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병사’ 박형식 배우로 급성장

‘아기 병사’ 박형식 배우로 급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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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프로그램의 눈에 띄는 ‘캐릭터’는 무명의 연예인을 일약 스타로 만들 수도 있지만, 오래도록 그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될 수도 있다. 드라마 ‘상류사회’로 연기의 맛을 알아버린 박형식의 얼굴에선 더 이상 보송보송 사랑스러운 ‘아기 병사’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아기 병사’ 박형식 배우로 급성장

‘아기 병사’ 박형식 배우로 급성장

모두에게 도전이었다
최근 아이돌 그룹치고 연기 하는 멤버가 없는 팀은 없다. 그리고 요즘 연기를 시작하는 신인들 가운데 아이돌 그룹 경력이 없는 인물을 찾기도 쉽지 않다. 일부에서는 이런 분위기를 곱지만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본다. 연기에 대한 진정성 그리고 연기력에 대한 우려다. 이 우려를 불식시킬 만한 연기력을 가진 아이돌 그룹 출신 연기자들은 분명 있다. 단지 순수한 배우 지망생들에 비해 인지도가 좀 더 있다는 이유로 시작부터 부정적인 잣대에 맞서야 했던 경우도 있었고, 여느 배우들보다 엄한 기준으로 연기력 논란에 휩싸였던 경우도 있다. 아이돌 그룹이라는 경력은 이들에게는 장점인 동시에 대중의 질타를 받기 쉬운 구실인 셈이다.

배우 박형식(24)은 2010년 데뷔한 그룹 제국의 아이들의 멤버다. 가수 활동을 하던 그는 2012년 SBS-TV 드라마 ‘바보엄마’를 통해 연기에 도전했다. 2013년 KBS-2TV 드라마 스페셜 ‘시리우스’와 tvN ‘나인: 아홉 번의 시간여행’에서 아역 연기를 한 그는 그해 SBS-TV 드라마 ‘상속자들’을 통해 연기자로서 이름을 알렸다.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받지만, 공부보다는 예체능 쪽으로 재능을 가진 국내 최고 법무법인 대표 변호사의 아들 명수 역을 맡아 어엿한 연기자로 자리매김했다.

이후부터 박형식은 좀 더 빠른 물살에 몸을 맡길 수 있게 됐다. ‘시청률 보증수표’라 불렸던 KBS-2TV 드라마 ‘가족끼리 왜 이래’에서 주연급 연기를 소화한 이후 최근 종방한 SBS-TV 드라마 ‘상류사회’로 연기 인생에 커다란 방점을 찍었다. 어느덧 박형식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던 ‘일밤-진짜 사나이’가 만들어준 보석 같은 캐릭터 ‘아기 병사’의 이미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상류사회’에서 박형식은 냉철하면서도 안하무인인 유창수 본부장으로 분했다. 그의 연기 변신은 상대역 이지이로 출연한 임지연에게도 놀라운 일이었다. 평소 친분이 있었던 그녀는 유창수 역할이 박형식에게 돌아갔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어 했다고 한다.

“제게도 그렇고 감독님, 작가님에게도 모두 도전이었던 작품이죠. 캐스팅 기사가 뜨고 나서 댓글을 봤는데 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어요. ‘과연 할 수 있을까. 역할을 하기엔 어린 게 아닐까’라는 반응들이었는데요. 제 가능성만 보고 믿어주신 분들에게 감사했죠. 그랬기 때문에 더 열심히 했어요.”

그가 ‘상류사회’에서 연기했던 유창수는 극 중 재벌가인 유민그룹의 3남으로 자신의 힘으로 뭔가를 해본 적이 없는 인물이었다. 심지어 자신의 영역인 경영의 핵심적인 파트도 친구 최준기(성준 분)에게 맡길 정도다. 그랬던 그가 평범한 마트 점원 출신인 이지이를 만나면서 자신의 정체성과 입지를 깨닫는다. 미니시리즈 주연급 출연이 처음이었기에 긴장감이 컸던 박형식은 다소 유약해 보이지 않느냐는 방영 초기 의견을 보란 듯이 불식시켰다. 많은 시청자들이 박형식과 임지연의 극 중 호흡에 흥미를 보였다.

“여러 작품을 했지만 비중이 크고 처음부터 끝까지 출연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거든요. 기쁘고 새로웠어요. 우선 좋은 작가님, 감독님을 만난 게 수확이었고요. 또래 배우들과의 분위기도 무척 좋아서 기억에 남아요.”

깨어난 연기 본능
박형식의 분석에 따르면 유창수는 단순하면서도 똑똑한 아이였다. 감정 표현에 솔직하고 야망이 있었다. 또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한 생각도 분명했다. 오히려 그는 어린아이같이 순수했기 때문에 자신의 욕망에 솔직할 수 있었다. 그런 유창수에게 재벌가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된다고 알려진 계급의식은 무척이나 자연스러웠다. 그에게 이지이는 상대해서는 안 되는 계급의 사람이었다. 하지만 사랑의 열병은 유창수에게도 밀어닥쳤다. 박형식도 ‘상류사회’를 통해 배운 게 많았다고 했다.

“오열도 하고, 가슴도 아프고, 어쩔 수 없다는 것도 깨닫고. ‘아, 사랑한다면 이렇게 하는 거구나’ 하고 느꼈죠. 연기를 하다 보면 캐릭터에게 배우는 부분이 많아요. 제가 창수라는 인물을 제일 잘 아니까요. 그중 가장 공감한 것은 세상이 꼭 자신이 의도한 대로 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에요. 크게 다른 의도 없이 한 행동에서 오해가 생기죠. 고두심 선생님 대사를 보면서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순수는 온갖 잡탕을 정제하고 단련시킨다. 반면에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건 순진한 거라 이용당하기 쉽다’라는 대사였죠.”

굳이 고두심의 대사를 최근 상황에 대입하자면 박형식은 순수함보다는 순진한 쪽이다. 연예계 생활 5년간 이렇다 할 위기를 겪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했다고 하기에도 아쉬움이 있다. 그가 속한 그룹 제국의 아이들은 가수로서는 아직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임시완과 황광희, 박형식 등 멤버 개인의 활동이 더 주목받고 있다. 박형식 역시 본업인 가수보다는 예능 프로그램과 드라마를 통해 빠르게 인기를 모았다. 그도 이 부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좀 더 스스로를 단련하려 애쓰고 있다.

‘아기 병사’ 박형식 배우로 급성장

‘아기 병사’ 박형식 배우로 급성장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저도 자라죠. 이번 유창수 역을 하면서는 ‘이런 환경에서 자라면 이렇게 될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평소 어른들이 책을 많이 읽으라고 하시는 것도 이유가 있는 거였어요. 배역이 평소 성격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실감했거든요. 저는 유창수가 까다로운 캐릭터였기 때문에 평소에도 좀 예민해지려고 애썼거든요. 어떻게 보면 스스로 본능적으로 열심히 한 쪽이었죠. 신인 때는 많이 생각하지 않고 그냥 소처럼 일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제는 좀 더 현실적으로, 이성적으로 생각하게 되고 가치를 판단하고 재면서 활동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연기의 감을 잡아가면서부터 자연스럽게 귀도 열렸다. 연기자로서는 대선배인 정경순과 방은희가 현장에서 들려준 이야기를 박형식은 한 줄기 빛과 같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돈과 인기에 연연하지 마라. 10년 후에도 너를 지켜주는 것은 오로지 실력이다. 영화도 많이 보고, 여행도 많이 하고, 연애도 많이 하라’라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역시 어른들의 눈에는 보이나 봐요. 그 말씀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기게 됐죠. 연기는 저 스스로 더욱 잘하고 싶다고 의지를 갖게 만드는 일이에요. 좀 더 원하게 되고 미래를 위해 더 잘되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선배들의 말씀이 힘이 됐죠.”

그러고 보면 박형식은 행운아다. 제일 좋아하는 일로 대중의 관심을 얻게 됐다. ‘상류사회’를 마친 그에게 무려 60여 개에 가까운 매체의 인터뷰 요청이 이어졌다. 5일간 이 모든 일정을 소화하느라 하루 12시간여를 인터뷰하는 데 썼다. 기자가 그를 만난 날은 서울의 기온이 35℃를 훌쩍 넘었던 숨이 턱턱 막히던 날이었다. 조금 무리가 아닐까 싶었지만, 소속사 측에서는 “박형식 스스로의 의지로 많은 인터뷰를 진행하게 됐다”라고 귀띔했다. 그런 그가 인터뷰 막바지 ‘태도 논란’에 휩싸인 것은 억울한 부분이 있다. 피로는 인력으로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그로 하여금 체력적인 한계를 무릅쓰고 수많은 인터뷰에 응하게 했던 것은 무엇일까.

“이를테면 이런 거예요. 오직 물만 마시는 사람이 있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 커피를 발견해요. 지금까지 알던 음료와는 전혀 다른 거예요. 그러다가 커피가 한 종류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굉장히 많은 종류가 있다는 걸 깨닫게 되는 거죠. 또 커피숍에서는 커피만 파는 줄 알았는데 무궁무진한 메뉴가 있는 거예요. 연기가 제게 그랬어요. 파면 또 새로운 게 나오는 거예요. 저는 굉장히 호기심이 많고 모험심이 강한 성격이거든요. 이럴 땐 정신없이 따라가요.”

배우라는 두 글자
연기에 대한 갈증을 본격적으로 털어놓는 단계에 이르자 박형식은 조금 더 솔직해졌다. 데뷔 당시의 이야기도 더했다.

“저는 그저 노래를 좋아하는 아이였지, 가수는 다른 세계의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가수가 될 줄도 몰랐어요. 연습생 생활을 시작할 때는 춤도 제대로 못 췄어요. 하지만 활동을 시작하면서 비로소 그 재미를 느꼈어요. 배우도 비슷했어요. 사실 크게 계획을 갖지 않고 시작했고, 처음엔 당연히 가수를 하면 연기도 병행해야 하는 줄 알고 따라갔어요. 하지만 이제 마음이 달라졌어요. 아직 연기자로서는 ‘아기’에 가깝지만 이제 제가 하는 일에 대해 책임감을 갖고 싶어요.”

인터뷰를 하면서 느낀 박형식은 순수함에 더 근접해보였다. ‘상류사회’의 유창수처럼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는 거침없이 순수한 욕망을 드러냈고, 한 번 마음을 내보이기 시작하자 거침이 없었다. 그는 아직 아이돌 그룹으로서 굳건한 자리를 잡지 못한 제국의 아이들에 대해서도 “애틋하다”라는 말로 아쉬움을 드러냈고, 최근 팬들로부터 ‘박형식이 유명세를 타고 변한 게 아닌가’라는 평가를 받는 상황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평소에 저는 인사를 잘했거든요. (‘상류사회’를 하면서) 유창수처럼 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좀 도도하게 행동한 것도 맞아요. 하지만 제가 괜히 이 말을 하게 되면 또 변명 같아진다는 생각이 드네요. 다른 것보다도 그냥 팬들에게 미안하고, 고마워요. 이제는 말보다 행동으로 더 잘 대해주고 싶어요.”

배우로서의 능력을 사람의 나이에 대비시키면 박형식은 아직 걸음마를 떼고 말을 익힌 수준이었다. 서툴고 부족할 수는 있겠으나 사람은 이 나이 즈음에 호기심이 가장 왕성하고 새로운 지식을 스펀지처럼 흡수한다. 그에게는 연기와 관련된 경험이라면 어떤 것도 마다 않고 달려들 자신이 있다. 왕성한 호기심 못지않게 행동력도 있다. 해보지 않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일단 해보고 후회하자는 것이 그의 신조다. 따지고 보면 이제 막 첫 번째 주연을 마친 그가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을지는 정녕 그도 모를 일이다.

“좋아하긴 하지만 ‘일’이잖아요. 경험한다는 말을 하기보다는 그냥 잘하고 싶어요. 영화 ‘피아니스트’를 봤는데 그 비장감이 기억에 많이 남았어요. 그런 연기도 도전해보고 싶고, 아예 ‘어벤져스’, ‘트와일라잇’ 같은 영화의 주인공도 괜찮죠. 열심히 일하고 알차게 쉬는 것. 제가 할 수 있는 일이에요. 쉼 없이 달려나갈 뿐이에요.”

아직도 뽀얗고 해사한 얼굴의 ‘아기 병사’를 기억하는 팬들에게 차가운 얼굴의 유창수는 좀처럼 적응하기 힘든 큰 변신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 연기의 묘미를 제대로 알아버린 신인 배우는 누구보다 의연하다. 기자가 외려 다음 스케줄을 걱정하자 “이상하게도 저는 열심히 일한 뒤 하루 종일 자면 금세 회복되는 스타일이거든요”라며 배시시 웃어 보이는 청년의 얼굴에서 믿음직한 배우의 기운이 묻어났다.

■기획 / 노정연 기자 ■글 / 하경헌(스포츠경향 엔터부 기자)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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