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배우 임태경 12년만에 가수로 컴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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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를 넘어가면 글이나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것들이 있다. 형태가 명확하지 않은 무형의 것. 하지만 너무나 강렬하게 마음을 뒤흔드는 그 아름다운 것들을 글로 표현해야 할 때마다 기자는 비루한 문장력을 탓할 수밖에 없다. 임태경(42)의 목소리도 그중 하나다. 심장을 가득 채워 공명하는 그의 목소리는 섬세하게 물레를 돌려 도자기를 빚어내는 예술가의 몸짓을 상상하게 한다. 에너지가 최고치로 증폭된 순간조차 흔들리지 않는 우아함, 기질적인 예민함과 고상함은 그를 ‘뮤지컬계의 황태자’라는 지위에 올려놓았고, 10년의 시간 동안 그의 왕좌는 견고하게 유지됐다. 2005년 뮤지컬 ‘불의 검’을 시작으로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스위니 토드’, ‘햄릿’, ‘모차르트’, ‘몬테크리스토’ 등 그의 커리어는 곧 지난 10년 동안 한국 뮤지컬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뮤지컬 배우 임태경 12년만에 가수로 컴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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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던 그가 싱글 앨범을 발표하고 데뷔 12년 만에 ‘가수’로 돌아왔다. KBS-2TV ‘불후의 명곡’을 통해 다양한 장르의 무대를 선보이긴 했지만 뮤지컬 넘버가 아닌 가요로만 구성된 앨범은 2004년 발표한 첫 번째 앨범 「Sentimental Journey」 이후 11년 만이다. 신곡 ‘그대의 계절’과 ‘한사람’이 담긴 앨범에는 ‘크로스오버 테너’ 혹은 ‘뮤지컬 배우’ 등 그를 규정해온 수식어들을 벗은 ‘노래하는 사람’ 임태경이 있다. “당분간 뮤지컬 무대에는 서지 않겠다”라는 선언은 꽤 충격적인 것인 동시에 노래에 대한 그의 의지를 가늠해볼 수 있으리라.

촬영장에서 임태경은 누구보다 유쾌하고 에너지 넘치는 사람이었다. 혹시나 ‘배우님의 심기가 불편하지는 않을까’ 마음을 졸였던 것이 무색하리만큼. 중간중간 흘러나오는 노래에 맞춰 선보인 멋진 라이브로 현장의 여성 스태프를 여럿 쓰러뜨린 건 말할 것도 없다. 마주앉은 그는 그간 품고 있던 오랜 고민과 열정을 풀어놓았고, “노래를 부르는 동안에는 천둥 치는 벌판도 무섭지 않다”라는 그의 말은 오랫동안 가슴에 남았다. 앞으로 듣게 될 그의 노래가 더욱 기다려지는 이유다.

12년 만에 가수로 돌아온 기분이 어때요? 또 다른 데뷔를 한 것 같은 기분이에요. 새로운 걸 하는 게 아니라 원래 제 모습으로 돌아온 건데 이렇게 설렐 줄 몰랐어요. 요즘 의욕이 넘쳐요. 앞으로는 부지런히 새로운 노래를 들려드릴 생각이에요.

‘그대의 계절’에선 크게 느끼지 못했는데 ‘한사람’을 들으니 이제까지와는 다른 느낌이에요. 뮤지컬적인 창법이 거의 느껴지지 않던데요. 그게 제 의도였어요. ‘그대의 계절’은 대중에게 익숙한 뮤지컬 배우 임태경의 색깔이 묻어 있다면, ‘한사람’은 그런 이미지들을 걷어내고 부른 노래예요. 창법도 달리해 불렀고요. ‘임태경이라고 항상 그렇지는 않아요, 이런 모습도 있답니다’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고 할까요.

임태경 하면 대중가요보다 클래식이나 뮤지컬 쪽 이미지가 강한 게 사실이에요. 크로스오버 테너, 뮤지컬 배우, 가수. 저를 부르는 다양한 수식어가 있어요. 당시 제가 불렀던 음악의 장르들이에요. 그 이미지가 굉장히 크더라고요. 벗어나고 싶다기보다 장르에 규정되거나 사로잡히지 않고 더 넓은 의미의 음악을 들려드리고 싶은 마음이에요.

당분간 뮤지컬 무대에 서지 않겠다는 말 때문에 충격을 받은 팬들이 많아요. 이런저런 얘기가 들려요. “임태경이 뮤지컬에 질렸나보다”, “싫어졌나보다”라고요. 뮤지컬을 10년 정도 하고 보니 이제 온전히 내 힘으로 노래하고 책임을 져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온전히 혼자 책임을 져보고 싶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제가 하는 뮤지컬들이 겉으로는 임태경이라는 이름이 크게 드러나는 것이지만 사실 저 혼자 하는 게 없어요. 수많은 요소가 모여 완성되는 작품들이죠. 작품을 하면 할수록 혼자가 아닌 더불어 만들어가는 작업이라는 걸 느껴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인공으로서 매 작품 긍정과 부정의 평가를 받는데, 그중 어떤 것이 오롯이 나만의 것일까 궁금증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홀로 서는 무대를 택한 건가요? 관객분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 있었어요. 적지 않은 돈으로 티켓을 사서 공연을 보러 오시는데 기대를 충족시켜드리지 못하는 것 같아서요. 충족이라는 게 기준에 따라 다른 거잖아요. 점점 경력이 쌓이다 보니 그 기준점이 높아지더라고요. 여러 구조나 시스템상의 아쉬움도 보이고요. 밖으로 나와 그러한 고민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고 싶었어요. 그러면서 노래하는 사람 본연의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 그것이 현재 제 모습이에요.

이다음 뮤지컬로 돌아왔을 때는 다른 모습이겠네요. 뮤지컬 제작도 생각해보고 있어요. 연출도 하고 극본도 쓰고요. 그 안에 배우로 선다면 해볼 만하다고 생각해요. 스토리가 정해진 작품 안에서는 아무래도 제 색깔을 보여드릴 범위가 한정적이니까요. 제작자든, 배우든, 오롯이 저의 역량과 책임을 다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을 때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뮤지컬 배우 임태경 12년만에 가수로 컴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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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에서 울고 있었던 10년의 시간
2005년 뮤지컬 ‘불의 검’ 이후 10년을 쉬지 않고 달려왔어요. 돌아보면 어때요? 재미있어요. 제 생일 때마다 팬들께서 이제까지의 작품들을 영상으로 만들어서 보여주세요. 그걸 볼 때마다 온몸이 녹아서 땅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아요(웃음). 첫 작품 때 모습이 얼마나 어색한지. 티켓을 구매해 쭉 보다 보면 제 연기가 점점 발전되는 게 보이더라고요. 그때도 이만 한 가격으로 임태경을 보셨고 지금도 그 가격에 보시는데 연기력이 그렇게 차이가 나니, 초반에 보신 분들은 무슨 죄예요(웃음).

맨 처음 무대에 섰을 땐 어땠어요. 정상에 선 모습을 상상했나요? 전혀요. 첫 작품 제의를 받고 3개월간 고사했어요. “내가 할 줄 아는 건 노래밖에 없습니다. 저는 못합니다”라고요. 그땐 제가 연기를 한다는 게 상상이 안 됐거든요. 3개월 동안 설득을 하셔서 그럼 딱 이 한 작품만 하자 했는데 그게 하나만 더, 하나만 더 하다 10년이 됐어요. 한두 작품을 해가며 스스로 배우라는 느낌을 받게 됐죠.

그렇게 생각하게 된 작품이 뭐예요? ‘스위니 토드’예요. 그 작품을 하며 연기가 뭔지에 대해 깨닫게 됐어요. 유일하게 조연을 맡았던 작품이거든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인공은 가만히 서 있어도 무대에서 빛날 수밖에 없는 존재예요. 진짜 연기를 잘하는 사람은 그 옆에서 주인공을 비춰주면서도 자기 스스로 빛나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때 연기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죠.

전작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가 대성공을 거둔 뒤였잖아요. 의외의 선택이라는 시선도 있었어요. 맞아요. 때문에 ‘스위니 토드’는 이제까지 작품 중 가장 힘들었던 작품이기도 해요.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마지막 공연 때 밖에서 700명이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런 기대치가 높은 상황에서 다음 작품에서 조연을 하니 이런저런 말들이 많았죠. 제가 생각하기에 조연이 주연보다 돋보이면 안 되는데 ‘임태경은 무조건 돋보여야 돼’라는 기대치가 있었어요. 배우로서 무대에 서는 입장과 외부의 시선이 부딪히더라고요. ‘임태경 거품이었네’라는 소리도 들었고요. 상처도 많이 받았지만 그다음 작품부터는 눈에 띄게 연기가 늘었어요. 오늘의 임태경을 있게 한 고마운 작품이에요.

뮤지컬 배우들이 3시간 넘게 무대에서 울고 웃고 노래 부르는 걸 보면 체력적으로도 정말 힘들겠다 싶어요. 작년에 공연했던 ‘모차르트’는 가만히 앉아서 보고 온 것만으로도 다음날까지 몸이 아프더라고요. ‘모차르트’는 미친 작품이에요(웃음). 몰입이 너무 깊게 되는 작품이죠. 무대가 끝나고 몸무게를 재본 적이 있는데 올라가기 전보다 2kg이 빠졌더라고요.

매번 작품 때마다 드라마틱한 상황에 빠지고, 빠져나오는 것이 반복되잖아요. 게다가 대부분 범상치 않은 인물들이고요. 그런 점에서 힘든 부분은 없나요? 그게 어렵고 힘들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오히려 저를 더 힘들게 하더라고요. 그래서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그냥 인정해, 내가 선택한 거니까 받아들여’라고요. ‘난 이 순간만큼은 철저히 모차르트고 철저히 돌아이야’ 하는 거죠. 신기한 게 무대에서 내려왔을 때도 달라져요.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에서 예수 역을 맡았을 땐 제 행동이 예수님처럼 그랬어요(웃음). ‘몬테크리스토’ 때는 분노에 차 있었고요. 그때그때 맡은 인물과 삶이 닮아가요. 그런데 내버려둬요. 그때만큼은 그 인물로 사는 거죠. 거기서 빠져나오는 가장 좋은 방법은 빨리 다른 인물로 이입이 돼서 새로운 인물로 사는 것이에요.

이제까지 연기했던 인물 중 원래 임태경과 가장 유사했던 인물은 누구예요? 모든 인물들이에요. 제가 인물을 풀어가는 방식이 인물의 성향 중 나와 닮아 있는 부분을 증폭시키는 거예요. 미치광이를 연기한다면 제가 원래 가지고 있는 약간의 광기를 증폭시키는 거죠. 그런 식으로 ‘임태경화’를 해요.

한 번 작품을 시작하면 연습과 본무대, 지방 공연까지, 그야말로 체력전인데 체력 관리는 어떻게 해요? 엉뚱한 말인지 모르겠는데 제 체력 관리는 일인 것 같아요. 쉬다 보면 더 늘어지고 피곤하더라고요. 일을 할 때는 ‘버텨야 돼’라는 마음에 정신적으로 긴장을 하게 되거든요. 그것만으로도 단련이 되고요. 운동도 쉴 때는 거의 못하고 차라리 바쁠 때 짬을 내서 하게 돼요. 몇 번 겪고 나니 쉬는 것보다 일을 하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아, 나는 일하면서 살 팔자구나’ 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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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배우 임태경 12년만에 가수로 컴백

음악은 나의 철학이자 언어
10년 전의 임태경과 지금의 임태경, 본인이 보기에 가장 많이 달라진 게 있다면 뭘까요?
글쎄요. (한참 생각에 빠진 후) 제가 보기에는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아요. 사람 임태경이 변하지 않게 해달라고 매일같이 기도했어요. 초심을 잃지 않게 해달라고요. 그럼에도 책임감이 점점 커져가는 상황들을 맞닥뜨리다 보니 점점 더 예민하고 깐깐하게 보일 수 있었을 것 같아요. 10년 전과 달라진 건 일하는 사람들과 협력하는 방법을 알게 된 것 아닐까 싶어요. 어렸을 때는 저 혼자 만의 완벽을 추구했다면 지금은 함께 완벽하기 위해 어떻게 가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됐죠.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다는 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에요. 제가 봐도 재능이 없는 것 같지는 않아요.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더라고요. 잘하는 친구들은 이유가 있어요. 끊임없이 고민해요. 남들은 완벽하다고 해도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으면 그걸 놓지 못하는 거죠. 그러다 보니 스스로에게 점점 잔인해지더라고요. 하면 할수록 편해지는 게 아니라 점점 더 힘들어져요. 더 진정성 있는 음악을 어떻게 보여드려야 할까 끊임없이 고민하고 채찍질하게 돼요.

요즘 가장 큰 고민은 뭔가요? 잠을 잘 못 자요. 머릿속에 생각이 가득 차서 잠을 잘 시간이 없어요. 오늘도 아침에 딱 2시간 자고 나왔어요.

어떤 생각을 주로 해요? 나이가 먹어가면서 몸이 변하니 제 노래도 변해요. 어떻게 해야 좋은 방향으로 나를 이끌어갈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에요.

여유가 있을 때는 뭐 하면서 지내요? 여행을 가요. 제가 유일하게 충전을 받는 소스가 자연이에요. 예전에는 혼자서도 잘 다녔는데, 요즘에는 나이가 나이인지라 혼자 가면 참 외로워요. 그래서 안 가게 되더라고요. 이제는 자연을 함께 나누고 싶은 사람과 함께 가고 싶어요.

임태경의 ‘한사람’은 누구인가요? 혹시 지금 곁에 누군가가 있나요? 아직은 이미지로만 있어요. ‘한사람’은 내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 내 아내가 됐으면 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런 노래를 불러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부른 노래예요. 아침에 눈떴을 때 곁에 있는 사람, 의지가 되고 위로가 되는 사람, 그런 사람이 빨리 생겼으면 좋겠어요. 이런 얘기를 했더니 제 연관 검색어에 ‘임태경 결혼’부터 그동안 저와 같이했던 여배우분들 이름이 다 뜨더라고요(웃음).

언젠가 40대가 되면 ‘지킬앤하이드’를 하고 싶다고 했어요. 지금은 그런 게 없어졌어요. 이제 생각해보니 어느 작품이든 제가 꼭 하고 싶었던 작품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요.

임태경에게 노래는 어떤 의미인가요? 음악은 저의 철학이자 저의 언어예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 제 마음이 하는 얘기를 노래로 들려드리고 싶어 이 길을 선택했어요. 말로 하는 것보다 제 음성으로, 제 몸을 울려서 들려드리고 싶어요. 제 머리와 마음을 갈라서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가 없더라고요. 말로는 각자가 알아듣고 싶은 대로 듣고 진짜인지 거짓말인지 의심을 해요. 그런데 제가 몸을 울려서 노래를 하면 그 진심을 알아주시는 것 같아요. 그게 맞아요.

이제까지 노래하며 지켜온 것이 있다면? 저는 노래할 때만큼은 벼락도 무섭지 않아요. 천둥 번개가 치는 한가운데서도 저는 노래할 수 있어요. 그때만큼은 100% 진심이거든요. 거짓말이 섞이지 않게 하려고 늘 스스로를 채찍질해요. 저에게 무대는 단두대 같아요. 목숨 걸고 올라가요.

10월 전국 투어 콘서트를 앞두고 있어요. 어떤 곡들로 채워질까요? 일단 생각하고 있는 것은 매번 투어를 할 때마다 신곡을 발표하려고 해요. 앞으로는 더 자주 새로운 곡을 만들고 들려드릴 생각이에요. 제 공연에는 테마가 있거든요. 이번 공연은 ‘사랑의 사계절’을 테마로 해 여러 가지 옴니버스 영화 같은 그런 콘서트가 될 것 같아요. 이제까지 부른 노래와 다른 여러 장르의 노래도 들려드릴 예정이에요.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네요. 제가 공연 때마다 관객들에게 하는 얘기가 “당신이 행복하기 위해서 제 공연을 사용하세요”예요. 제가 맞춰드려야죠. 제가 행복하게 해드릴 테니 다른 것은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으셔도 돼요.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김석영 ■의상&액세서리 협찬 / 그레이지믹스처(02-529-0930), 닥스 by 갤러리어클락·미쉘에블랑 by 갤러리어클락(02-540-4723), TNGT(070-4010-8706) ■헤어&메이크업 / 이누리 ■스타일리스트 / 김영아(suner), 황지민·유은주(어시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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