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걸 그룹 전쟁, 기획으로 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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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가요계에 걸 그룹은 이미 포화 상태다. 그럼에도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그룹들이 등장한다. 그룹명조차 외우기 쉽지 않은데 멤버들 이름과 얼굴을 매치하려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치열한 경쟁 속에 자본과 시스템이 완비되지 못한 중소 기획사는 이색 컨셉트를 앞세워 대중의 눈을 반짝 사로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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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걸 그룹 시대다. 작년에 데뷔한 걸 그룹만 40팀이 넘는다. 올해도 YG의 핑크펑크, 큐브의 큐브걸스, DSP의 베이비카라, JYP의 식스믹스 등 메이저급 가요 기획사들의 걸 그룹 데뷔 러시가 이어질 전망이다. 걸 그룹이 되고 싶어 하는 10대 소녀들이 30만 명에 육박하고, 그룹으로 데뷔한 멤버 수만 해도 2,000명을 넘는다니 가요 시장이 걸 그룹 과잉 공급 상태임은 분명하다. 이렇다 보니 반짝 등장했다가 하루아침에 어디론가 사라져버리는 걸 그룹도 부지기수. SES, 핑클 등 1990년대에 본격 등장한 걸 그룹은 각양각색의 매력을 지닌 소녀들을 한무대에서 볼 수 있다는 신세계를 열어줘 소년들은 손에 풍선을 쥐기 시작했다.

‘Gee’로 깜찍하게 등장한 소녀시대는 수면 밑에 잠들어 있던 ‘삼촌 팬’의 마음을 뒤흔들어놓았다. 구매력을 갖춘 삼촌 팬들의 등장으로 걸 그룹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 또 K-pop 붐을 타고 지금의 포화 상태에 이르게 됐다. 강태규(46) 대중문화평론가가 가요계 걸 그룹 현상을 분석했다.

왜 걸 그룹 만들기에 뛰어드는가
강태규 평론가는 걸 그룹의 숫자가 포화 지경에 이른 만큼 신인 걸 그룹이 TV 출연만으로 노래와 인지도를 높였던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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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많은 수의 걸 그룹이 활동을 하다 보니 웬만큼 주목받아서는 주목이랄 것도 없어요. 과거처럼 방송 미디어, 특히 더 이상 TV가 성공의 열쇠를 갖고 있진 않다는 거죠. 보통 걸 그룹이 한 곡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기간이 길어야 7, 8주예요. 지상파 3사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나온다고 가정하면 10회 이상 출연하는 것이 맥시멈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요즘은 SNS를 이용한 기발하고 독특한 기획으로 이름을 알리죠. 그런데 그 역시도 8주가 넘어서 대중의 피드백이 없다면 그들은 결국 사라지는 운명인 거죠.”

8주의 법칙. 8주 안에 대중의 눈에 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귀에 쏙쏙 들어오는 무한 경쟁력을 가진 콘텐츠(노래)가 기본이다. 두 번째는 걸 그룹의 노래들은 ‘몸의 노래’라고 부를 정도로 눈에 쏙 들어오는 안무가 중요하다. 세 번째가 멤버들의 컨셉트와 비주얼이다. 삼박자가 맞으면 누구든 성공할 수 있다. 더 이상 홍보는 메이저 소속사들의 전유물이 아니기 때문. 각종 SNS나 유튜브 같은 동영상 전문 커뮤니티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홍보의 장이 있으므로 걸 그룹 기획자들은 한순간 터지는 대박의 단맛을 찾아 끊임없이 새로운 그룹을 기획하고 있는 것이다.

데뷔 전 성공 여부, 그들은 이미 알고 있다
기획자들은 어떤 콘텐츠가 대중을 사로잡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전문가들이다. 그럼에도 흥행 요소 삼박자를 갖추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무리 뛰어난 기획력을 가진 기획자들도 걸 그룹 대박은 ‘하늘이 내려주는 것’이라고 표현할 만큼 운과 타이밍도 맞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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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것은 대부분의 기획자들은 이번에 자신이 만든 걸 그룹이 흥할지, 망할지 대중 앞에 내놓기 전에 이미 알고 있다는 거죠. 그만큼 곡 받기도 어렵고 노래에 딱 맞는 안무 받기도 어려운 상황이에요. 완벽해도 될까 말까인데 2% 부족한 걸 알면서 그냥 내보내는 거죠. 그들은 과격한 말로 ‘죽으러 간다’라고 표현해요.”

부족한데도 그룹의 데뷔를 밀어붙이는 이유. 기획자에게 실패보다 두려운 것은 ‘성과 없음’이기 때문이다. 성공은 못했지만 이런 걸 그룹을 만들었고 홍보를 통해 이만큼 인지도를 올렸다는 커리어로 다음 걸 그룹을 만드는 기회가 주어진다. 때로는 예상치 못한 일로 대박이 터지기도 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팬이 현장에서 직접 촬영한 ‘직캠’이 화제가 되며 각종 SNS에 퍼져 일순간에 인지도가 상승한 EXID다.

“EXID는 ‘직캠’만으로 떴다고 볼 수는 없어요. 어차피 될 수 있는 콘텐츠였기 때문이에요. 직캠이 발화점은 됐지만 ‘위 아래 위위 아래’가 없었다면 성공을 못했겠죠. EXID의 직캠보다 더 유려하고 멋진 동영상들이 많지만 다 화제가 되지 않는 것처럼 말이죠.”

그는 “지금의 걸 그룹 양산 시대는 지속될 것인가”라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확답했다.

“계속될 겁니다. 누군가는 광산에 있는 금을 캐야 하니까요. 가요계에는 1년에 한두 번 대박 걸 그룹이 나오는데, 그게 본인이 기획한 그룹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에 손을 놓을 수 없는 거죠.”

이색 기획의 첫 일격, 크레용팝
이색적인 기획으로 승부해 성공한 첫 번째 걸 그룹은 바로 크레용팝이었다. 탄탄한 메이저 소속사도 아니었으며 크게 투자를 한 것도 아니지만 그들은 걸 그룹 역사에 큰 획을 그었을 정도로 괄목할 만한 성과를 얻었다. 전문가들이 볼 때 크레용팝은 노래, 안무, 비주얼의 조각 퍼즐이 완벽히 맞춰진 그룹이었다. 그들은 ‘걸 그룹은 예쁘거나 섹시해야 한다’라는 고정관념을 깬, 대중이 도식화된 걸 그룹의 매력에 식상할 때쯤 타이밍 좋게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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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빠빠’의 뮤직비디오 예산은 단돈 500만원. 뭔가 허술해 보이는 화면이지만 노래도 비주얼도 즐겁고 유쾌했다. 거리에서 노래가 나오면 3세 꼬마 아이부터 대학생들까지 따라 할 정도로 안무는 쉽고 흥겨웠다. 크레용팝은 행사 출연료가 2,000만원까지 뛸 정도로 명실공히 인기 걸 그룹으로 자리 잡았다. 대중의 기호를 정확하게 노린 기획력의 승리였다. 양질의 콘텐츠 없이 얄팍한 기획력에 의존하는 걸 그룹은 분명 한계가 있다.

“기획에만 의존하다 보니 각종 무리수를 두는 거죠. 노래도 안무도 별로인데 이슈가 돼야 하니까 그다음 남은 것은 하나, 노이즈 마케팅뿐이에요.”

무대 위에서 가수가 의도적으로 옷을 들춰 올려 속바지와 팬티를 그대로 드러낸다든가, 순위 공략을 걸어 19금 뮤직비디오를 공개한다든가. 걸 그룹 콘텐츠를 즐기는 대부분의 소비자가 10대 청소년이라고 본다면 충분히 논란이 될 법한 퍼포먼스와 마케팅이다.

“8주 안에 승부를 봐야 하니 무리수를 던져보는 것도 이해 못할 것은 아니지요. 아무리 전문가라도 대중의 기호를 어떻게 다 예측할 수 있겠어요. 순간적인 흐름을 포착해 물꼬를 트는 능력은 대단한 거예요. 그러니까 때로는 운도 따라야 하는 거죠. 그러나 결국 성공하는 걸 그룹의 기본은 예나 지금이나 콘텐츠예요.”

제2의 크레용팝을 꿈꾼다
기획을 앞세운 이색 걸 그룹
이색적이고 독특한 기획이나 컨셉트를 갖고 있는 걸 그룹을 찾아봤다. 총 10여 개의 그룹 명단을 뽑았고 소속사에 연락을 했는데, 반 이상이 대부분 없는 번호가 됐거나 그룹이 해산했다는 슬픈 소식을 접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치열한 경쟁 구도에서 살아남기 힘든 걸 그룹의 현실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기발한 기획력으로 걸 그룹 대전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그들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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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와 일 모두 만점, 미시 그룹 ‘소녀시절’
보통 소속사에서 그룹 멤버와 계약을 맺을 때 인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연애 금지 조항’을 넣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임신 금지 조항’을 넣은 걸 그룹이 있다고. 아줌마 걸 그룹 ‘소녀시절’이다. 2014년 트로트 싱글 앨범 ‘여보 자기야 사랑해’로 데뷔했다. 결혼 전 걸 그룹 활동을 했던 멤버도 있고, 전직 모델도 있다. 네 멤버 모두 아이가 있는 엄마들로 육아를 책임지면서 뭔가 색다른 일을 해보고자 의기투합해 그룹을 꾸렸다. 자체적으로 모여 팀을 만든 뒤 수많은 기획사의 문을 두드려 데뷔를 하게 된 독특한 케이스다. 1년이 지난 사이에 멤버가 교체되기도 했는데, 해당 멤버는 실제로 ‘임신 금지 조항’을 어기고 둘째 계획을 갖고 팀에서 하차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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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군부대 위문 공연은 다 우리 것! 밀리터리 걸 그룹 ‘바바’
2015년 4월에 데뷔한 밀리터리 컨셉트의 여성 6인조 그룹 바바. MBC-TV 예능 프로그램 ‘진짜 사나이’ 여군 특집에서 걸스데이 혜리의 활약상을 보고 ‘밀리터리’를 기획하게 됐다고. 데뷔곡은 가수 김추자의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를 발랄한 걸 그룹 감각으로 리메이크했다. 게다가 각 멤버들의 이름에 군대 계급까지 부여해 나이순으로 푸름과 소미는 병장, 서애와 별하는 상병 그다음은 다율 일병, 효아 이병으로 부른다. 막 데뷔한 신인이지만 이미 국군 장병들의 차세대 군통령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후문. 국방부 승인 각 부대 생활관에 비치하는 「플래툰」이라는 잡지의 표지 모델을 장식하기도 했고, 국방부에서 홍보 위촉장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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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부터 발끝까지 독특함으로 무장 ‘풍뎅이’
‘바람을 몰고 다니는 귀염댕이’라는 뜻의 ‘풍뎅이’라는 걸 그룹. 지난 2013년 12월에 데뷔해 사투리 힙합곡 ‘알탕’에 이어 일렉트로닉하우스 장르의 ‘잘탕’을 선보였다. 일명 탕탕탕 시리즈다. 엽기적인 컨셉트와 달리 귀여운 외모의 멤버들 이름은 각각 빨강, 파랑, 노랑이다. 기존의 수많은 걸 그룹들 속에서 한 번 들으면 쉽게 잊을 수 없는 차별화된 친숙함을 팬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코미디언 못지않은 제스처와 퍼포먼스. 익살스러운 표정까지 ‘망가짐 금기’인 걸 그룹의 기존 이미지에서 벗어나 멤버들의 꾸밈없는 털털함과 엉뚱함은 확실히 새로운 콘텐츠임은 분명하다. 풍뎅이는 오는 10월 세 번째 앨범을 선보이기 위한 컴백 준비에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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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 여성 골퍼 걸 그룹 ‘레이디T’
‘골프의 대중화를 이끌기 위해’ 만들어진 걸 그룹 레이디T. 기획 그대로 멤버를 뽑는 오디션에 빠질 수 없었던 것은 멤버들의 골프 실력 검증이었다. 덕분에 멤버들이 90타 초·중반으로 여성 스코어로 볼 때 뛰어난 골프 실력을 자랑한다. 그중 한 명은 무려 싱글 플레이어라고. 2014년 ‘땡그랑’이라는 트로트 곡으로 데뷔했고, 주로 골프를 즐기는 중·장년층을 타깃으로 활동 중이다. 멤버들의 전직은 방송사 공채 탤런트, 합창단, 예능 프로그램 리포터, VJ, 뮤지컬 배우로 다양한 방면에서 활약하던 이들이 모여 레이디T를 구성했다. 골프 커뮤니티를 통해 ‘1분 레슨’ 시범도 보이고 있고, 팬들과 함께하는 라운딩 팬 미팅도 기획하고 있다. 덕분에 레이디T는 각종 골프 관련 행사를 휩쓸고 있다고.

■글 / 이유진 기자 ■사진 제공 / 각 소속사 ■도움말 / 강태규(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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