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cm 장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듬직함과 안정적인 중저음의 ‘동굴 목소리’로 입사 초부터 진지하고 반듯한 아나운서의 전형을 보여줬던 그에게는 누구보다 충만한 끼가 꿈틀거리고 있었으니, ‘긴급출동 SOS 24’와 같은 시사 프로그램부터 아침 토크 프로그램, ‘한밤의 TV연예’와 ‘자기야-백년손님’ 등 예능 프로그램까지 두루 섭렵한 그는 어느새 시청자들 곁에 바짝 다가와 있었다. ‘봉고차에서 우르르 내리면 범인인지 형사인지 모를 얼굴’에서 밉지 않은 철부지 사위가 됐으니 이만하면 성공적인 이미지 변신이다.
인터넷에는 야생의 세계에서 그의 생존을 걱정하는 글들이 넘쳐나지만 탄탄한 내공과 실력, 아직 다 드러내지 못한 반전은 그의 미래를 낙관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아닐까.
사표 수리 일주일 만에 만난 그는 만기 전역한 병장처럼 홀가분해 보였고 동시에 설렘이 느껴졌다. 결혼 7년 차, 일곱 살과 다섯 살 두 아이의 아빠인 그가 30대 중반을 넘은 나이에 회사를 박차고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방송에 대한 욕심과 아나운서인 아내의 든든한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단다. “혹독한 야생에서 살아남을 김일중만의 무기는 뭘까요?”라는 질문에 “글쎄, 뭐가 좋을까요?”라며 기어코 함께 머리를 맞대게 만드는 이 남자의 매력은 앞으로 더 빛을 발하리라.
오늘 촬영 어땠어요? 카메라는 워낙 친숙하죠? 10년을 카메라 앞에 서왔지만 스틸 촬영은 어려워요. 그래도 재밌었어요.
대부분의 인터뷰이들은 자신이 어떻게 찍히고 있는지 궁금해하는데, 모니터링을 잘 안 하더라고요. 전 좀 어색해요. 사진에는 제가 생각하는 이미지와 좀 다르게 나오는 것 같아요. 거울을 보거나 머릿속의 제 얼굴은 더 잘생겼는데 말이죠(웃음).
퇴사한 지 이제 일주일이 됐어요. 그동안 뭐 하며 지냈어요? 아내 허락받고 캠핑 다녀왔어요. 대전 거쳐서 남해로요. 논산에서 군 복무를 했거든요. 그때의 군인 정신을 되살려볼까 싶어서 논산훈련소에도 들러보고요.
보통 남자들은 자신이 군 생활했던 곳은 잘 안 가지 않나요? 거기 간다고 다시 군대에 끌려가는 것도 아닌데요, 뭐(웃음). 조교 시절 훈련병들 훈련시켰던 생각도 나고. 조용히 혼자 셀카 찍고 왔어요. 10년 동안 일주일을 통으로 쉬었던 건 신혼여행 이후 이번이 처음이에요. 아나운서라는 직업이 남들 쉴 때 일하는 업무이다 보니 명절이나 주말에도 근무를 하고, 장기간 여행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없었죠.
바쁘게 살았던 만큼 회사를 그만둔 뒤 온도 차가 클 것 같아요. 기분이 어때요? 홀가분해요. 두려운 것도 많았는데 여행하는 동안 많이 비웠어요. 앞으로 다가올 일들을 미리 걱정하거나 고민하지 말고 하나하나 부딪혀보려고 하고 있어요. 지금은 그래서 설레는 마음이 커요.
회사를 그만두고 가장 달라진 건 뭐예요? 사표를 쓰니 주변에서 해야 할 일들을 많이 얘기해줘요. 골프 배워라, 중국어 해라, 운동해라. 쉴 때 잘 쉬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마냥 늦잠 자고 게을러지지 않도록 차근차근 해나가려고요. 가장 눈에 띄게 달라진 건 집안일을 많이 하게 됐다는 거예요. 퇴사하고 제일 먼저 한 일이 밥솥 고치러 간 거였어요. 집에 밥솥이 고장 났다고 해서 AS 맡기고, 아이들 유치원 발표회에 가서 사진도 찍어주고. 그동안 못했던 일들을 제대로 하고 있죠.
사표 권한 아내, 누구보다 든든한 지원자
여기저기서 연락 오지 않던가요? 보험회사에서 광고 일로 제일 먼저 연락이 오더라고요(웃음). 고사를 했지만, 그래도 관심 가져주시니 고마웠어요. 조만간 소속사가 정해질 것 같아요. 10월부터는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지 않을까 싶어요.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어요.
프리랜서 아나운서들의 활동이 활발하긴 하지만 그래도 아나운서로서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나온다는 건 큰 결정이잖아요. 고민이 많았을 것 같아요.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 건 1, 2년 정도 됐어요. 회사를 나오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방송에 대한 욕심 때문이었어요. 좀 더 다양한 프로그램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커지더라고요. 그렇다고 무턱대고 나갈 순 없으니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시간을 가졌어요. 외부에서는 걱정하는 시선이 많지만 저 스스로는 ‘한번 해볼 만하다’라는 결론에 도달한 거죠.
원래 승부수를 잘 던지는 스타일이에요? 제가 이래봬도 몸을 되게 사려요. 다칠까 봐 레저 스포츠도 잘 안 하는데 이런 결정에는 승부수를 띄우는 편이에요. 확신이 있다기보다 궁금했어요. 한번 가보고 싶었어요.
사표 권하는 아내라니, 멋지네요. 그러면서 “방송 없고 일이 없으면 집에서 애 보면 되는 거야”라고 하던데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아, 내가 집에서 애들 보는 일은 없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웃음).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 싶었죠.
같은 일은 하고 있다는 점에서 부인 윤재희 아나운서가 이해해주는 면이 많았을 것 같아요. 제가 5년 동안 차를 일곱 번 바꿨어요. 혼자서 일도 저질러봤고 각서도 써봤는데, 이건 차 바꾸는 일과는 차원이 다르잖아요. 두 아이와 아내가 있는 가장이다 보니 고민이 클 수밖에 없었죠. 내 꿈만 좇아도 되는 상황인가, 너무 이기적인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그런 면에서 아내가 큰 힘이 됐어요. 아내의 동의와 지지가 없었다면 용기를 못 냈을 거예요.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7년 전 결혼 소식이 전해졌을 때 SBS 로비에서 인터뷰한 적이 있어요. 그때와 별로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아요. 칭찬인 거죠?(웃음) 벌써 아들이 둘이에요. 큰애가 내년에 학교 들어가요.
아이들의 반응은 어때요? 아빠와 놀 시간이 많아져서 좋아하나요? 큰애가 일곱 살, 작은애가 다섯 살이에요. 어느 날 큰애가 유치원에 다녀와서 “아빠, 백년손님이 뭐야? 선생님이 아빠보고 백년손님이래” 하더라고요. 아빠가 방송에 나오는 사람이라는 걸 아는 나이니까, 다른 곳에서 얘기를 듣는 것보다 아빠에게 직접 듣는 게 나을 듯해서 “아빠가 이제 회사에는 안 나가지만 방송은 계속할 거야”라고 얘기해줬어요. 그랬더니 “아, 그래요~” 하고 장난감 가지러 달려가더라고요(웃음). 요즘 둘 다 전쟁놀이에 푹 빠져 있어요. 열심히 놀아주고 있죠.
김일중의 맨얼굴? 철부지 사위
처음 SBS에 입사할 때 ‘오상진을 제치고 합격한 아나운서’로 유명했어요. 다들 의아해했어요. 쟤가 어떻게 합격했을까, 하고(웃음). 입사하고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당시 저를 뽑아주신 사장님께서 “이 친구는 누구야? 왜 이렇게 촌스러워?” 하시더라고요. 세련미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받았고, MBC에서 오상진 아나운서가 활약하는 걸 보며 속앓이도 했어요. 그때 선배들에게 많이 들었던 말이 “조급해하지 마라. 남자 아나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였어요. 차근차근 내 페이스를 잃지 말자 하면서도 방송에 대한 목마름은 계속 있었던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아나운서가 꿈이었어요? 학교 다닐 때 보면 성향이 좀 나뉘잖아요. 발표 준비는 꼼꼼히 잘하는데 발표는 하기 싫어하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준비는 안 해도 앞에 나가 발표는 잘하는 학생. 전 전형적인 후자였어요. 나서는 것도 좋아했고요. 군 제대하고 나서 무얼 할까 고민하다 아나운서 아카데미 초급반에 등록해 3개월을 다녔어요. 스물여섯에 춘천 MBC에 입사해 1년을 다니다가 SBS 아나운서 시험을 봤어요. 500:1 경쟁률을 뚫었으니, 정말 운이 좋았죠. 합격했을 때 제 주변 사람들이 더 놀랐어요(웃음).
초반에는 인상이 강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죠? 입사하고 얼마 안 돼 맡았던 ‘긴급출동 SOS 24’ PD님께서 ‘봉고차에서 우르르 내리면 범인인지 형사인지 모를 얼굴’이라고 하시더라고요(웃음). 어렸을 때부터 느껴온 건데 제가 외향적인 모습과 내면의 모습이 많이 달라요. 실제로는 아기자기한 거 좋아하고 유쾌한 스타일이에요. 덩치도 크고 날카로워 보이는 인상이라서 오해를 하시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그걸 깨려고 나름 노력을 많이 했어요.
입사했던 2005년이 ‘아나테이너’ 붐이 일던 시기였어요. 노현정, 강수정씨가 한창 활약하던 시기였죠. 맞아요. 아나테이너들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2007년에 ‘기적의 승부사’라는 프로그램에 아나운서 팀으로 출연했어요. 그때 처음으로 예능 프로그램을 경험했죠.
‘김일중이라는 사람 안에 뭔가 다른 게 있구나’ 하고 느꼈던 게 ‘한밤의 TV 연예’와 ‘자기야-백년손님’을 본 뒤였어요. 그때 경로를 확실하게 정했어요. 아나운서들은 누구나 선배들이 쌓아놓은 아나운서의 이미지를 깨면 안 된다는 부담이 있거든요. 그걸 내려놓으니 훨씬 편하더라고요. 처음 ‘백년손님’ 섭외가 왔을 때 PD 선배를 피해 한 달 동안 도망 다녔어요. 장모님과 함께 방송에 출연해야 하는 거라서 걱정되는 부분이 많았는데, 의외로 장인, 장모님께서 흔쾌히 승낙을 해주셨어요. “김 서방이 한다면 당연히 해야지~” 하시면서요.
아내 없이 혼자 처갓집에 가서 너스레를 떠는 철부지 사위가 귀여워 보이더라고요. 원래도 좀 철이 없어요(웃음). 처음에는 악플도 달리고 그랬는데 점점 귀엽게 봐주시더라고요. 어머님들도 전보다 친근하게 대해주시고요. 지금은 제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프로그램이 됐죠. 앞으로 제가 가져가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야생에서의 포지션, 전현무와 오상진 사이
같은 해에 입사했던 전현무, 오상진 아나운서가 프리랜서로 한창 활약하고 있는 걸 보며 자극을 받지 않을 수 없었겠어요. 퇴사 이유에 대해 그렇게 말씀을 드리기는 했지만 제 롤모델은 김성주 아나운서예요. 가요제, 시상식, 예능 프로그램, 스포츠 중계까지 거의 모든 영역의 프로그램을 진행하시는 걸 보면서 아나운서의 꿈을 키웠거든요. 제가 생각하는 아나운서의 전형이에요. 저도 그런 진행자가 되고 싶고요.
울타리를 벗어나 야생으로 나온 김일중의 전략은 뭔가요? 일단 지금까지 쌓아온 걸 버릴 수 없잖아요. 철부지 같고 허당스러운 모습부터 그동안 보여드리지 못한 입담까지 마음껏 펼쳐 보일 생각이에요. 이제 어장에서 나왔으니 활개를 한번 쳐봐야죠. 댓글 중에 ‘전현무보다 잘생겼고 오상진보다 말 잘한다’라는 글이 있더라고요(웃음). 개성 강한 진행자들 사이에서 그 정도 포지션만 가져도 성공이 아닐까 싶어요.
워낙 프리랜서 아나운서들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잖아요. 그 안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걱정하는 시선도 많아요. 댓글을 봤는데 네티즌들이 저보다 더 걱정이 많으시더라고요. 제 아내 걱정까지 해주시고요(웃음). 이제 계급장 뗐으니 아나운서가 주는 무게감이나 우아한 이미지 이런 거 다 내려놓고 진솔하고 소탈하게 보여드릴 생각이에요.
신동엽 하면 ‘섹드립’, 김구라 하면 ‘막말’이 떠오르잖아요. 김일중을 드러낼 만한 단어가 있을까요? 글쎄요. 뭘 해야 임팩트가 있을까요? 그게 있으면 좋은데 아직은 제가 그럴 단계는 아니니까…. 저는 ‘소탈’로 할래요. 의외로 저를 귀엽게 봐주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웃음). 제가 그렇게 악한 사람은 아니거든요. ‘철부지’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꼭 해보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나요? 저는 토크 프로그램이 참 좋아요. 인터뷰도 무척 좋아하고요. 콕콕 찔러가며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재미가 있어요.
10년 후 김일중은 어떤 모습일까요? 글쎄요. 앞으로는 매일매일이 도전이라는 것 말고는 예상할 수가 없네요.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제 인생이 긁는 복권이라면 지금 3분의 1쯤 긁었다고나 할까요? 똑같은 그림이 3개 나오면 당첨인데, 긁고 보니 느낌이 괜찮은 것 같아서 승부수를 던졌어요. 앞으로 하나씩 긁어나가는 거죠. 제가 생각했던 것과 맞아떨어지기를 바라며. 그러기 위해선 정말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이다음에 뭐가 나올지 무척 궁금해요.
■글 / 노정연 기자 ■사진&리터칭 / Blaak, 최종웅(쟈뎅드라망, 02-3445-2927) ■헤어&메이크업 / 아쥬레(02-532-6660) ■스타일리스트 / 김명희