링 선수들이 학교폭력 문제에서는 ‘의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힘에선 최고인 사람들이 폭력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걸 일러준다면 아이들이 느끼는 부분이 있을 거예요. 사실 학교폭력은 비단 아이들만의 문제는 아니잖아요. 어른들이 조금만 더 관심을 갖고 아이들에게 손을 내민다면 분명히 해결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지금까지 그가 말한 계획은 전부 자기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한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자신만을 위해 하고 싶은 일은 없냐고 묻자, 그는 잠시 머뭇거렸다. 한참을 고민한 뒤에도 질문이 너무 어려운 것 아니냐며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

“우리 나이에는 다들 은퇴를 하는데 저는 지금부터 뭔가를 새로 하고 싶어요. 청춘을 레슬링에 바쳤으니 조금 색다른 걸 해보고 싶죠. 기회가 되면 사업을 해볼 생각이에요. 돈을 많이 벌어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에 쓰면 좋지 않을까요?(웃음). 또 제가 과거에는 근육질의 사나이였는데 지금은 일반인들하고 비슷해졌어요. 사라진 근육을 되찾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건강을 지켜야겠죠. 항상 좋은 생각만 하고 식단 조절도 철저히 하면서 차츰차츰 운동량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링 위를 누비던 이왕표는 우리에게 ‘할 수 있다’라는 용기를 줬다. 선수 생활을 마친 뒤에도 암을 극복하며 우리에게 또 다른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아직 그가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다. 일상의 모든 것에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는 그는 이제 링 위가 아닌 더 넓은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중이다.

■글 / 노도현 기자 ■사진 / 김동연(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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