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나라 아빠’, 그 이상의 주호성
장나라의 아버지, 주호성(66). 딸이 가수에서 배우로 그리고 한류 스타가 되기까지 데뷔부터 순탄하게 걸어온 듯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았다. 여느 연예인처럼 험난한 연예계에서 상처도 받고 구설수에도 휘말려 대중의 입에 오르내린 적도 있었다. 자그마치 15년이란 시간이 흘러 이제야 비로소 편안해지고 무뎌졌다. 모든 것이 편안하고 좋은데 새로운 무언가에 도전하는 주호성은 얼마나 용기와 열정이 넘치는 사람인가. 소심하고 여린 딸을 그림자처럼 옆에서 다독이며 이끌어온 것은 그였을지도 모른다. 그런 그가 감독을 맡은 영화 ‘폴라로이드’가 얼마 전 국내 개봉을 했다. 그러나 휴머니즘 장르에 저예산 영화라 개봉조차 쉽지 않았으며 대중에게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촬영한 지는 2년 가까이 되는데 개봉이 늦었죠. 소규모 자본의 영화예요. 아시다시피 우리나라는 저예산 영화가 설 자리가 없어요. 우리 영화계의 위상이 높아졌다고 하지만 그건 일부의 이야기고 다양성의 부족으로 대부분의 영화인들이 허덕이고 있죠. 저도 이번에 절실히 느꼈고요.”
영화계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소재의 영화가 관객에게 제공돼야 한다. 관객의 눈길을 끄는 자극적인 소재와 폭력적인 화면의 영화만이 영화가 아닌 것이다.
“삶이 담겨 있고 고민과 사랑이 녹아든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이런 휴머니즘이 대중의 사랑을 받을수록 사회는 부드러워지고 순화되지 않을까요? 영화인들도 자신들이 얼마나 사회적으로 영향을 끼치는지 자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5년 전, 영화 제작자로 그의 영화에 출연했던 젊은 배우와 트러블이 생겼던 적이 있다. 당시 그 일로 그를 만난 적이 있고 유난히 ‘오프 더 레코드’가 많았던 인터뷰로 기억한다. 주호성은 여전히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바른 소리를 내뱉는 스타일이다. 영화로 인해 한 차례 논란의 중심에 있던 그가 제작자를 넘어 감독의 역할로 뛰어든 심경이 궁금했다.
“감독이라고 해서 한 번도 메가폰을 잡은 적도 없고 현장에서 ‘레디고’를 외친 적도 없어요. 조감독이 대신 소리를 질렀죠. 과거에 ‘레디고’에 환장한 사람 취급을 받은 적이 있어서 말이죠(웃음). 당시는 억울한 모함에 많이 화가 났었는데, 이제는 그가 왜 그랬는지 알아요. 인터뷰로는 밝힐 수 없지만 사정이 있었어요.”
한 차례 영화 제작을 한 경험이 있었지만 감독의 역할은 예상외로 힘든 점도 많았다. 마치 혹독하게 현장에서 구르며 영화를 온몸으로 익힌 것 같은 느낌이다.
“연극은 오랜 연습 끝에 작품의 단맛을 찾아냅니다. 그러나 영화는 수많은 스태프와 함께 움직여서 찍어야 하니 연습을 오래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걸 한꺼번에 총지휘한다는 점이 어려웠어요.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또 내 뜻이 아닌데도 잘 나온 신도 있었고요. 고집 부리지 않아도, 완벽을 기하지 않아도 사람들과 어울려 만족할 수 있는 게 영화더군요.”
영화를 완성했지만 배급사를 구하지 못해 개봉이 늦어졌다. 그 시간 동안 영화 편집에 공을 들이다 보니 그의 편집 기술도 나날이 늘기 시작했다.
“영화에는 105분이라는 규칙이 있더라고요. 그걸 넘으면 관객들이 불편해지기 시작한다는 거죠. 극장 상영 횟수에 제한이 생기기도 하고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라고 다 이어서 2시간짜리로 만들 수는 없어요. 사실 연기나 연출은 워낙 어릴 때부터 했으니 이력이 났지만 편집은 좀 생소한 분야였거든요. 그런데 개봉관을 잡지 못한 긴 시간 동안 영화를 만졌더니 이젠 경험이 많아져서 다른 사람의 영화까지도 손을 봐주고 있어요.”

‘장나라 아빠’, 그 이상의 주호성
“이제야 제대로 된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깁니다. 과정에서 실수도 많았지만 그걸 극복하면서 상당히 큰 공부가 됐어요. 마치 졸업생이 된 기분이에요.”
영화에 대한 적자는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중국의 지인을 통해 투자를 받아 촬영했고 이미 영화는 CCTV 방송국에 판권이 판매됐다. 그 역시 중국 내 톱 한류 스타인 딸 덕분임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좌충우돌 중국 활동
장나라가 중국 활동을 시작한 것은 ‘중국 진출’이란 단어가 생소했던 2003년의 일이었다. 국내에서도 잘나가던 스타였던지라 그녀의 결단은 불필요한 모험과도 같아 보였다. 오로지 중국의 가능성을 점쳐 내린 결단이었는데, 이상한 소문도 퍼졌다.
“장나라가 중국 활동으로 떠나 있던 사이에 ‘한국에서 잘 안 되니 중국 갔다’, ‘한국에서는 한물간 배우’라는 소문이 돌더군요. 그런 소문은 신경 쓰지 않아요. 누가 봐도 터무니없는 것이고 현재도 한국에 돌아와 드라마를 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더 황당한 것은 이제는 장나라의 중국 활동을 폄하하기 시작하는 거죠.”
그는 ‘폄하’의 주체를 명확히 밝히지는 않았다. 단지 국내에서 발표된 출처 불명의 ‘중국 진출 한류 스타 순위’에 대한 신빙성에 이의를 제기했다. 중국 최대 포털 사이트 바이두에서 지난 3~4년간 연예인 검색 순위 1위를 했던 그녀가 국내에서는 왜 유독 한류 스타 10위 정도에 머물러 있는 걸까.
“사인회를 열면 교통이 마비되고 행사가 끝나면 인파로 빠져나갈 길이 없어 용접기로 뒤쪽 창살을 끊고 탈출하기도 했어요.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다가 안전사고 때문에 공안에게 마이크를 뺏길 정도로 중국분들이 나라를 많이 좋아해줬어요. 중국은 채널이 400개가 있는데 400개 모든 방송에서 장나라의 ‘디아오만 공주 시리즈’를 방영했죠. 그런 드라마를 ‘전국구 연속극’이라고 불러요. 모든 채널에 방영되기까지 2년이나 걸렸어요.”
장나라는 중국 시청률 1위인 드라마의 주인공이며 자국 가수를 모두 제치고 최고 가수상도 수상했다. 게다가 2008년 베이징올림픽 성화 봉송 주자로 참여했다. 명확한 사실 앞에서 누가 그녀의 중국 활동을 왈가왈부할 수 있을까. 그는 인터뷰 다음날 중국 베이징행이 예정돼 있었다. 장나라의 광고 촬영 계약 건 때문이었다.
“내일 베이징에서는 나라의 광고 촬영과 영화, 드라마에 관한 기획 회의가 잡혀 있어요. 특히 영화와 드라마는 현지에 머물면서 그들과 같이 작업해야 하기 때문에 세세한 것까지 조율하지 않으면 진행하면서 의견 차이가 있을 수 있어요. 아주 시시콜콜한 것까지 자세하게 계약서를 작성해야 하죠.”
그는 중국 매니지먼트의 베테랑이 돼 있었다. 오랜 기간 활동한 노하우로 중국어는 물론 그들과 순조롭게 작업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의 사무실 한쪽에는 이번에 중국에 가져갈 인삼 제품이 쌓여 있었다. 지인 사업가의 부탁으로 중국 활로를 모색하 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얼마 전 중국에서 했던 저의 연극 공연 ‘원숭이 피터의 멋진 생활’에 대한 재공연 요청을 받아서 그 일도 마무리하러 갑니다. 2008년부터 중국에서 공연했는데, 그다음 해에 산둥성 연극제에 출품도 했거든요. 올 12월에 다시 공연 요청이 들어와서 각색 작업에 들어갔어요.”
딸만큼이나 바쁜 아버지다. ‘원숭이 피터의 멋진 생활’은 프란츠 카프카의 일인칭 소설을 모노드라마로 만든 ‘빨간 피터의 고백’을 다시 주호성 버전으로 각색한 작품이다. 중국에서는 소개된 적이 없는 공연이라 관심을 많이 받고 있다.

‘장나라 아빠’, 그 이상의 주호성
주호성은 늘 죄인이었다. “아버지가 딸의 활동을 방해한다, 가만히 놔두어야 잘될 텐데…”라는 비난도 많이 받았다. 언제부턴가 딸의 일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주호성이지만 아버지로서 딸을 혼자 둘 수 없는 사정도 분명 존재했다고 말한다.
“장나라는 무척 여성스러워요. 당찬 부분이 있다면 아버지로서 마음을 좀 놓겠는데 지금까지도 악성 댓글을 다 찾아보며 상처를 받아요. 게다가 연예계는 녹록지 않고 특히 신인 시절에는 여자 연예인이 견디기 쉽지 않은 일들이 있죠. 이제 제가 할 역할은 없어요. 2008년 이후에는 장나라에 대한 활동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어요. 그저 어떻게 하면 아이가 덜 피곤할까에 대해 제작자들과 협의만 할 뿐이죠.”
이번 영화에서 장나라를 앞세울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더 많은 투자를 받았을 것이고 흥행도 보장받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는 딸과 자신을 분리할 때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열정과 의욕이 넘치는 아빠와 소심하고 순진한 딸이 함께 걸으며 의견 충돌도 많았지만 결국에는 아버지의 말을 따랐던 착한 딸이다.
“요즘은 고양이밖에 몰라요. 촬영이 없는 날은 두 고양이들과 노느라 자기 방에서조차 안 나와요. 한 마리는 어릴 때부터 키워온 ‘만두’라는 녀석이고 한 마리는 이빨도 없고 꼬리도 부러진 유기 고양이예요. 유원지에서 주워서 ‘유원’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죠. 활동을 하며 받은 스트레스 같은 것을 그렇게 위안을 받는 것 같아 아빠로서는 고양이들에게 엎드려 절이라도 할 판이죠.”
중국에서 불로초라도 찾아낸 걸까? 장나라는 그녀가 출연했던 드라마처럼 ‘동안 미녀’가 돼가고 있다. 오히려 30대에 접어들면서 미모에 물이 오르고 있으니 좋은 인연과 만남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은데 아직 소식이 들리지 않는다.
“저도 걱정이에요. 남자친구를 깊이 못 사귀더라고요. 한두 달 만나다가도 트집을 잡아요. 저는 딸 가진 아비라 그런지 남자들이 원망스럽더라고요. 연애할 때는 가식도 부려가면서 여자 맘에 들도록 노력해야 하는데 이놈들이 그것조차 안 하고 있나 싶어서 말이죠(웃음). 결혼을 하려면 콩깍지가 씌어야 하는데, 아직 아닌가 보죠.”
얼마 전 장나라는 아버지를 ‘인생 최고의 선물’이라고 표현했다. 그 역시 같은 마음이다. 자신이 배우로서 가지 못했던 길을 아들과 딸이 걷고 있다. 이젠 아버지의 도전에 손뼉을 쳐줄 만큼 성장한 그들이야말로 인생 최고의 선물이 아니고 무엇일까.
■글 / 이유진 기자 ■사진 / 김동연(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