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점 공개]로커로 변신, 연기 그 이상을 해낸 메릴 스트립](http://img.khan.co.kr/lady/201509/20150827174607_1_01m.jpg)
[독점 공개]로커로 변신, 연기 그 이상을 해낸 메릴 스트립
“리키는 지극히 평범한 인물이에요. 그래서 더욱 솔직하게 느껴졌죠. 이미 시나리오를 볼 때부터 영화에 마음을 빼앗겨버렸어요. 감동적이고 우여곡절이 많은 스토리예요. 재미도 있으면서 말이죠.”
전남편과 세 아이가 있는 인디애나를 떠나 홀로 LA에서 사는 리키. 언제나 가족보다 음악이 우선이었다. 어릴 때부터 새어머니 밑에서 자란 자식들은 짙은 눈 화장을 하고 가죽 재킷을 입는 엄마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딸 줄리의 결혼생활이 사위의 바람으로 파경을 맞게 되면서 그녀는 20년 만에 가족에게로 돌아간다. 그녀를 가족과 갈라놓은 ‘음악’이 이번엔 갈등과 오해를 풀어나가는 열쇠가 된다.
“음악을 좋아해요. 고등학교 때 밴드 보컬로 노래한 경험이 있어요. 13명이나 되는 관객 앞에 서봤으니 리키의 감정을 조금은 느껴본 셈이죠(웃음). 영화 속에서 저희는 모든 것을 라이브로 연주해야 했고, 리허설을 위해 딱 2주가 주어졌어요. 그리고 제가 연주하고 노래한 것이 영화에 그대로 들어갔죠. 압박감이 보통이 아니었어요.”
음악을 좋아하고 기타 치는 시늉을 잘하는 것으론 부족했다. 현장에서 라이브로 노래를 불러야 했고 기타를 연주해야 했다. 열두 살 소녀 시절 오페라 가수를 꿈꾸며 성악을 배웠기 때문에 보컬은 문제없었다. 맨땅에 헤딩하듯 리허설 전 3개월 동안 기타를 배웠다. 그나마 안심이 됐던 건 그녀의 밴드가 이미 출중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는 것. 리드 기타이자 리키와 사랑에 빠지는 그레그 역은 1980년대 최절정의 인기를 누렸던 가수이자 배우, 릭 스프링필드가 맡았다.
“처음엔 그들의 연주를 잘 쫓아가지 못했어요. 밴드 멤버들은 제가 계속 사과를 하니까 매우 짜증 났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참을성 있게 저를 지켜봐줬죠. 밴드와 조화를 이루기 위해 멈추지 않고 계속 연습했어요. 리키가 왜 음악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는지 이해가 되더라고요. 정말 즐거웠거든요. 합주를 시작한 지 일주일이 지나고 나니 드디어 진짜 밴드 느낌이 났어요.”
촬영 시작 수개월 전부터 영화에 전념한 그녀는 진정한 노력파다. 열창하던 무대에서 내려와 관객들이 있는 바에 다가가 혼자 술을 마시는 장면은 그녀가 캐릭터에 몰입한 결과 탄생했다. “저런 건 어디서 배운 거야?”라는 감독의 질문에 돌아온 그녀의 답은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어요”였다. 메릴 스트립은 연기 그 이상을 해냈다.
엄마 그리고 배우로 산다는 것
인간이라면 누구나 바꾸고 싶은 과거가 있게 마련이다. 리키 역시 아이들을 두고 떠났던 과거의 행동을 바로잡으려고 한다.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 딸을 위로하기 위해 그녀만의 로큰롤 세계를 잠시 떠난다. 하지만 과거의 안정적인 삶으로 완전히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이미 ‘리키’로서의 삶에서 안정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실수를 안고 살아가야 해요. 리키는 자신의 잘못을 후회하지만 매우 현실적인 시각을 갖고 있어요. 매 순간을 즐기려고 하고 항상 즉흥적으로 행동하죠. 평범하지 않은 캐릭터를 연기하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에요. 이렇게 제가 아닌 모습으로 사는 것은 상상도 못하겠지만요(웃음).”
리키와 달리 실제 메릴 스트립에게 1순위는 언제나 가족이었다. 조각가인 남편 돈 검머와의 사이에는 아들 한 명과 세 명의 딸이 있다. 그중 두 딸은 그녀와 같이 배우의 길을 걷고 있다. ‘어바웃 리키’에서 줄리를 연기한 마미 검머가 바로 그녀의 둘째 딸이다. 딸과 함께 일한다는 건 무척 행복한 작업이었다고 그녀는 말한다. 실제로 육아와 일을 병행했던 그녀의 지난날들은 과연 어땠을까.
“저는 촬영 장소를 보고 영화를 고르는 경지까지 간 적이 있어요. 만약 일 때문에 2주 이상 집을 비워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출연을 거절했던 거죠. 한때는 멀리 나가야 하는 일은 아예 하지 않기도 했어요.”
두 모녀는 현실적인 전율을 전달하며 영화에 힘을 더한다. 감독은 두 배우에게 촬영장 밖에서는 대화하지 말 것을 제안했다. 실제로는 매우 친한 두 배우를 소원한 관계로 그려야 했기 때문이다. 상처만 가득했던 두 캐릭터의 관계는 여느 모녀들처럼 브런치를 먹고 쇼핑을 하면서 조금씩 풀려간다. 두 배우는 사소하지만 섬세한 모녀간의 감정을 충실히 표현해냈다.
“이 분야에 몸을 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에요. 특히 할리우드에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엄마를 두었다면 더욱 그렇죠. 배우로 살고 있는 두 딸도 현실을 잘 알고 있거든요. 예순이 돼서도 오디션을 봐야 하고, 항상 광고 섭외 전화를 기다려야 하는 것도요. 환상 같은 건 갖고 있지 않죠. 그런 점에서 저는 마미의 열정을 굉장히 높이 사요.”
다음 작품으로는 ‘플로렌스 포스터 젱킨스’를 선택했다. 그녀는 가수의 지위를 얻기 위해 부를 이용했던 플로렌스를 연기한다. 20세기 초 미국에서 활동했던 실존 인물로 음악에 전혀 소질이 없었던 성악가로 유명했다.
“‘진정한 아티스트는 명성이나 돈을 위해서가 아닌 즐기기 위해서 음악을 하는 아마추어’라는 말이 있잖아요. 플로렌스는 음악의 꿈을 꿨던 진정한 아마추어인 거죠. 정말 매력적 인물이에요.”
‘아카데미의 여왕’이라는 수식어는 하루아침에 생긴 게 아니다. 무려 19번이나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된 것은 그녀의 식지 않는 열정 덕분이었으리라. 수상, 셰프, 수녀, 마녀, 로커에 이어 성악가로 변신 중인 ‘천의 얼굴’ 메릴 스트립의 도전은 언제나 아름답다.
■글 / 노도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