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를 웃긴 옹알스 개그 박물관에 입성하다
개그맨은 웃음을 선사하는 직업이다. 방송국 공채의 높은 문턱을 넘고서도 2년 안에 자신의 능력을 내보일 기회를 잡지 못하면 쓸쓸히 잊혀지기 일쑤다. 유행은 빨라지고 코너가 폐지되는 시간도 짧아지는데, 예능에 적합한 ‘말빨’이 없다면 추후 입지를 만들기가 어렵다. 광대의 가면을 쓰고 방송사와 대중의 갑질을 감내하지만 대중의 관심이란 보상이 있다. 무엇보다 무대에 서서 사람들을 웃길 때 행복해진단다.
옹알스도 처음에는 스탠딩 개그로 시작했다. 2007년 KBS-2TV ‘개그콘서트’의 코너로 6개월 동안 시청자를 만났지만 매주 새로운 웃음을 창조하기란 쉽지 않았다. 일찍이 데뷔한 조준우(37), 채경선(35)이 조수원과(36) 함께 옹알스 원년 멤버로 활동을 시작했다. 2010년에는 SBS-TV ‘웃음을 찾는 사람들’ 출신 비트박서 최기섭(26)을 영입해 신명을 불어넣었고, 마술사 이경섭(26), 개그맨 하박(33)과 김국진(31), 비트박서 최진영(26)까지 영입해 더블캐스트(4인씩 2팀)로 활동 중이다. 마술과 저글링(공 등을 던져 받는 묘기), 마임, 비트박스가 만나 아이부터 어른까지 즐길 수 있는 개그 퍼포먼스로 진화했다. 국내보다 해외에서 먼저 인정받은 이 팀은 한국 개그의 신기원을 열었다는 평을 받으며 여전히 많은 이들을 웃기고 있다.
“애초 컨셉트는 좀 모자란 캐릭터였는데 장애인을 비하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하더라고요. 웃기는 데 급급해서 상처를 주면 안 되잖아요. 조금씩 다듬으면서 좋은 방식을 찾다가 ‘어린 아이 옹알이로 가면 어떠냐’ 하는 제안에 ‘유레카!’를 외쳤죠. 저희 타깃 자체가 ‘지구인’이에요. 조금 덜 웃기더라도 언어, 장애나 인종에 상관없이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흑인 관객을 불러냈는데 저희가 위압감을 느껴서 어쩔 줄 몰라 했던 기억도 나요. 시대가 변하는 만큼 더 보완하고 완성도를 높여가야죠.” (조준우)
“옹알스 초기에 장애인 복지관에 봉사를 갔어요. 제아무리 웃긴 개그맨이라도 중증 환자들한텐 안 통하더라고요. 말로 웃기려고 해도 (듣지 못하는) 누군가는 배제되잖아요. 그런데 저희 공연에선 웃어주시는 거예요. 단독 공연에 청각장애인들을 초대했는데 태어나서 개그 공연을 처음 봤다는데, 뒤집어지더라고요. 비트박스 같은 리듬도 스피커 진동으로 느낄 수 있대요. 장애인 가족이 있는 경우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공연이 거의 없어요. 그런 면에서 뿌듯하고 맑은 코미디를 하려고 노력해요. 웃음이 맑으면 저희도 힐링이 되고요.” (조수원)
외모 비하 코미디에 질려서 개그 프로그램도 끊었는데, ‘맑은 웃음’은 지금 필요한 화두가 아닐까. 시절에 대한 풍자도, 위안도 주지 못하면서 살찐 사람과 못생긴 사람만 깎아내리는 개그는 마지못해 웃다가도 뒤끝이 씁쓸하다. 이국주처럼 스스로 자신을 깎아내리면서도 당당한 캐릭터라면 경우가 다르지만.
마임으로 시작한 옹알스는 불편하거나 안쓰럽지 않은 슬랩스틱을 구사하고 있다. 애초 그냥 몸 개그였는데, 뺨을 너무 세게 얻어맞아서 “진짜 아파” 하고 웅얼거린 데서 ‘빵 터지는’ 바람에 옹알이가 더해졌다. 어차피 상황과 몸으로 보여주는 연기고 원초적인 반응이라서 못 알아듣는 사람이 없었다. ‘세계 공용어는 영어가 아니라 웃음’이라는 캐치프레이즈도 다년간의 경험과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 2009년 자비를 그러모아 참여했던 에딘버러 페스티벌은 세계 시장에 통하는 것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코흘리개를 연상시키는 분장과 가발, 파란 추리닝이나 색색의 무릎 양말은 거리에 나서기만 해도 웃음과 관심의 대상이었다.

세계를 웃긴 옹알스 개그 박물관에 입성하다
“같은 넌버벌 퍼포먼스라서 많이들 비교하시는데, 난타 같은 경우는 배우들이 멋있게 보여주는 거고 저희는 근본이 코미디예요. 웃음의 함량이 달라요. 외국에는 저희 같은 팀과 스탠딩 개그가 공존해요. 1인이 하는 만담 비슷한 개그도 많고요. 한국 스탠드업 코미디는 극(스토리)을 더해 퓨전화한 거예요. 외국에서 ‘개그콘서트’를 보여주니 급히 만든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일주일이란 준비 시간을 생각하면 그럴 수밖에 없죠. 숙성된 코미디를 지향하면서 매 공연마다 새로운 무대를 보여드리고 있어요.” (조수원)
옹알스는 2010년 한국 최초로 에딘버러 페스티벌 코미디 부문에서 2,000여 팀 중 최고점을 받았고 2011년에도 250여 공연 팀 중 상위 5개 팀 안에 드는 성과를 올렸다. 입소문과 거리 홍보로 매회 매진을 기록, 영국 BBC 등 현지 언론의 극찬도 이어졌다. 외국에서의 인지도가 더 높아 아시아, 미주와 유럽을 막론하고 러브콜을 받고 있다. 이제는 코미디 페스티벌의 일급 게스트가 돼 높은 개런티와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공연을 다니고 있다.
호주 공연에서는 아이돌 못지잖은 인기로, 밖에서 술도 못 마실 정도였다니 말 다했다. 교민들의 열렬한 환영과 붉어진 눈시울에 가슴 뭉클한 적도 많다. 웃음을 주고 되레 눈물을 받는 일은 개그맨으로서 흔치 않은 경험이었다고. 여전히 일본이나 중국 팀으로 오인받는 경우가 많아 ‘Korea Comedy’를 대문짝만하게 티셔츠에 새기고 다닌다. 의도치 않게 국위를 선양하고 있는데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는 어차피 다른 사람들의 몫이니 옹알스는 그저 최선을 다할 뿐이다.
세계무대에서 먼저 ‘통’했다
누군가는 ‘인생역전’이라고 부르며 시샘의 눈으로 보겠지만, 오랜 세월 동안 갈고닦은 옹알스의 레퍼토리는 유행이나 자극적인 코드가 없어 누구나 웃을 수 있다는 점이 장수 비결이다. 사골처럼 우려낸 이들의 연기와 묘기는 자연스럽게 전개에 녹아들어 감탄을 자아낼 정도다. 이렇게 호흡을 맞추기까지 오랜 세월과 노력이 필요했다. 가장 최근에 합류한 20대 막내 멤버들도 2년에서 3년까지 연습 생활을 거쳤기에 팀워크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제 무대에 올라가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어요. 첫 공연 때 (김)국진이가 강아지처럼 흥분을 해서 제어가 안 되더라고요. 어휴, 야외 공연은 저글링도 바람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티 안 나게 몸으로 가려야 해요. 이제는 노하우가 쌓여서 무대에서 돌발 상황을 즐기는 수준이 됐어요. 워낙 여러 곳을 다니다 보니 좁은 공간이나 허름한 대기실 같은 건 전혀 문제가 안 돼요.” (조수원)
“매번 상황에 따라 반응하는 거죠. 정형화되는 순간 재미없어져요. 보통은 연출, 배우 역할이 나뉘지만 저희는 연출, 기획, 홍보, 음향까지 다 직접 해요. 처음에 가방 하나로 외국 나가면서 추가 요금 안 내려고 웬만한 거는 현지에서 조달한 게 시작이었어요. 그땐 저작권료 없는 한국 민요나 작자 미상의 노래만 썼어요(웃음). 그러다 보니 지금 같은 포맷이 됐는데 공연이 어디로 튈지 몰라서 공연자도, 보는 사람도 재미있어 하는 것 같아요.” (조준우)
“KBS-2TV ‘개그스타’란 신인 발굴 프로그램을 시즌1부터 3까지 했어요. 평생 코미디를 하는 게 제 꿈인데 형들도 마찬가지더라고요. 무대라는 게 마약과 같아서 맛을 보면 끊을 수가 없어요. 좋아하는 일로 다시 관객들을 만나게 돼서 정말 행복하죠.” (김국진)
“원래 비트박스를 했었고, ‘마리오네트’라는 넌버벌 공연을 했는데 사람들이 웃는 게 무척 좋았어요. 개그맨의 피가 흐르나 봐요. 아는 형들이 있어 보러 갔다가 옹알스에 완전 꽂혔어요. 짜인 대본이 없어서 연습할 때도 멤버들하고 소통하는 게 제일 중요해요. 맛깔나게 살리는 요령을 배웠으니 이제 보여줄 차례죠.” (최진영)
지금은 두 팀이 돌아가며 공연을 하고 매월 월급처럼 정산할 수 있게 됐지만, 그간 한 팀일 때는 인생의 중대사를 가족과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이 아쉬움이자 후회로 남았다. 예측이 안 되는 게 삶인데도 관객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어 늘 무대에 올라야 했다. 30대 후반인 원년 멤버 셋은 결혼을 했고, 오랜 동안 가족을 부양하지 못했기에 이런 체제는 멤버들의 삶을 개선하며 계속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작업이기도 하다.

조준우, 김국진, 최진영, 조수원(사진 왼쪽부터)
개그맨으로 나이 드는, 작지만 큰 꿈
“어릴 때부터 개그가 꿈이었고, 스타가 돼도 계속 개그를 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방송에 나가지 않아도 코미디를 계속하고 있으니 후배들 앞에서도 떳떳해요. 조금은 배고프더라도 그래야 웃길 수 있어요. 짐 캐리가 부유해진 뒤로는 코미디를 찍을 수 없다고 했지만, 저희는 언제나 변함없이 개그맨이고 싶어요. 이제 더블캐스팅이라서 멤버들 경조사에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죠. 제주 에코랜드 인근에 상설 공연장을 오픈했어요. 현지 관객보다는 해외 관광객들을 위한 패키지 상품으로 자리 잡고 있어요.” (조준우)
“내년부터는 4대 보험에도 가입할 거예요. 좋아하는 일 하면서 남한테 아쉬운 소리 안 하는 것만 해도 행복이지요. 예측 불가능한 삶이라 게임판 위의 말처럼 흥미롭기도 해요. 더 인정받아도 겉멋이 들지 않게 노력해야죠. 계속 무대에서 노는 오리지널 희극인이 될 거예요.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감내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무대에 올랐어요. 나중에 우울증이 왔지만….” (조수원)
“전 아직 그런 경험은 없지만…. 먹을 때 평등해서 좋아요. 누구는 갈비탕 먹는데 누구는 라면 먹고 하는 건 좀 그렇잖아요. 다들 엄청 먹어요. 몸으로 하는 일인데 잘 먹어야죠.” (최진영)
20, 30대의 장정 8명이다 보니 식비 지출이 크긴 하지만 어쨌든 잘 먹고 보는 옹알스. 잘 먹고 잘 노는 것도 그들의 원동력이다. 하지만 아직 희극인에 대한 우리 인식이 낮아서 때로 불편할 때가 있단다. 개그맨은 24시간 아무 데서나 웃기는 사람이 아니라 준비된 환경에서 대가를 받으면서 최상의 웃음을 선사하는 사람들이니, “어디 한 번 웃겨보라”라며 떼쓰지는 마시길.
“웃기는 사람들이지만 우습게 보지는 말아주세요. 좋은 점이라면 아이 캐릭터라 그런지 다들 엄청 어리게 봐요. 영상으로 쇼케이스를 할 때 미남이 왜 이런 걸 하냐고 묻더라고요(민망한 웃음)…. 가방 하나 들고 간 에딘버러에서 목표는 예술의전당하고 라스베이거스라고 했는데, 전자는 이미 이뤘으니 나머지 꿈도 이뤄야겠죠.” (조수원)
“엉뚱하게 들리겠지만 다음 목표는 소수민족 토착민이에요. 문화적인 코드를 사용하지 않고 웃길 수 있을지 무척 궁금하거든요.” (조준우)
“역시 이 길을 선택한 것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이 들어요. 최선을 다할 테니 많이 봐주시고 웃어주세요. 저희한테는 그만한 보상이 없어요.” (김국진)
“세계가 더 크게 웃는 날까지 열심히 하겠습니다. 옹알스 많이 사랑해주시고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고 싶은 바람, 이루고 싶어요.” (최진영)
■기획 / 노정연 기자 ■글 / 위성은(객원기자) ■사진 / 안지영 ■헤어&메이크업 / 이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