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바의 인생, 이번엔 배우 엄정화

디바의 인생, 이번엔 배우 엄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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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와 ‘가수’ 두 단어 중에 어떤 것이 엄정화를 설명하기에 더 잘 어울릴까. 그녀는 어느 한 가지 수식어로 표현하기엔 어려울 정도로 가수로서, 배우로서 큰 존재감을 지니고 있다. 무대 위에서는 ‘한국의 마돈나’라고 불릴 정도로 강렬한 퍼포먼스를, 무대를 내려와서는 “엄정화라면 믿고 본다”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탄탄한 연기를 구사한다.

디바의 인생, 이번엔 배우 엄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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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정화(46)의 시작은 배우보다 가수였다. 1993년 발표한 ‘눈동자’ 이후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초대’, ‘배반의 장미’, ‘디스코’ 등 공전의 히트곡을 내놓으며 ‘섹시 가수’의 대명사가 됐다. 하지만 뒤늦게 주목받기 시작한 배우 활동을 하면서는 무대 위 모습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새로운 매력을 보여줬다. 어떤 작품에서는 지고지순한 순정파 아내(드라마 ‘아내’)였으며 또 다른 작품에서는 딸을 잃은 슬픔에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슬픈 엄마(영화 ‘오로라 공주’)였다. 섹시 가수 이미지에 기대지 않고 오랜 세월 차곡차곡 연기 스펙트럼을 쌓아왔다.

최근 영화 ‘미쓰 와이프’로 돌아온 엄정화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영화에서 그녀가 맡은 역할인 대형 로펌 변호사 ‘연우’는 어느 날 갑자기 영혼이 다른 사람의 몸에 들어가 두 아이의 엄마이자 ‘지지리 궁상’인 전업주부로 살게 된다. 엘리트 싱글녀에서 두 아이의 엄마로 두 가지 삶을 살게 된 그녀와 현재 엄정화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미쓰 와이프’는 로맨틱 코미디이면서 판타지적 설정이 섞여 있어 흥미로워요. 이 작품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저는 장르 불문하고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재밌다’라는 생각이 들어야 그 작품을 선택해요. ‘미쓰 와이프’는 연우라는 여자가 변해가는 모습에 흥미를 느꼈어요. 연우는 마음을 닫아놓고 외롭게 지내는 까칠한 여자잖아요. 갑자기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게 되면서 보여주는 모습이 참 매력적이었어요. 그 과정을 잘 표현해내야 한다는 게 숙제였지만 한편으로는 재미있게 느껴졌죠. 영화에서 연우가 일상생활 속에서 겪는 부조리한 것들을 가볍지만 정확하게 꼬집어서 보여주는 것들도 마음에 들었고요. “힘없으면 다 당해야 돼?”라고 말하는 것 같았거든요.

영화에서 화려한 싱글의 삶을 살던 연우는 갑자기 두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 되며 모성애를 느끼죠. 모성애를 연기하는 부분에서 부담은 없었나요? 아예 걱정을 안 했다거나 거리낌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어요. ‘내가 엄마 역을 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긴 했어요. 하지만 아이를 낳고 길러보지 않았어도 제 나이쯤 되면 엄마 역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희 어머니도 스무 살 때 언니를 낳으면서 엄마가 됐으니 저도 지금 엄마가 될 수 있는 나이거든요. 모든 역할을 직접 경험해봐야만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맡은 배역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하는 건 모든 역할이 마찬가지인 거 같아요.

결혼에 부정적이던 인물이 아이들과 어울리고 남편과 투덕거리면서 결혼을 긍정적으로 보게 되잖아요. 이 작품을 통해 결혼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해보게 됐나요? 촬영하면서 ‘가정을 꾸리는 게 이런 거구나’ 하고 생각하긴 했어요. 나를 엄마라고 부르는 아이들이 내 앞에서 까불거리면서 돌아다니고 따뜻한 남편이 집에 함께 있는 것. 그 상태에서 하루를 보내고 인생을 보내는 것도 굉장히 뜻깊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 주변에도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 아이를 낳은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결혼에 대해서는 ‘아직 모르겠다’라는 마음이에요.

디바의 인생, 이번엔 배우 엄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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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낳게 된다면 어떤 엄마가 될 것 같아요? 글쎄요. 아이를 많이 사랑할 자신은 있어요. 그런데 제가 사랑하는 만큼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어떻게 해야 제 사랑을 아이에게 표현하고 멋지게 키울 수 있는지 그게 참 막연한 거 같아요. 아이가 어떤 가정에서 얼마나 사랑을 받고 자라느냐에 따라서 인격이 형성되고 결정이 되는 거잖아요. 아이를 키우는 건 정말 ‘큰일’인 것 같아요. 친구들은 막상 낳기만 하면 다 알아서 큰다고 말하긴 하더라고요(웃음).

‘이런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라는 게 있을 것 같아요. 남편감은 어떤 사람이었으면 해요? 제가 판단을 해야 할 때 믿고 기댈 수 있는 사람, 의지가 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겉모습은 이래도 ‘어떡하지’를 입에 달고 살아요. 남편 될 사람은 현명하고 지혜로워서 저에게 조언을 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러고 보니 영화 속에서 송승헌씨가 연기한 남편이 딱 그런 모습이었네요(웃음).

연기는 ‘엄정화’라는 틀을 깨는 작업
‘엄마 엄정화’, ‘아내 엄정화’가 크게 어색하지 않은 것은 그녀가 이전에도 꾸준히 엄마나 아내 역을 맡아왔기 때문이다. 2002년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에서 도발적이고 당당한 ‘연희’ 역을 맡았고, 이듬해에는 드라마 ‘아내’에서 마음 여리고 눈물 많은 아내 ‘서현자’를 연기했다. 바로 다음 드라마인 ‘12월의 열대야’에서는 푼수 같고 귀여운 주부 ‘오영심’이었다. ‘배반의 장미’나 ‘포이즌’이 대히트하면서 섹시 가수 이미지가 절정에 올랐던 때라 ‘아내 엄정화’로의 변신은 엄청난 모험이면서 도전이었다. 이후로도 엄정화는 아픈 아들을 위해 억척스럽게 일하는 엄마(영화 ‘마마’), 가수를 꿈꾸는 끼 많은 아내(영화 ‘댄싱퀸’) 등 엄마와 아내를 꾸준히 연기해왔다.

‘12월의 열대야’ 때 뛰어난 연기로 극찬을 받았던 것이 생각나요.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섹시 가수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에 당시 엄정화가 가정주부를 연기한다는 것이 큰 화제가 됐었죠. 어색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도 있었고요. ‘아내’를 찍을 때만 해도 제가 한쪽에서는 컬러 렌즈를 끼고 한창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던 때였어요. 어색해하는 분들이 많았죠. 처음에는 드라마 속 제 모습에 적응을 못하셨던 것 같아요. 다행히 ‘아내’를 시작하고 회를 거듭하면서 많은 분들이 ‘현자’라는 인물에 대해 공감해주셨어요. 아내나 엄마 역을 계속 맡아온 것은 저의 고집이에요. 제가 가수로서 가지고 있는 강한 이미지는 배우로서 작업할 때 저에게 짐이에요. 그걸 깨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작품 속에서는 망가져도 상관없어요. 오히려 더 즐거워요. 변화에 대한 욕심은 항상 있어요.

‘엄정화’ 하면 떠오르는 당당한 이미지가 있어요. 이효리, 전효성 등 많은 가수 후배들이 롤모델로 꼽을 정도로 매력적이죠. 가수 후배들을 비롯해 싱글 여성들에게 큰 기대를 받고 있는데, 때로 부담되지는 않나요? 저는 지금 제가 하는 일들을 정말 좋아해요. 평생 연기하면서 제 모습을 깨나가며 또 다른 캐릭터를 보여 드리고 싶어요. 계속해서 배우로 성장했으면 좋겠어요. 제가 이렇게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많은 분들이 저를 멋지다고 생각해주고 기대까지 해준다는 건 무척 감사한 일이죠. 그 기대가 부담이 아니라 정말 힘이 돼요. 자부심을 느끼기도 하고요.

후배 가수들뿐 아니라 박진영씨도 극찬을 했어요.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와서 “대한민국 가수 중에 엄정화가 최고다. 무대에서 완벽하게 연기를 한다”라고 여러 차례 말했죠. 저는 그 이야기 들을 때마다 무척 감동이에요. 박진영씨는 제가 활동하면서 유일하게 질투했던 가수예요. 남자 가수를 질투한다는 게 참 재밌죠. 제가 ‘초대’나 ‘포이즌’으로 활동할 때 박진영씨도 ‘그녀는 예뻤다’로 한창 활동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무대에서 박진영씨가 추는 춤과 그 끼가 정말 좋았어요. 유일하게 저를 긴장시킨 가수예요. 그런 사람에게 칭찬을 받으니 기분이 좋죠.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제가 말재주가 없어요. 재밌게 말할 수 있는 재능이 있어서 사람들을 들었다 놨다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데, 전 그런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면 어떻게든 사람들을 웃기고 싶은 마음에 몸짓이 마구 커져요. 귀여운 척한다고 보시는 분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제가 잘하는 일 몇 개 외에는 다른 재주가 정말 없는 것 같아요.

많은 이들이 ‘가수 엄정화’를 기다리고 있어요. 언제쯤 무대에서 볼 수 있을지 궁금해요. 몇 년 전부터 계속 “준비하고 있다”라고 말하고 준비는 안 해서 ‘양치기 소년’이 됐어요. 이제는 인터뷰에서 앨범 계획 묻는 질문이 나오면 묻지 말라고 해요. 또 거짓말하는 것처럼 될까봐(웃음). 준비해야 한다고는 생각하는데, 언제 앨범을 내게 될지는 정확히 말씀드리지 못하겠어요.

요즘 여배우들을 만나면 한류 스타로 이름을 날리는 유명 여배우들조차 “여자가 매력적으로 나올 만한 영화들이 별로 없다”라고 말한다. 남자 배우가 돋보일 만한 블록버스터와 액션이 위주가 되는 한국 영화 시장에서 여배우들의 영역이 적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엄정화는 이런 상황 속에서도 쉬지 않고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며 작품을 하고 있다. 그 이유를 묻자 “저는 기다리는 것보다 제가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면 도전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에요. 배우로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이야기를 해보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작품이 좋다고 생각해요”라고 했다.

엄정화는 자신이 돋보일 만한 배역을 기다리지 않는 배우다. 배역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캐릭터에 어떤 색을 입힐까를 고민하는 배우. 그것이 엄정화가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배우로서 묵직한 존재감을 지니고 올 수 있던 이유가 아닐까 싶다.

■기획 / 노정연 기자 ■글 / 이혜인(경향신문 대중문화부 기자)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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