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수남’ 이미지 탈피 첫 악역도전…조현재의 새로운 시간
새로 시작한 SBS-TV 수목드라마 ‘용팔이’에서 조현재는 재벌 후계자가 되기 위해 여동생을 죽음으로 내모는 무정한 오빠 한도준을 연기한다. 그리고 이는 조현재의 배우 인생에 큰 사건이다. 15년 동안 그는 주로 선한 눈빛과 맑은 미소를 가진 순수 청년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 머릿속의 그는 ‘러브레터’의 신실한 신부 안드레아였고 ‘서동요’의 로맨틱한 서동이었으며 ‘49일’의 지고지순한 순정남 한강이었다. 언제나 사랑하는 여인을 지키려 했고 고난에 맞서 자신의 운명을 개척했으며 정의의 편이었다. 그랬던 그가 삐뚤어진 야망으로 가득 찬 악한을 연기한다니, ‘용팔이’의 악인 한도준이 흥미로운 이유는 그를 연기하는 배우가 조현재이기 때문이다.
데뷔 후 처음 연기하는 악역에 그 역시 한껏 고무돼 있었다. 기다렸다고, 하루하루가 설렌다고 했다. 흉모를 담은 눈빛으로 섬뜩한 비소를 흘리는, 이제 전혀 새로운 조현재와 마주할 시간이다.

‘순수남’ 이미지 탈피 첫 악역도전…조현재의 새로운 시간
느낌이 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그 때문이었나 보다. 몸도 생각보다 슬림해서 깜짝 놀랐다. 요즘도 식단 조절을 하고 있다. 원래도 식사량이 많은 편은 아닌데, 이번 작품을 하며 입이 더 짧아졌다. 사람이 안 먹다 보면 날카로워지지 않나. 눈빛도 더 독해지고. 한도준이라는 인물을 생각하다 보니 자꾸 스스로를 예민한 상태로 몰아가게 된다.
오늘 점심 식단은 뭐였나? 샐러드와 현미밥 반 공기 먹고 왔다.
날도 더운데 쓰러지겠다. 힘들지 않나? 그동안 악역을 정말 해보고 싶었다. 이제까지 그런 인물을 표현해본 적이 없어서 긴장도 되고 잘하고 싶은 마음도 크다. 처음 연기를 시작했을 때의 기분이랄까. 방송이 나가고 모니터링을 하는데 이제까지 조현재가 보여줬던 미소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댓글이 있더라. 의도한 대로 나온 것 같아 무척 기분이 좋았다. 그런 반응 하나하나가 에너지가 된다. 밤샘 촬영을 해도 전혀 힘들지 않다.
한도준은 재벌 후계자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여동생을 혼수상태에 빠뜨리는 인물이다. 이해의 여지가 없는 악인인데, 연기하는 입장에서 설득이 필요하지 않나? 일단 시작부터 삐뚤어진 상태로 출발했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보기엔 전형적인 나쁜 놈일 거다. 한도준이라는 인물의 겉모습, 그러니까 악한 이면에 나약함과 콤플렉스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 사람이 왜 이렇게 결핍이 많아졌는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삐뚤어지게 됐는지 이해하려는 중이다. 앞으로 그런 면들이 서서히 드러나게 될 거다.
조현재가 연기하는 악역의 가장 큰 매력은 의외성인 것 같다. 그런 선한 얼굴로 악행을 저지르는 인물이라니. 그동안 연기하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순수 청년’이었다. 선한 눈빛, 맑은 미소 이런 말이 항상 따라붙었는데 이번에 그걸 벗게 되지 않을까 싶다(웃음).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 인물이 의외의 행동을 할 때 충격이 크지 않나. 그래서 더 강렬하게 봐주시는 것 같다.

‘순수남’ 이미지 탈피 첫 악역도전…조현재의 새로운 시간
조현재 안에 한도준과 비슷한 무언가가 있던가? 누구에게나 본능의 밑바닥 어딘가에는 악한 면이 있지 않나. 물론 드라마나 영화에 등장하는 극단적인 모습은 아니겠지만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크고 작은 분노에 그런 면들이 숨어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누군가와 싸웠을 때나 속았다는 걸 알았을 때, 원치 않은 상황에서 힘들었던 경우들 말이다. 그런 기억들을 떠올린다.
조현재에게 가장 힘들었던 기억은 뭔가? 연기를 하고 싶은데 기회가 오지 않았을 때였던 것 같다. 배우가 작품을 만난다는 건 정말 인연이다. 모든 배우가 하고 싶은 역할을 언제든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그런 불확실성 속에서 긴 시간을 보내다 보면 일에 목마르고 우울해지더라. 군대에 있을 때 훈련받는 것보다 연기를 못하는 상황이 무척 힘들었다. 그런데 연기 경력이 30년 넘은 선생님들 역시 그런 고민을 하시더라. 3개월만 쉬어도 불안하다는 말씀을 듣고 배역을 기다리는 건 연기자의 숙명이라는 걸 깨달았다.
데뷔 이후 첫 악역인데, 어떤가. 숙명적인 느낌이 있나? 1회 방송 때 “정말 악마 같다”라는 말을 듣고 정말 기뻤다. 젊었을 때 꽃미남으로 인기를 얻고 찬사를 받는 것보다 지금 이렇게 소름 끼친다는 말을 듣는 게 훨씬 더 좋다. 물론 여성 팬들이 많이 생기는 건 아니겠지만(웃음). 악역으로 미움 받는 느낌이 이런 거구나 싶고, 재미있다. 연기를 시작했던 처음으로 돌아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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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외에 다른 일은 생각해본 적 없다
아직도 조현재 하면 ‘러브레터’의 ‘안드레아 신부’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10년도 더 된 작품인데, 그만큼 그때의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 있다는 뜻이다. 2003년 작품이니 벌써 12년 전이다. 작품이 잘됐고 마니아들도 많았다. 배우로서 이렇게 오랫동안 기억될 수 있는 캐릭터가 있다는 건 두말할 나위 없는 영광이다. 조현재라는 얼굴을 대중에게 알린 작품이기도 하고. 감사한 작품이지만 동시에 그 이미지를 바꾸는 게 그만큼 힘들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제는 벗어나야 할 때가 됐고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누가 봐도 ‘배우 안 했으면 뭐 했을까’ 싶은 얼굴인데,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고 들었다. 고등학교 졸업장을 검정고시로 땄다. 당시 부모님 사업이 어려워지며 집안 형편이 좋지 않은 상황이기도 했고, 무슨 일을 하며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남들보다 빨랐던 것 같다. 학업엔 크게 관심이 없었고(웃음), 일찌감치 삶의 방향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가지 않기로 결단을 내린 거다. 그때 정말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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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작품이 김하늘과의 CF였고 그 이후로 ‘러브레터’에서는 수애와, ‘햇빛 쏟아지다’에서는 송혜교와, ‘구미호 외전’에서는 김태희와 호흡을 맞췄다. 유독 여배우 복이 많았다. 껌 CF였는데 김하늘씨가 기차 밖에 서 있고 나는 기차 안에 있어 만날 일은 거의 없었다(웃음). 김태희씨와는 ‘구미호 외전’ 이후 10년 만에 이번 작품에서 다시 만났다. 그때 와이어 매고 전봇대 위에 올라가고 그랬는데, 이번에도 역시 잘하더라. 그때도 대단하다 싶었다. 힘든 티 안 내고 잘 견디는 스타일이다.
연기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해준 작품은 뭐였나? ‘러브레터’였던 것 같다. 부족한 게 많은 신인이었지만 그때 연기를 하며 ‘아, 이 길이 내 길이구나’ 하는 걸 느꼈다. 더 잘 만들어가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 것도 그때다. 작품이 끝날 때마다 다음 작품을 기다리는 시간이 힘들었지만 그렇다고 포기하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다. 지금도 부족한 게 많다. 앞으로도 30년은 더 해야지 싶다.
어느덧 연기 15년 차다. 연기자로서 그동안의 시간을 돌아보면 어떤가? 20대 때 반항적인 캐릭터를 꼭 해보고 싶었는데 못했다. 아쉬움도 있지만 조바심 내지 않기로 했다. 이제부터 하면 되니까. 빈말이 아니라 요즘 다시 신인 때로 돌아간 것 같다. 연기할 생각에 밤에 잠이 안 온다(웃음).
무슨 생각을 하기에 잠을 못 잘 정도인가? 최대한 인물의 감정을 붙잡고 있으려고 하는 편인데, 밤에 자려고 누워 있다 보면 한도준의 눈빛과 표정, 동작, 배우들과의 호흡 같은 세부적인 것들이 하나하나 떠오른다. 그러다 보면 시간이 훌쩍 간다.
15년 차 배우가 이런 설렘을 느낀다는 게 놀랍다. 정말 푹 빠져 있는 것 같다. 무척 즐겁다. 모니터 안에 이제까지와는 다른 내가 있으니까. 내 얼굴에서 다른 모습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악역은 몇 번이고 더 할 수 있을 것 같다. 악역뿐만 아니라 이제부터 좀 더 다양한 얼굴을 보여드리고 싶다.

‘순수남’ 이미지 탈피 첫 악역도전…조현재의 새로운 시간
산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면 항상 궁금하다. 산에 어떤 매력이 있는지. 좋은 걸 찾자면 너무 많다. 건강, 혈색, 체력은 물론 정신 수양에도 좋고. 무엇보다 산에 오르며 마음을 비운다고나 할까. 스스로를 괴롭히는 생각들을 털어버릴 수 있는 것 같다. 시간 날 때마다 가려고 한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이제까지 했던 가장 큰 일탈은 무엇인가? 일탈이라… 글쎄, 생각이 잘 안 난다. 학창 시절 때 친구들과 싸웠던 일?
공소시효가 지나도 한참 지났다. 나쁜 짓이라고 하면 적어도 이런 거다. 길에 담배꽁초를 버렸다든지, 신호위반을 했다든지. 사실 평상시에 딱딱 지키는 타입이라 친구들 사이에 별명이 ‘아저씨’다. 너무 피곤하게 산단다. 담배는 5년 전에 끊었고.
그럼 앞으로 하고 싶은 일탈이 있다면 뭔가? 담배를 다시 피운다면 일탈이 되지 않을까? 요즘 술도 안 마시니, 술을 마실 수도 있겠다. 그런데 작품 하는 동안에는 술을 마시지 않으니 어쨌거나 이번 작품 끝나고 생각해봐야겠다.
포털 사이트에 ‘조현재’를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에 ‘조현재 결혼’이 있다. 사람들도 궁금한가 보다. 결혼 생각은 없나? 아무래도 30대 중반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궁금해하시는 것 같다. 결혼은 꼭 하고 싶다. 연애도 하고 싶고. 그래도 요즘 가장 우선순위는 ‘용팔이’다(웃음).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안지영 ■제품 협찬 / 셔츠앤수트(02-566-4749), 지미테일러(02-517-0071) ■장소 협찬 / 밀레니엄 서울 힐튼 ■헤어&메이크업 / 박승렬, 이송미(에스휴), 02-3448-3007) ■스타일리스트 / 김명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