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계단’, ‘슬픈 연가’, ‘야왕’의 애절한 캐릭터는 없다. 마치 스물일곱 살에 출연했던 ‘동갑내기 과외하기’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다. 영화 ‘탐정: 더 비기닝’은 한국의 ‘셜록’을 꿈꾸는 추리광과 형사가 펼치는 합동 수사 작전을 다룬다. 권상우(39)는 한때 경찰을 꿈꿨지만 만화방을 운영하는 평범한 가장이 된 강대만 역을 맡았다. 한동안 볼 수 없었던 그의 능청스러운 생활 연기는 꽤 신선하게 다가온다.

코믹한 권상우가 떴다
언제나 마음만은 셜록을 뛰어넘는 열정으로 가득하지만 현실은 아이 보랴, 만화방 운영하랴, 아내 눈치 보랴 날카로운 추리력을 당최 쓸 데가 없다. 그의 유일한 낙은 경찰서를 기웃거리며 수사에 간섭하는 것. 형사 노태수(성동일 분)는 늘 자신의 사건에 훈수를 두는 대만이 눈엣가시 같기만 하다. 하지만 충격적인 살인사건이 벌어지면서 대만에게도 추리력을 발휘할 기회가 찾아온다.
“코미디가 뭔지는 잘 모르지만 ‘이 장면에서는 이렇게 하면 더 유쾌하지 않을까?’라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영화 속에 권상우만의 유쾌함은 분명 있는 것 같아요. 성동일이라는 배우가 있었기 때문에 더욱 유연하게 하지 않았나 싶어요.”
성동일과 권상우의 호흡은 각자의 아내보다 더 잘 맞았다는 후문. 도시적이고 세련된 이미지를 가진 권상우를 실제로 겪어보니 ‘5일장’같이 정다운 느낌이었다고 성동일은 전했다. 예전에는 올리브유를 발랐다면 지금은 들기름을 바른 것같이 담백하고 구수한 사람이라고 말이다. 권상우의 트레이드마크인 ‘근육’은 잠시 넣어뒀다. 대신 아이 보는 연기 하나만큼은 끝내주게 해내며 두 아이 아버지로서의 면모를 자랑한다.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어요. 워낙 아이를 좋아해서 갓난아기와 현장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을 받았죠. 제가 총각이었다면 아이와 연기할 때 긴장하고 어울리지 않는 면이 있었을 거예요.”
아내 손태영에 관한 얘기도 빼놓지 않았다. 결혼 2, 3년 차 때까진 아내와 자주 다퉜지만 지금은 완벽하게 아내에게 맞추고 있다며 애처가 기질을 숨기지 않았다. 새벽까지 축구경기를 보던 사람이 이제는 일찍 잠자리에 드는 아내에게 맞춰 밤 10시만 되면 침대에 눕는다고 하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사춘기 여고생과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아내는 잘 삐치는 스타일이라 가끔 귀엽기도 하죠. 아직도 저를 많이 사랑해주는 모습이 사랑스러워요.”
평소에는 가정적이지만 일할 때만큼은 집보다 촬영 현장을 좋아할 정도로 영화에 매진했다고 한다. 김정훈 감독, 성동일 모두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이기 때문에 종종 남편들의 애환을 함께 나누기도 했다. 술을 입에 대지 않던 권상우가 촬영 끝나고 맥주 한 잔을 할 정도로 분위기가 편안했다고.
“이렇게 행복하고 즐겁게 작업한 영화는 없었어요. 촬영이 끝나면 집에 가는 게 아쉬울 정도였죠. 사는 얘기와 영화 얘기를 자유롭게 나누는 분위기가 무척 좋았어요. 영화 속에서 대만과 태수가 친밀하게 보일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된 것 같아요.”
‘더 비기닝’이라는 부제가 2탄을 암시하는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는 “그런 고민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속편을 찍을 수도 있다는 건데!”라고 답했다. 여전히 뭔가에 목말라 있다는 그는 이번 영화를 통해 배우로서 또 한 번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글 / 노도현 기자 ■사진 / 이소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